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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과 우상숭배
20: 4-6
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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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부터 추석 연휴가 시작됩니다. 그러나 사실은 이미 금요일부터 연휴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제부터 많은 분들이 고향을 다니러 가므로 고속도로나 모든 국도가 넘치는 차량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시대가 어려우니까, 더 고향이 그리워지는 것 같습니다. 추석이 오면 누구나 마음이 푸근해집니다. 일 년의 농사를 수확하는 계절이요, 모든 자연의 색갈이 최고의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계절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때에 그립던 부모님과 형제들이 만나 함께 음식과 선물을 주고받으며 살아온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니다. 그러나 이런 명절을 맞을 때마다 우리 기독교인들을 괴롭히는 것이 바로 제사입니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담대하게 자기의 신앙의 자세를 굽히지 않지만, 어느 교인은 여전히 제사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제가 시골에서 목회할 때에 당한 문제 중의 하나가 제사문제였습니다.
‘왜 기독교인들은 제사를 지내지 않는가? 기독교는 불효의 종교가 아닌가?’라는 믿지 않는 분들의 비난이 많은 교인들을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사를 ‘왜 안 지내느냐?’는 비난을 가만히 분석해 보니까, 조상에 대한 존경심보다 음식이 문제였던 것 같았습니다. 그 당시는 대단히 배고픈 시절이어서 무슨 제삿날이나 생일, 잔치를 동네 사람들은 많이 기다리는 형편이었습니다.
시골 목회 시절, 그 동네 아주 별난 노인이 한 분 계셨는데 그 분은 동네 사람들의 제삿날을 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를 초청하지 않으면 낮에 그 집에 일부러 쟁기를 빌리러 갑니다. 그러면 제사 음식을 준비하던 그 식구들이 자연히 ‘아저씨, 오늘 애 아버지 제사인데 꼭 오셔서 약주 한 잔 하세요.’라고 인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자, 그러한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기독교인들이 제사를 안 지내고 추도예배를 드리면서 간소하게 지내는 것이 얼마나 못 마땅하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그 당시 교인들에게 추도예배를 드리더라도 음식을 많이 차려서 동네 어른을 모시라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미신이 만연하여서 제사를 지내지 않고 버틴다는 것은 대단히 힘에 겨운 일입니다. 과학이 발달할수록 점점 미신이 사라져야 함에도 오히려 갈수록 미신이 더 판을 치는 느낌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무당과 점쟁이가 여전히 활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는 무당과 점쟁이 등 역술인의 수가 무려 40만 명이라고 합니다. 이는 초 중교 교사 35만보다 더 많은 수입니다. 40만 명이 하루 한 명씩의 손님을 받는다면 1년에 1억 4천 명이 점을 본다는 것이요, 한번에 1만원의 복채를 낸다면 일 년에 1조 4천억이 된다는 계산이 되는 것입니다. 서점에 가면 1천 5백여 종의 역술 관련 책이 나와 있고, 신문이나 인터넷에도 ‘운세’에 대해서 많은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다가 미신을 가장 앞장서서 추방하여야 할 정부 기관에서 조차도 무슨 행사에 백주에 돼지 머리를 놓고 고사를 공공연히 지내면서 소위 엘리트라는 사람들이 굽실굽실 큰절을 올리고 돈을 바치는 모습은 너무나 한심합니다. 이런 과학이 최고도로 발달한 시대에서 아직도 저런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니 기가 막힙니다. 이 모든 것은 인간들이 하는 것 같아도 사실은 배후에 거짓 영들이 역사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런 거짓 영들이 온 나라에 역사하고 있는 탓인지, 온통 거짓이 판을 치는 사회가 되고 있는 느낌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요즈음 우리는 신문이나 TV를 켜면 제일 나타나는 신정아 씨와 변양균 씨에 대한 뉴스에 신물을 내고 있습니다. 신정아 씨는 가짜 학위를 통해서 동국대 교수까지 되었고, 35세 나이에 국제미술행사인 ‘광주비엔날레’ 총감독의 물망에 오를 정도가 되었다는 것은 이 나라가 거짓이 얼마나 판을 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뿐입니까? 신정아 씨는 얼마나 수단이 능수능란한지, 청와대 정책실장이었던 변양균 씨와 특별한 관계를 가짐으로, 어제 뉴스를 들으니 변양균 씨로부터 수 천 만원 상당의 보석까지 받았다고 합니다. 거짓으로 똘똘 뭉친 한 여인으로 인해서 학계, 미술계, 불교계, 정치계가 큰 농간을 당한 꼴이 되었으니 너무나 부끄러운 한국의 모습입니다. 그만큼 우리나라는 지금 거짓 영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그러한 우상숭배가 만연된 속에서 기독교인들이 제사를 지내지 않으려는 것은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너무나 힘든 것이요, 많은 비난과 핍박을 받기가 쉽습니다. 이러한 속에서 견디다 못한 많은 기독교인들이 질문을 하기를 ‘아니, 제사를 지내는 것은 죄가 아니지 않는가? 돌아가신 부모에게 절하는 것이 어떻게 우상숭배가 된다는 것인가? 공연히 제사를 금지함으로 전도의 문을 막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라고 합니다.
그런 표현은 하지 않으나 속으로는 그와 같은 의문을 품은 교인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혹은 교회를 다니면서 여전히 제사를 지내거나 장례식 집에 가서 넓죽이 엎드려서 절하는 교인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으로서 왜 제사가 우상숭배의 죄가 되는지 분명히 알기 위해 오늘 설교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십계명의 두 번째 계명은 우상숭배를 금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1계명과 2계명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제1계명은 출20: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라고 했는데 비해, 제2계명은 출20:4-5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고 했습니다.
즉, 제1계명은 모든 잡신을 금하고 있는 동시에 제2계명은 모든 거짓 예배를 금하고 있습니다. 제1계명은 하나님의 인격성을 강조한다면, 제 2계명은 영이신 하나님, 그 신령함을 우리에게 강조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제1계명은 우리의 경배 대상은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뿐이요, 제2계명은 진정한 예배의 방법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예배를 위해서 우상도 만들지 말고, 거기에 절하거나 섬기지 말라는 교훈입니다.
그렇다면 조각품을 만드는 것도 우상숭배에 해당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유럽 사회에 가면 사방팔방에 온갖 조각품들이 많이 장식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 모든 것도 우상숭배의 죄에 해당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성경에 보아도 조각품이 많이 나옵니다. 솔로몬이 건립한 거룩한 성전에 대한 기사를 보아도 여러 가지 화초나 열매와 사자 같은 그림으로 성전을 아름답게 장식한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또 가장 거룩한 장소인 지성소 안에도 날개 있는 그룹을 만들어서 법궤위에 두었고, 영물인 그룹들의 형상을 만들어서 언약궤에 있는 수호신으로 만들어 놓았고, 금 촛대도 정교하게 만들어 놓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조각품과 우상의 다른 점은 무엇인가? 어떤 조각품을 만들어서 그것이 복을 주는 것으로 믿고 거기에 예배하거나 절하거나 복을 빈다면 그것은 바로 우상이 되는 것이요, 그것이 바로 제2계명을 어기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대신하여 예배를 드리는 대상은 모두 우상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일제(日帝) 때, 신사참배도 우상숭배의 죄가 되는 것이요, 불상(佛像)에게 절하는 것은 모두 우상숭배의 죄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혹, 여러분 중에 생각하기를 ‘천주교에 성모마리아상이나 무슨 성자상에게 기도하는 것은 괜찮지 않을까?’라고 할지 몰라도, 아닙니다. 사실, 개신교(改新敎)가 종교개혁을 할 때, 이런 우상숭배에 과감히 도전하여 개혁한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 개신교가 천주교와 다른 점은 바로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거기에 절하지 말라.”는 성경 말씀에 순종한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우리 개신교에서는 유일하게 교회당 안에 십자가상을 만들어 걸어 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어느 성도가 그 십자가상에게 절을 하고 기도한다면 그것도 우상숭배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교회에서는 십자가나 예수님의 그림을 전혀 걸어 놓지 않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그 어느 것에도 예배 드리거나 신으로 경배하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계시록에 보면 천사가 요한에게 나타났을 때에 엎드려 천사에게 경배하려 했으나 천사가 요한에게 절하지 못하게 합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까지도 우리의 예배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사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위에서도 말씀 드린 대로 어느 분은 ‘제사가 무슨 우상숭배이냐? 조상을 존경하는 의미에서 절하는 것이지, 무슨 신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제사라는 절차를 유심히 보십시오. 분명, 조상을 신으로 모시고 예배하는 행위로 진행되고 복을 달라는 기원이 담기어 있습니다. 우리나라 제사법에 의하면 죽은 사람을 위해서 신주(神主)로 모십니다.
지방을 써 부칠 때 생전 벼슬을 못한 사람에게는 <현고학생부군 신위(神位)>라고 쓰고 여자인 경우에는 <현고학생 씨 신위>라고 쓴 후에 절을 합니다. 여기 엄연히 귀신 신자로 ‘신위(神位)’란 말을 쓰고 있습니다. 제사에 보면 참신하고 강신(降神)의 순서가 있습니다. 즉, 분향재배하여 초헌, 독축, 아헌, 종헌의 순으로 제사를 진행합니다. 이것은 죽은 사람의 영이 온다고 믿고 하는 의식인 것입니다.
그 중심은 조상들이 복을 내려 주셔서 이렇게 일 년 농사를 잘 짓게 되었다는 잘못된 믿음에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전에는 제사도 정성껏 모심으로 복을 받으려는 태도였지만 이제는 거의가 마지못해 형식적으로 지내거나 어느 분들은 킬킬 웃으면서 장난 비슷하게 지내기도 합니다. 어느 회사가 새로 설립하고 고사를 지내는 데 음식을 채려 놓지 않고 각종 과일과 돼지 머리를 그려 놓고 지내면서 장난스럽게 지내는 뉴스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엄청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복을 받기 위해서 정성껏 제사나 고사를 지냈든지, 아니면 마지못해 형식적으로 드렸든지 간에 하나님은 우상 숭배로 인정하십니다. 그러므로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우상숭배를 한다면 하나님은 오늘 말씀대로 행하시는 것입니다.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라 하셨습니다.
복을 받으려고 지냈거나 어쩔 수 없는 입장에서 억지로 제사를 지냈거나 장난 비슷한 심정으로 지냈거나 하나님은 우상 숭배하는 가정에게는 3-4대까지 저주를 내리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상당히 이해하기 힘든 구절이 나옵니다. “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 즉”라 했는데, 하나님은 완전히 선하시고 사랑의 하나님이신 데 질투하는 하나님으로 표현하는 것은 납득이 잘 안 갑니다. 그런데 잘 들어보면 이해가 갑니다.
여기서 말하는 ‘질투’란 사랑의 강한 표현입니다. 사 62:4절에 그는 자기 백성을 ‘헵시바’라고 했는데 그 뜻은 ‘나의 기쁨이 그에게 있다.’는 뜻입니다. 즉, 다른 것에서 일체의 기쁨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너로 인하여만 기뻐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질투는 나쁜 용어이나 사실은 사랑의 강한 표현이기도 합니다.
만약에 여러분의 애인이나 아내나 남편이 다른 여인, 다른 남자를 좋아하는 눈치임에도 화가 나지 않고 ‘그래. 잘 한다.’라는 식으로 관용을 나타낸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무관심입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향해 “내 기쁨이란 너 외에 전혀 없다. 너야말로 온전히 나의 기쁨이요, 다른 곳에서는 나의 만족을 구하지 않겠다.”라고 하시면서 너무나 사랑하십니다. 그럼에도 그 사랑을 외면하고 하나님이 만드신 돌이나 나무, 달이나 별, 이제 죽어서 썩어 없어진 시체가 묻힌 무덤에 가서 음식을 차려 놓고 절을 하면서 ‘올해도 풍년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년에도 복을 많이 주옵소서.’라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치명적인 모독이요, 영적인 간음 행위인 것입니다.
그런 자는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로 인정하셔서 벌을 내리신다고 하신 것입니다. 5절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마지못해 형식적으로 하거나 장난스럽게 한 것이라도 하나님은 우상 숭배한 것으로 인정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이여. 우상숭배의 죄를 범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자신에게 벌이 임하는 것 뿐 아니라, 3대의 후손까지 벌을 받는 줄 명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우상숭배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경배하고 섬기는 자에게는 복을 주시되 우상숭배자가 받는 벌의 30배가 되는 천대의 후손까지 복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본문 6절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이러한 말씀은 성경에는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출23:25 “너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그리하면 여호와가 너희의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고 너희 중에 병을 제하리니” 신4:40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규례와 명령을 지키라 너와 네 후손이 복을 받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한없이 오래 살리라.”
신28:1-2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수1:8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대로 자기를 잘 경배하고 잘 섬기는 자들을 반드시 복을 내리시고 그 후손들도 복을 내리시는 것입니다. 어느 날 후레드릭대왕이 신하들을 모아 놓고 묻기를 “하나님이 살아 계신 증거가 무엇인가?”라고 하자, 신하 중 하나가 대답하기를 “유대인입니다. 유대인은 바로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유대인은 2,000년 동안 나라를 뺏기고 방황하던 민족들로, 역사상 이렇게 수난을 많이 당한 민족은 역사상 없습니다. 그럼에도 끈질기게 버티어 가면서 세계 어디든지, 어떤 나라에 가서 보든지, 그 나라의 가장 중요한 부서를 유대인들이 장악하고 있는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못하는 것이 없는 민족이라고들 합니다. 어느 곳에 가든지 잘 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아랍 민족들은 유대인과 똑같이 아브라함의 후손이고 언어도 똑같이 셈어와 같은 언어구조를 구사합니다. 골격도 같고 풍속도 비슷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어디를 가나 흥왕하고 세계를 움직이는 민족이요, 노벨상도 가장 많이 받을 정도로 엄청난 인물의 나라입니다. 그러나 아랍 사람들은 더 넓은 땅에서 엄청난 석유 자원을 가지고 있으면서 잘 살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대답은 성경뿐이 할 수가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복과 저주, 두 가지 다 받은 민족입니다. 오늘 본문대로 천대까지 복을 받겠다는 약속을 받음으로 세계적인 민족이 된 반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죄 때문에 2천년 동안 나라를 빼앗긴 채 이방인들에게 밟히는 수모를 받게 하신 것입니다. 유대인의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확실히 믿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우상숭배를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사랑하고 그를 경배하며 오직 그만 섬기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약속대로 여러분과 여러분의 후손에게 복을 주실 줄 믿으셔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를 때에 일시적으로는 손해를 보고 비난과 핍박을 받을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반드시 약속대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막10:29-30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제가 신학교 입학한 해가 1967년입니다.
지금부터 꼭 40년이 되는 해입니다. 저는 그 때부터 목회해 오면서 출20:4-6에 말씀대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배울 수가 있었습니다. 우상을 많이 섬기던 가정들의 후손들이 잘 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물론 그 후손들이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형벌로부터 벗어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삼사 대까지 좋지 못한 일들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잘 믿고 충성하던 사람의 후손은 세대가 더해 갈수록 하나님의 복이 임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분들의 후손들 중에 열심히 믿지 않을 지라도 믿음의 조상 때문에 복을 받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특별히 잘 믿고 충성하던 조상의 후손들 중에 목회자들을 보면 설교나 행정에 별로 유능한 것 같지 않음에도 큰 교회를 맡아서 목회를 잘 감당하는 것을 보면서 감동을 받고는 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목회자는 설교나 행정에 뛰어남에도 믿는 조상이 없음으로 기도해 주는 분들이 별로 없는 탓인지 고생하면서 목회하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 중에 열심히 충성하고 봉사함에도 모든 면이 어렵기만 하다고 낙심하는 분들이 이 자리에 계십니까?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충성 봉사하면 하나님은 다 기억하셨다가 여러분들의 후손들에게 큰 은혜와 복을 주실 줄 믿으셔야 합니다.
자녀들에게 많은 교육도 시켜주고 많은 재산을 물려주는 것도 중요할지 몰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분들이 열심히 하나님께 충성 봉사하는 것이 후손들에게 가장 큰 복이 되는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이여.
여러분은 어쩌겠습니까? 복을 받으려고 우상숭배를 하다가 3대, 4대까지 저주를 받는 자들이 되겠는가? 아니면, 사람들에게는 비난과 핍박이 온다 할지라도 오직 하나님만 사랑하고 그만 경배하며 그에게 섬기기를 다함으로 천대까지 복을 받는 가정과 가문이 되겠는가? 우리 모두는 하나님만 사랑하고 경배하며 섬기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