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 예수님!! 제가 23일까지 해외 연수를 갑니다. 그래서 22일과 23일 묵상을 미리 올려 드립니다. 묵상에 혼란을 드려 죄송합니다.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2024년 11월 11일 금요일 성녀 체칠리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너희는 하느님의 집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9,45-48 그때에 45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시어 물건을 파는 이들을 쫓아내기 시작하시며, 46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 될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너희는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47 예수님께서는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셨다.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없앨 방법을 찾았다. 48 그러나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방도를 찾지 못하였다. 온 백성이 그분의 말씀을 듣느라고 곁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기의 사랑하는 마음을 반성하고
이십대 초반에 나는 심한 결핵으로 각혈을 많이 해서 조금만 움직여도 피를 토하는 날이 아주 많았습니다. 그때는 단칸방에 세를 들어 살고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와 동생들은 피를 토하는 나를 보고 매일 큰 걱정에 사로잡혔습니다. 의사선생님은 나를 움직이지도 못하게 하고 직장에서는 병가를 내어 주고, 매일 의사선생님과 간호사가 친히 방문하여 주사를 놓아주셨습니다. 가난한 나를 병원에 입원할 수 없다는 특별한 배려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무모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내가 각혈을 서서히 멈추게 되었고 양이 적어지더니 완전히 끊어졌습니다.
각혈을 멈춘 지 한 보름 정도 되는 어느 토요일 오후부터 나는 갑자기 가슴이 답답하고 숨쉬기가 어려워서 얼굴이 빨갛게 상기 되었습니다. 급기야 주일 아침에는 더 심해져서 가슴을 펑펑 치고 싶었지만 조금만 움직이면 피를 쏟을까봐서 가만히 진정하고 누워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일미사 참례 후 학생들이 나를 위해서 기도 해주려고 찾아왔습니다. 숨을 헐떡이고 있는 내 머리맡에 무릎을 꿇고 영광의 신비를 바칠 때였는데 나는 정말 더 이상 숨을 쉴 수가 없었고 형제자매들의 기도에 감격해서인지 눈물이 막 솟구치고 속에서 비린내가 나면서 피를 토할 것 같은 다급한 기미가 있어 손짓으로 기도하던 사람들이 밖으로 나갔으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모두들 겁에 질려 밖으로 나갔을 때 비몽사몽간에 어떤 흰옷을 입은 부인이 팔을 벌려 나를 안고 등을 두르려 주시는 것 같은 몸짓을 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온힘을 다하여 심한 재채기하듯 기침을 세게 하였는데 그때 큰 대추 알만한 핏덩어리를 간신히 토해냈습니다. 기관지에서 조금씩 나오는 피가 응고 된 것이 굳어져서 딱딱한 덩어리가 된 것이었는데 기관지를 완전히 막아버리고 질식을 일으켜 그날 죽을 운명이었던 것을 간절한 기도 탓에 성모님이 꺼내 주신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때 내 등을 두드리며 손을 당신의 앞으로 끌어당기시던 성모님과 무릎을 꿇고 묵주의 기도를 올리던 교우들의 모습들이 생생하기만 합니다. 의사선생님은 내가 성당에 다니며 기도하더니 기적과 같이 그 핏덩이를 토해내었다고 기적이라고 항상 말씀하셨습니다.
기도하는 집과 강도의 소굴은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기도는 ‘주님과 친해지고자 하며 친해지려고 하는 모든 것’이라고 정의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흔히 기도한다는 것을 여러 가지 표현으로 생각하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는 개인적으로 ‘기도는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과 친해지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지칭한다.’는 정의를 좋아합니다.
맹자(孟子)의 이루장구(離婁章句)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애인불친 반기인 치인불치 반기지 예인부답 반기경 愛人不親 反其仁, 治人不治 反其智, 禮人不答 反其敬
남을 사랑하는데도 친해지지 않으면 자신의 인자함을 돌이켜 반성해 보고 남을 다스리는데 다스려지지 않으면 자기의 지혜를 돌이켜 생각해 보고 남을 예우하는데 답례가 없으면 자신의 공경하는 자세를 돌이켜 반성한다.
행유부득자 개반구저기 기신 정이천하귀지 行有不得者 皆反求諸己 其身正而天下歸之
행해서 얻어지지 않으면 자신을 반성하고 그 자신이 바르면 천하가 나에게로 돌아온다.
그래서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과 친해지려고 하면서도 그것이 잘 이루어지지 않거든 자신의 사랑하는 방법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는 내가 기도하는 방법에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반성하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기도하는 집이 되지 않고 강도의소굴이 되고 있다고 안타까워하십니다. 하느님과 친해지려고 노력하지 않고 하느님의 것을 강제로 빼앗아 자신의 헛배를 불리고 세상의 사리사욕에 가득 차 있는 사람들의 모임이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가슴 깊이 깨닫고 반성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글을 올리고 글을 읽고 음악을 감상하는 카페도 만든 사람의 의지와 같이 기도하는 방이며 친교와 소통의 방입니다. 이 방은 아주 성스러운 사람들의 공동체인 것입니다. 가끔 이 방이 혼탁해지고 있는 것은 강도의 소굴로 만들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글을 올리는 것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글을 올려야 하고 읽을 때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죽이고 때려서 초죽음을 만들어 놓고 약탈하고 사기치고 빼앗으려고 혈안이 된 사람들의 눈에는 그 사람들이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돈과 물건만 보이고 안하무인(眼下無人)이 되었을 것입니다. 욕심이 눈을 가려서 빨갛게 된 사람들이 모인 곳이 강도의 소굴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성모님을 체험하고 형제자매님들의 기도로 다시 살아난 내가 지금은 주님과 친해지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지 않고 내 안에 이기적이고 욕심으로 혈안이 되어 살고 있으니, 자신 안에 강도의 소굴을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 옛날 성모님의 그 손길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사리사욕에 혈안이 되어 작아진 자신을 봅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가슴을 치며 ‘내 탓임’을 고백하면서도 주님과 친해지려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마음을 다잡아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