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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능력의 치유 기도(약 5장13-16)
성경본문: 야고보서 5:13-16
13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
14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16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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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공부하는 것을 참 싫어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다 지겹다는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김정운 교수의 [에디톨로지]라는 책에 보면 아동 창의성 연구의 최고 전문가인 성균관 대학의 최인수 교수가 이런 말을 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컴퓨터 게임을 못하게 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학교에서 가르치면 된다!”
사실 학교라는 영어단어의 ‘school’은 그리스어 ‘scole’에서 나온 말입니다. ‘여가를 쌓는 것, 교양을 쌓는 것’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본래 ‘공부’의 의미는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즐길 수 있도록 배우는 것입니다.
‘기도에 관한 공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배워서 지겨운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신앙생활을 풍성하게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을 즐기기 위한 기술을 배우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기도의 매뉴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매뉴얼대로 하면 특출하지는 못해도 실수하거나 엉뚱한 일을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야고보서는 총 108절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에 60절이 명령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신구약을 통틀어서 가장 실천적인 책입니다.
첫째 매뉴얼은, 고난을 겪는 자가 있다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고난이 다 같은 고난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일반적으로 두 가지 종류의 고난을 이야기할 수 있는데, 하나는 죄로 인해 오는 고난, 다른 하나는 선을 행하다 당하는 고난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0절 말씀을 보세요.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고난이 다 같은 고난이 아니라는 말이죠. 하지만 고난에 대처하는 매뉴얼은 같습니다.
죄로 인해 고통을 당하든, 선을 행하다 십자가를 지는 고난을 겪든, 정답은 기도입니다.
만일 죄의 결과로 오는 고난이라고 생각되면 기도 중에 자신을 보게 될 것이고, ‘회개하는 기도’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요한1서 1장 9절 말씀입니다.
9-“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회개가 터지는 순간 우리는 응답받게 될 것입니다.
시편 50편 15절입니다.
15-“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많이 알려진 이야기가 있습니다. <홀리데이인 호텔>의 창업자인 케몬스 윌슨의 일화입니다.
그는 평범하게 직장생활을 하던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 출근해서 책상에 앉았을 때 ‘해고 통지서’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분노와 복수심으로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폐인이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결국, 아내에게 “여보! 나는 죽고 싶소. 모든 노력을 다했지만, 아무것도 되는 일이 없소!” 라고 말하게 됩니다. 그때 신앙인이었던 그의 아내가 조용히 말합니다.
“여보 당신이 한 가지 시도하지 않은 일이 있어요. 당신은 이 상황과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기도한 적이 없잖아요.”
그날부터 케몬스는 아내와 진지하게 기도하기 시작했고, 분노와 패배의식이 사라지기 시작했답니다. 그는 용기를 내 집을 담보로 융자를 얻어 조그만 건축 사업을 시작했고, 잘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건축하면서 여기저기 여행하다 보니 호텔이 너무 비쌉니다. 싼 호텔은 너무 지저분하고요. 하나님! 제가 저렴한 가격에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호텔을 지어 이웃을 섬기게 해주세요.”
이렇게 시작한 <홀리데이인 호텔>입니다.
기도가 우리에게 답이 된다는 매뉴얼은 알았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착각하는 것은 이 기도가 자동으로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이기 때문에 ‘대화의 기술’을 배워야 합니다.
또한, 기도를 배운다는 것은 배우는 장소와 때가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혼자 공부하며 검정고시로 나아갈 수도 있지만,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물론 우리가 특수한 상황에서 특수한 방법으로 할 수 있지만, 일반적인 배움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이 안전합니다.
바로 변화산은 우리에게 기도의 매뉴얼을 배우는 장소이자 방법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찬송이 기도라는 것도 배우게 될 것입니다.
본문 13절 말씀입니다.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
즐거운 일이 있을 때, 찬송하는 것이 ‘기도’라는 것을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기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소통이라고 믿는다면, 즐거운 일을 당할 때, 찬송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신앙고백이기 때문에 기도입니다. 그래서 ‘찬양’은 ‘감사’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참 유치하다고 생각하는 감사헌금이 있습니다.
“생일감사”, “개업감사”, “심방감사”, “합격감사.”
감사 찬양이 무엇인가요? 내가 누리는 축복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사도행전 16장 25~26절의 말씀이 있습니다.
25- 한밤 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26-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부활은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구체적으로 일어난 사건입니다.
기독교가 능동적이고 미래 지향적이며, 소망의 종교인 것은 바로 부활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보낸 “고난의 시간”은 사실 오늘의 부활을 위한 전주곡일 따름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야고보서 기자가 이야기하는 것도 바로 그런 내용입니다.
“고난 겪는 자가 있느냐?”“병든 자가 있느냐?”
여기가 끝이 아니라 소망이 있다는 말입니다.
기도할 수 있어서,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기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도의 선교사 썬다 씽이 영국을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많은 사람이 그에게 질문했는데, 특별히 대학 교수가 질문을 던졌습니다.
“당신이 오랫동안 젖은 전통의 힌두교를 버리고 기독교를 믿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즉 힌두교와 기독교의 차이가 무엇이길래 이렇게 바꾸었느냐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썬다 씽은 “부활하신 예수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라고 간단하게 대답했습니다.
세상이 “죽음은 끝이다.”라고 말할 때, 우리는 죽음이 시작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세상 사람과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이유입니다.
사람은 죽이는 능력이 있지만, 살리는 능력은 없습니다.
부활은 죽은 자를 살리는 능력입니다. 생명의 역사가 바로 부활입니다.
<글래디에이터>란 영화를 보면, 로마 황제의 힘이 얼마나 엄청났는지를 보게 됩니다. 엄지손가락으로 위로 올리느냐, 아래로 내리느냐에 따라 사람이 죽고 사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황제의 힘이 무서울지 모르지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에게 그것은 위협이 될 수 없습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로마의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두려워했고 살리는 부활의 능력을 믿는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의 일입니다.
아침 일찍부터 우리 아이들이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이유인즉슨 딸아이의 디지몬이 죽었는데 건전지가 다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딸내미가 동생 몰래 건전지를 빼서 자기 것에다 넣은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동생의 디지몬이 죽어서 싸움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엄마 아빠가 보기에는 그렇게 심각한 문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또 건전지를 사다 끼워 주면 살아날 것이기 때문이죠.
적절한 예가 됐나요?
죽음이라는 것이, 인간의 질병이 믿음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절망을 느끼게 합니다.
물론 믿는 우리에게도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부활의 신앙이 있는 우리에게는 절망이 아니라, 또 다른 희망의 이유가 됩니다.
죽음을 경험한 자만이 부활을 경험할 수 있다는 이 놀라운 사실은, 치유와 회복의 기도를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큰 절망과 큰 어려움 속에서 더 큰 회복과 기적의 역사를 체험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청년 한 사람이 우울한 얼굴로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전 더 이상 살아갈 의욕을 잃었습니다. 이번에 사업에 실패해서 전 재산을 날렸습니다. 친구들도 찾아오지 않습니다.가족들도 저를 외면합니다. 전 지금 자살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청년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목사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형제는 모든 것을 잃은 것이 아닙니다. 죄 사함을 잃었나요? 영생을 잃었습니까?
신앙도 잃을 수 없습니다. 단지 의욕만 잃었을 뿐입니다. 의욕은 신앙 안에서 얼마든지 회복할 수 있습니다. 인생의 실패와 성공은 마음먹기에 달려있습니다.
`자살'을 거꾸로 발음해 보세요."
"살자"
"그래요. 잃었다고 하는 것이 완전한 실패는 아닙니다."
목사님은 성경 한 구절을 찾아서 읽어주셨습니다.
`모든 지킬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언 4:23)
우리에게 희망과 가능성은 코드의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이 죽음을 향해 가고 있을 때, 우리는 소망을 향해 갑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가 가진 문제들을 놓고, 특히 질병을 놓고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문제는 어떻게 드리는 기도가 올바른 기도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1. 기도할 것이냐, 약을 쓸 것이냐?
야고보서 5장 15절에 보면,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구원이란 병으로부터의 구원입니다.
한때 과학자들과 의학자들 사이에 기도하는 것을 미신적으로 생각하는 풍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오히려 병원마다 기도하는 일을 장려하고 있습니다.
제가 공부하던 미국의 병원에는 채플린만 18명이나 되는 곳이었습니다. 오히려 기도와 영성 생활이 ‘대체 의학’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어느 날 말씀을 듣다가, 기도하다가 하나님과의 막힌 담이 헐리면서 순식간에 나음을 얻는 것이 그렇게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를 죽이는 세포들이 말씀과 기도의 능력으로 회복되면, 더러운 암세포들을 단숨에 물리쳐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을 때, 말씀을 읽다가 고침을 받기도 합니다.
문제는 이 믿음이 지나쳐, 현대 의학의 치료를 거부하고 기도에만 매달리는 경우입니다.
우리는 전 우주적인 역사 가운데서 하나님의 임재 하심을 믿습니다.
인간들의 과학을 통하여 만들어 가시는 놀라우신 섭리도 기억합니다.
바로 우리 옆에 놓인 페니실린 하나로, 진통제 하나로 나을 수 있는 병을 놓고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은 옳지 않습니다.
제가 영월에서 사역하던 시절, 저희 집사람이 입덧이 심했습니다. 버스를 타고 수라리 고개라는 곳을 통과해서 내리면 어김없이 토해냈습니다. 그 마을에 살던 어떤 분이 “입덧 마귀”가 들었다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우리 몸의 생리적인 현상은 생리적인 현상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혹 어떤 사람은 머리가 아파도 “두통 마귀”가 들었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럼 아스피린 하나가 마귀를 쫓아내는 힘이 있는 것입니까?
치유기도는 적절한 의학적 치료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선물을 잘 활용하는 것이 올바른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 의학이 포기하는 경우, 기도밖에는 의존할 수 없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매달려야 할 것입니다.
올바른 치유기도는, 병원을 향해 가면서도 기도합니다. “좋은 의사를 만나게 해달라”고, 그리고 “의사의 손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역사해 달라”고, 약을 먹으면서도 기도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빠른 쾌유를 부탁하면서 말입니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치료는 하나님이 하시고 치료비는 의사가 받는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의사에게는 기분 상하는 표현일 수 있으나 진정한 치료자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지난번 헌금 봉투와 기도제목을 놓고 기도하는데, 우리 교회 어떤 의사 중의 한 분이 편지를 썼습니다. 처음으로 중보기도를 요청한다고 말입니다. 이분은 나름대로 학계 권위자로, 의사를 가르치는 의사로 살아왔습니다.
특히 소화기 계통을 다루는데, 사실 더 중요한 것은 병이 아니라 병을 일으키는 원인이라고 합니다.
그분의 꿈이 있다면, 교회 같은 병원을 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병을 고침 받는 것이 아니라, 영육이 강건하여지는 전인적인 치료가 있는 병원이 되는 꿈 말입니다.
2. 치유기도의 과정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치유를 위한 기도를 할 때는, 치료의 전 과정을 통해 영이신 하나님과 더욱 친밀해지기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때로 기도하면서 단번에 고침을 받는 예도 있지만, 대부분은 점진적인 치료의 과정을 겪습니다.
혹 어떤 경우에는 평생을 병과 함께 살아야 하는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치유기도를 하는 과정에서 임종을 맞이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습니다.
빌립보서 1:21에는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단번에 치유하시는 은혜를 경험하면 감사하지요. 실제로 트레스 디아스를 경험하면서, 지난 몇 주 전에도 우연히 기도를 부탁하는 집사님을 통해 그 다음 날 병이 나았음을 듣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점진적인 치료의 과정을 통해서 역사하신다면, 병과 싸우는 동안 “힘을 주셔서 정금 같이 단련되게 해 달라고, 그리고 아픈 중에 하나님과 깊은 교제의 시간을 같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할 경우, 설사 임종을 맞는 상황을 맞이한다 할지라도, 평온하게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계속 하나님과 동행하는 과정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병에서 고침을 받는 것도 기적이지만, 죽음을 담대하게 맞을 수 있는 신앙으로 성장한다면 얼마나 놀라운 일이겠습니까?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받아들이게 되고, 우리가 병에서 고침을 받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다면 얼마나 놀라운 일이겠습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를 해치는 삶의 방식이 치유기도를 통해 교정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생명을 해치는 방식으로 살았던 삶을 청산하는 것이지요.
사실 이 부분이 치유기도에서 가장 유익한 부분이라고 말씀할 수 있습니다.
절제하지 못했던 생활방식이,자제하지 못했던 성질이,잘못된 삶의 습관이 고쳐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고쳐지지 않는다면, 기도를 통하여 단번에 병이 나음을 얻는다 할지라도 다시 병을 얻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변화산을 통해 이 치유의 역사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옛 습관을 벗어버리고, 온전하게 새로워지는 역사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