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밀레의 만종(晩鍾)에 얽힌 슬픈 사연 》
1857년 10월 저녁 노을이 지는 들녘에서
한 가난한 농부 부부(農夫夫婦)가 고개를 숙인 채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감자가 바닥에 흩어져 있고
멀리 보이는 예배당이,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장프랑수아 밀레'(Jean-François Millet)가
그린 명화(名畵) 만종은 프랑스의 국보이며 자랑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백화점 소유주였던
알프레드 쇼사르(Alfred Chauchard)가
80만 프랑(한화 9억4천만원)에 이 작품을 구입 해
'루브르 박물관'에 기증한 후, 한 번도 거래 된 적이 없었던 만종은 값을 매긴다는 게 불가능한 보물입니다.
그러나 작품이 처음 탄생한 1860년 당시 밀레는
물감을 살 돈조차 없는 가난한 화가였습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화상 '아르투르 스테반스'가
(Artur Stephans) 그림을 인수하는 조건으로 1,000프랑(한화 120만원)을 지원 합니다.
이 돈 1,000 프랑으로 탄생한 그림이 바로 만종입니다.
이렇게 탄생한 만종은 100년 만에 80만 프랑(한화 9억 6천만원) 값어치를 얻었으며, 그로부터 다시 100년이 지난 지금 프랑스의 자존심이자, 전 세계의 관광객을 끌어 들이는 보물이 되었습니다.
현재는 1,000만 프랑(한화 1,200억원)이라는 나라의 재산(財産)을 일구어 국부(國富)가 된 것입니다.
루브르 박물관에 돌아오기 전 만종은 미국 아메리카 미술협회에 팔렸습니다. 프랑스측은 국회와 정부의 행정부(行政府)는 물론, 모금 활동까지 벌여가며 만종이 미국에 팔리는 것을 막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부자(富者)의 나라 미국을 당할 수는 없었습니다.
프랑스가 자존심이 상(傷)한 채 주저앉아 있을 무렵 백화점 재벌인 알프레드 쇼사르가 미국에 엄청난 돈를 지불하고 만종을 다시 사들인 것입니다.
쇼사르는 이 그림을, 개인 자격으로 소유하지 않고,
루브르 박물관에 기증했습니다. 예술의 가치를 알아본 쇼사르가 없었다면, 만종은 지금쯤 미국의 어느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을 것입니다.
이 그림은 '이삭줍기'와 더불어 많이 알려진 그림 중 하나입니다. 이 그림은 하루 일을 마치고 농부 부부가 교회 종소리를 들으며 기도(祈禱)하는 평화로운 그림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 그림에는 슬픈 사연이 숨어 있습니다.
농부 부부가 바구니를 밭밑에 놓고 기도 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그 바구니가 감자씨와 밭일 도구를 담은 바구니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바구니에는 씨감자가 들어 있던 게 아니라, 그들 부부의 사랑하는 아기의 시체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 시대에는 배고픔을 참고 씨감자를 심으며 겨울을 지내면서 봄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아기는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죽은 것입니다.
죽은 아기를 위해, 마지막으로 부부(夫婦)가 기도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 만종입니다. 왜 그림 속의 아기가 사라졌을까? 이 그림을 감상한 밀레의 친구가 큰 충격과 우려를 나타내면서 죽은 아기를 넣지 말자고 부탁 했습니다.
밀레는 고심 끝에 아기 대신 감자를 그려넣어서 출품했습니다. 그 이후 이 사실이 알려지지 않은 채로, 그저 농촌의 평화로움을 담고 있는 그림으로 유명해졌습니다.
루브르 박물관은 '만종' 그림에 자외선 투사(透視) 작업을 통해 그 감자 자루가 초벌 그림에서는 실제로 어린 아이의 '관'이었음을 입증한 것입니다.
프랑스의 화가 밀레 한 사람이 후세에 자신의 조국에 엄청난, 국부를 창출했다는 것은 참으로 존경받을만 합니다.
"나는 평생 '전원' 밖에 보지 못했으므로
내가 본 것을 솔직하고 능숙(能熟)하게 표현했었다. '만종'은 빈곤한 프랑스 농민들의 고단한 일상을,
우수에 찬 분위기와 서사적 장엄함을 담아 그렸다."
( 장 프랑수아 밀레 )
《 장 프랑수아 밀레(Jean François Millet)
(1814 ~ 1875) 19세기 프랑스 '바르비종파'의
대표적인 사실주의 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