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은 가시고 김치만 남았네 / 박완서
나는 음식을 안 가리는 편이다. 소고기 닭고기 돼지고기 다 잘 먹지만 생선이나 고기 없이 김치하고 나물만 있어도 만족스러운 식사를 할 수가 있다. 한마디로 아무거나 잘 먹는 잡식 동물이다. 외국 여행을 할 때 며칠에 한 번이라도 꼭 한식당에 들러야지 그렇지 않으면 못 견디어 하는 사람을 더러 본 적이 있는데 얼마나 불편할까, 속으로 동정할 정도로 나는 그 나라 음식을 먹어보는 것도 관광 못지않은 새로운 경험으로 즐겨 왔다.
십여 년 전 버스로 네팔의 오지를 돌아다닐 때였는데 재래시장 뒷골목에 있는 허름한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다. 안내하는 사람이 우리 일행의 비위에 맞을 거라면서 시킨 식사는 카레라이스 비슷한 거였다. 아무거나 안 가리고 잘 먹는다고 했지만 역시 밥이 빵보다 반가웠다. 그러나 젓갈도 숟갈도 없이 카레라이스만 나와서 알고 보니 손으로 먹으라는 거였다. 다들 난감해했지만 나는 그들이 가르쳐주는 대로 곧잘 따라했다. 카레에다가 밥을 버무려 오른손의 엄지와 검지와 가운뎃손가락으로 먹기 좋게 꼭꼭 뭉쳐서 입에 넣었다.
유명한 여행가 한비야 씨가 지금보다 덜 바빴을 때, 같이 중국 운남성의 오지를 방문한 적이 있다. 리장 이란 데서 택시를 탔는데 운전기사 인상이 좋았다. 한비야 씨는 그때 중국어를 배우는 중이었는데도 기사하고 활발하게 대화를 주고받았다. 맛있는 음식점이 어디냐고 물어보다가 운전기사 집에서 가정 음식을 먹어보고 싶다는 데까지 친밀감이 발전해서 드디어 운전기사네 집까지 가게 되었다. 가족이 총동원해서 닭까지 잡아 진수성찬을 차려 주었다. 내가 중국에서 먹어본 음식 중 가장 맛있는 음식이었다. 식탁이 놓인 부엌 바닥은 울퉁불퉁한 흙바닥에 옛날 우리 시골집 수챗구멍같이 생긴 하수구가 그대로 노출돼 있어서 비위가 상할 법도 한데 모든 음식이 그저 맛있기만 했다.
좋게 말하면 소탈하고 솔직히 말하면 무국적에다 무신경한 나의 식성에 변화가 온 것을 느낀 것은 최근의 일이다. 지난달 유럽 쪽을 이 주일 가량 여행하고 돌아왔는데 다들 잘 사는 나라에서 중급 이상의 호텔에서 묵고 이름난 식당도 찾아가 보고 간간이 현지의 한식당도 들렀건만 배는 고픈데 도저히 식욕이 나지 않았다. 짠지라도 한 쪽 먹으면 비위가 가라앉으려나 싶게 속이 느글느글했다. 집에서도 별로 집착해 본 적이 없는, 어려서 먹던 토속적인 음식이 그리웠다. 나는 드러내놓고 말은 못 하면서도 속으로 아아, 이게 나잇값이구나 싶었다.
서양 음식 때문에 상한 비위는 내 집의 평범한 집밥만 먹으면 금방 가라앉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날 딸들이 내가 좋아하는 우거지 된장국과 열무김치, 나물 몇 가지를 해놓고 나를 기다려 주었건만 그것도 그렇게 반갑지가 않았다. 느글느글하게 들뜬 것 같은 비위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아 궁리 끝에 가까운 냉면집으로 비빔냉면을 먹으러 갔다. 비빔냉면은 결코 내가 평소에 좋아하던 음식이 아니다. 그러나 왜 그렇게 맵고 진한 게 먹고 싶은지 다음날은 집에서 나물에다가 고추장을 넣고 시뻘겋게 한 대접을 비볐다. 외식할 때 어쩌다 비빔밥을 시켜 먹는 경우가 있어도 고추장은 넣는 둥 마는 둥 싱겁게 비비는 내 평소의 식성에 반한 짓이었다. 그래도 한번 덧난 비위는 가라앉지 않았다.
마침 그때 원주 토지 문학관에서 택배로 김장 김치를 부쳐왔다. 박경리 선생님이 작년에 담아 산에 묻어놓은 김장독을 헐었다고, 문화관 직원이 생전의 선생님이 하시던 대로 나에게도 나눠 준 것이었다. 나는 허둥거리며 그 김장 김치를 썰지도 않고 쭉 짖어서 밥에 얹어 아귀아귀 먹었다. 들뜬 비위가 가라앉으면서 선생님 그리는 마음이 새삼스럽게 절절해졌다.
선생님은 평소 나들이를 좋아하지 않으셔서 원주 쪽에 칩거해 사시면서 고향인 통영에 가 보신 것도 최근 몇 년 사이의 일로 알고 있다. 이십 대에 떠난 통영을 몇십 년 만에 들르시게 되면서 통영 사람들의 선생님 공경도 극진해져서 젓갈이나 싱싱한 해산물 등 그쪽 특산물을 부쳐 오는 일도 자주 있는 것 같았다. 그런 것들을 나에게도 나누어 주시면서 그쪽 음식에 대한 자랑을 침이 마르게 하실 적이 있었다. 그럴 때의 선생님은 꼭 어린애 같으셨다. 옆에서 듣는 나는 저건 음식 자랑이 아니라 고향 자랑이로구나 느끼곤 했다. 한번은 이런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신 것처럼 ‘음식은 개성 음식이 최고지’ 하면서 우리 고향도 좀 치켜세우셨다.
내 들뜬 비위가 찾아 헤매는 것은 옛날 맛, 고향의 맛이었던 것이다.
첫댓글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그리운 사람 박완서님의 에세이가 출간되어 반갑게 구입했습니다. 첫번째로 실은 이 글은 그동안 미출간했던 원고라고 하네요.
아,아, 님은 가셨지만 주옥같은 문장들을 필사하는 동안 허전한 마음을 다독여 주는 님의 손길이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