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에게 보내는 편지(97)
샬롬!
지루한 장마 그치고 하얀 뭉게구름 가득 퍼지듯 우리의 꿈과 제자사랑도 노래의 메아리처럼 확 퍼져나가는 듯 하고, 바람결 나뭇잎처럼 파르르 떨리고 설레는 우리들 마음을 밝게 비추는 햇볕은 행복을 여는 미소처럼 다정하게 다가오는 좋은 아침입니다. 모처럼 활짝 개여 태양빛 쏟아지는 푸르른 하늘을 바라보며, 오늘은 어느 시인의 고백처럼 양말같은 슬픔과 청바지같은 고집을 벗어버리고, 팬티만한 오만은 살짝 벗어 철사 빨랫줄에 널어두고, 잎새그늘의 바람과 매미울음에 습기를 모두 훑어 내버리고 싶습니다. 선생님들도 긴 장마로 언쨚았던 마음일랑 훌훌 털어 버리고 호탕하게 너털웃음으로 하루를 시작하시면 어떨까요? 하하 호호 ^*^
우리 학교는 매주 월요일 교직원 예배로 한 주간을 시작합니다. 기독교학교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일이기도 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경건과 겸손의 훈련이기도 합니다만 설립목적에 따라 선교를 우선으로 하려는 우선순위의 재점검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형식적이고 권위적이고 항상 긴장하며 시작해야 하는 부담감으로 다가오는 것 같았습니다. 예배를 인도하는 제가 그렇게 느낄 정도면 다른 이들은 말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불과 5분 정도의 짧은 메시지이지만 어느 때 보다도 많은 시간과 정열을 투자하고 있으며, 이때만큼은 원고를 작성하여 그저 그런 설교가 되지 않으려 뭔가 다른 방법은 없을까? 늘 다하지 못한 숙제요 풀지 못한 수학과제를 안고 있는 학생처럼 고민하며 준비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도 어쩔 수 없는 틀에 박힌 목사라는 사실을 얼마 전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몸으로 말하는, 느낌으로 말하는 설교가 되길 바랬지만 또 하나의 설교를 했던 것입니다. 물론 이 문제는 어쩌면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을 것이지만 그래도 조금은 깨달았음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지난 월요일엔 설교대신 ‘가슴속에 새기고 싶은 사람’이란 홍일권님의 시와 ‘조금만 참아 주세요’란 정용철님의 시를 읽어주고 간단하게 “저도 그런 사람입니다”란 멘트를 넣었을 뿐인데 의외로 좋은 반응(?)을 보여주어 설교가 어떠해야 함을 그리고 선생님들이 무엇을 듣고 싶어하는지 아니 무엇을 원하는지 대강은 알 것 같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그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해야 했습니다. 그렇다고 비위를 맞추거나 듣기 좋은 말만하겠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들의 입장을 헤아려 본다는 것인데, 지금 저들에게 가장 필요한 메시지는 위로와 용기를 주는 따뜻한 격려의 한마디였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그리우면 그립다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 좋고, 불가능 속에서도 한줄기 빛을 보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 좋고, 다른 사람을 위해 호탕하게 웃어 줄 수 있는 사람이 좋고, 옷차림이 아니더라도 편안함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좋고, 노래를 썩 잘하지 못해도 즐겁게 부를 줄 아는 사람이 좋고, 자기들과 좋은 말벗이 될 수 있는 사람이 좋고, 손수 따뜻한 커피 한 잔을 탈 줄 아는 사람이 좋고, 때에 맞는 적절한 말 한마디로 마음을 녹일 줄 아는 사람이 좋고, 외모보다는 마음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좋고, 새벽공기를 좋아해 일찍 눈을 뜨는 사람이 좋고, 남을 칭찬하는데 인색하지 않은 사람이 좋다고 말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가능성이 있다 하십니다. 소망이 있다 하십니다. 그리고 조금만 더 기다리라 하십니다. 조금만 더 기도하라 하십니다. 지금은 어렵지만 곧 잘 될거라 하십니다. 지금은 힘들지만 곧 좋은 일이 있을거라 하십니다. 지금은 아프지만 곧 건강해질거라 하십니다. 세상이 우리를 향하여 거세게 마침표를 찍으려 할지라도 하나님은 언제나 쉼표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우리는 많이 여전히 힘들고 포기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기도할 수 있지 않습니까? 사단이 슬그머니 내미는 마침표를 거부하고 하나님이 건네 주시는 쉼표를 붙잡고 우리도 한나와 같은 애절함으로 기도의 불을 지피우며, 야곱과 같은 끈기로 하나님을 놓치지 않는다면 그러면 숯덩이 가슴이 불덩이 가슴 되어 '인생여전'이 '인생역전'으로 바꾸어질 것입니다. 우리 복음 중등부의 희망이 여기에 있습니다. 300비전을 시작한지 벌써 7개월 되었고, 아직까지 그것은 이루어지지 않은 꿈으로 남아 있어 지금이라도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마침표를 찍고 싶지만, 그래도 200명을 넘어서는 기적을 체험하였고 예배실이 좁아 더 이상 채울 수 없는 환경을, 우리 학생들의 용기와 결단으로 본당으로 옮겼으며, 선생님들의 뜨거운 기도와 관심, 그리고 지난 화요일 극동방송의 ‘비전이 쏜다’는 프로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한 우리 아이들의 열정은 대나무의 매듭처럼 한번 쉬고 넘어가는 쉼표였음을 .....
사실 좀 당황했습니다. 아직은 ...하면서 망설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옮겨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언제 어떻게 옮겨야 하는 것은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약간의 의견차이가 있는데다 시험기간과 이어지는 방학, 계속되는 장마로 시기가 좋지 않다고 생각했었지요. 근데 역시 우리 아이들이 현명하고 순수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우리 어른들이 염려하는 동안 아이들은 확신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밤늦게까지 팻말을 만들고 준비한 것입니다. 얼떨결에 옮겼지만 그게 아니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비전을 확신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실은 이번주나 개학 후로 생각했는데 옮겨보니 잘 되었다는 생각입니다. 비록 지난주 많은 비로 132명에 그쳤지만 그동안 채우고 싶어도 넘치고 말아서 더 담을 수 없는 200명선에 머물렀는데 이제는 확신이 듭니다. 그릇이 준비되고 우리 아이들의 열정이 있으니 300비전만이 아니라 언젠가 장난삼아 말했던 3,000비전도 곧 이루어질 것을 믿습니다. 우리 복음 중등부를 통해 미래를 책임지는 지도자와 이웃을 섬기는 많은 멘토들이 생겨나길 원합니다.
양병무의 [감자탕 교회 이야기]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과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의 비율이 95 대 5 정도인데도 5를 생각하는 데 95를 사용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구조 속에 살면 당연히 늘 우울하고 슬프고 괴롭고 짜증이 나는 거지요. 염려하지 말라는 말의 의미가 바로 5를 위해 95를 쓰지말라는 것인데 말입니다. 인생은 짧습니다.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만 만나고 살기에도 시간이 모자랍니다. 쓸데없는 걱정과 염려는 시간낭비일 뿐더러 스스로 자기 자신을 주저앉히는 물귀신입니다. 이제 우리 중등부가 할 일은 5 때문에 마음 아파하고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 95로 인하여 감사하고 희망을 노래하는 일입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에 나온 글입니다. “희망을 가진 사람은 내일의 비전을 보여주고, 낙천적인 사람은 매사 긍정적인 자세를 보여주며, 자신감이 충만한 사람에게서는 왕성한 활력을 배우고,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에게서는 불꽃같은 열정을 배웁니다. 누구든지 생동하는 삶을 원하시거든, 가급적 이런 이들과 가까이 하세요.” 저는 우리가 그런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그러한 사람이길 원합니다.
정말 우리들 모두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오늘 한 사람이라도 기쁘게 해 주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하루를 시작하길 원합니다. 햇빛은 누구에게나 친근감을 줍니다. 웃는 얼굴은 햇빛처럼 누구에게나 친근감을 주고 사랑을 받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장 듣고 싶은 말도 "인상이 정말 좋으시네요"입니다. 왜냐면 제 인상이 좋지 않아서도 그렇지만 이런 말을 들으면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실은 요즘 저는 여러 가지로 상처입고 화낼 일이 많습니다만 마음을 달래기 위해 활짝 웃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얼굴을 펴니 마음까지 편안해짐을 느낍니다. 평범한 일상들이 하루하루 소중하게 느껴지고 아침마다 피어나는 하루 속에 늘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힘찬 하루를 행복한 맘으로 보낼 수 있고, 날마다 만나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에게 환한 미소를 지으며 통통튀는 웃음으로 대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제 마음속에 늘 넉넉해지고 따뜻해지는 주님이 아름답게 자리하며 곱게 꽃피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의 포근한 향기가 살며시 바람타고 선생님들에게도 날아갔으면 합니다. 선생님 살포시 두팔벌려 받아 보시지 않으시렵니까?
한 병사가 사막에서 생활하는 어느 수도사를 찾아가 하나님이 자신의 회개를 받아 주실지 물었습니다. 수도사는 그에게 많은 것을 설명한 후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 "친구여, 자네는 옷이 찢어졌을 때 그것을 버리는가? 그 병사가 대답했습니다. "아닙니다. 그것을 다시 수선해서 입습니다 그러자 늙은 수도사가 그에게 반문했습니다. "자네가 옷에도 그렇게 신경을 쓰는데 하나님이 자신의 피조물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이지 않으시겠는가?여러분은 돈이 찢어지면 그냥 버립니까? 찢어진 부분을 붙여 다시 사용합니다. 이것은 돈의 가치 때문입니다. 가치 없는 것은 버리고도 아쉬움이 없지만 가치 있는 것은 버리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지 고쳐서 다시 씁니다. 우리는 고귀한 하나님의 형상이기에 실패할 때마다 회복하시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다시 쓰십니다.
보고싶다는 말은 늘 들어도 가슴이 뛰고 설레는 비오는 날의 첼로, 맑은 날의 피아노 소리와 같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오늘 저녁 아름다운 음악으로 감동시켜 보시지 않으시려는지요? 후두둑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에도 잠시 귀 기울일 줄 알고, 슬픈 음악을 들으면 눈물 한 방울 흘릴 줄 아는 진정 아름다운 사람은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으로 볼 줄 아는 바로 선생님 그대입니다. 선생님 사랑합니다. 잘한 것을 감(感/느낄감)하고 사(謝/드릴 사)해주며 잘못한 것은 감(減/덜감)하고 사(赦/용사할사)해주며 살고자 합니다. 주님께는 감사(感謝)하고 사람들에게는 감사(減赦)하는 종이 되도록 저를 위해서도 기도해주시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