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제가 올린 일당벌이 이야기외는 다들 바쁘신지 새로운 이야기 거리 올라온게 없네유
지금 제가 살고있는집 입니다
제가 스물두살때 건축비가 없어서
동생들 19(남), 16(남),13 (여동생)세살씩 턱울진 사남매가 시멘트 벽돌을 살돈이 없어서 흙벽돌을 빼서 직접쌓고 바르고 해서 직영으로 지어서 살다가 형제들이 하나둘 출가한후엔 바로 밑의 아우가 살다가 도로가에 가게를 지어 이사가고 마당엔 잡초만 우거진 빈집을 제가 시골살이를 오면서 지붕을 강판으로 벽체를 파벽으로 대충 수리해서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온돌방 고래에 연결되었던 굴뚝에 화목보일러 굴뚝을 연결해서 연기가 나가는 모습입니다
기름 보이러실이 따로있고 이곳은 화목 보일러실입니다
수동 스텐레스 화목보일러 라서 수명은 긴데 일일이 불조정을 이곳에 와서 해야되어 불편합니다
소화기 2개와 물한통,
천정엔 분말소화기 소방소에서 나와 달아 주었습니다
한달전쯤 강추위가 오기전에 대전 사람이 마을의 묵은밭을 경매로 삿다고 측량하니 자기네 땅이 산속 까지 라면서 나무를 베러왔다고 길가의 동생네 GS25 편의점 가게로 음료수 사러왔을때 형님네인 저에게 준다고 부탁해놨다고 하네유
제가 일당벌이를 안가던 날 저는 톱으로 잘라놓으면 동생이 1톤 4륜트럭으로 실어다 집에 쌓아 주었습니다
토막을 내어 잘랐는데 굵은것은 지름이 50cm도 넘어서 저는 무거워서 도저히 못드는데 세살적은 66세인 동생은 혼자서 들어 차에 실어서 날랐습니다
나무의 굵기대로 가즈런히 정리도 잘해 놓은걸 저는 잘라서 요즘같이 추울때 기름 보일러 등유도 아끼고 덕을 톡톡히 봅니다
맞이인 제가 초등학교 3학년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거의 술과 인생을 보내다 돌아 가셔서 제가 거의 부모 노릇을 하다보니 한눈 팔 겨를이 없이 지금까지 쉴새없이 일하던게 몸에 배인것 같습니다
맨주먹으로 객지에 나가 쉽게 할수 있는건 노동일 뿐이라서 그중에 타일 부착하는걸 배워서 사글세를 살면서도 부산에서 살때 둘째 동생은 부경대 토목과 졸업시키고 간소 하게나마 세동생들 결혼까지 시키고 나니 한시름 놓아지더라구요
그래서 그런지 저희 형제들은 제가 부르면 만사 제쳐두고 달려올 정도로 지금까지 우애있게 지내고 있답니다
지금은 세상을 떠나신 마을의 어르신들께서도 저희 형제들 이야기 많이 했을 정도였어요
이야기 올라온게 없어서 보잘것 없는 저의집 얘기를 넋두리 해봤습니다
저의집 바깥 기온은 새벽 4시엔 영하3.5도 였는데 7시가 다된 지금은 영하 5도 가까이로 아직 새벽 공기는 차겁네유
저는 지금 일나갑니다
댓글 못달아 드려도 이해해주세요
어느덧 1월도 끝자락 2월달로 이어지는 월요일 입니다
들꽃마을 회원님 모두들 건행하세요
첫댓글 정말 고생을 많이 하셨군요
우애좋은 형제들이 있었기에 치금이 있고 유년시절의 힘듯ㄴ었지만 우애깊은 형제애를 추억할수 있지요
감동입니다^^♡
사노라면
누구나 고생은 하지요
고생을 하면서도 보람을 느낄 수 있다면 그 또한 해볼만 한것 같습니다
오늘도 보람있는 날 되세요^^
팔학골님도 쉬고싶어도 일이 몸에배여 쉴수없게 돼버린거같아요,저도 뭔가를하지않으면
인생을 허비하는거같아서
좌불안석입니다!
이제는 어쩔수없어서 쉬엄쉬엉가지만
서방님의 끝없는 손금보기로 털어내는 살림살이!
지금사는곳으로 이사와(친정동네)농사도 지어보지않아 서투르지만 최선을 다하다보니 집도 땅도 마련하게됐지요!
고생하셨어요
저는 힘들면 쉬면 되지만
또리장군님께선 늘 낭군님 곁에서 보필 하셔야 되니 거룩한 마음 없이는 할수 없는 일이죠
뵙지는 못했지만 또리장군님ㅡ존경합니다♡
@팔학골(안면도) 아닙니다!나는 그래도 저사람이 있어서 사는 의미도있고 살맛도 납니다!
큰형님께서 부모님의 역햘까지 하시느라 정말 고생많으셨네요..
존경합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날 되세요^^
팔하골님 글을 읽다가 아침부터 눈물나네요 동생들 돌보며 얼마나 힘들게 살았을지
그때는 그래도 이웃이 좋았을때지요
지난 세월은 왜그리도 사는게 힘들었는지 힘든세월 지나고 나니 서로
형제우애가 있고 행복입니다
내가 고생해서 뒷바라지 한 동생들이 객지에서 잘 살면서 남처럼 지내는 사람들도 있는데 우애있고 좋으네요 팔학골님 지금은 건강이 최고랍니다 여행도 다니시고 무리 마시고 건강~건강이 최고입니다
그렇게도 격하게 응원해주셔서 저도 너무 고맙고 감사드립니다
나만 고생하는것 같아도 다른집들도 들여다 보면 다들 애환이 있더라구요
그저 주어진 삶에 충실하며 긍정적인 맘으로 살아가니 그런대로 헤쳐나가 지더라구요
정원이님의 조언대로 이젠 뒤도 돌아보며 여유있는 시간을 가져보려구 합니다
가난한 집에 시집와서 시동생들 뒷바라지 하느라 고생한 마님과 올봄에는 여행도 다니고 그럴 예정 입니다
언제 그짝에 가게되면 좋은곳 구경좀 시켜주시고~
오늘도 좋은날 되세요^^
@팔학골(안면도) 네 이짝에 아는분도
많으시니 좋은차는 아니지만 제가 모실께요
팔학골님 동생들 볼보시며 진심 힘차게 살아오셨네요
그 보람도 있으시고요
저는 나가서 직장 생활도 못하게 친정에서 일만하다
어느날 아버님께 도움받아 열심히 살던 사람이 아버님께 보증을 부탁하는 것을 거절 못하시고 보증을 서 주셨다가 저 결혼할 무렵에 땅 11만평을 날리셨습니다
그러다 어느 움집 하나 장만해서 쪼껴나듯 이사하고 저 결혼식 날은 울음 바다였지요
결혼해서 살다보니 시모님께서 제 앞으로 괘ㄴ찮은 땅을 사 주셨어요
제 구질구질 한 삶 이야긴데요
다음 이야긴 다음에 쓰겠습니다
어휴~
도도님께서도 아버님의 보증으로 어려움을 겪으셨군요
저의집도 동네에서 제일 좋은 한옥 나무집이었는데 아버지의 보증으로 날아가고 보증을 극구 만류하던 어머니는 우울증으로 세상 떠나시고 첫돐 막넘긴 막내를 달래다 그치지 않으면 어린 우리들은 서로 얼싸안고 울기도 많이 했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보니 힘들었던 그시기 또한 그리 나쁘지 않은 추억이 되어서 형제들의 우애가 두터워진것 같습니다^^
대단하십니다
부지런함이 님 일생의 친구였군요
칭찬을 무한히 해드려도 모자랄듯요
수고한 님께 👏👏👏
진솔한 지나온 삶의 여정에
찬사의 박수를 보냅니다~^^
팔학군님 글읽다고보니
울오빠 같네요
같은 나이에 어머니이 돌아가시고 ㅠ
다행이 울아버지 술을 안 드셨어요
자식들 위해 열심히
일하셨어요
그래도 오빠 역할을
따로 있지요
동생들 챙기는 일은 오빠가 많이 했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오빠가 많이 힘들었구나 생각이 들때가 있답니다
덕을 많이 쌓으시고 몸소 희생하시며 가족애가 남다르신 팔학골님 존경스러워요
나도 할말이 많게 살아 왔지만 다 지난 세월속에 묻어두고 삽니다..
고생 끝에 낙이라고 지금은 형제들이 우애있게 사는게 제일 보람이지요...
맏이로서 고생이 많으셨어요...
어제 우리도 이천사는 큰아들 도움으로 천안가서 중고 sm7 차를 사서 여기까지 잘 왔네요.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4.01.29 15:49
어휴! 어머님이 왜 이리 일찍 돌아가셨을까요. 가슴이 먹먹해지네요. 늘 부지런하시고 열심히 사시는데는 이런 내공이 쌓여있었군요. 팔학골님의 글은 늘 교훈을 줍니다. 건강하세요.
팔학골님~
어쩐지 팔학골님의 댓글은 진심이 가득하다고 느꼈어요~
열심히 사셨어요^^
너무 멋진삶에 눈물이 펑펑 납니다.
대단하십니다~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