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쁘랭땅백화점과 기타 빌띵들로 들어선곳 그 언저리쯤에...
그곳에 승호네집이 있었고 그 안쪽에는 우리집과 인쇄소들...
그리고 99칸 대감집이 있었는데 그 대문은 지금 덕성여대 정문이 되었다고 하더라.
오리주물럭과 우리밀칼국수를 승호네 오마니가 손수 만들어 주시는곳 이였고...
조금만 걸어가면 시원스러이 미끄러지는 듯한 개울이 있고...
그럭저럭 무르익은 술 한사발 주렁주렁 열리는 이야기들...
보고 또 보고 ....
아무리 오늘 외근을 나가서 그 주위를 들러 봤건만....
하지만 이제는 내 기억속에만 있다.
을지로에는 전차가 다녔고,
철물점에서 대못을 훔쳐다가,
길건느는척 전차길위에 올려놓고 전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납짝해진 대못을 갈아서,
명동성당 고개에 올라 썰매를 타고...
명동으로 내려가서 지금은 어디인줄도 모르지만,
명동에 있는 어린이놀이터에서 놀다보면,,,
날은 어둑어둑해 지고 누나는 밥먹으라고 잡으러 왔다.
왜정때 동양척식회사건물옆 떡복기집에서 떡복기를 사먹고,
코스모스백화점에서 엄마에게 옷 사달라고 조르다 얻어맞기도 했다.
나의 고교시절....
무학여고는 나에게서는 작은 추억이 있다.
서로 공립이였던 관계로
무학여고에는 1학년때 담임선생님이 전근을 가셨지..
문예반을 담당하셨던 그분은 가끔 우리를 불러서
무학여고 문예반과 함께 시낭송이나 글짓기 경연을 벌리게 하셨다.
자연히 서로 어울리게 된 우리들은
무교동 덕수제과나 삼선교 나폴레옹제과점에서
미팅아닌 미팅도 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서로의 자랑과 설레임을 만끽하기도 했다.
지금은 이름도 생각나지 않는 그들이 이제는 우리 여멍들의 그 모습이겠지.
두발단속을 피해서 반송반으로 대피했다는 어느 여학생의 이름도 이제는
생각나지 않고
다만 아련함으로 그렇게 자리잡는것 나의 아쉬움인가 본다.
70년 말
80년 초..
명동
명동 성당 언덕 입구에는 "긴머리 흉한 머리 게으른 머리.." 현수막이 걸렸었고
그래두 신나하며 장발로 다니던 울 선배들..친구들..몇 몇..
충무로 길 명동에는 언제나 그늘에 젖었고..
그 옆 한 귀퉁이..
"필하모니"
자그만 문 열고 들어가면
육중한 방음문이 달려 있고 그 속으로
소리없이 들어가면 푹신한 소파에 깊이 깊이 몸을 묻고 시간 가는 줄을 잊었던..
그 때..
하도 매일 가는 단골이라서..
낮에 가고 저녁에 가도..
난 다시 들여보내 주던..
그 곳..
클래식 음악 감상실..
게시판엔 가끔 씩..
"병대가 왔다 간다"
한 자 남기고..
그러면 울 서클 동기들..
선배들 왔다가 토 달아주고..
한 걸음 내려가면 북창동 섞어찌개 유명했었고..
울 일년 선배는 탁자 밑으로 내 신발을 툭툭치며
순진한 암호를 전했었지..
둘이만 아는..
뜨겁고도 매콤한 섞어찌개..
국물..
냄새..
빗소리에 묻혀
그리운 밤..
다시 걸어 올라가 명동을 가면
몽쉘통통..
에프런을 입고 계피 묻힌 토스트에 커피한잔..
피아노를 연주해 주던 청솔밭 레스토랑..
내가 적어 주는 곡..
다 쳐주었었는데..
아직도 살아 있는 가무..
중국대사관이 훤히 내다 뵈는뜰 앞 창가에서 뜨거운 ..
뷔엔나 블랙커피 한잔 시켜놓고
비오는 날이면 점심 먹는 것도 잊고
비내리는 중국대사관 잔디 뜨락을 바라보던 시절..
엽서에 몇줄 적어 여기 저기 보내던 즐거운 시절..
너무 많이 보내서 나중엔 휴지통이 우체통 같았었는데....
울 회사 동료.
사보이 호텔에서 같이 칵테일을 마셨었는데..
어느 날 소리없이 죽어버렸었지..
세상이 싫었대나...
어쩠대나...
나부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을 열심히 틀어주던 충무로 입구 늘봄다방..
팜파스도 살아있는데..
어느 날 문득 날을 잡아..
소리없이
그 곳을 지나오면..
아무도 없어..
아무도 없지..
그저 나 모르는 사람들만 무성..
더 지난 세월이 되면
아마도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겠지만
아직은 아직까지는
그 사실이 믿기지 않아
한참을 휘이 휘이 돌아보면서
혹여라도..
아는 이 없나..
허망한 눈길을 돌려보며..
사람 많이도 섞여 분주한 명동 길을 아름다운 회상에 젖어서 걸어 보았지..
그러면 어디선가
박인환의 세월이 가면...
박인희가 불렀었던..
그 노래가 들리는 거 같아...
명동이 갑자기 생각나서 오늘은 참 많이 돌아다니다가,
이제 퇴근하려 한다.
어쩜 한잔의 술을 찾을것 같다만...
내일을 위해서
집에나 들어가야 할것같다.
아내와 나 두 사람이 다솜으로 만나 미쁨으로써 옴살이 되어왔다.
아껴주신 어른과 아음, 벗들을 축복속에 가시버시의 살부침을 맺고 살아온 지
벌써 십수년이다.
모다가 비나리를 해 주신 덕택에,
두 사람 한살매 서로 괴오는 마음으로 의초롭고 살뜰하게 살아왔다..”
그린내로 만나 꽃무리를 이루고, 결혼하여 서로 옴살이 되어 다솜으로 의초롭게 살아왔던,
가시버시도 세월 앞에는 장사가 없구나.
꽃잠 잘 자고 생긴 내 큰놈이 벌써 대학에 가네 오네를 하고 있는데,
그래도 몇년 전까지는 핫아비인 주제에 총각행세도 해 본적이 있으니...
그래서도 이녁에게 미안할 뿐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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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이야기
인생무상(4)
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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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0.12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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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마로의 아름다운 추억거리는 .. 우리들의 추억을 되돌아 보게 하는구나.. 아이 같은 마로의 순수한 마음 오래 간직했음 좋겠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더 옛날 생각이 나는 모양이구나.
앞으로도 그렇게 살으렴.....사람냄새 풍기며 정을 나누며.....근데 이친구 술생각 나게 만드네...
중앙극장옆 골목에 2층 튀김집에서 맥주병에 막걸리 담아 팔던곳도 있었는데 지금도 있나 몰러 . DJ가 틀어주는 팝쑝에 장소가 협소해 제자리에서 춤추곤 했는데 ...
추억은 삶에 힘이지, 맺는부분의 이쁜우리말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