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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日本ⓣⓥ* 원문보기 글쓴이: 사다크비아
다산 정약용에 관한 고찰
선생님 말씀을 메모하곤 했었으니까. 결코 ‘정약용 평론‘과 같은 책 한 두 권 따위로 설명할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그래고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되는 인물이었다.
거의 3년 만에 재등업한 기념으로 정약용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알아보고자 지난 학기에 배워두었던 정보를 토대로 하여 이 글을 작성한다.
정약용은 1762년, 남인 양반가의 집에서 막내로 태어났다. 재야학자의 길을 걸으면서 다산학을 집대성했던 시절, 이 둘로 나눌 수 있다.
10년간 관료생활을 하게 되는데, 초기 관리생활은 그나마 순탄했다. 그러나 경기도 암행어사로 나가게 되면서 지방 관료들의 부정부패와 그로 인해 죽어가는 농민들의 참상을 목격하게 되면서 정약용의 가슴 속에는 세상에 대한 어떤 반항심과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문제의식이 본격적으로 싹트기 시작했다. 이 때 쓴 시가 ‘적성촌에서’라는 시인데 함께 들어본다.
집 안의 물건은 쓸쓸하기 짝이 없어 두 아이 군포로 500전을 바치고 나니, 먼 옛날 협정의 유민도 본받아, -> (공수와 황패는 옛 공명정대했던 관리들의 이름.) 현재 부정부패가 하도 심해서 이들이 살아 돌아온다 한들 이것을 뿌리 뽑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내재되어있다. 그만큼 부정부패가 심해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대야 할지도 모를 정도라는 것.
결국 그는 보수적 관료, 부패한 관료들과 충돌을 일으키지 않을 수 없게 되고 탐관오리를 고발하고 처단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러한 그의 강직한 성품 때문에 결국 암행어사로 발령난 그 이듬해 병조참의에서 일개 금정역 찰방으로 좌천된다. 그리고 1801년 정조임금이 죽고 노론 독재가 시작되면서 다산은 결국 귀양길에 올랐다.
대대로 명문가로서 그 권위와 지위를 인정받았던 그의 집안은 그의 형들조차 천주교와 관련되어 모두 죽고 귀양을 떠나고 그 자신마저도 귀양을 떠나게 됨에 따라 완전히 무너졌다. 그때의 심정은 <사평촌의 이별>이라는 시에서 잘 드러난다.
아버지 아십니까 모르십니까 어머님 아십니까 모르십니까
평생을 글공부하여 과거에 급제하고 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목표로 삼아온 양반들에게 그 보다 더 치욕적인 일이 어디 있으며 정조가 죽고 독재세력이 득세하였으니 더 이상의 재기의 길이 어디에 있었겠는가.
보통 사람같으면 그렇게 철저히 고립된 삶 속에서 1년인들 제 정신을 가지고 살 수 있었을 것인가. 대게는 자포자기하여 재주가 녹쓸고 폐인이 되어가거나 임금에게 사모하니 그립니 어쩌니 저쩌니 하는 연모의 시나 써보내지 않는가.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끝났다’고 하는 시점에서 정약용은 그 처절하게 짓밟히고 찢어진 심장을 움켜쥐고 다시 붓을 들었다. 오늘날 조선 최고의 학자라고 일컬어지는 정약용의 중요한 저술들은 강진에서의 유배생활 18년 동안에 다 나왔다.
만약에 다산이 양반관료로서 무사히 생을 마쳤더라면 빛나는 그의 저술들을 우리는 접하지 못했을 것이다. 큰 학자, 그리고 학문다운 학문이라는 것이 고통 없이 나올 수 없고 그렇게 시련이 바닥의 바닥을 치는 그 벼랑 끝에서 탄생한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준다.
특히 요즘같이 정계가 흔들리고 민심이 흉흉한 시점에 ‘탕론’같은 경우는 수능 출제로 딱 안성맞춤이니 수험생들은 잘 눈여겨 봐주시기를.
이해하기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나 어구의 뜻을 하나하나 풀이하여 습득하기보다는 전체적으로 다산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논지를 정확하게 집어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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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위를 차지한 후 13년동안이나 나라를 평안히 다스렸다는 고사를 들어서 글을 시작하고 있다. 왕에 대한 충성을 중요시하는 유교에서조차 이를 올바른 ‘혁명’이라 평하였으므로, 정약용은 이런 일을 들어 글을 시작함으로써 ‘반역이다 역모다 어찌 감히 신하가 왕을 추방할 생각을 하는가’ 하면서 딴지를 걸고 나올 학자들의 입을 막아버린 것이다.
즉, “니들이 그렇게 존경하는 유교에서도 탕왕이 걸을 추방한 것을 올바른 혁명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신하가 왕을 추방하는 것이 나쁘기만 한 일은 아니지 않느냐?” 이런 논지가 되겠다.
즉, 왕이 대체 어떻게 생겨난 것이냐? 여럿 모여 사는 마을에 분쟁이 일어나 덕이 있는 자에게 가서 그것을 물어 일을 해결하고자 한 데서 시작하였으니, 즉 왕은 여러 사람들의 불평 불만을 해소하고 이를 중재하기 위해서 생긴 것이다 이런 말이다. 그렇게 왕으로 끌어올려놓은 것이 대중이니 그들이 왕을 끌어내리고 다른 사람을 올린다고 해서 도리에 맞지 않는 건 아니라는 말씀 !
"여름 한 철만 살고 가는 쓰르라미는 봄과 가을이 있다는 것을 모른다."
왕이 니 문화부 장관해, 니는 농림부 장관해 이렇게 위에서부터 아래로 관직을 찍어 내려주는 것이 독재고 역모라는 거다. 원래는 아랫 사람들이 윗사람을 세우는 것이 순이고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세우는 것이 역이며 이것이 당연하였다. 그러나 어쩌다보니 세상이 미쳐 돌아가서 아랫 사람들이 윗사람들을 세우는 것이 역이 되어버렸으니 이를 통탄하는 것이다. 즉, 군중이 왕을 추대한 것이니 능력도 없고 민심도 잃으면 니는 왕 할 자격이 없다, 그냥 내려오라는 말이 탕론의 주요 요지 되겠다.
참고로 <원목>도 한 번 읽어보길 바란다. 마찬가지로 백성을 위한 수령인가 수령을 위한 백성인가? 라고 의문을 던지며 백성을 보다듬어야 할 목민관이 백성의 고혈과 진수를 짜내어 자기 몸을 살찌우고 있으니 그러한 현실을 비판한 내용이다.
다음은 다산의 실학 전반적인 흐름을 결정짓는 민본주의와 애민주의를 살펴보자.
민중이 주인이다? 권력은 민중들에게 있다? 비슷해 보이지만 말이다. 앞서 말한 <탕론>과 <원목>에서 다산의 민본주의는 여실히 드러났다. 그렇다면 이러한 민본주의 말고 다산의 애민주의는 무엇을 뜻하는가?
순조 10년(1810) 경오년 여름에 파리가 극성하여 온 집안에 가득차고 점점 번식하여 산골에까지 득실거렸다. 고루거각(高樓巨閣)에서도 일찍이 얼어죽지 않더니 술집과 떡가게에 구름처럼 몰려들고 윙윙거리는 소리가 우레 같았다. 노인들은 탄식하며 괴변이라 하고, 소년들은 성을 내며 파리 소탕전을 펴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혹은 파리 통발을 설치하여 거기에 걸려 죽게 하고, 혹은 독약을 쳐서 그 약기운에 어질어질하게 하여 섬멸하려 했다.
나는 말하였다. 아아! 이는 죽여서는 안되는 것으로, 이는 굶주려 죽은 자의 변한 몸(轉身)이다. 아아! 기구하게 사는 생명이다. 애처롭게도 지난해 큰 기근을 겪고 또 겨울의 혹한을 겪었다. 그로 인해서 염병이 돌게 되었고 게다가 또 다시 가혹한 징수까지 당하여 수많은 시체가 길에 널려 즐비하였고, 그 시체를 버린 들것은 언덕을 덮었다. 수의도 관도 없는 시체에 훈훈한 바람이 불고 기온이 높아지자, 그 피부와 쌀이 썩어 문드러져 옛 추깃물(송장이 썩어서 흐르는 물)과 새 추깃물이 괴어 엉겨서 그것이 변해 구더기가 되어 항하의 모래보다도 만 배나 많았는데, 이 구더기가 날개를 가진 파리로 변해 인가로 날아드는 것이다.
->파리들은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의 혼이 환생한 것이니 이를 죽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아아! 이 쉬파리가 어찌 우리 인간의 무리(類)가 아니랴. 너의 생명을 생각하면 눈물이 줄줄 흐른다. 이에 음식을 만들어 널리 청해 모여들게 하니 서로 연락해 모여서 함께 먹도록 하라. 그리고 다음과 같이 조문하였다. 파리야, 날아와서 이 음식 소반에 모여라. 수북이 담은 쌀밥에 국도 간 맞춰 끓여놓았고, 무르익은 술과 단술에 밀가루로 만든 국수도 겸하였으니, 그대의 마른 목구멍과 그대의 타는 창자를 축이라. 파리야, 날아와 훌쩍훌쩍 울지만 말고 너의 부모와 처자를 모두 거느리고 와서 여한 없이 한번 실컷 포식하라. 그대의 옛집을 보니, 쑥덩굴이 가득하며 뜰은 무너지고 벽도 허물어지고 문짝도 찌그러졌는데, 밤에는 박쥐가 날고 낮에는 여우가 운다. 그대의 옛 밭을 보니, 가라지만 길게 자랐다. 금년에는 비가 많이 내려 흙에 윤기가 흐르건만, 마을엔 사람이 살지 않아 잡초만 우거지고 쓸쓸한 폐허가 되었다. 파리야, 날아와 이 기름진 고깃덩이에 앉으라. 살진 소다리의 그 살집도 깊으며, 초장에 파도 쪄놓고 농어 생선회도 갖추어 놓았으니, 그대의 허기진 창자를 채우고 얼굴을 활짝 펴라. 그리고 또 도마에 남은 고기가 있으니, 그대의 무리에게 먹이라. 그대의 시체를 보니 이리저리 언덕 위에 넘어져 있는데, 옷도 못 입고 모두 거적에 싸여 있다. 장마비가 내리고 날씨가 더워지자 모두 이물(異物)로 변하여, 꿈틀꿈틀 어지러이 구물거리면서 옆구리에 차고 넘쳐 콧구멍까지 가득하다. 이에 허물을 벗고 변신하여 구속에서 벗어나고, 송장만 길가에 있어 행인이 놀라곤 한다. 그래도 어린 아이는 어미 가슴이라고 파고들어 그 젖통을 물고 있다. 마을에서 그 썩는 시체를 묻지 않아 산에는 무덤이 없고, 그저 움푹 파인 구렁창을 채워 잡초만이 무성하다. 이리가 와 뜯어먹으며 좋아 날뛰는데, 구멍이 뻐끔뻐끔한 해골만이 나뒹군다. 그대는 이미 나비 되어 날고 번데기만 남겨놓았구나.
->그 시대의 어느 학자가 이런 민생을 눈여겨 보았겠는가. 보통 사람들이라면 더럽다고 그냥 지나쳤을 장면 하나하나를 눈여겨 보고 그것을 가슴으로 애달파했기에 옆구리와 콧구멍에까지 가득찬 파리를 보았고 어린 아이는 그것마저 어미의 가슴이라고 파고들어 젖통을 물고 죽어있는 모습까지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파리야 날아서 고을[縣]로 들어가지 말라. 굶주린 사람만 엄격히 가리는데 아전들이 붓대 잡고 그 얼굴을 살펴본다. 대나무처럼 빽빽이 늘어선 사람 중에 다행히 한번 간택된다 하여도 물같이 멀건 죽 한 모금 얻어 마시면 고작인데도 묵은 곡식에서 생긴 쌀벌레는 상하에 어지러이 날아다닌다. 돼지처럼 살찐 건 호세 부리는 아전들인데, 서로 부동을 파하고 연회를 베푸는데, 북소리와 피리소리 요란하며, 눈썹이 아름다운 기생들은 춤추며 빙빙 돌고 교태를 부리면서 비단 부채로 가린다. 비록 풍성한 음식이 있어 남아돌아도 그대는 먹을 수가 없단다.
사람들이 배가고파 줄서있으면 그 중에 그나마 괜찮아 보이는 사람들은 탈락시키고 진짜 피골이 상접하여 다 죽어가는 사람들에게만 그나마 물같이 멀건 죽 한 사발을 주었는데, 그걸 비판하고 있다. 곡식은 쌓여서 쌀벌레가 생길지언정 국민들에게 나누어줄 것은 없다는 것이다..
파리야 날아서 관으로 들어가지 말라. 깃대와 창대가 삼엄하게 벌려 꽂혀 있다. 돼지고기 쇠고깃국이 푹 물러 소담하고 메추리구이와 붕어지짐에 오리국, 그리고 꽃무늬 아름다운 중배끼약과를 실컷 먹고 즐기며 어루만지고 구경하지만, 큰 부채를 흔들어 날리므로 그대는 엿볼 수도 없단다. 장리(長吏)가 주방에 들어가 음식을 살피는데, 쟁개비에 고기를 지지며 입으로 숯불을 분다. 계피물 설탕물에 칭찬도 자자하나, 호랑이 같은 문지기가 철통같이 막아서서 애처로운 호소를 물리치면서 소란을 피우지 말라고 한다. 안에선 조용히 앉아 음식 먹으며 즐기고 있고 아전놈은 주막에 앉아 제멋대로 판결하고, 역마를 달려 여리가 편안하다고 치보하면서, 길에는 굶주린 사람 없고 태평하여 걱정이 없다고 한다.
살기 좋아 태평성대라 하기에 서로 술먹고 노는 풍경을 비판한다.
파리야, 날아와 환혼하지 말라, 지각없이 영원토록 혼혼한 그대를 축하한다. 죽어도 앙화는 남아 형제에게 미치게 되니, 6월에 벌써 조세를 독촉하는 아전이 문을 걷어차는데, 호령 소리가 사자의 울음 같아 산악(山岳)을 뒤흔든다. 가마솥도 빼앗아가고 송아지와 돼지도 끌어간다. 그러고도 부족하여 관가로 끌어다가 주릿대로 볼기를 치는데, 그 매를 맞고 돌아오면 기진하여 염병에 걸려서 풀 쓰러지듯 고기 물크러지듯 죽어가지만, 만민의 원망 천지 사방 어느 곳에도 호소할 데가 없고, 백성이 모두 사지에 놓여도 슬퍼할 수가 없다. 어진 이는 위축되어 있고 뭇 소인배가 날뛰니, 봉황은 입을 다물고 까마귀가 까옥거리는 격이다.
정조는 죽어 입을 다물었으니 민생은 파탄이 났고 온갖 간신배들만이 설쳐대는 꼴이다. 백성은 사지에 놓여 있지만 슬퍼할 수조차 없고 사방 천지 호소할 데가 없다. 어쩜 이리도 오늘날의 민생과 같은가.
다산이 아니면 쓸 수 없는 글이다. 구절구절 세상에 대한 분노와 부패한 관리들에 대한 노여움, 가엾은 백성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묻어나고 가슴이 미어지는 듯하다.
실학은 기본적으로 구체적인 근거를 충분히 댄다는 점에서 실증적이고, 학문이란 민중들의 현실에 구체적인 소용이 있어야 한다고 보기에 실용적이며, 민중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고 원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그들의 현실 깊숙이 눈여겨 보아야 했기에 현실적이다.
그러나 그 뿐만이 아니라 실학의여부를 가리는 결정적인 요소는 백성의 삶과 그 삶의 현장을 자기 문제로 끌어안고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하였는가 그 점에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다산을 최고의 실학자라 일컫는 것이다.
공자왈 맹자왈 백성을 아이처럼 다스리니 어쩌니 저쩌니 지껄였지만 결국 양반놈들은 백성들이 피땀흘려 가꾼 곡식으로 지 배 채워가며 과거공부나 하여 과거급제하면 일평생을 한가하게 지내다 죽는 것이 일반이었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공무원 공부 고시공부 임용고시 공부 수많은 사람들이 공부를 하고 있지만, 진정 다산처럼 우리보다 어렵고 약하고 못 배우고 힘들고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해서 그들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 그들의 현실을 진정으로 함께 애달파하는 마음으로 공부하는 이가 백명중에 한 명은 될 것인가.
아동의 개성과 자유를 존중한다 등등의 구절을 닳도록 외우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민중들에 대한 관심 아이들에 대한 관심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의 학생들은 공부답지 않은 공부 , 썩어빠진 공부를 하고 있으며 학력은 높아져도 사회는 점점 더 썩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인간적 감수성, 민중의 고통을 애달파하고 내 것인냥 여기는 그 감수성이 없으면 미친소 수입을 변론하는 궤변론자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은 늘 어렵고 힘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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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약용, 제가 제일 존경하는 인물입니다. 정조와 정약용, 두 천재의 만남이 정조의 죽음으로 안타깝게 끝난건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조금만 더 살아있었어도..
아... 왜 눈물이나지 ㅠㅠ
여기서의 실용과 지금의 실용은 왜이렇게다른거야..
쉽게 얘기하면 독재가 다른게 독재가 아니고 , 역모가 다른게 역모가 아니고, 왕이 니 문화부 장관해, 니는 농림부 장관해 이렇게 위에서부터 아래로 관직을 찍어 내려주는 것이 독재고 역모라는 거다 ........................ㅠㅠ......
명박아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야 진짜 저 사람은 그냥 조선 최고의 실학자이며 천재...
잘읽었어요!!!!!!!!!!!!!!!!!!!!!!!!!!!!!!!!!! 너무 가슴이 아리네요................. 정약용의 정신을 본받았으면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