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조상의 뫼를 잘 쓰면 음덕을 입어
그 후손들이 잘 된다고 믿었다.
그래서 유명한 지관을 찾아 명당을 골라 뫼를 쓰곤 했다.
내 어릴 때만 해도 뫼자리 좋은 곳을 고른다고
상여가 올라가기 힘든 비탈진 산골짜기 위로 힘들게 올라가 뫼를 쓰는 경우도 보았다.
우리 집안의 조상님도 미리 묏자리를 봐 두었는데
태조 이성계가 한 번 보여 달라는 바람에 신하된 도리로서 보여 드렸더니
자기가 봐 둔 묏자리와 바꾸자고 하더란다.
태조가 봐 둔 자리에서는 나중에 역적이 나올 자리여서
내심 좋지 않게 생각했으나 군주가 바꾸자고 하는 마당에 거역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런 사정을 아뢰고, 만약 역적으로 몰리더라도 목숨만은 살려준다는 약속을 하시면 그렇게 하겠노라고 했다.
그런데 남이장군이 22세 조광조의 흉계로 역적으로 몰려 처형을 당하게 되었으나 태조의 약속은 온데간데 없었다.
내가 마산에 살 때 바다 건너편 구실에는 조선의 8대명당이라고 이름난 묘지터가 있었다.
주위에 있는 산들이 감싸고 있는 형세로 경사가 그리 급하지도 않고 밋밋하여 풍수를 모르는 사람이 봐도
괜찮은 터로 보였다. 뫼들이 일렬로 대여섯 봉분이 늘어서 있었는데 어느 터가 명당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아마도 다른 사람들이 몰래 뫼를 암장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헛묘를 썼다는 말도 있었다.
요즘은 묘지터 구하기도 쉽지 않고 예전에 천하의 명당이라고 소문난 곳에 있는 조상뫼도
차가 들어가지 않으면 벌초도 하지 않는 묵은 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명당터라고 자리 잡았지만 후손들이 찾지 않으면 2~3년 후로는 자취도 없어지고 만다.
벌초하고 명절 때 산소에 가서 성묘하고 하는 조상을 뫼시는 일도 우리 세대가 끝나면 다 끝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며칠전 조방앞에 볼일이 있어 나갔더니 마침 토요일 저녁때였다.
길가 복권방 앞에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 있었다. 웬일인가 봤더니 간판에 크게 천하명당이라는 글자가 보였다.
토요일8시에 로또 복권 추첨이 있기 때문에 요행을 바라고 복권을 사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1등 85명 배출, 2등 260여명.... 다른 복권방에 비하면 1등이 많이 배출된 곳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내가 사는 해운대 아파트 앞의 복권방에서는 아직도 1등 당첨자가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다.(나왔으면 대문짝만하게 써붙여 놨을테니까). 콩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듯이, 사람이 많이 몰리는 곳에서는 확율이 그만큼 높아질 수 밖에.
그런데도 사람들은 마치 그 복권방이 천하명당인 것처럼 인식하고 사람들이 몰리는 것이다.
나도 그 전에 풍수에 관심이 있어 일본인이 지은 '조선의 풍수'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풍수가 미신이 아니라 아주 과학적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우리는 환경을 무시하고 살 수는 없다. 알고보면 친환경적인 요소를 고려하는 것이 풍수지리학이다.
하지만 천하명당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이 편안하게 느끼는 장소가 바로 천하명당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