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프트사이드(서울)진시황 병마용인지는 모르겠지만 진나라시절 화살촉에 크롬도금을 했다는 얘긴 들은적이 있습니다. 청동제 무기를 쓰고 있음에도 철제 무기를 쓰는 연나라를 이긴것도 그렇고 초기 철기와 비교해서 숙련된 기술을 보유한 청동기의 성능이 부족함이 없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데 어차피 저 시기라고 해도 청동기나 철기나 워낙에 비싼 무기였으니 대부분의 사병들은 석기와 목기들고 싸웠을 가능성이 더 높을겁니다. 얼마전 동남아 원시부족 다큐를 봐도 철이 공급됨에도 창촉과 화살촉을 나무로 만들어 쓰더군요.
@레프트사이드(서울) 고대부터 있어온 문제지만 현재까지도 군대의 모든 구성원이 고성능 무기로 무장한다는게 쉽지가 않습니다. 게다가 청동기는 철기보다 생산성이 상당히 떨어지는 무기거든요. (초기 철기는 생상성은 좋으나 기술부족으로 강도가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음...) 임란시절에 가까운 명나라 부대에 구원요청을 하러갔던 조정 관리가 왕에게 보고하는 내용 중에 명군의 무장상태에 대한 얘기가 있었는데, 군사의 절반이 박달나무를 잘 깍아 목검으로 만들어 허리에 차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물론 부정부패에 의한 원인도 있겠지만, 다양한 이유로 원하는 무기를 충분히 갖춘다는건 쉽지가 않은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재료, 야금학이 더 정교한 청동기 보다 사철을 그냥 고로에 녹인 철기가 먼저 일 것이라고 하더군요. 단지 열만 높인 철기가 재작하기 쉽고 금속재료가 더 많이 들어가고 머리를 써야 하는 청동기가 더 후기사회라는 말 말입니다.
철기는 더 빨리 산화로 인해 자연으로 돌아가는 성질 때문에 제대로 된 유물들이 남기 어렵다고 말입니다. 그리 따진다면 플라스틱은 자외선으로 분해되기 전 땅속에 뭍힌다면 맨 나중에 플라스틱기가 먼저 등재 될 것이고 나중 문명들이 발전하게 된다면 금속문명들이 다시 등재 될 것이라구요.
허긴...아직도 제강철기2기 철기문명이니 이 이론이 증명, 성립되면 제3기 철기문명이 되는군요.
하지만 철 역시.. 탄소 함유량에 따라 종류가 다양하고.. 종류별로 독특한 방식의 처리기술이 다양한데다.. 녹는 점이 높아 연료의 소모가 엄청나다는 점을 감안하면.. 단계별 특별한 노하우를 깨우치는 데 상당히 긴 세월이 소요되었을듯요.. 따라서.. 약간 회의적일 수도요.. ^^
@레프트사이드(서울)접쇠나 단조, 그리고 고로의 온도를 높이는건 단지 파생이고 오히려 다른 금속을 섞는 야금학이 요즘에도 선진국과 후진국을 나누는 나누는 것을 보면 저두 읽다가 느낀건데 공감이 많이 갓던 내용 입니다. 백퍼 이게 옳다는건 아닙니다만 금속을 다루다 이젠 공부도 쬐끔씩 하다보니 언뜻 이해는 갑니다.
가야에선 노천 사철광산이 그리 많았다 하더군요. 그래서 청동기 보단 철기가 그리 많이 재작되었다고 하구요.
호주선 아직도 노천 사철광산이 많다더군요. 고로의 온도를 높이는건 자기를 만드는 기술만 있으면 충분히 높인답니다. 진흙으로 고로를 만들 경험만 있으면 나무도 그리 많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로켓스토브가 일반적인
@레프트사이드(서울)나무화로보다 덜 잡아먹는걸 응용하는것이구요 우리나라 아궁이도 따지고 보면 지금도 응용되는 최첨단 난방방식인것 보면 당시 고로를 못만들었다는것은 넌센스이죠.
일반 난방식은 일반적인 나무를 노지에서 태우는 것이고 이게 약 600~800도 정도의 온도 입니다. 이정도의 온도론 사기정도의 그릇을 만들 온도이죠. 이정도면 충분히 구리와 섞는 다른 재료도 녹일 온도 입니다만 철을 녹이는 온도 1200~1600도 정도이면 자기를 만드는 고로도 가둬놓고 나무등의 연료를 완전연소 시킬 정도의 온도를 만드는건 아마 경험이 잇던 사람들은 쉽게 만들 수 있었을 겁니다. 고로도 따진다면 가마의 파생이니 굴뚝효과를 알구있는 선조들은 가능
@바보들의 행진(서울) 가야지역에서 철기술이 발달한건 풍부한 철광이 있었기 때문인게 맞을겁니다. 'MBC 네트워크 특선 2014년 3월 10일 신비의 왕국 아라가야' 다큐를 보면 사철을 제련해서 철정을 만드는 법이 나옵니다. 품질좋은 철을 얻기 위해서는 보다 온도를 높여야하지만 기술부족으로 온도를 올리지 못해 품질이 떨어지는 철을 얻더라도 가열하고 두드리는 작업을 반복해서 쓸만한 철정을 얻을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사철에서 철정을 얻을때는 철을 녹이는게 아니라 철에 붙어있는 불순물을 최대한 제거하고 두드려서 순도 높은 철정을 얻는 방법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 같습니다.
@바보들의 행진(서울)저도 한동안 나무(숯)를 이용해서 자기를 굽고 철을 녹이는 방법에 대해 한 참 헤매고 다녔었는데.. 어찌 보면 간단히 생각해 낼 수 있다고도 할 수 있고, 어찌 보면 장구한 세월의 시행착오가 필요하기도 하고.. 뭐라 감히 반박하기도 애매하네요~ ^^
@레프트사이드(서울)뭐 제가 꺼낸게 절대적이라고는 말을 못하겠구요.... 단지 저두 역사에 관심이 좀 있어서 다른 책들을 읽어보다가 토기에 관해 나온 것들이 좀 잇었거든요. 노천에서 진흙을 대충 빗어 빗살무늬토기, 사기로 만들어 쓰다가 진흙을 불이 바람에 흩어지지않게 쌓아올리는 초기가마를 다큐로 재현한것 보니 고로나 가마의 탄생의 시작이 아녔을까 생각 해 본것 입니다. 열기기 자격증 공부하다 보니 자연 금속도 관심이 많았구요. 금속의 녹는점도 다르다보니 저 위의 생각에 동조를 많이 하게 된 것 뿐 입니다.
@바보들의 행진(서울)<사철>: 쇳물로 뽑아 냈다면 좀 달라졌을런지도요.. 석탄이라는 물건이.. 송나라때 발견된 건지.. 그 전에 이미 발견되고 송나라때 일반화된 건지 잘 모르겠네요.. 석탄도 함께 발견했다면 간단히 쇳물을 뽑아냈을 거고.. 석탄이 아니더라도 노하우가 있었다면 숯으로도 가능했을런지도요..
@레프트사이드(서울)쇳물로 뽑아낸다면 틀로 제작하는건데 청동기가 그런 쇳물틀 방식 입니다. 더 정밀한 손질이 가야 가능합니다만 철정만을 두들겨 만든다는건 더 간단하죠.
지금도 쇳물을 붙는 가공품은 틀을 목업하구 틀을 만든 다음 틀에 주물용 쇳물을 들이붙는 제작방식 입니다. 더 손도 많이가구 복잡하죠. 철정은 더 간단합니다. 손이 얼얼할 정도로 두들겨 펴구 간단히 꼬챙이로 만든 다음 다시 달궈 망치로 가격하여 펴면 칼 입니다......뭐 이만 할랍니다. 기냥 그렇다구요. 돈 나오는것두 아닌데 말입니다.^^;;;;;
@즈나(부산)풀무와 좁은 화로가 역사를 열었죠.. ^^ 가야시대에 탄소조절을 어떻게 했는지는 한 번 알고 싶습니다.. 과연 나뭇재와 황토물만으로 했는지.. 아니면 다른 재미난 재료들을 사용했을지.. 그러고 보니.. 비교적 자료가 많을 것 같은 조선시대의 대장기술도 잘 모르고 있었네요.. 화약과 같이 기밀로 분류되어 폐기됐는지도.. -_-
청동기와 철기의 가장 큰 차이점은 그 생산량 입니다. 청동기시대라고 해도 청동의 사용은 제기나 제후들의 무기제작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전쟁도 제후들 간의 소규모의 전투 위주였었고 일반 농민들은 전쟁과 무관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다 철기로 접어들면서 철기의 막대한생산량으로 중장갑 보병이 등장 하면서 전쟁의 규모가 커지게 됩니다.
@바보들의 행진(서울)단순히 무기가 청동이냐 철이냐의 문제뿐만아니라 기타 경제적 정치적 문제도 고려해야 합니다. 주나라의 봉건제 특성상 대규모 전쟁이 불가능했고 무기나 제기 외의 도구는 여전히 석기를 썼기때문에 농업생산량이 적어 경제적으로도 대규모 징병은 생각할 수가 없었죠.
@둥글납작(강원).......주나라 이전의 부족전쟁 치우와 황제의 부족전쟁도 있었습니다. 기록상 그것도 대전쟁이고 몇년을 끌었다는 기록이요. 기록이 맞다면 중원의 패권전쟁이고 당시 인구비례로도 대규모 입니다. 처음 상대방 치우에게 대패한 중원의 황제편은 나무방패에 나무무기가 주력이였다고 나옵니다. 그리고 흔히 부족연합이 나라로 발전하지 철기문명에 중갑기병을 거론하는건 서양교과서에나 나오지 동양에선 그 괘를 같이 따라가는건 아닙니다.
@바보들의 행진(서울)당연히 나무무기로 대규모 접전 가능합니다. 자꾸 뭔가 논점을 벗어나는것 같은데요. 몇번을 읽어봤지만 바보들의행진님 주장을 이해하기가 어렵네요. 어느부분이 마음에 안드는거죠? 철기 이전에 전쟁이 소규모 접전 위주였다는것 그것이 농업생산량과 관련이 있다는것. 제 얘기는 이건데. 이건 저의 글에 바보들의 행진님이 처음 단 댓글에 본인도 직접 언급하신 내용인데요. 제가 나무무기로 대규모 접전이 어렵다고 한적도 없으려니와. 딱히 님의 말과 다른주장을 우긴적도 없는데. 어떤 부분이 마음에 안드신건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유일하게 다른얘기 한건 황제나 치우의 이야기에 동의하지 않은것 뿐인데 그것때문인가요?
중학교때 어느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얘기인데 그 선생님이 어렸을때인 일제시대때 일본 사람들이 경상도 지방에서 노천 철광석을 캐 가는 걸 본적이 있답니다. 광석은 그냥 쇳덩어리가 그대로 보일 정도로 순도가 높았다고 하네요 도자기 하는 사람들의 말로는 경상도 지방의 고령토도 일본에 엄청나게 수탈당했다는...식민지 자원이니 그냥 캐 간 거죠
첫댓글 칼은 칼이니까요 ~ 철기와 청동기의 차이가 있다면 내구성 차이겠지요.
멋지네요. 청동이 잘 깨지는거 외에 철기에 부족함이 없을겁니다.
진시황의 병마용에서 발견된 청동검의 첨단에서 크롬도금이 발견되었다더군요.. 청동검의 경도를 놀랍게 높여줬을 거라네요.. (그게 청동검인지 철검인지는 기억이 아련한데.. 철검을 굳이 크롬도금했을 이유가 없을듯요.. )
@레프트사이드(서울) 진시황 병마용인지는 모르겠지만 진나라시절 화살촉에 크롬도금을 했다는 얘긴 들은적이 있습니다.
청동제 무기를 쓰고 있음에도 철제 무기를 쓰는 연나라를 이긴것도 그렇고 초기 철기와 비교해서 숙련된 기술을 보유한 청동기의 성능이 부족함이 없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데 어차피 저 시기라고 해도 청동기나 철기나 워낙에 비싼 무기였으니 대부분의 사병들은 석기와 목기들고 싸웠을 가능성이 더 높을겁니다.
얼마전 동남아 원시부족 다큐를 봐도 철이 공급됨에도 창촉과 화살촉을 나무로 만들어 쓰더군요.
@즈나(부산) 영화 <에너미 엣 더 게이트> 러시아군이 둘 중 한 사람은 총만 가지고, 다른 한 사람은 총알만 가지고 돌격 명령을 받는 장면이나.. 중공군의 인해전술을 보면.. 충분히 신빙성이 있는 것 같군요..
하지만, 아무리 기원전 진나라 시대라 할지라도.. 광활한 지역을 소유한 최고권력자라면.. 광산을 발견하고 소유만 한다면.. 구리/철의 가격이 얼마가 됐건 모든 일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진리나라의 천하통일의 비밀은 획일화되고 공정구분이 된 대량생산 시스템의 도입 때문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더군요..
@레프트사이드(서울)
고대부터 있어온 문제지만 현재까지도 군대의 모든 구성원이 고성능 무기로 무장한다는게 쉽지가 않습니다.
게다가 청동기는 철기보다 생산성이 상당히 떨어지는 무기거든요.
(초기 철기는 생상성은 좋으나 기술부족으로 강도가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음...)
임란시절에 가까운 명나라 부대에 구원요청을 하러갔던 조정 관리가 왕에게 보고하는 내용 중에 명군의 무장상태에 대한 얘기가 있었는데, 군사의 절반이 박달나무를 잘 깍아 목검으로 만들어 허리에 차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물론 부정부패에 의한 원인도 있겠지만, 다양한 이유로 원하는 무기를 충분히 갖춘다는건 쉽지가 않은것 같습니다.
@즈나(부산) 놀라운 이야기로군요!! 즈나님은 특히 임진왜란과 관련해서 상당한 지식을 갖추신듯요~ ^^ 지난번 고양이시계도 정말 기발했습니다~ 늘 감사요~ ^^
@레프트사이드(서울) 걍 주서들은거죠. ㅠㅜ
첟동은 철에 비해서 구하기가 힘들죠. 대량생산하기가 힘들다는거.
광산을 발견해서 소유한다면 달라지지 않을까요????
@레프트사이드(서울) 우리나라의 경우 구리 매장량이 철의 1/30 밖에 되지 않습니다.
중국도 구리광산을 가진 나라와 철광산을 가진 나라가 초기철기 시대에 무기 체계가 달랐던걸 보면 광산보유 등 환경적 요인이 큰 것 같습니다.
@즈나(부산) 네.. 마치 그리스왕이 아르키메데스에게 무턱대고, "내 왕관이 순금인지 알아내라" 이렇게 명령하듯이..
진시황이.. "철보다 튼튼한 청동검 만들어 봐라" 이랬다면.. 그 신하는 목숨을 걸고(살기 위해 -_-) 크롬도금을 개발해 냈을 지도요..
인간의 능력은 혹독한 상황에서 특히.. 상상을 초월하니까요..
고수시네요.
어떤 사람들은 재료, 야금학이 더 정교한 청동기 보다 사철을 그냥 고로에 녹인 철기가 먼저 일 것이라고 하더군요. 단지 열만 높인 철기가 재작하기 쉽고 금속재료가 더 많이 들어가고 머리를 써야 하는 청동기가 더 후기사회라는 말 말입니다.
철기는 더 빨리 산화로 인해 자연으로 돌아가는 성질 때문에 제대로 된 유물들이 남기 어렵다고 말입니다. 그리 따진다면 플라스틱은 자외선으로 분해되기 전 땅속에 뭍힌다면 맨 나중에 플라스틱기가 먼저 등재 될 것이고 나중 문명들이 발전하게 된다면 금속문명들이 다시 등재 될 것이라구요.
허긴...아직도 제강철기2기 철기문명이니 이 이론이 증명, 성립되면 제3기 철기문명이 되는군요.
오호.. 놀라운 지식과 통찰력!!! 감사히 잘 읽습니다~ ^^
하지만 철 역시.. 탄소 함유량에 따라 종류가 다양하고.. 종류별로 독특한 방식의 처리기술이 다양한데다.. 녹는 점이 높아 연료의 소모가 엄청나다는 점을 감안하면.. 단계별 특별한 노하우를 깨우치는 데 상당히 긴 세월이 소요되었을듯요.. 따라서.. 약간 회의적일 수도요.. ^^
@레프트사이드(서울) 접쇠나 단조, 그리고 고로의 온도를 높이는건 단지 파생이고 오히려 다른 금속을 섞는 야금학이 요즘에도 선진국과 후진국을 나누는 나누는 것을 보면 저두 읽다가 느낀건데 공감이 많이 갓던 내용 입니다. 백퍼 이게 옳다는건 아닙니다만 금속을 다루다 이젠 공부도 쬐끔씩 하다보니 언뜻 이해는 갑니다.
가야에선 노천 사철광산이 그리 많았다 하더군요. 그래서 청동기 보단 철기가 그리 많이 재작되었다고 하구요.
호주선 아직도 노천 사철광산이 많다더군요. 고로의 온도를 높이는건 자기를 만드는 기술만 있으면 충분히 높인답니다. 진흙으로 고로를 만들 경험만 있으면 나무도 그리 많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로켓스토브가 일반적인
@레프트사이드(서울) 나무화로보다 덜 잡아먹는걸 응용하는것이구요 우리나라 아궁이도 따지고 보면 지금도 응용되는 최첨단 난방방식인것 보면 당시 고로를 못만들었다는것은 넌센스이죠.
일반 난방식은 일반적인 나무를 노지에서 태우는 것이고 이게 약 600~800도 정도의 온도 입니다. 이정도의 온도론 사기정도의 그릇을 만들 온도이죠. 이정도면 충분히 구리와 섞는 다른 재료도 녹일 온도 입니다만 철을 녹이는 온도 1200~1600도 정도이면 자기를 만드는 고로도 가둬놓고 나무등의 연료를 완전연소 시킬 정도의 온도를 만드는건 아마 경험이 잇던 사람들은 쉽게 만들 수 있었을 겁니다. 고로도 따진다면 가마의 파생이니 굴뚝효과를 알구있는 선조들은 가능
@바보들의 행진(서울)
가야지역에서 철기술이 발달한건 풍부한 철광이 있었기 때문인게 맞을겁니다.
'MBC 네트워크 특선 2014년 3월 10일 신비의 왕국 아라가야' 다큐를 보면 사철을 제련해서 철정을 만드는 법이 나옵니다.
품질좋은 철을 얻기 위해서는 보다 온도를 높여야하지만 기술부족으로 온도를 올리지 못해 품질이 떨어지는 철을 얻더라도 가열하고 두드리는 작업을 반복해서 쓸만한 철정을 얻을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사철에서 철정을 얻을때는 철을 녹이는게 아니라 철에 붙어있는 불순물을 최대한 제거하고 두드려서 순도 높은 철정을 얻는 방법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 같습니다.
@레프트사이드(서울) 하지 않앗을까 하는 추측 입니다. 고로가 선행 되어야 금속학이 나오니요. 단지 온도를 높이는건 열의 이동이라는 효율적인 굴뚝효과만 알면 금방 만들 경험입니다. 요즘도 고로에서 금방 나온 순철인가... 저가의 철들은 녹도 금방 슬고 합니다.
@바보들의 행진(서울) 저도 한동안 나무(숯)를 이용해서 자기를 굽고 철을 녹이는 방법에 대해 한 참 헤매고 다녔었는데..
어찌 보면 간단히 생각해 낼 수 있다고도 할 수 있고, 어찌 보면 장구한 세월의 시행착오가 필요하기도 하고..
뭐라 감히 반박하기도 애매하네요~ ^^
인간의 지성이란 예측불허의 무시무시한 무기니까요.. ^^
@즈나(부산) 시장경제의 원리와 흡사한 것 같습니다.. 철이라는 물건의 놀라운 장점과 값어치를 파악한 이상..
욕망의 불씨는 당겨졌고.. 기술은 단지 시간과의 싸움에 불과했는지도요..
@즈나(부산) 사철은 산소 함유량이 너무 많기에 지구상 어떤곳에서도 그리 좋은 품질을 얻지 못한다구 알구 있습니다.
@레프트사이드(서울) 뭐 제가 꺼낸게 절대적이라고는 말을 못하겠구요.... 단지 저두 역사에 관심이 좀 있어서 다른 책들을 읽어보다가 토기에 관해 나온 것들이 좀 잇었거든요. 노천에서 진흙을 대충 빗어 빗살무늬토기, 사기로 만들어 쓰다가 진흙을 불이 바람에 흩어지지않게 쌓아올리는 초기가마를 다큐로 재현한것 보니 고로나 가마의 탄생의 시작이 아녔을까 생각 해 본것 입니다. 열기기 자격증 공부하다 보니 자연 금속도 관심이 많았구요. 금속의 녹는점도 다르다보니 저 위의 생각에 동조를 많이 하게 된 것 뿐 입니다.
@바보들의 행진(서울) <사철>: 쇳물로 뽑아 냈다면 좀 달라졌을런지도요.. 석탄이라는 물건이.. 송나라때 발견된 건지.. 그 전에 이미 발견되고 송나라때 일반화된 건지 잘 모르겠네요.. 석탄도 함께 발견했다면 간단히 쇳물을 뽑아냈을 거고.. 석탄이 아니더라도 노하우가 있었다면 숯으로도 가능했을런지도요..
역시.. 이 부분에서 지식이 딸립니다.. ^^
@레프트사이드(서울) 쇳물로 뽑아낸다면 틀로 제작하는건데 청동기가 그런 쇳물틀 방식 입니다. 더 정밀한 손질이 가야 가능합니다만 철정만을 두들겨 만든다는건 더 간단하죠.
지금도 쇳물을 붙는 가공품은 틀을 목업하구 틀을 만든 다음 틀에 주물용 쇳물을 들이붙는 제작방식 입니다. 더 손도 많이가구 복잡하죠. 철정은 더 간단합니다. 손이 얼얼할 정도로 두들겨 펴구 간단히 꼬챙이로 만든 다음 다시 달궈 망치로 가격하여 펴면 칼 입니다......뭐 이만 할랍니다. 기냥 그렇다구요. 돈 나오는것두 아닌데 말입니다.^^;;;;;
@바보들의 행진(서울)
자유게시판 글인데, 심도있는 얘기가 오가네요. ㅎㅎㅎ
사철의 제련에 있어 탄소함유량의 조절은 필수입니다.
가야시대에는 나뭇재와 황토물을 이용해서 이를 조절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온도를 올리는데는 풀무의 개발이 지대했습니다.
@즈나(부산) 풀무와 좁은 화로가 역사를 열었죠.. ^^
가야시대에 탄소조절을 어떻게 했는지는 한 번 알고 싶습니다.. 과연 나뭇재와 황토물만으로 했는지.. 아니면 다른 재미난 재료들을 사용했을지..
그러고 보니.. 비교적 자료가 많을 것 같은 조선시대의 대장기술도 잘 모르고 있었네요.. 화약과 같이 기밀로 분류되어 폐기됐는지도.. -_-
@레프트사이드(서울) 나뭇재의 탄소와 산화철의 산소가 결합하면 이산화탄소가 만들어지면서 산화철이 선철이 되는 원리로 알고 있습니다. ^^
@즈나(부산) 선철이라면 무른 철이죠? 그녀석의 경도를 높이려면 나뭇재만으로는 부족하지 않았나 짐작해 봅니다..
일리있는 이론이라고 생각됩니다.
북한에 중국놈들이 50년 채굴권을 가져갔다는 무산광산도 노철광산이라고하지요.
그냥 흙 파다가 녹이면 된다는...
@장한이 그만할려 했는데...찰갑도 탄소 합유량 높은 탄소강 이랍니다. 삼국시대때 우리가 알구있는 재철기술보다 더 높았다 합니다. 한성부 고구려 화살촉이 우리가 흔히 쓰는 철판드릴날 정도의 탄소강 경도라지요.
오히려 재강기술이 우린 후퇴 했구 다른나라는 발달 한걸로 이해 됩니다. ㅡ_ㅡ;;;;;
재강법 중 가장 간단한게 접쇠와 두들기기란 단조공법이죠. 주물과 야금은 더 발달한 방법이라 알구 있습니다. 철정을 만드는것도 이찌됫건 철을 융용 한계까지 녹였던 고로가 있어야 가능한거죠.
이젠 진짜 그만 할랍니다. 돈두 안나오는거 더 해 봐야....^^;;;;;
청동기와 철기의 가장 큰 차이점은 그 생산량 입니다.
청동기시대라고 해도 청동의 사용은 제기나 제후들의 무기제작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전쟁도 제후들 간의 소규모의 전투 위주였었고 일반 농민들은 전쟁과 무관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다 철기로 접어들면서 철기의 막대한생산량으로 중장갑 보병이 등장 하면서 전쟁의 규모가 커지게 됩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교과서적인 답변이군요. 나무방패, 나무몽둥이로도 대규모 접전은 가능합니다. 비용대 효과면에선 더 저렴합니다. 단지 인구가 늘어나는 농업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진 소규모 집단간의 전투가 대부분엿겠죠. 교과서적이라면 그 농업혁명도 철기시대 이후 입니다.
철기나 요즘의 화약무기도 적 보다 더 쌘 무기를 손에 쥘려는 욕망에 아낌없이 자본,자재를 들이는것이구요.
글쎄요.. 군량이 깡패라는 표현이 있는데.. 군량을 확보하려면 농민들을 수탈해야 하고..
군량이 확보되면 배고픈 농민은 저항없이 모두 징집이 가능했는데..
과연.. 강건너 불보듯 살 수 있었을까요???
@레프트사이드(서울) 아.. 그러면 주나라 봉건제의 특성부터 설명해야하는데...
그냥 제후들이 그럴 힘이 없었다는것 정도만...ㅋㅋ
사실 저도 배운지 십년이 넘어가니 당장 완벽하게 기억이 나지도 않구요.ㅋ
@둥글납작(강원) 저 이런 이야기 되게 좋아하는데.. 시간이 없다는 게 함정요~ ^^
혹시 나중에 시간 되시면 천천히 좀 풀어주세요~ ^^
@바보들의 행진(서울) 단순히 무기가 청동이냐 철이냐의 문제뿐만아니라 기타 경제적 정치적 문제도 고려해야 합니다. 주나라의 봉건제 특성상 대규모 전쟁이 불가능했고 무기나 제기 외의 도구는 여전히 석기를 썼기때문에 농업생산량이 적어 경제적으로도 대규모 징병은 생각할 수가 없었죠.
@둥글납작(강원) .......주나라 이전의 부족전쟁 치우와 황제의 부족전쟁도 있었습니다. 기록상 그것도 대전쟁이고 몇년을 끌었다는 기록이요. 기록이 맞다면 중원의 패권전쟁이고 당시 인구비례로도 대규모 입니다. 처음 상대방 치우에게 대패한 중원의 황제편은 나무방패에 나무무기가 주력이였다고 나옵니다. 그리고 흔히 부족연합이 나라로 발전하지 철기문명에 중갑기병을 거론하는건 서양교과서에나 나오지 동양에선 그 괘를 같이 따라가는건 아닙니다.
@바보들의 행진(서울) 그시대의 이야기는 문자 그대로 보기 어렵죠. 일례로 삼국연의에 나오는 전투규모도 당시 중국인구를 훨씬 넘어간다지요.
특히나 치우나 황제의 이야기는 신화에 가까운 이야기라...
@둥글납작(강원) 소설과 기록을 구분못한답니까....더이상은 대화가 안된다 생각해서 그만 할랍니다.
@바보들의 행진(서울) 청동기의 낮은 생산량으로 어떻게 대규모 전쟁이 가능한지를 먼저 설명해주심이 어떨지요. 정말 몰라서 드리는 말씀 입니다.
@바보들의 행진(서울) 물론 당시의 기준으로 어느정도 규모가 큰 전쟁은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철기 이후의 전쟁과 비교할게 못되지요.
@둥글납작(강원) 언제 청동기라 단정 했었습니까? 나무무기도 등장 했었다고 썼는데 그건 안보이는군요. 그리고 청동기, 철기라는 시대구분은 그리 딱 나눌 생각도 없는 사람에게 자꾸 님이 배운대로만 우기기에 전 님 하고는 더 이상 말을 이어가기가 곤란함을 느낍니다.
@바보들의 행진(서울) 당연히 나무무기로 대규모 접전 가능합니다. 자꾸 뭔가 논점을 벗어나는것 같은데요.
몇번을 읽어봤지만 바보들의행진님 주장을 이해하기가 어렵네요. 어느부분이 마음에 안드는거죠?
철기 이전에 전쟁이 소규모 접전 위주였다는것 그것이 농업생산량과 관련이 있다는것.
제 얘기는 이건데. 이건 저의 글에 바보들의 행진님이 처음 단 댓글에 본인도 직접 언급하신 내용인데요.
제가 나무무기로 대규모 접전이 어렵다고 한적도 없으려니와. 딱히 님의 말과 다른주장을 우긴적도 없는데.
어떤 부분이 마음에 안드신건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유일하게 다른얘기 한건 황제나 치우의 이야기에 동의하지 않은것 뿐인데 그것때문인가요?
중학교때 어느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얘기인데
그 선생님이 어렸을때인 일제시대때 일본 사람들이 경상도 지방에서 노천 철광석을 캐 가는 걸 본적이 있답니다.
광석은 그냥 쇳덩어리가 그대로 보일 정도로 순도가 높았다고 하네요
도자기 하는 사람들의 말로는 경상도 지방의 고령토도 일본에 엄청나게 수탈당했다는...식민지 자원이니 그냥 캐 간 거죠
음,,,다들 엄청난 지식을 자랑하시는군요,,대단하다,,,
밤에 마눌님이 스마트폰못하게해서 접속을 못했는데,,엄청난 토론이 있었군요,,와우,,,무서운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