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월요시편지_1010호
시집詩集
박수현
영등포역 알라딘 중고 서점에서 나의 세 번째 시집 『샌드 페인팅』을 발견했다 이름이 서명된 페이지는 찢겨 나갔다 시집 뒤표지엔 6,100원 가격표가 소인消印도 안 찍힌 우표처럼 붙어 있었다 그러니까 내 시의 편당 가격은 딱 백 원짜리 한 닢인 셈이다 이걸 중고서점에 내놓은 분은 누굴까 첫 페이지는 하마 열어 보셨을까 60편 가까운 시 중 서가에 모셔두기까지는 아니라도 평생에 한 차례일지언정, 눈 맞출 만한 시는 한 편도 없던 터였겠다 부끄러웠다 낚아채듯 책장에서 그것을 뽑아 계산대로 갔다
시집의 ‘집集’자는 나무 위에 새가 앉은 형상이라는데 그는 종종거리며 슬프고 안타까운 새의 낌새조차 알아채지 못한 것이리라 새들이 애면글면 날아가 나뭇가지 하나 물어오고 다시 또 물어오며 알뜰히 쌓아 올렸을 집 한 채, 나는 새 한 마리 깃들지 않은 나의 폐갱廢坑 같은 새집에게 미안해졌다 그날 오후, 그해 내 몸과 영혼의 구석진 곳 샅샅이 아침에도 울고 저녁에도 울었을 새들을 생각하며, 내 가여운 새집을 오래된 아궁이 불씨 뒤적이듯 뒤적거릴 따름이었다
- 『처녑』(황금알,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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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현 시인의 신작 시집 『처녑』에서 한 편 띄웁니다.
- 시집詩集
시집을 읽다가 <빨강을 고백하다>라는 시에 잠시 갸웃했더랬습니다.
이 시를 어디서 봤더라?
그러다가 올해 초 그러니까 월간 《춤》(2025년 3월호)에
"꼭두서니"를 쓸 때 인용했던 기억이 떠오르더군요.
그래서 찾아봤습니다.
<소통의 월요시편지>에 지금까지 박수현 시인의 시를 2편 소개했더군요.
- 2009년 8월 10일 <151호>, 「( )괄호」(『운문호 붕어찜』, 황금알, 2008)
- 2020년 3월 30일 <702호>, 「비인칭인 봄」(『샌드 페인팅』, 천년의시작, 2020)
그러니까 박수현 시인께서는 너무 슬퍼하지 마시란 얘기입니다.
이렇게 당신의 새들을 당신의 새집들을 고이 모신 독자들도 많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생각하면
독자에게 버림받는 게 어디 박수현 시인만의 일일까 싶습니다.
그런데 생각하면
모든 독자에게 버림 받는 시집은 없을 겁니다.
단 한 명의 독자는 반드시 존재하니까요.
그러니 힘 내시기 바랍니다.
시인이란 마침내 외로울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닌 예술의 고아들이니
기꺼이 외로워하자고!
말도 안 되는 말로
세상의 모든 시인을 응원하는 아침입니다.
2025. 11. 10.
달아실 문장수선소
문장수선공 박제영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