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인지 이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에 대해서는 상당히 긍정적인 인식이 많이 퍼져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독립운동가 겸 역사가 신채호 선생의 평이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나 싶은데... 신채호 선생님이야 당시 사회의 모습과 책 집필 당시에 밝혀진 지식의 정도나 이런 여러가지 것들을 고려해보면 이해못할 것은 아니긴 한데(애초에 신채호도 묘청은 좋게 보지도 않았고), 왜 요새도 이렇게 호평 일색인지는 의문이더라고요.
제가 볼 때는 권력 투쟁의 성격이 강하고, 그 주장도 허황된 게 많고, 인종 설득하려고 사기까지 치다 걸렸는데, 막 깔 이유는 없지만 딱히 높이살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뭐 역사에 대해 대단한 식견이 있다던가 역사를 잘 안다던가 이러지 않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말이 서경천도지 서경천도는 동아시아판도를 깨고 금나라의 패권에 도전하는것까지 연결되는 문제다보니 반발이 클 수밖에 없었다고 봐요. 꿈이 큰건 좋은데 그래도 국가정책인데 땡중의 미신적인 사상을 근거로 국운을 걸고 도박을 하는게 바람직한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생각해보면 서경천도운동 불과 30여년전에 윤관이 여진정벌을 시도했고 거기서 실패와 한계를 보여줬지만, 민족사적으로는 큰 의미가 있는 전쟁이었다 보는게, 그 이후의 서경천도운동, 그리고 우왕의 요동정벌이 그야말로 졸속이었던 것에 비하면 그나마 제대로 된 시도였으니까요. 헛꿈만 좆다 망한 서경천도운동이 왜 그리 과평가를 받는지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아무튼 시행착오 끝에 결국 후손들이 이뤄낸 정답은 세종의 4군6진이었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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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물며 지금도 수도라는 것이 이렇게 중요한데 과거엔 더했겠죠...
@utopia 은근히 그런 것들이 헷갈릴 때가 많죠ㅋㅋ
아무래도.. 고구려 - 고려 계승 및 고려의 자주성 등을 강조하고자하는 의지때문이겠죠.. 삼별초의 난을 긍정적으로 서술하는 것과 비슷한 사례라봅니다.
허구한 날 진흥댜제니 뭐니 황제 드립 치는 것이 생각나는군요.
근데 당장 신채호부터 진행과정은 그닥 긍정적으로 보진 않았다고 알고 있어요;
말이 서경천도지
서경천도는 동아시아판도를 깨고 금나라의 패권에 도전하는것까지 연결되는 문제다보니 반발이 클 수밖에 없었다고 봐요. 꿈이 큰건 좋은데 그래도 국가정책인데 땡중의 미신적인 사상을 근거로 국운을 걸고 도박을 하는게 바람직한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생각해보면 서경천도운동 불과 30여년전에 윤관이 여진정벌을 시도했고 거기서 실패와 한계를 보여줬지만, 민족사적으로는 큰 의미가 있는 전쟁이었다 보는게, 그 이후의 서경천도운동, 그리고 우왕의 요동정벌이 그야말로 졸속이었던 것에 비하면 그나마 제대로 된 시도였으니까요. 헛꿈만 좆다
망한 서경천도운동이 왜 그리 과평가를 받는지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아무튼 시행착오 끝에 결국 후손들이 이뤄낸 정답은 세종의 4군6진이었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