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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인생에서 무작정 좋아하고
사랑했던 나의 약혼자
어릴적부터 집안끼리 서로 왕래을하고
아버지의 절친이어서 우린 어릴적부터
오누이같은 사이었습니다
훤칠한키에 어디하나 부족함이
없던 오빠!
오빠아버지는 의사었습니다
난 우리오빠들보다 어쩜 그오빠을
더좋아했고 나의 첫사랑이었습니다
큰언니와 작은언니들이 성악을
전공하셨고 나도 큰언니의 귄위로
중학교때부터 엄마보다 더지독한
큰언니의 지도하에 성악공부을 했습니다
사실 나의 꿈은 여군이나 디자인
둘중에 하나을 고를생각했지만
나의 꿈은 언니가 정해준데로
따라야 했습니다
그럴때 꼭 오빠가 나의 마음을 다독여주며
나에게 용기을 주어씁니다
내가 아기때부터 그오빠는 나를 업어
주기도하고 나를 이뼈라하니
우리아버지와 오빠아버지는 이다음
커서 둘이 결혼시키자는 말씀을
어릴적부터 줄곤 듣고 자랐습니다
그래서인지 우린 시간이나믄 항시
같이었고 내가 중학교 들어가서 하교
시간때 되믄 시간이 날적마다
날기다렸다 집에오는길에 인천
자유공원에 데리고가서 예쁜꽃들도
보여주고 탁구장에 데리고가서
탁구도 가르쳐주곤 했답니다
집안에서도 오빠을 믿기 때문에 오빠랑
국장구경을 간다면 오히려 용돈을
두둑이 받아서 영화가 끝나면 풀빵과
곰보빵을 사주던 오빠.....
내가 고1때 고3인 오빠는 대입 때문에
많은 시간을내지 못했지만 매일
집으로 전화을하자 양쪽 집안 어른들께서도
"재들은 천생연분 인가봐요"하며
내가 고등학교을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가믄 약혼식을 하기로 하셨답니다
중학교 2학년때부터 전 학교공부에
성악공부을 열심히 했습니다
만약 제가 공부을 못해서 원하시는
대학에 못가믄 오빠랑 결혼도 안시킨다는
아버지의 협박아닌 협박에 열심히
학교공부와 성악공부을 했습니다
오빠는 의대에 합격을했고 그때문에
우리아버지는 오빠을 더 믿어라했고
오빠아버지도 저를 내미래 며느리라 하시며
집에 불려서 맛있는 음식도 해주시곤
내가 대학에 들어가믄 약혼부터하고
오빠가 군에갔다가 제대하고 둘이
유학가기로 했답니다
나도 대입에 합격하고 그이듬해 어느겨울 어느날 성악을하다가
그만 주먹만한 핏덩어리을 토하고
전 기절하여 병원에 실려가고 그뒤부터
입안으로 물한모금도 삼키지 못하고
말도 못하고 우리아버지가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마다 다녀도 낫지도 않고
자세한 병명도 알아내지 못하고 그뒤부터
난 이병원 저병원 온갖 좋다는 병원을
아버지가 울면서 찾아 다녀도 나을기미는 커녕
점점 나빠져갔습니다 그러다 오빠가
공군에 입대했습니다
틈이 나는데로 오빠는 편지와 전화로
제안부을 묻고 답장을 쓸수없는 내입장에
아버지가 대신 답장을 보내고 그러기를
2년이 넘자 두집안 어른들의 정성으로
그런지 어느날 새벽 내가 갑자기 라면이
먹고 싶은생각이 들어서
"아버지 라면이 먹고싶어!, 하자
늘 아픈 저를 데리고주무시던 아버지가 놀라시며
"다시 말해봐 너지금 말했지!"
"응 아버지"
2년동안 조금말을하다 전혀 말까지
못하던 내가 말을하자 아버지가 울으시며
절 안아주시면서
"어디 뭘먹고 싶은지 말해봐!"
"라면"
엄마와 밖으로 나가셔서 많이 우셨답니다
그때 당시 몸무게가 36키로 밖에 안나가고
병원애서도 가망없다하여 집으로
데리고 왔는데
"이제 저애가 우리곁을 떠날려구
음식을 찿는데 못먹더라도 해줍시다"
하셨답니다 엄마가 라면 반개을 꾾여서
갖다주시자 물한모금도 넘기지 못한
내가 그 라면을 다먹고 자더랍니다
아침에 식구들이 밥상에 앉아서 밥을 먹자
"엄마나두 밥줘!" 하자 온식구들이 놀래구
그뒤부터 조금씩 음식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소식을 듣으신 오빠 아버지도 달려오시구
얼마후 소식을 듣은 오빠가 집에 왔습니다
"고맙다 그리고 사랑한다"하며 눈물을 흘리며
"나 제대하는데로 약혼하자"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나도 회복이 되여
갔지만 내목소리는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내가 할일이 없었습니다
학교로 돌아갈수도 없고 그렇게 방항하자
우리 집안 어른들이 약혼식부터하고
오빠도 곧 제대하니 유학보내자 했습니다
우린 따스한 어느봄날 내생일날 내첫사랑이자
그렇게 좋아하던 오빠랑 우린 양가 어른들과
친지분들을 모시고 호텔에서 약혼식을
했습니다 오빠들을 따라서 몰래 몆번
가본던 인천 올림포스 호텔에서요
그러나 그행복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친구들과 부산에 사는 언니집에 놀려갔다가
우연히 알던 사람이 바로 언니네 아파트
바로 앞집에 사는 남편친구었고
그사람이 나를 따르자 언니가 나를 다시
인천집으로 보내서 인천에 왔는데 우리집을
어떻게 알았는지 찾아오고 오빠가 야단쳐서
"우리동생은 이미 약혼도 했으니 가라"
소리치자그사람이 갔습니다 그땐 아무
사이도 아니구 그냥 친구들과 부산 광복동
거리을 걷는데 같이 차한잔하자해서
거절한게다고
우연히 언니앞집 언니친구가 언니와 친구들도
함께와서 점심 먹자고해서 갔는데 그때
그남자가 거기에 있었고 놀란 나는 그냥
집으로 왔습니다 언니가 뒤따라 들어와서
나와 친구들에게 아는사람이냐 왜그러는냐
하는통에 며칠전 있었던 애기을하자
언니가 걱정이 되여는지 집에 전화을 걸고
우리 서울로 곧바로 올라오자 약혼자 오빠가
마중을 나와있었습니다 오빠도 대층 애기을
듣고 걱정이되서 나왔답니다
그뒤부터 외출도 삼가하고 혹시나하는
생각에 외출을 할때면 아버지가 기사아저씨
딸려서 보냈고 약혼자 오빠랑만 다녔는데
하루는 집근처 친구집에 갔다오다 집근처에서
숨어있던 그사람을 발견하고 집으로 뛰어
가려는데 애기좀하자며 강제로택시에
나를 태워서 한참 가더니 내리던곳이
나중에 알았지만 교문리었습니다
서울에 올라와 방을 얻어놓고 기회을 봤던중
마침 나를보고 끌고 간것이죠
일주일동안 감금에........
겨우 탈출하여 집에 공중전화로 애기하고
돌아서는데 그사람과 그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아버지가 오빠와 내가 전화로 알려준곳을
간신히 찾아와서 그사람을 패고 나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날부터 악몽에
시달리고 약혼자 얼굴을 차마 볼수없어서
집에 찾아와서 방문을 걸어 잠그고 만나지 않았습니다
모든것이 악몽이다 생각하고 악몽은 곧 지나가니
잊으라하시고 약혼자 오빠도 다 이해한다
하면서 빨리 미국으로 떠나자며 오빠 출국수속을
준비하고 마음 안정을 뒤찾을쯤 그사람이
또다시 우리집에 찾아오고 때마침 집에와있던
약혼자오빠가 그사람을 데리고 나갔다
한참만에 돌아왔습니다 오빠는 아무말없이
"다 해결 됐으니 걱정말자" 하지만
난 오빠의 얼굴을 쳐다볼수 없었습니다
어느날 밥을 먹다가 토하고 나중에야
그게 입덧이란걸 알았고 엄마는 나를 데리고
아는 산부인과에 몰래 데리고가서 진찰을 해보니
임신이란 사실을 알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내자신이 저주스러워
2층에 계단에서 굴려 떨어져봤는데
아무이상없고 엄마는 나중에 엄마가 이죄값 다받을테니 수술하자 하시는데
전 내뱃속에 있는 아이을 죽인다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지만 엄마따라서 병원에갔고
수술 침대에 누워있는데 갑자기 배속이
꿈틀 거림을 느끼자 일어나 도망갔습니다
약혼자는 만약에 니가 아이을 낳는다면
미국에가서 낳고 내자식처럼 키울테니
절더러 자기을 포기하지 말라하고 하지만
나는 오빠도 오빠 부모님들을 뵐명목이 없어서
밤길에 집을 나와 애아빠한테 갔습니다
그일로 엄마는 쓰러져서 6년동안 아프시다
돌아가셨고 내가 사랑했던 첫사랑 약혼자 오빠는
혼자 미국으로 떠나갔습니다
그러나 나의 불행은 시작이었고 난 이듬해
1월1일날 혼자 아들을 낳았고 며칠만에
집에 돌아온 그사람과는 술만 마시면 약혼자 애기부터해서
나를 괴롭히고 아들 출생 신고 때문에 혼인 신고는 했지만 그사람과 나는 서로 생각이
다른체 살다가 결국 이혼을하고 각자의 길로
남이 된체 살아왔습니다 어쩜 저에게도
잘못은 많습니다 그사람과 있어도 약혼자 생각에
남모르게 눈물 흘리고 그리워했으니
아들이 태어나도 제대로 안아주지 않았고
엄마의 젖을 한번도 물리지 않고 나는
그렇게 자식을 키워으니 죄을 받을겁니다
그사람의 자식이라 싢었고 미워습니다
그게 제 발목을 잡는 쇠사슬이 될줄도 모르고
한번도 내젖을 물리지 않았습니다
아이아빠 한테는 내가 아파서 젖을 먹일수가
없다고 거짓말로하고 죄없는 어린아들을
내가 학대한것 같아서 지금까지 매순간순간마다
내가슴이 이렇게 아프고 아들 얼굴을 쳐다보며
죄속에서 사는것인지도 모릅니다
내죄속에 나스스로 가두고 괴로워서 이혼 한후로
아들을 위해서 더 열심히 살아왔는지도 모릅니다
내죄값을 치르기위해서.......
친정에서도 쫒겨나고 싸우고 속상할때도
나는 갈곳이 없었습니다 나때문에 쓰러지신엄마가 곧 돌아가실것 같다는
큰올케언니의 전화을 받고도 엄마의 임종도
지켜보지 못했습니다 아이 데리고 엄마가
돌아가신다해서 간다니 술이 취해 들어와
난동을 부려 늦게 도착한 바람에 나는 그저
싸늘하게 식은 엄마의 얼굴만 어리만지며
"엄마 내가 잘못했어 엄마 말을 안들어
내가 미안하구 잘못했어요"
내가 절규하며 미치도록 울자 아버지가
이렇게라도 돌아왔으니 됐다 하시며
"이놈아 꼭그래야만 했니?"
정신없이 울자 오빠들도 언니들도 "조금만 더 일찍오지 그랬니 "
친구들이 소식을 듣고 찾아오고 약혼자었던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그오빠도 왔습니다
3치레 치르는 내내 내아들과 나를 살펴주던 오빠....
엄마 49제 미사을 드리고 산소에 갔다가 오는길에
나랑 아들을 자기차에 테워서 집으로 가던중
아들이 차안에서 잠들자 아들을 아빠에게
잠시 봐달라하며 나를 데리고 나왔습니다
한적한곳에 차를 세우고 나를두고 내리더니
커피 두잔을 사오더니 하는말이
"지금부터 내말 잘들어 난 지금도 너없이 안돼겠고 잊을수 없으니
우리 모두 잊고 니아들과 나랑 다시 시작하자!"
나로인해 오빠나 오빠부모님이 상처가 클텐데
"오빠 이러지마 그럼 내가 더 나쁜사람되고
부모님 생각해봐 이럼 안돼"
의사가 되서 오빠아버지랑 같이 병원을 경영하는데
알만한 동네 사람들은 다 아는데 난 오빠의 말을
들어줄수 없었습니다 내가 세상에서 상처을 준
유일한 사람들 우리부모님과 오빠와 오빠부모님 그리고 우리아들
아들이 20살 되던해 난 아들과 여행갔습니다
그리고 아들에게 속죄했습니다 엄마을 용서해 달라구요
아들은 엄마의 심정이해하니 지금부터라도
괴로워하지 말고 사시라구요
아들을 안고 엉엉 울고 말았습니다
"그래 이제 너하나만 바라보고 너를위해살께"
요즘들어 나를 좀 서운하게하지 지금까지
자라오면서 속한번 안썩이고 사춘기도 무난히 넘겨주고
아기때는 남양분유 우량아 대회에 나가서
상으로 자기가 먹을 분유로 자랐고 베비랑 대회에 나가서
입상하는 바람에 옷도 돈안들이고 입고 자란넘입니다
그러나 내가 아들에게 지은죄는 죽어서도
아마 갚지 못할것입니다
엄마 젖한번 물어보지 못한 불쌍한 아들
그러면서 또 한사람 약혼자오빠....
지금쯤 그오빤 나를 용서 안하고 있겠지?
"그래 오빠 내가 죽어 그죄값 다 받을테니 오빤 행복하게 살아요!"
아직도 나는 내왼쪽 손가락에는 실반지을
끼고있습니다 오빠가 휴가나와서 오빠가 제대하면
우리약혼하자며 프로포즈을하며 끼어준
우리둘의 이니셜이 새겨진
그실반지가 37년째 끼고있습니다
언제까지 이반지가 내손가락에 끼어져 있을까요?
그오빠도 엄마 돌아가셨을때 오빠가 끼어준
반지을 봤습니다 그런면서 아마 반지을보고
다시 시작하자고 말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까지 내손가락에는 그반지외엔 다른
반지을 끼여 본적이 없으닌깐요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죠?
내가 이세상을 떠나때까지도 아마 그반지도
나와 함께 이세상에서 사라질거란
생각이 듭니다
나로인해 상처받은 오빠! 부디 행복한
가정속에서 내게 못다받은 사랑 많이 받으시고
행복했음 좋겠습니다
내겐 넘친 사랑을주신 그사람 영원히
잊지않고 감사하게 생각하며 살께요!
이젠 보고싶은 생각이 들고 그리우면 그리워지는데로
그리운 마음을 안고 가는게 운명이겠죠?
첫댓글 다솜이님장편소설같은
리얼스토리 잘보고가네유
앞으로 건강하시구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도령님도 올해엔 좋은소식
기대합니다!~~~~^^
인연의 어렵고 힘든 긴 터널을 지혜롭게 잘 지나오셨네요.
힘들고 혹독한 시련이지만 내 마음속에 자리한 그 무언가의 작은 생명의햇불이
자신을 지켜주었겠지요.따스함이 살아있는 자아의 세계에서
더 넓은 화초의 평원으로 나오신거 축하드립니다.
삶은 누구에게나 소중하지만 축복은 시련을 격은 사람에게
더 큰 선물을 전해주지않을까요?
속죄하면서 누굴 원망하지않고 행복을 빌어줄수있는
더 없이 넓은 마음!심성이 이 아침을 아름답게 쏟아져 내려
가슴속에 내려앉아져 감사했습니다.
행복하세요~~
소설인줄 알았습니다..리얼다큐?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는데 과거를 잊어야만 새로운 미래를 시작할수 있습니다.. 인연이 아닌사람을 가슴에 담아두면
새로운 출발을 못합니다..새해는 멋진 날들이 되시길 빕니다.
소설 같은 인생사..마음 아프네요 ... 사람마다 다 삶이 다르지만 어찌 그렇게까지 할말이 없네요 그저 앞으로의 삶이 행복하셧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
아~
굴곡진 삶
지금 부터라도
행복한 삶이 셔야 할퇸되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힘내세요.
평범하지못한 삶이지만 남은삶을 소중히 간직하며 사세요
첫사랑의 오빠? 는 가정을 꾸리셨겠지요?
그렇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놔주십시요
이루지못한 첫사랑의 추억으로 고이간직하며
분신같이 키운 아들 속죄하는맘으로 올인하며 키웠으니 분명 그아들 모성애가 강해서 성품이 따뜻할거예요
소설같은 인생을 용기있게 풀어 냈으니
지금부터 나를 소중히 여기며
분명 다솜님의 과거 까지도 사랑 할수있는
위대한? 사랑이 기둘리고 있을거란 희망을갖고 새출발하십시요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01.05 15:55
에효~~
뭐라 말씀을 드려야 좋을지요...
어떤 말씀을 드려도 위안이 되지 않을 터이니.....
오직 힘내시라는 말씀만.....
가슴에 한이 서리셨겠습니다.
자식을 품지 못한 한이며...
진정으로 사랑하는 남자를 외면하며 살아야 했던...
그저 가슴이 멍멍해져 옵니다.
이제 남은 인생 어차피 지나갓으니 뒤는 돌아보지 말고 그저 자식위해
자신위해 앞만보고 달리세요.
이젠 자신도 사랑하세요.
본인의 잘못만도 아니잖아요^^
성격으로 인해 자기 스스로 난파선이 되어 홀로 외로움을 삼키며 산다는 것은 고통입니다.
타고난 미모로 남성들이 좋아하는 타입인지는 모르나 언행을 이성적인 사고력으로 심사숙고하여
분명하게 하셔서 밝은 미래를 열어 가시리라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