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찬 비바람을 맞으며 다향 보성으로(장흥 -보성 25km)
4월 21일, 아침에 일어나니 비가 내리고 바람이 많이 분다. 제주도와 남해안 지방에 80mm이상의 큰 비가 내릴 것이라는 예보다. 오전 8시, 강풍이 불고 있어 우산을 쓰지않고 비옷차림으로 숙소를 나서 보성으로 향하였다. 출바한지 10분도 안되어 금방 신발이 젖는다. 청테이프를 붙이고 비닐봉지로 감쌌으나 별무효과, 바지도 흠뻑 젖었다.
한 시간쯤 걸어 고개마루에 이르니 장흥읍에서 부산면으로 접어든다. 빗길에 쉴만한 곳이 없어 허름한 주유소에서 선 채로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걷는다. 폭우에 더 이상 걷기 힘든 여성회원 중 일부는 승합차에 오른다. 두 시간을 걸어도 간식을 들만한 장소가 없다. 길가의 작은 사엄에 들러 음료와 과자로 간식을 가름하고 내쳐 걸으니 장동면으로 들어선다. 주변의 경관을 살필 겨를 없이 몇 걸음 앞만 바라보며 열심히 걷는 모습이 군인이나 학생들의 훈련과정처럼 강행군이다.
11시 반, 장동면소재지에 있는 식당에 도착하였다. 승합차를 탄 여성들도 면사무소에서 대기하다 합류하였다. 음식점의 젊은 여성들이 빗물을 닦으라며 수건을 여러 장 건네준다. 양말과 바지가 젖은채로 따뜻한 방에 들어서니 온몸이 나른하다. 따끈한 동태찌개가 추위에 식은 몸을 풀어준다. 여성회원들은 면사무소에서 쉬는동안 종이접기로 만든 장난감을 직원들한테 하나씩 만들어주며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면장이식당으로 막걸리를 여러 병 보내주었다. 우중에도 서로 유익한 교제를 나눈 셈이다.
손님들이 붐비는 식당에 오래 앉아 있기 미안하여 12시 20분에 오후 걷기를시작하였다. 오전에 15km 남짓 걸어서 오후 행로는 10여km 남았다. 비는 조금도 약해지지 않고 걸어가는 길바닥에 물이 넘치는 곳이 많다. 주변의 하천에는 갑자기 불어난 폭우로 세찬 물소리를 내며 탁류가 흐른다. 엊그제 내린 실비로는 농작물의 해갈에 미흡할텐데 이처럼 많은 비가 내리니 봄가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다.
오후 1시 경 장동면을 벗어나 보성군 보성읍에 들어서니 잘 자란 메타세콰이아길이 나타난다. 속성수롤 큰 키를 자랑하는 케타세콰이아의 파란 잎들이 봄의 생기를 자랑한다. 열심히 걷다보니 생각보다 빠르게 보성읍내로 진입한다. 우중이라서 군청행을 생략하고 숙소로 직행하였다. 도착시간은 오후 2시 20분, 25km를 걸었다.
2년 전 회상의 피란길 걷기와 작년의 제3회 조선통신사 걷기 때도 빗속을 걸었으나 오늘처럼 강한 비바람을 뚫고 전 구간을 걷기는 처음이다. 일본인들은 더 많이 걸은 베테랑들이어서 장비들이 훨씬 완벽하다.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체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완주할 수 잇어서 다행이다. 추위에 행여 감기라도 걸릴까 염려하였는데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나니 별 이상이 없다. 우리가 걸은 코스는 녹차의 본고장을 자랑하는 녹차밭들이 있는 곳과는 다른 길이다. 녹차밭을 직접 보지 못한 것이 아쉬우나 세차게 내리는 빗길을 뚫고 '녹차의 수도'라는 표지가 곳곳에 보이는 다향 보성에 들어섰다. 숙소의 입구에 녹차단지의 선명한 사진이 대신 반겨준다.
저녁 6시, 숙소 앞의 식당에서 저녁을 들었다. 메뉴는 소머리 국밥, 식사가 끝난 후 2층의 넓은 방에서 유쾌한 노래잔치가 벌어졌다. 음식점의 시중을 든 중년남자가 '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가 없었다면,,'을 부르니 여셩들이 일어나 춤을 추고 1층에서 일하던 아주머니도 쫓아 올라와 덩실덩실 흥겹게 어깨를 들썩인다. 즉석 우정의 파티가 벌어진 셈, 힘들게 걸었던 피로가 깍 가신다. 자리가 파하여 일어나니 승합차로 이동했던 여성회원들이 완보한 이들의 이름을 연호하며 노고를 위로화여 우리 모두 하나가 되었다.
지난 번 광주에 들던 날, 왕만두 등을 푸짐하게 가져 온 제자에게서 '저의 즐거움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젊은 언니 오빠들이여, 오늘의 건강 영원하라!!!'며 파이팅을 당부하는 메시지를 전해왔다. 세찬 비바람을 뚫고 녹차의 고장에 이른 젊은 언니 오빠들, 대단하십니다. 악천후 속을 걸으면서 몇 번씩 외친 것처럼 우리 모두 파이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