莊子 外編 19篇 達生篇(장자 외편 19편 달생편)
편 이름은 이 편 맨 앞의 달생達生 두 글자를 따서 지은 것이다. 〈달생達生〉편에서 주목할 만한 내용은 무위의 철학을 관념이 아닌 현실의 구체적인 삶에 나아가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편은 대체로 내편 특히 〈양생주養生主〉편의 사상을 계승하고 있는데 자신의 삶을 완전하게 유지하여 인생의 달인이 되기 위해서는 천리天理의 자연自然에 따라 사심私心을 버리는 태도, 곧 무위를 삶의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이 무위無爲의 경지에 서면, 도리어 지묘至妙한 유위有爲가 실현된다고 하는 데에 이 편의 사상적 특징이 보인다.
매미잡이[승조承蜩] 이야기(제3장), 기왓장을 경품景品으로 걸고 하는 던지기 놀이 와주瓦注 이야기(제4장), 목계木鷄 이야기(제8장), 여량呂梁이라는 격류激流 속에서 헤엄치는 도수滔水 이야기(제9장), 목거木鐻 깎는 이야기 등 각종 기예技藝의 달인達人에 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이 〈달생達生〉편에는 보이고 있는데, 이 이야기들은 〈양생주養生主〉편에 보이는 ‘포정해우庖丁解牛’의 우화寓話와 그 성질이 같은 이야기들이다.
이천합천以天合天하는, 무리하지 않는 인생태도를 이야기하고 있는 이 〈달생達生〉편의 제일 마지막 12장에는 인생을 달관하지 못하는 상식적인 모랄리스트 손휴孫休와 무위자연無爲自然[천天]의 도道와 합할 것을 인생의 제일의第一義로 생각하는 초월의 철학자 편경자扁慶子와의 흥미있는 문답이 실려 있다.
莊子 外編 19篇 達生篇 第1章(장자 외편 19편 달생편 제1장)
[제1장 해석]
생명生命의 실정實情에 통달한 사람은 어떻게 할 방법이 없는 삶을 이루기 위해 애쓰지 않고, 운명의 실상實相을 달관하고 있는 사람은 어찌할 수 없는 명을 벗어나기 위해 힘쓰지 않는다. 육체를 길러 보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물질을 먼저 마련하지 않을 수 없지만, 물질이 넉넉함에도 육체가 길러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생명生命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육체를 먼저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되지만 육체는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목숨을 잃는 경우가 있다. 생명이란 찾아오는 것을 물리칠 수 없으며 가는 것을 멈추게 할 수 없는 것이다. 슬프다.
세상 사람들은 육체를 잘 기르기만 하면, 족히 생명을 보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만약 육체를 잘 기르는 것만으로 결코 생명을 보존하기에 부족하다면 세속인들이 육체를 기르려는 노력이 어찌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겠는가. 비록 해볼 만한 가치가 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것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무릇 육체를 기르려는 집착에서 벗어나려고 한다면 세속과의 관계를 버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세속과의 관계를 버리면 얽매임이 없게 되고 얽매임이 없게 되면 마음이 바르고 평안해지고 마음이 바르고 평안해지면 저 육체와 함께 삶을 다시 시작하게 될 것이니 삶을 다시 시작하게 되면 거의 〈달생達生에〉 가까울 것이다. 세상의 일이 어찌 족히 버릴 수 있는 것이겠으며 생명이 어찌 족히 잊을 수 있는 것이겠는가마는 세속의 일을 버리면 육체가 피로하지 않게 되고 생명生命에 대한 집착을 잊어버리면 정기精氣가 손상되지 않을 것이니, 무릇 육체가 완전해지고 정기精氣가 회복되면, 천天(자연自然)과 그대로 하나가 될 것이다.
천지天地라고 하는 것은 만물의 부모이다. 천天과 지地가 합하면 만물의 형체를 이루고 천天과 지地가 흩어지면 만물의 시작을 이룬다. 육체와 정기精氣가 손상되지 않는지라, 이것을 일컬어 ‘자연과 함께 변화할 수 있다.’고 하니 〈육체와 정기精氣를〉 정묘精妙하게 하고 또 정묘하게 할 수 있다면 생명의 근원으로 되돌아가 천지의 작용을 도울 수 있을 것이다.
達生之情者 不務生之所無以爲 達命之情者 不務知之所無奈何
養形 必先之以物 物有餘而形不養者 有之矣
有生 必先無離形 形不離而生亡者 有之矣
(달생지정자는 불무생지소무이위하고 달명지정자는 불무지지소무내하하나니라
양형에[호대,호매] 필선지이물이로대[하나니] 물유여이형불양자 유지의니라
유생인댄 필선무리형하나니 형불리이생망자 유지의니라 )
생명生命의 실정實情에 통달한 사람은 어떻게 할 방법이 없는 삶을 이루기 위해 애쓰지 않고, 운명의 실상實相을 달관하고 있는 사람은 어찌할 수 없는 명을 벗어나기 위해 힘쓰지 않는다. 육체를 길러 보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물질을 먼저 마련하지 않을 수 없지만, 물질이 넉넉함에도 육체가 길러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생명生命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육체를 먼저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되지만 육체는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목숨을 잃는 경우가 있다.
☞ 달생지정자達生之情者 불무생지소무이위不務生之所無以爲 : 달達은 “창달, 통달함이다.”(陸德明). 생生은 생출生出의 뜻. 정情은 실리實理. 무이위無以爲의 이以는 소이所以의 뜻.
生之來 不能却 其去 不能止 悲夫
世之人 以爲養形 足以存生 而養形 果不足以存生 則世奚足爲哉
雖不足爲 而不可不爲者 其爲不免矣
(생지래를 불능각이며 기거를 불능지어늘 비부라
세지인이 이위양형 족이존생이라하나니 이양형이 과부족이존생인댄
즉세해족위재오 수부족위로대 이불가불위자는 기위불면의일새니라)
생명이란 찾아오는 것을 물리칠 수 없으며 가는 것을 멈추게 할 수 없는 것이다. 슬프다.
세상 사람들은 육체를 잘 기르기만 하면, 족히 생명을 보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만약 육체를 잘 기르는 것만으로 결코 생명을 보존하기에 부족하다면 세속인들이 육체를 기르려는 노력이 어찌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겠는가.
비록 해볼 만한 가치가 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것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세해족위재世奚足爲哉 : 해볼 만한 가치가 없다는 뜻을 완곡히 표현한 대목이다. 세世는 세속인들이 행하는 육체를 기르는 방법.
☞ 수부족위雖不足爲 이불가불위자而不可不爲者 기위불면의其爲不免矣 : 그 자체가 긍정적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달리 방법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육체를 기른다는 뜻이다.
夫欲免爲形者 莫如棄世
棄世則無累 無累則正平 正平則與彼 更生 更生則幾矣
事奚足棄 而生奚足遺 棄事則形不勞 遺生則精不虧
夫形全精復 與天爲一
(부욕면위형자는 막여기세니
기세즉무루하고 무루즉정평하고 정평즉여피로 갱생이니 갱생즉기의니라
사해족기며 이생이 해족유리오마는 기사즉형불로하며 유생즉정불휴하나니
부형전정복이면 여천으로 위일하리니)
무릇 육체를 기르려는 집착에서 벗어나려고 한다면 세속과의 관계를 버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세속과의 관계를 버리면 얽매임이 없게 되고 얽매임이 없게 되면 마음이 바르고 평안해지고 마음이 바르고 평안해지면 저 육체와 함께 삶을 다시 시작하게 될 것이니 삶을 다시 시작하게 되면 거의 〈달생達生에〉 가까울 것이다.
세상의 일이 어찌 족히 버릴 수 있는 것이겠으며 생명이 어찌 족히 잊을 수 있는 것이겠는가마는 세속의 일을 버리면 육체가 피로하지 않게 되고 생명生命에 대한 집착을 잊어버리면 정기精氣가 손상되지 않을 것이니,
무릇 육체가 완전해지고 정기精氣가 회복되면, 천天(자연自然)과 그대로 하나가 될 것이다.
☞ 부욕면위형자夫欲免爲形者 : 위형爲形은 양형養形과 같이 육체를 기른다는 뜻이다.
☞ 정평正平 : 마음과 몸이 본연의 상태를 얻음.(林雲銘)
☞ 여피갱생與彼更生 : 피彼는 형形.
☞ 갱생즉기의更生則幾矣 : 기幾는 ‘거의 ~에 가깝다’는 뜻. 곧 완전한 達生에 가까워짐.
☞ 유생즉정불휴遺生則精不虧 : 생生은 생명에 대한 집착의 뜻.
天地者 萬物之父母也 合則成體 散則成始
形精不虧 是謂能移 精而又精 反以相天
(천지자는 만물지부모야라 합즉성체하고 산즉성시하나니
형정이 불휴할새 시위능이니 정이우정하면 반이상천하리라)
천지天地라고 하는 것은 만물의 부모이다. 천天과 지地가 합하면 만물의 형체를 이루고 천天과 지地가 흩어지면 만물의 시작을 이룬다.
육체와 정기精氣가 손상되지 않는지라, 이것을 일컬어 ‘자연과 함께 변화할 수 있다.’고 하니 〈육체와 정기精氣를〉 정묘精妙하게 하고 또 정묘하게 할 수 있다면 생명의 근원으로 되돌아가 천지의 작용을 도울 수 있을 것이다.
☞ 산즉성시散則成始 : 성시成始는 기가 흩어져서 만물이 아직 생성되지 않은 최초의 상태로 돌아간다는 뜻.
☞ 시위능이是謂能移 : 능이能移는 천天, 곧 자연과 함께 추이할 수 있다는 뜻.
☞ 반이상천反以相天 : 상相은 돕는다는 뜻. 천天은 천지자연의 작용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