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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____장정희
부추꽃, 그 환한 인생
장정희
귓속이 가려웠다. 서랍을 열어 귀이개를 찾았다. 없었다. 어디에 뒀지? 저녁잠에 빠져든 남편을 깨우기엔 귀이개가 너무 사소한 것 같아 관뒀다. 남편은 이른 저녁밥을 먹고 잠들었다가 내가 잠자리에 들 때면 일어나 서재로 갔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이런 패턴은 이어졌다. 늦은 시간까지 잠자리에 들지 못하고 TV 앞에서 빈둥거리는 나로서는 남편과 도통 얼굴을 맞댈 일이 없었다. 초저녁 드라마부터 심야영화까지 여러 채널을 섭렵하고 잠자리에 들면, 남편은 남편대로 서재에서 수업 준비와 논문 쓰기로 밤을 보냈다. 일찍 퇴근해 줄곧 서재에서 연구에 몰두하는 남편 옆에서 딱히 불평이랄 것도 없이 무람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셈이었다. 아침식사를 짓는 수고도 없이 간단한 선식으로 아침을 대신하고 집을 나서는 남편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는 정도라면 TV 광고에나 나옴직한 행복한 가정주부임에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불만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취침시간이 맞질 않으니 함께 저녁산보에 나서거나 공연을 보거나 술잔을 나눌 기회를 가질 수 없다는 정도랄까. 어쨌든 그것도 불만이라면 불만이었다. 살아온 세월만큼 습관을 바꾸는 일이 좀처럼 쉬운 것은 아니니까.
나는 귀이개 대신 면봉을 찾아내 다시 TV 앞에 앉았다. 화면 속에는 너른 한옥집을 배경으로 선 노인이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나는 천석꾼 집에 태어나 배고픈 세상을 모르고 살았어. 허나 그것이 아름다운 일은 못 돼.”
85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노인의 낯빛이 맑았다. 토방 마루가 겨울의 투명한 햇살 속에서 정갈했다. 사방이 눈으로 덮인 정원에는 나무가 많아 푸른 기운이 완연했다.
“사람은 강인하니 살아야 강인한 태도가 있고 그것이 아름답지. 초년 고생은 은금을 주고 사서 해야 하는데 나는 그러질 못했어. 역경에서 자라는 자는 강하고, 순경에서 자라는 자는 약하다고 하잖아. 나무도 역경에서 커야 씩씩해. 같은 나무라도 돌 사이 든 나무는 얼른 자라진 않아도 속으로 단단하거든. 나는 나무로 치문 약하게 컸지.”
순경에서 자라 여물지도 못하고 무르기만 하다는 노인은 평생 살아오는 동안 누구에게 상처입힐 말 한 마디 떨어뜨린 적이 없을 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자 내 얼굴은 어떤지 궁금해졌다. 거울 속에는 이루고 싶은 꿈도, 하고 싶은 일도 없는 권태롭기 짝이 없는 여자의 얼굴이 들어있었다. 옹이도 없고 무늬도 없는 심심한 얼굴이었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 세상이 등 뒤로 소리 없이 흘러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아귀들의 세상이라는 저편의 삶이 불현듯 궁금해졌다.
그때였다. 질문에 화답이라도 하듯 거실 전화기가 요란하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벽시계가 자정을 넘어서고 있었다. 남편이 놀란 눈으로 방문을 열고 나왔다. 떨리는 손으로 수화기를 들자마자 비명 같은 여자의 울음이 쏟아져 들어왔다.
언니, 어떡해! 어떡해! 내 남편 좀 살려 줘! 언니…….
이종사촌인 여주였다. 울음은 다급했으나 내용은 멀었다. 울음과 말이 어지럽게 뒤섞인 여주의 목소리를 해독하는 것은 좀처럼 쉽지 않았다. 겨우 파악한 것은 자신의 남편이 농약을 마셔 이곳 대학병원으로 실려왔으니 얼른 다녀갔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부랴부랴 서랍을 열어 자동차 열쇠를 찾아냈다. 나의 재촉에 남편은 영문도 모른 채 옷을 꿰입었다. 사실 남편과 내가 간다고 해서 여주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은 딱히 없었다. 그저 남편이 소속된 대학의 종합병원이기에 친분 있는 의대교수를 통해 의사나 병원 관계자에게 편의를 부탁하는 게 전부일 것이다. 아니, 어쩌면 위급한 순간에 옆에 있어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신호였는지도 모른다. 그때 생각난 사람이 나와 남편이었으므로 부름에 응답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여주 남편은 어쩌자고 농약을 들이마신 것일까.
가로등 불빛만 남은 겨울밤의 거리는 한껏 고요했다. 운전대를 잡은 발끝에 힘이 들어가는지 자꾸만 속도계가 눈금을 차고 올라왔다. 유리창의 성에가 덜 가신 채 나선 도로는 몹시 미끄러웠다. 나는 운전대를 꼭 붙든 채 침착해야 한다고 자신을 타일렀다. 남편은 잠이 덜 깬 듯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정면을 응시하고 있을 뿐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다시 휴대폰이 울렸다. 엄마의 목소리가 발을 구르듯 다급했다.
아야, 자냐?
아뇨, 여주한테 가는 중이에요.
그렇잖아도 그것 때문에 전화했다.
어쩌다 그랬대요?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엄마는 한숨부터 길게 내쉬었다.
그년이 지 남편 잡아먹게 생겼다.
뭔 일인데요?
둘이 싸우다가 김서방이 여주 보란 듯이 농약을 마셔버렸단다. 이 노릇을 어쩌면 좋냐?
끼익, 길게 미끄러지는 바퀴소리가 허공을 찢었다. 신호가 바뀌는 것을 보지 못한 채 교차로에서 급정거를 한 탓이었다. 남편과 나의 몸이 앞으로 튕겨나가며 이마가 유리에 부딪칠 듯 요동쳤다. 자세를 고쳐 앉은 남편이 잔뜩 찌푸린 얼굴로 눈을 흘겼다.
내가 그 속을 얼마나 알것냐마는, 그동안 여주가 지 남편 바람피운다고 무던히도 닦달을 했던 갑더라.
참, 김서방도 답답하네요, 그런다고 농약을 마셔요?
놀란 가슴을 진정하지 못한 엄마의 어조는 자신의 조카인 여주를 두둔하기는커녕 숫제 조카사위를 편들고 있었다.
오죽이나 답답하면 그랬을 것이냐? 보험일 한답시고 밖으로 돌았으니 바람을 피웠으면 여주 그년이 더 피웠을 것이여. 꿍꿍 엎드려서 하는 것이라곤 그저 빨래 주무르는 일밖에 모르던 김서방 아니냐. 내가 그년 하는 꼴을 보고 언젠가는 기어이 일 치르고 말 줄 알았다. 저러다 김서방 죽으면 여기서는 다들 여주가 지 남편 잡아 묵었다고 소문날 것이다.
그 정도였어요? 여주가 남편을 많이 사랑했나 보네.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이런! 그러자 남편이 차갑게 내뱉었다.
그건 사랑이 아냐. 집착이지!
남편의 짜증스러운 말투에는 여주의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다는 의도가 역력했다.
상황보고 다시 전화할 게요.
그려, 어려울 때일수록 느덜이 힘을 보태야제, 우리 집안에 누가 있냐? ……어째서 그 집은 우환이 끊이질 않는지 모르것다.
엄마는 한숨처럼 내뱉은 후에야 전화를 끊었다. 불현듯 이 시각까지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입술을 덜덜거리며 새파랗게 떨고 있을 말더듬이 이모가 떠올랐다.
남편이 여주를 처음 본 것은 결혼하기 전, 양가의 상견례를 앞두고 부모님을 뵙기 위해 고향집을 찾았던 날이었다. 읍내 터미널이 코앞이어서 면소재지로 가는 버스시간을 기다리느라 많은 친척들이 들락거리는 집이었다. 이모부의 위암 판정을 받고 겁이 덜컥 난 이모가 중학교만 졸업하고 서울에서 수년째 공장살이를 하던 큰딸 여주를 집으로 불러 내린 모양이었다. 전쟁으로 학교 문턱을 넘어설 기회를 잃어버린데다 말더듬이로 태어난 이모는 산간 오지에서 농사를 지으며 다섯이나 되는 자식을 키우고 있었다. 동기간들 중에서 그래도 살림살이가 가장 나은 축에 들었던 엄마는 친정조카들의 안위에 늘 마음을 썼다.
그날은 마침 서울 생활을 청산한 여주가 가방을 든 채 집에 들렀다가 우연히 우리와 마주친 상황이었다. 요란하게 치장을 한 여주의 행색은 특징 없는 얼굴 속에서 묘한 부조화를 느끼게 했다. 화장기가 먹혀들지 않은 부스스한 피부는 외려 오랜 시간 햇볕도 바람도 들지 않는 창고에서 일하느라 지친 행적을 떠올리게 했다. 그런데도 여주의 눈빛은 이상하리만큼 빛났다. 지향 없는 어딘가를 향한 열망에 달뜬 눈빛이었다. 부엌에서 엄마가 차려준 점심을 먹고 있던 여주는 상추에 싼 고기를 입안에 넣지도 못한 채 우리를 맞았다.
형부 될 사람이 대학교수라며?
여주는 고개를 외로 꼰채 비아냥거리듯 첫마디를 내뱉고는 손에 들고 있던 커다란 상추쌈을 입 안으로 밀어 넣었다. 나는 여주의 삐딱한 말투에 당황하며 주위를 살폈으나 다행히 남편은 손을 씻으러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실망이네. 나는 언니가 공부도 잘하고 키도 크고 이뻐서 늘 집안의 자랑으로 생각했는데……. 저렇게 못생긴 사람을 형부로 데려온단 말야?
립스틱이 지워진 채 붉은 테두리만 남은 입술로 우물거리던 여주가 히힛, 제 풀에 웃었다. 엄마가 이마를 찌푸리며 한 대 쥐어박을 듯 손을 쳐들었다.
이년이! 못하는 말이 없네. 네 형부가 어때서?
이모는, 모르는 소리 말랑께. 그게 얼굴인가?
여주가 소리 내어 웃었다. 엄마는 열이 오르는지 목소리를 높였다.
시끄러 이년아, 네 얼굴도 잘난 거 없어.
여주는 둥글고 펑퍼짐한 얼굴에 윤곽 없이 들어앉은 코를 샐쭉거리며 웃었다.
이모는 왜 그래? 이쁜 언니가 저렇게 못생긴 형부를 데려오는데, 내가 잘생긴 남편 데려오지 못할까 봐?
여주는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계속 엄마와 입씨름을 벌였다. 두 사람의 대화에 아귀가 딱딱 들어맞는 느낌이어서 어딘지 모르게 정감이 느껴졌다. 나는 그들만의 화법에 끼어들 수가 없었다.
이년아, 반반한 얼굴 좋아하지 마라. 잘 생긴 것들은 다들 얼굴값 허는 법이여.
뭘 그래? 잘생기면 보기도 좋제!
여주는 예의 콧소리를 내며 딸콩딸콩 엄마의 말을 낚아챘다.
아이고, 내가 말을 말아야지. 누가 저년 말꼬리 따라잡을 사람이 있것냐.
엄마는 이마를 싸안은 척하며 화제를 돌렸다.
근데, 느그 공장에는 물어앵길 만한 놈 하나 없드냐? 어째 지금까지 통 소식이 없냐?
이모는 참, 내가 공돌이하고 결혼하믄 쓰것능가? 어림없는 소리 마소. 그런 것들은 트럭으로 갖다 줘도 눈에 안 차네.
여주가 키득거리면서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으째 남자들은 작업복만 입혀놓으면 다들 칙칙한 공돌이가 되야분당가? 당최 내 눈에 든 놈이 없대. 말이 나왔으니 허는 소린디, 사실 나 좋단 놈이 어디 하나 둘이었간디? 내가 차부렀응께 그러제.
어이가 없다는 듯 여주를 바라보는 엄마의 눈이 더 벌어졌다.
자알 헌다. 이 소갈머리 없는 년아. 네가 뭣을 내놓을게 있다고 눈만 그라고 높냐.
머가 있긴? 요 안에 뜨거운 가심이 있제.
여주는 자신의 명치 언저리를 두들기며 히죽히죽 덧붙였다.
남자가 딱부러지게 부자가 아니라믄 잘 생기기라도 해야제.
엄마가 혀를 찼다.
쯧. 쯧. 어쩔꺼나 저년을.
이모, 기대하소. 나는 잘 생긴 남자랑 결혼할라네!
또 한 번 히힛, 소리를 내며 웃던 여주는 버스 시간 다 됐다며 엄마가 미리 챙겨놓은 음식봉지를 집어들고 금세 터미널로 내빼버렸다. 막 화장실에서 나오던 남편을 향해 “못 생긴 형부, 담에 봐요~”라고 덧붙이면서.
저년이 욕심만 많아서 큰일이다. 살림이라곤 쥐어봤자 한 줌도 안 되는 집안에 내놓을 것이 뭐가 있다고 저렇게 반반한 인물만 찾는지 원……. 저러다 된통 당하지 아마.
엄마는 한숨을 내쉬며 여주가 사라진 터미널을 향해 혼잣말로 중얼거리다가 돌아섰다.
아야, 기태 안 있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동갑인 이모네 아들.
기태가 왜요?
그놈이 술만 마시면 살림 다 집어던지고 즈그 에미한테 패악을 부린단다. 너도 알다시피 기태 다리가 성치 않잖냐. 짧은 다리 하나를 즈 에미 눈앞에다 흔들어대며 ‘이 짤룩백이를 장가도 안보내고 농사일만 시킨 게 좋소? 죽어라고 부려먹다가 아주 늙어죽일 작정이제?’ 해싸면서 하도 지랄을 떨어 느그 이모가 눈물로 밤을 새운단다. 그러니 어디 기태 장가보낼 데 있는가 알아 봐라.
나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시골에서 농사일로 늙어가는 총각인데 성질이 괄괄한데다 소아마비 장애까지 있어서 말을 꺼내보기가 쉽지 않을 터였다. 그러자 듣고만 있던 남편이 거들었다.
요즘은 외국인 신부도 많이 들어오는 모양인데 그쪽으로 알아보시지요.
글쎄 말이네. 그놈이 외국여자는 한사코 싫다네. 그러니 강제로 시킬 수도 없고…….
남편이 나를 힐끗 쳐다보더니 입을 다물어버렸다.
욕심은 많은데 몸이나 처지가 남만 못하니까 자꾸 즈그 에미한테 찍자를 놓는 것 아니겠는가.
엄마는 한숨을 내쉬며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느그 이모는 어려서부터 말도 제대로 못하고 불쌍하게 컸는디 입때까지 저 모양으로 살고 있으니 기가막히다, 부족하고 못 배운 것도 모자라 꼭 저 같은 신랑을 만나서, 꼭 저 같은 자식들만 낳고 저렇게 상고생만 해야 쓰것냐. 엄마는 말끝에 코를 힝 풀었다. 그래도 느그 이모는 여주가 여태까지 서울에서 고생고생하며 식구들 뒷바라지 허느라 월급을 다 내려 보내도록 뭣을 먹고 살았는가 모르겠다고, 여주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질질 짜드라만, 이제 지 애비까지 중병에 걸렸으니 이 노릇을 어쩌면 좋냐…….
집에서 병원까진 그리 멀지 않았다. 주차를 하자마자 허겁지겁 응급실로 달려갔으나 여주는 보이지 않았다. 환자의 상태가 위중해 중환자실로 옮겼다고 했다. 간호사가 가르쳐주는 대로 2층 계단을 오르니 여주가 중환자실 복도 의자에 앉아 넋을 놓고 있었다. 여주는 나를 보자마자 으헝으헝 울음부터 쏟아내기 시작했다.
언니……. 언니, 저 사람 죽으면 으떻케……. 으떻게.
여주는 나를 껴안고 실성한 듯 똑같은 소리만 연발했다. 나는 할 말을 찾지 못한 채 여주의 등만 토닥일 뿐이었다. 한참 동안 울음을 쏟아내던 여주가 갑자기 내 몸을 와락 밀쳐내며 중얼거렸다. 여주의 눈에 이상한 광채가 번득였다.
저 사람 죽으믄 안 되야……. 나한테 한 마디 해주기 전에는…… 절대……!
나는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여주가 눈을 꼿꼿이 뜨고 나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차갑게 굳어버린 여주의 눈빛은 조금 전에 울음을 쏟아내던 그녀가 아니었다.
언니도 내 말 들으면 이해헐 거여. 내가 나쁜년이 아니란 것을.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무섬증이 엄습한 나는 눈으로 남편을 찾았다. 남편은 휴대폰만 만지작거리고 있더니 그 사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중환자실 복도에는 여주와 나 외에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여주는 내 손을 붙들어 쥔 채 그간의 모든 경과를 털어놓았다. 내 몸은 여주의 손아귀 안에 붙들린 지푸라기 한 올인 듯 꼼짝할 수가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중환자실 복도 의자에 망연히 앉아 여주의 이야기에 귀를 내주고 있을 뿐이었다. 모든 이야기를 한꺼번에 쏟아낸 여주는 탈진한 사람처럼 내 어깨에 기대어 힘없이 눈을 감았다. 창 밖으로 푸르스름한 새벽이 찾아들고 있었다.
여주의 결혼식은 읍내 예식장에서 이루어졌다. 남편이 실무 책임자를 맡고 있는 세계 균학회 총회가 이곳에서 개최되는 날인데다 만삭으로 접어들기 시작한 내 몸놀림이 여의치 않아 결혼식 참석은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였다. 엄마에게 내려가는 대신 축의금만 보내면 안 되겠냐고 해봤지만, 우리 집안에 누가 있냐, 축의금보다 느그들 몸공이 더 중요한 것이니 꼭 시간을 내서 다녀갔으면 좋겠다는 엄마의 간곡한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부랴부랴 참석한 결혼식이었다.
바람은 부드러웠고 하늘은 더없이 청명한 가을이었다. 과속으로 달리던 자동차가 국도로 접어들자마자 양쪽으로 늘어선 코스모스가 환영이라도 하듯 하늘하늘 춤을 추었다. 사뭇 낭만적인 풍경이었다. 하늘 한번 올려다 볼 여유도, 코스모스 꽃잎 하나도 바라볼 수 없는 척박한 일상이었음을 실감하는 동안 마음이 가붓이 젖어들었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대소가 사람들로 집안이 시끌벅적했다. 모두 우리 집에서 대기 중이었다. 추수가 끝나기도 전에 이루어지는 결혼식이라 친척들은 머리에 앉은 먼지를 떨어내지도 못한 채 부리나케 양복만 꺼내 입고 달려온 행색이었다. 거무튀튀한 얼굴에 분홍 한복을 입은 이모가 막 들어서는 우리의 손을 수줍게 잡으며 고마움을 전했다. 그 옆에는 이모부가 두 손을 맞잡은 채 헐겁게 웃고 있었다. 병마로 마음고생이 심했던 탓인지 한결 검고 퇴락해진 얼굴이었다.
몸도 무거운띠 온니라고…… 음매나…… 고땡했드냐. 그뗘도…… 느그들이 와야제 결혼딕이… 빈나제. 우디 딥안에…… 느그드 말고 또 누가 이따냐…….
이모의 떠떠떠 발음은 여전했다. 이모의 치하는 집안을 빛내는 유일한 자손에게 보내는 헌사였다. 남편과 나는 그에 걸맞게 품위 있는 미소로 화답했지만, 사실 결혼식 이야기가 나왔을 때부터 누적된 짜증이 극에 달해 있었다. 총회 오프닝 시간에 맞추려면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출발해야 할 만큼 촉박했다.
아따, 고년 성질이 오지게도 급하네. 쫌만 있으면 추수가 끝날턴디 머시 급하다고 사람들을 일하다가 오게 맹글어 시방? 이 집으로선 개혼開婚인디, 안 와볼 수도 없고.
이 사람아! 배가 점점 불러오고 있닥 안 헌가. 이왕 애 낳기 전에 허는 게 낫제.
그라제. 그 머리 비상한 년이 대충 잡아쓰까. 보험일이라는 게 어디 중핵교만 나와 갖고 아무나 허간디? 단도리 잘 허고 살 꺼신게 그만 매끼세.
친척들은 약속이나 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신부대기실에서 본 여주의 몸은 눈에 띌 정도로 부풀어있었다. 임신용 웨딩드레스를 따로 대여하지 않았더라면 맞는 드레스가 없을 성 싶었다. 여주는 나를 보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신부의 얼굴로 웃었다. 여주는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내가 언니를 이겨부렀네. 신랑 얼굴 좀 볼랑가? 을매나 잘 생겼능가.
여주의 눈빛은 자부와 긍지로 가득했다.
내가 꽉 쨈매부렀네. 딴 디로 눈 돌릴까시 일찌감치 인감 찍어부렀단게.
여주는 또 히힛 웃었다. 신부다운 긴장감은 조금도 없었다. 엄마가 끝까지 내게 결혼식 참석을 독려했던 것은 여주의 재촉이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여주는 결혼식장에서 잘생긴 신랑의 얼굴을, 집안에서 가장 잘 나간다고 하는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았다.
이리 오라고 해 보까?
여주는 부드럽지만 조급한 말투로 속삭였다.
그럴 거 뭐 있냐? 쫌 있으면 볼 텐데.
여주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또다시 함박웃음을 지었다.
과연 신랑의 얼굴은 여주의 말 그대로였다. 여주는 내게 한 치의 거짓말도 섞지 않은 것이다. 나의 탯자리를 둔 고향에서 이렇게 잘 생긴 남자가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몇 번이고 눈을 비볐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키에, 호리호리한 몸매를 가진, 한 오라기의 티끌도 섞이지 않은 순도 100%의 선함으로 빚어낸 신의 솜씨였다. 시골 예식장에서 브레히트 연극을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덕분에 눈의 호사를 마음껏 누리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있다가 남편이 시계를 가리키며 재촉해서야 서둘러 결혼식장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병원에서의 시간은 더디 흘렀다. 중환자실 복도를 채운 알 수 없는 긴장과 불안이 시간을 붙잡아두고 있는 것 같았다. 이윽고 면회시간이 되자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남편도 기다렸다는 듯 모습을 드러냈다. 사우나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차례를 기다려 중환자실에 들어갔을 때 김서방의 얼굴은 의식을 잃어버린 사람이라곤 믿기 어려웠다. 회빛으로 탈색된, 고통조차도 남아있지 않은 얼굴은 잘 빚어놓은 석고상처럼 신비스럽기까지 했다. 세탁소에서 빨래통에만 손을 담그고 세월을 보내기엔 너무나 아까운 얼굴이었다. 어떤 여자가 한번쯤 돌아보지 않고 지나칠 수 있을까. 여주의 남편을 향한 의혹이 이해 못할 것은 아니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렇다면 지옥 같은 삶을 산 사람은 김서방이었을까, 그런 남편을 둔 여주였을까.
남편은 당직의에게 임상교수의 이름을 댔다. 그는 좀 전에 전화를 받았노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남편은 환자의 상태에 대해 자세하게 물었다. 위세척을 하긴 했지만, 워낙 위중한 상태였기 때문에 경과를 낙관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위를 비롯해 몇 개의 장기마저 녹아버렸을 뿐만 아니라, 뇌세포도 상당 부분 손상되어 의식이 돌아온다 해도 제대로 거동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여주는 남편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울었다. 울음소리는 다급하고도 길었다.
눈 떠 봐, 눈 떠보랑께. 왜 나를 못 보는 거여. 어지께 맹키로 눈 치켜들고 부라려보란 말여. 왜 못해? 응? 성질내보라고! 왜 못해? 왜?
여주의 목소리가 격정에 못 이겨 점점 높아졌다. 간호사가 와서 남편의 몸을 뜯으며 우는 여주를 냉정하게 제지했다.
아줌마, 시끄럽게 하지 마세요! 여긴 다들 위중한 사람들만 있는데 그렇게 큰소리로 울면 어떡해요?
당직의가 남편과 여주를 번갈아보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여주를 이끌고 중환자실을 나왔다. 보호자 대기실로 데려가자 여주는 탈진한 상태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나는 외투를 벗어 여주의 몸을 덮어주고 나와서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상황을 전해들은 엄마가 이번에는 여주의 앞날을 개탄했다.
아이고, 이 노릇을 우짤끄나? 죽지도 않고 살지도 못 허면 어찐다냐? 차라리 죽는 게 낫제. 그렇잖으면 남은 사람이 어치게 살것냐.
엄마의 말은 밝아오는 도시의 아침안개처럼 부질없이 수그러들었다. 나는 전화를 끊고 유리창 너머로 희끄무레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시가지를 내려다 보았다. 남편은 중환자실에서 나오자마자 자신의 할 일을 마쳤다는 듯 서둘러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내려다 보이는 거리 풍경이 하염없이 낯설게 느껴졌다. 셔터를 밀어 올리는 사람, 가게 앞을 쓸고 있는 사람, 빗자루를 피해 종종거리며 출근을 서두르는 사람들의 모습이 두서없이 들어왔다. 어제도 오늘도 변함없이 반복되는 아침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간밤의 안녕을 물어야 하는 참혹한 아침이기도 했다.
여주의 말들은 꿈속인양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먼지처럼 떠돌아다니다가 내려앉으면 뒤숭숭한 모양 그대로 굳어버리고 마는 불길함이었다. 나는 애써 생각을 털어버리듯 자주 고개를 흔들어야만 했다.
언니, 우리는 결혼을 허자마자 읍내에다 세탁소를 차리고, 나는 허던 보험일 이어감서 지각각 열심히 살았어. 근디 언니도 아다시피 이 사람 얼굴이 잘 생겼잖애. 여자들이 지 발로 따라붙데. 별의별 핑계로 들락거려. 브라자 팬티까지 들고 오는 년도 있어. 그러니 내가 환장허제. 한번은 내가 그년들 빤스까지 빨아줘야 쓰냐고 잔소리를 했더니, 머시 어쩌냐고 하데. 돈 주고 돈 받고 하는 일인디 그런 일이 고까우면 세탁소를 집어쳐야제 어치게 이일 저일 개려가면서 일을 허냐고 하도 해싸서 그냥 그런갑다 허고 말았제. 우리 세탁소는 살림집이 딸려있는 가게라 일이 있으믄 가게에서 허고, 없으면 방에 들어가 낮잠을 자기도 허거든. 근디 나는 보험일을 허느라고 통 집을 비우잖여. 그러니 이 사람이 집이나 가게에서 뭔 일을 하는지 어떻게 알 것냐고. 아이들도 학원에서 밤이나 되야 온단 마시. 그래서 가끔은 점심 먹는다는 핑계로 불시에 가게로 가볼 때가 있어. 그럴 때 보면 남편과 뭔 수작을 허다 들켰는지 어떤 년이 황급히 가게를 나가고, 어떤 때는 계속 통화중이다가 바쁘게 전화를 끊어. 그것도 및 번이나. 내가 뭔 전화질이냐고 물으면 남편은 벨 것 아니라고 잡아떼. 속으로는 수상허다 수상허다 허면서도 먼 일이야 있것냐 마음을 접제. 이번에도 그랬어. 나를 보자마자 전화를 끊더라고. 그래서 따져 물었제. 어떤 년하고 통화허다가 끊는 거냐고! 그랬더니 성질을 왈칵 내더라고. 아니, 지가 결백하면 왜 성질을 내것어? 뭔가 짚이는 데가 있으니까 그러제. 그래서 내가 이 차지에 따끔허게 뿌리를 뽑아야쓰것다, 하고 되게 나갔제. 그랬더니 문을 부서져라 닫아불고 집을 나가불데. 밤이 늦도록 안 와. 잠을 잘려도 잠이 와야 말이제. 불안불안허니 기다리는디 밤중에야 떡 들오더라고. 자는 척 누워 있었제. 그랬더니 나를 발로 툭툭 차데. 그래서 파딱, 성질을 내면서 일어나 앉았어. 그랬더니 잔뜩 술 취한 얼굴로 ‘억울해서 못 살것다, 그러니 나 없이 한번 살아봐라.’ 험시롱 내 앞에서 무슨 뚜껑을 비틀덩만 훌떡 입안에 털어 넣어 불더랑께. 순식간에 남편의 몸이 허깨비마냥 바닥에 툭 떨어짐서 팔다리가 짜부라들기 시작하더라고. 오메, 이를 으짠다냐! 벌떡 일어나서 자동차 열쇠를 찾는디 손발이 덜덜 떨려서 당최 찾을 수가 있어야제. 질질 끌다시피 겨우겨우 남편을 조수석에 태워놓고 읍내 종합병원으로 가는디 남편의 몸이 연탄불에 올려놓은 오징어모냥 오그라들데. 먼 정신으로 병원까장 갔는지 모르것어. 읍내병원에서 부랴부랴 위세척하고 그 질로 여까지 온 거시여. 언니, 저 사람 저렇게 된 거시 내 잘못인가? 지 성질대로 그란거제, 내가 저렇게 만든 게 아니제? 글제? 그러면 저 사람은 죽을라도 나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는 말을 한 마디만 허고 죽어야 쓰것제. 어찐가? 내 말이 맞제? 글제?
나에게 무섭도록 다그쳐 묻는 여주의 얼굴은 낯설었다. 어릴 때 본 여주가 아니었다.
5학년 때였던가. 엄마는 무료한 방학을 견디지 못하고 보채는 나를 위해 이모 집으로 갈 수 있도록 허락해주었다. 이모 집은 읍내에서 버스를 타고 면소재지에서 내린 다음 30여 분을 걸어가야 닿을 수 있는 산중에 있었다. 나는 뚝뚝 떨어지는 땀을 닦아내며 붉은 황톳길을 걸었다. 날카롭고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황톳길을 걸어가는 동안, 정수리에 뜨거운 화로를 인 듯 눈앞이 어질어질했다. 땀에 젖은 빨간 에나멜 구두가 자꾸 벗어지려고 했다. 이모 집은 마을의 안쪽 후미진 길 끝에 있었다.
도착해보니 집은 텅 비어 있었다. 나는 마루에 앉아 이모를 기다렸다. 햇살이 지천으로 마당에 쏟아지고 있을 뿐 바람 한 점 불어오지 않았다. 기다림에 지친 나는 뒤꼍 너머 울타리 밖으로 나가보았다. 집 뒤쪽으로는 빨갛고 파란 고추를 흐드러지게 매단 고추밭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이모는 그곳에서 허리를 깊숙이 수그린 채 고추를 따고 있었다. 이모의 뒤를 따르고 있던 열 살 먹은 여주의 머리가 밭이랑 사이에서 들락날락했다. 뜨겁게 달아오른 지열이 밭두둑에 서 있던 내 얼굴 위까지 훅 끼쳐 올라왔다.
아고, 왔뜨냐.
이모는 나를 보자마자 고추바구니를 옆구리에 끼고 황황히 다가왔다. 빨간 고추가 광주리 안에 가득 담겨 있었다. 여주는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고추가 담긴 앞자락을 움켜쥔 채 어그적거리며 따라왔다. 이모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마루에 바구니를 내려놓은 후, 곧장 우물에서 퍼 올린 두레박에 얼굴을 박은 채 물을 들이켰다. 한결 원기충천해진 걸음으로 이모는 텃밭에 난 부추를 서걱서걱 베어냈다. 하얀 꽃송이가 초록 이파리들 속에서 환했다. 이모가 가마솥에 물을 붓고 뚜껑을 뒤집어엎고 전 부칠 준비를 하는 동안, 여주와 나는 서늘한 그늘이 드리워진 부엌 흙바닥에 앉아 부추를 다듬었다. 여주는 부추 잎에 섞여있던 하얀 꽃대를 내 귀에 꽂아주었다.
와, 우리 언니 이삐다!
여주는 땟국이 흐르는 이마의 땀을 닦아내며 환하게 웃었다. 앞니가 두어 개 빠진 듬성듬성한 잇몸이 내다보였다. 나는 쑥스러운 듯 정말? 어디? 하며 거울을 볼 양으로 두리번거렸으나 검은 연기에 그을려진 부엌 기둥 어디에도 거울은 보이지 않았다. 여주는 꽃대를 모아 유리병에 꽂았다.
이삐제? 부엌이 화~안해지는 것 같지 않응가? 꼭 별들이 모태서 노닥노닥거리고 있는 것 같제?
화~안해진다는 독특한 발음보다 정작 화~안해지는 것은 여주의 얼굴이었다. 어두컴컴한 부엌에서 꿈을 꾸듯 꽃송이를 바라보고 있는 여주의 눈빛이 별꽃처럼 빛났다. 이모는 낱알을 걷어낸 보릿대를 한 아름 안고 부엌으로 들어왔다. 여주는 황홀한 눈빛으로 부추꽃에 정신을 팔고 있다가 이모에게 등짝을 얻어맞았다. 여주는 화들짝 놀라 보릿대에 불을 붙여 아궁이에 밀었고, 이모는 달궈진 솥뚜껑 위로 허리를 수그린 채 부추전을 부쳐냈다. 타다닥, 타다닥, 아궁이 속에서 연신 보릿대 터지는 소리가 났다. ‘여름 손님은 개도 안 반갑다’는 한여름에 찾아든 어린 손님을 위해 이모와 여주는 얼굴이 벌게질 때까지 전을 부쳐내고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이윽고 이모는 수건을 깊숙이 덮어쓴 다음 다시 밭으로 나갔고, 여주와 나는 마루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뜨거운 부추전을 입안에 몰아넣었다. 빨강색 에나멜 구두 위로 땀이 뚝 떨어졌다. 그때 마을아이들 몇 명이 대문을 기웃거렸다. 한결같이 땟국에 전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하얀 피부와 분홍원피스, 빨간 에나멜구두를 신은 읍내의 갈래머리 소녀를 보고 싶어했다. 여주는 아이들을 향해 손사래를 치며 저리가~ 하고 소리치며 웃었다. 해질 무렵, 여주는 내 손을 잡고 어깨를 쭉 편 채 마을을 돌았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은 여주와 내 뒤를 쫄쫄 따라다녔고, 우리가 돌아보면 수줍은 듯 후다닥 나무 뒤로 숨곤 했다. 밤이면 여주와 나는 이모부가 피워준 마당의 모깃불 냄새를 맡으며 멍석 위에 누워 하늘의 별을 헤아렸다.
언니, 저 별 이삐제? 참말로 빤딱빤딱허제? 어찔 때는 저 별들이 다 내 가슴 속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것 같어. 그러면 움직일 때마다 가슴 속에서 딸랑딸랑 종소리가 나.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앞니가 빠진 채로 화~안하게 웃던 여주, 딸랑딸랑 종소리가 난다며 자신의 명치를 짚던 여자아이의 얼굴이 지치고 불안하기 짝이 없는 몰골의 여자로 바뀌었다. 여주가 이곳에서 하는 일이라곤 죽은 듯이 널브러져 있다가 면회시간에 남편의 얼굴을 보고 나오는 것 외에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그럼에도 여주는 보호자 대기실을 떠나지 않았다. 대신 아이들의 학교와 학원을 챙기도록 이모를 읍내 집으로 불러들였다. 나 또한 띄엄띄엄 병원을 찾아가다가 두툼한 돈 봉투를 건네준 뒤로는 그마저도 발길을 끊고 말았다. 의식이 깨어나지 않는, 날마다 같은 상태의 환자를 들여다보러 가는 일도 쉽지 않았다.
시간은 흘러갔다. 때로는 느릿느릿 때로는 쏜살같이 흘렀지만, 여전히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나날의 연속이었다. 세상의 많은 일들이 등 뒤로 흘러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한참 뒤에야 나는 엄마를 통해서 여주가 남편을 읍내병원으로 옮겼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차도가 있다면 환자가 눈을 떴고 미음이나마 먹기는 하지만 여전히 거동은커녕 말도 못하고 얼굴도 알아보지 못한다고 했다.
그렇게 살면 뭣 하것냐.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낫지.
말을 마친 엄마는 깜빡 잊었다는 듯 덧붙였다. 목소리에 생기가 일순 따라붙었다.
근데 말이다. 여주가 김서방을 그렇게도 극진히 간호할 수가 없단다. 병원에서 열녀 났다고 소문이 자자허다니까.
여주는 남편이 입을 열 그날을 위해 어떤 고통도 감내하기로 마음먹은 것일까. 그 지독한 열망이 남편을 소생시키고 있는 것일까. 나는 그날 밤 병원에서 울부짖음 끝에 토해내던 여주의 넋두리를 차마 엄마에게 옮길 수는 없었다.
‘언니, 난 증말로 열심히 살았네……. 근디도 세상은 내게 꽃 한 송이 안 주데……. 그래서 꽃 같은 사람 하나 곁에 두고 싶었네……. 어둡고 칙칙할 때마다 바라만 봐도 가슴이 화~안해지는 그런 사람 말이여……. 근디 그것이 그렇게도 죄가 됐당가…….’
여주의 말은 가슴 속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다가 불현듯 가슴을 치고 올라오곤 했다. 그럴 때마다 까닭을 알 수 없는 열기가 짚불처럼 달아올랐다. 바야흐로 여름이었다. 불볕더위가 연일 이어지고 있던 어느 날, 나는 남편과 함께 일산에 있는 병원으로 지인의 병문안을 갔다. 목 디스크로 입원한 지인은 남편이 속한 학회 이사였다.
병원은 시 외곽의 야트막한 경사지에 위치해 있었다. 멀리 시내가 아스라하게 내려다 보이는 언덕바지 건물 옆구리에는 고추, 고구마, 옥수수, 가지를 심은 텃밭이 잘 조성되어 있었다. 텃밭의 가장자리를 둘러 어린 호박을 매단 넝쿨들이 기운차게 뻗어나가고 있었다. 수건을 깊숙하게 눌러쓴 중년의 여자가 허리를 수그린 채 고추를 따고 있었다. 푸른 이파리들이 어우러진 밭이랑 사이에는 하얗게 핀 부추꽃이 하늘을 향해 하늘하늘 춤을 추고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이 개운해지는 풍경이었다.
입원실을 찾아 올라갔으나 지인은 자리에 없었다. 간호사가 지하에 있는 재활치료실로 금방 내려갔다고 일러주었다. 우리는 곧장 재활치료실로 찾아갔다. 치료기구가 다양하게 늘어놓은 그곳에는 많은 환자들이 재활치료에 열심이었다. 지인을 만나 의례적인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막 치료실로 들어서는 두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여주가 남편의 팔을 부축하고 들어선 거였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쳤다.
아니, 웬일이야?
여주가 눈을 크게 치떴다.
재활치료에 용하다고 누가 여길 소개해줘서 일주일에 한 번씩 댕기고 있어.
그 먼 데서 여기까지?
고개를 끄덕이는 여주 옆에는 김서방이 천진난만한 눈망울을 굴리며 우리를 향해 웃고 있었다. 가뭇없이 흔들리는 헝겊 인형처럼 목을 제대로 가눌 수 없으면서도 여전히 웃는 얼굴 그대로였다. 자세히 보니 우리를 알아봐서 웃는 게 아니었다. 누구에게나 욕심 없이 지어보이는 순진무구한 미소였다.
좀 어떠니? 걸어 다닐 수는 있는 거야? 말도 하고?
여주는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말은 못해. 그래도 조금씩 좋아지고 있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김서방을 바라보았다. 그는 여주에게 전적으로 의지한 채 목숨을 지탱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동안 여주의 삶이 얼마나 고되었을까. 그런 그녀를 잊고 살았다니 자책감에 가슴이 저려왔다. 여주는 나의 의중을 눈치 채고 덧붙였다.
언니, 걱정 마. 나는 지금이 더 행복하당께. 이 사람, 내 말도 잘 들어. 나 없이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맹키로.
여주의 얼굴은 평온했다. 어찌 보면 그토록 목말라하던 한 남자를 온전히 품에 안게 된 여자의 평화 같기도 했다. 불안이 사라진 여주에게 남은 것은 피딱지가 내려앉은 고통을 견뎌낼 시간뿐이었다. 목숨을 건졌어도 입을 닫아버린 저 남자. 그 남자가 입을 여는 순간을 기다리며 자신의 결백을 증명해야 하는 한 여자의 운명이 병원복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을 뿐이었다. 서로를 껴안은 채 한 몸이 되어 재활치료실로 들어가는 그들의 등 굽은 뒷모습은 수십 길의 절벽처럼 까마득했다.
주차장으로 간 남편이 차를 빼내오는 동안 나는 텃밭을 향해 종종걸음을 놓았다. 병원을 떠나기 전 여주에게 부추꽃을 건네주고 싶었다. 바람 한 걸음 달려올 때마다 부춧잎은 깨끗하게 감긴 사내아이의 머리칼처럼 화르르화르르 흔들렸다. 하얀 꽃송이가 푸르른 이파리들 속에서 별처럼 환했다.
*소설제목은 박남준의 시 「흰 부추꽃으로」 중에서 가져왔음.
장정희 / 1995년 <무등일보> 신춘문예, 2004년 『문학과 경계』로 등단했으며 소설집 『홈, 스위트 홈』, 여행에세이 『슬로시티를 가다』가 있다. 현재 광주대광여자고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