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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일, 사랑할 시간] 04
1. 어느 공간 (밤 / 3회 엔딩)
밝았던 해는 점점 기울고, 결국 해는 떨어진다.
지석, 차 밖으로 나와 미연을 기다리고 있다.
그때, 하얀 눈송이가 하나 둘 떨어진다.
몇 개가 날리는데, 개중 한 송이가 눈에 띈다.
지석, 그 한 송이로 손을 뻗는다. 눈은 손 위에 앉을
듯 하더니 바람을 타고 다시 올라가 지석의 이마에 앉아 사르륵 녹
는다. 지석, 누군가를 기다리는 중이었다는 사실을 잠깐 까먹는
다. 그때! 저 멀리서 어떤 여자가 뚜벅뚜벅 걸어온다. 미연이다.
지석, 눈빛이 떨린다. 9년을 그리워했던 여자.
미연, 지석을 보고 멈춰 섰다가... 이내 다부진 표정으
로 걸어온다.
거리는 좁혀지고, 마주 선 두 사람.
한참 만에 지석이 먼저 입을 뗀다. 연습했던 건 잊고
본능적으로 나오는 말.
지석 ...잘 지냈니?
미연 ...잘 지냈을 꺼 같애요?
지석 ...
미연 ...그쪽은요?
지석은 미연의 반문으로 인해 얼마나 바보 같은 질문
이었는지 느낀다.
다시 한참 만에 지석이가 입을 뗀다. 미소는 하나도 없
고 진지한 얼굴로.
지석 ... 우리... 3개월만 살자.
미연 ... !!
지석 ...나랑 3개월만 살아줘라, 응?
미연 ... 미친.. 놈!!
지석 ...!!
미연 ...!!
미연이 뒤돌아 뚜벅뚜벅 간다.
맥 놓고 멀어지는 미연을 보는 지석.
그렇게 멀어지는 미연을 보다가 지석이가 울부짖듯 소
리친다.
지석 3개월만 살자--! 미연아--! 미연아--!
점점 멀어지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
2. 윤중로 미연의 차안 (밤)
미연, 운전대를 잡은 손이 달달달 떨린다.
<1 회 회상>
# 교무실에서 천천히 얼굴을 내밀며 어벙하게 손을 들
던 지석.
# 피아노학원 앞에서 미연에게 우산을 씌워주며 "집이
어딘데?" 하던 지석.
# 탐라축제에서 미연의 우는 눈에 입을 맞추던 지석.
미연, 머리를 쓸어 넘기고, 운전대를 더욱 꽈악 잡는
다.
<2 회 회상>
# 미연집 앞에서, "녀만 내 옆에 있어주면!! 이 좆같은
세상하고 싸워서 내가 다 이겨 줄께!! 우리 안 된다고 손가락질 하
는 것들!! 내가 다 밟아 줄께!!" 외치던 지석.
# 도서관 앞에서 미연의 품안에 입김을 불어넣어주고
뒤에서 안고 걷던 지석.
이를 앙 다무는 미연, 온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미연 ...용서 못해. 절대.. 용서 못해.
<2 회 회상>
미연방에서 "짐승이 아닌 이상 이 땅에선 절대 안 되
는 사촌.
지금도 문득문득 그 생각이 날 때마다 돌아버리겠는
데, 평생을 어떻게 살아?"
하던 지석.
<6 회 대본 맨뒤에 추가인쇄된 4회 첨가씬>
미연 자취방 앞에서, 지석모, 미연의 머리채를 잡고 대
문에서 끌고 나와 흔든다. 악이 바친 지석모의 손놀림에 미연은 어
떻게 손 쓸 방도 없이 그저 당하기만 한다.
지석모 이 되먹지 못한 년! 어디 붙어먹을 놈이 없어어 응! 순
하디 순한 남의 아들한테! 것두 어디 사촌 기지배가, 지 핏줄한테!
누구 집안을 막아 먹을라구, 드러운 년이!
3. 서강대교 / 미연의 차안 (밤)
OL. 끼이이익-!! 위험하게 갓길에 급정거하는 미연의
차.
뒤에 오던 차들, 빠아앙-!! 경적을 울리며 뭐라 욕하면
서 지나가는데,
미연, 핸들에 머리를 박고 거듭 부르짖는다.
미연 ...미친 놈...!! 나쁜 놈...!! 미친.. 놈...!!
눈물을 참느라 옷자락을 꽈악, 움켜쥐는 미연, 끼이익-
!! 위험하게 급출발로 차를 몰고나간다.
4. 어느 공간 (밤)
어둠에 휩싸여 서있는 지석에게 자동차 불빛이 다가온
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 불빛을 바라보는 지석.
그대로 지석을 빠르게 지나가는 차.
다시 어둠속에 남겨지는 지석.....
5. 미연집 / 주방 (밤)
개수대 앞에 서서, 맥주가 담긴 잔을 꿀꺽꿀꺽 마시고
내려놓는 미연.
옆엔 급하게 딴 맥주병과, 식탁 위엔 가방과 자동차 키
와 핸드폰.
집에 오자마자 주방으로 직행한 느낌. 미연은 그 자리
에서 꼼짝도 안 하고 있다.
핸드폰의 벨이 울린다. 카메라가 액정을 비추면, '울 남
편' 이다.
미연의 귀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듯, 미동도 않
고 서 있다.
6. 동 / 옷방 (밤)
태훈이가 이제 막 들어온 듯 가방을 놓고 외투를 벗는
다.
미연은 시선을 안 주고 습관적으로 태훈의 옷을 받아
옷장에 넣는다.
태훈 언제 들어왔어?
미연 쫌 전에.
태훈 쫌 전에 전화 안 받든데?
미연 씻느라구 못 들었나봐. 저녁은?
태훈 아직.
미연 씻어요. 얼른 차릴게. (돌아서려는데)
태훈 얼굴이 왜 안 좋아 보여?
미연 며칠 무리해서 그런가봐. 엠티 갔다오고 쉬지도 못하
고, 씻으면 좀 날 거 같애. 난 먼저 씻어야겠다. 씻고 밥 차릴게.
( 나가려는데)
태훈 !! (씻었다고 했잖아)
미연 (나가려다가 문틀을 잡고 멈춰선다. 씻었다고 했다! 돌
아보지 않고 그대로) ... 생각해보니 안 씻었네. 근데 왜 전화를 못
들었을까? (어색하게 웃어보이며) 귀가 또 고장났나부다.
태훈 ...?
7. 동 / 주방 (밤)
태훈, (옷을 갈아입고) 싱크대 옆에 있는 미연이 먹다
만 맥주병과 잔을 본다.
그리고 욕실을 돌아본다.
태훈 ...!
8. 지석집 / 거실 (밤)
지석, 옷도 벗지 않고 소파에 앉아 멍하니 바닥만 노려
보고 있다.
9. 동 / 침실 (밤)
정란, 옷들을 정리하며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
정란 우리 혜진이 아침은 먹었어? 피쉬? 생선. 응. (이해
못하는) 뭐, 생선 씨가, 목에, 걸려서... (그제야 무선 말인지 이해
하고, 안쓰럽고 답답해) 생선에 씨가 어딨어, 뼈지. 생선엔 뼈! 과
일엔 씨! 따라 해봐, 생선뼈, 과일씨. 그래. 혜진이 영어 배운다고
우리말 까먹으면 안 돼. 집에선 할머니 할아버지랑 우리말만 해.
알았어? (아빠는?) ... 아빠? (하며 거실 쪽 보는)
10. 지석 집 / 거실 (밤)
지석, 여전히 그 자세로 있는데,
정란, 무선 전화기를 들고 나와 지석에게 건네주며
정란 (작게) 혜진이요. (하는데)
지석 ... (혼자 생각에 빠져, 낮게) 미친 놈...
정란 !!
지석 ...
11. 미연집 / 주방 (밤)
태훈과 미연, 저녁 식사 중.
미연, 꾸역꾸역 맨밥만 먹는다. 정신이 딴 데 가 있다.
태훈, 이상한 듯 보다가 그냥 미연의 밥 위에 반찬을
올려놔준다.
미연 (멀거니 초첨 없는 눈으로 본다)
태훈 (미소 지어 보이고, 먹는데)
미연 (고개 숙이며) ...미친놈...
태훈 ...!
미친 놈이라고 한 후, 그대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미연
과, 그 앞에 있는 태훈.
미친 놈이라고 한 후, 그대로 앉아있는 지석과, 그 옆
에 있는 정란.
이들의 적막한 모습이 교차로 가면서,
미연 (NA) 결국, 그는 그날...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유턴을 해버렸고, 내게도 유턴
을 강요했다.
그러나 난 숨소리를 죽여야만 했다.
사촌, 사랑, 치욕... 그런 단어들이 눈치 없이 둥둥 떠
오를까봐.
그것들이 남들 눈에 띄면 나도 유턴을 해버릴 지도 모
르니까...
필사적으로 숨소리를 죽여야만 했다.
(F.O)
12. 대학 / 강의실 (낮) (#19)
학생들 앉아서 시험준비하고 있고,
미연, 들어와서 가방을 내려놓으며 필기구 꺼내는데.
미연의 뒤로 넉살좋은 남학생(시경)이 앉아있다.
시경 아줌마.
미연 (말없이 필기도구 꺼내며 시험 볼 준비)
시경 (볼펜으로 치며) 아줌마.
미연 (쳐다도 안 보고) 왜애?
시경 (사정) 아줌마. 나 좀 살려주라. 나 이거 재수강이야.
응?
미연 이른다?
시경 아... 누나 왜 그래애? 쫌 도와주라 응?
감독관 (OL 느낌으로 시험지 들고 들어오며) 책 다 치우고 시
험 준비.
시경 아... 씨.. (깝깝하다)
13. 대학 / 구내식당 (낮) (#20)
# 미연 쟁반 들고 줄서서 배식 기다리고 있고, 미연 뒤로 시
경 따르는데,
미연 앞에서 배식 받아서 돌아서는 남학생들, 미연을
힐끗힐끗 보며 간다.
이쁘다라는 반응.
시경 (미연 가리키며, 남학생들 보고) 아줌마에요. (그니까
신경 끄라고)
# 두 사람, 마주 앉아 밥을 먹는다.
미연 (시선 내리깔고 먹기만)
시경 아줌마, 이쁘게 생겨서 왜 이렇게 독해?
미연 (먹기만)
시경 잘 나가는 남편두 있겠다, 뭐가 아쉬워서 그렇게 독하
게 공부에 목숨 걸어? 아줌마 돈두 많이 번대매?
미연 소원이야, 무서워 보이는거. (근데) 너는 나 디게 만만
하게 보는 거 같다?
시경 아줌마 외로울까봐 그냥 상대해주는 거야.
미연 나 외로울까봐 걱정해주는 남잔 내 인생에 하나로 족
해.
시경 (의외란 웃음) 날 남자로 봐줬어? 와, 황송한데 아줌
마?
14. 대학 / 지석의 연구실 건물 로비 (낮) (#21)
지석이 손을 주머니에 넣고 앉아서, 앞섶을 내려다보
고 있다.
( 지석의 겉옷은 자크 달린 옷)
그렇게 앞섶의 자크를 내려다보고 있는데,
덕구가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들고 옆에 앉는다.
덕구 뭐해?
지석 ... 쟈크 누가 만들었냐?
덕구 ??
지석 옷에 달린 이 쟈크 말야, 누가 만들었냐?
덕구 .......... (골똘) 지..퍼?
지석 (그제야 옷에서 시선 떼고, 황당한 얼굴로 덕구를 보
는)
덕구 지퍼가 만든 사람 이름 아닐까? (나도 모르겠다) 인터
넷에 물어봐 임마.
지석 (다시 자크 보며) 몰랐는데, 보다 보니까, 언놈이 만들
었는지 고거 참 잘 만들었다 싶다. 난 뭐 하나 해 논 거 없이... (말
끝을 흐리고) 저승 가서 뭐하다 왔냐 그러면, 밥먹다 왔다 그럴 수
도 없고...
덕구 곧 죽을 놈처럼...
지석 ...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쟈크만 보는데)
덕구 (종이컵의 커피를 휘휘 돌리며) 얼마 전에 정수 봤는
데, 정수 알지? 우리 고등학교 동창. 공대 연구원으로 있는 놈. 걔
가... 미연이 얘기하더라. 학교에서 봤대.
지석 !! (놀라운 얼굴로 덕구를 보는)
덕구 우리 학교... 편입학 한 거 같더래.
그건 몰랐던 사실이다. 지석의 출렁이는 표정에서.
그 뒤로 유리창을 통해 지나가는 미연이 겹쳐 보이는
데서,
15. 대학 / 교정 일각 (낮) (#22)
땅만 보면서 걸어오는 미연으로.
그런 미연이 뒤로 보이는 건물 안의 지석과 덕구.
미연, 주차된 차로 가서 올라타고, 미연의 차가 빠져나
가면,
건물 안데 보이는 지석과 덕구.
16. 대학 / 달리는 미연의 차 안 (낮) (#23)
미연, 운전을 하며 통화중이다.
미연 예 감독님. 죄송해요. 오늘 시험 있어서요. 한 시간 후
에 도착할께요.
17. 갤러리 / 전시관 (낮) (#24)
호화로운 갤러리를 걷는 연희 인범 정란.
관람하는 사람들 몇몇 있으니까 작게 말하는.
연희 (약간 들떠) 이 동넨 직장인이 많아서 점심시간엔 (기
다란 의자에 앉아 샌드위치 먹으며 그림 보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음식물 들고 들어와서 작품 보면서 먹게도 해. 사전에 허락을 받아
야 하는데, (귀뜸해주듯) 절대 용납 못하는 작가도 있어.
인범 이거 (갤러리) 땜에 잠도 못자고 쩔쩔매드니, 자네가 맡
아준다니까 아주 신났어.
정란 (예의바른 미소)
연희 (투정부리듯) 힘들었단 말에요.
인범 그렇게 무슨 일이든 전문가가 해야 하는 법이야.
연희 혜진이 보러 일년에 몇 번씩 미국 들어가든 말든 상관
안할게. 들어갔다가 한달을 있다오든, 두 달을 있다오든 상관 안
할게. 알아서 잘 단도리하고 가겠어?
인범 그러지 말고, 다시 나갈 생각말구 이젠 혜진이도 데리
고 들어와. 부모님도 들어오시라고 하고.
연희 그럼 나야 좋죠.
인범 (정란에게) 그렇게 해.
정란 (다소곳) 네.
연희 (좋아라) 그럼 이젠 프리렌서 큐레이터 직함은 버리
고 바꿔야지. 실장 어때? 박정란 실장?
정란 (미소)
18. 방송국 / 시트콤 회의실 (낮) -추가
정피디, 미연, 여자 작가 네명이 있다.
미연의 대본을 회의하는 시간.
정피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며 대본을 넘긴다.
정피 (좀 맘에 안드는 투) 너무 깊다... 너무 찐해... 씨트콤
에서 이래두 돼?
미연 ...
정피 주인공한테 남자친구 바뀐지가 언젠데 (대본에서 시
선 떼고) 아직두 옛 남자친구하고 연관 지어서 풀어? 새로운 놈 등
장시켰으면 그 놈이랑 부쳐서 새롭게 얘길 풀어야지.
미연 주인공한텐 첫사랑인데 쉽게 잊지 못하죠.
정피 왜 못 잊어?
미연 첫사랑, 첫키스, 첫데이트... 처음은 인생에 치명타에
요. 그 다음에 겪게 되는 걸 비교하는 기준이 돼버리니까... 무의식
중에 박혀서... 절대 못 잊어요.
정피 (도리질) 이건 아냐. 고작가, 우린 씨트콤이야. 쫌 로맨
틱하고 아름답게 그리자, 응?
미연 !!
정피 고작가 그런 사랑 안 해봤어?
미연 !!
19. 갤러리 (낮)- 추가
정란, 퇴근할 차림으로 창밖을 보다가 시계를 본다.
여직원이 다가온다.
여직 (한쪽에 포장된 그림을 가리키며) 조작가님이 주신 그
림 포장 해놨는데...
정란 어, 그래. 먼저 퇴근해.
여직 남편 분 못 오시면 제가 모셔다 드릴 수 있는데...
정란 아냐. 괜찮아. 택시 타고 가도 돼.
여직 그럼 먼저 들어가 볼게요.
정란 그래 가봐.
정란, 다시 창밖을 보는데, 잠시 후,
여직 (E) 어머 오셨어요. 안녕하세요.
정란 돌아보면, 지석이 어색한 듯 문옆에 쭈뼛 서 있
다.
정란 (여직원 의식해 반갑게) 왔어요? (그림을 들고 문쪽으
로 가려는데)
친절한 여직원이 얼른 그리미을 받아채서 종종종 지서거에
게 갖다 준다.
문앞에 선 지석은 그림을 받아들자 마자,
지석 (정란에게) 가.. (가자)
지석, 여직원에게 살짝 목례를 하곤 휭 먼저 나간다.
정란은 반가운척했던 게 무참해진다... 여직원도 있는
데...
20. 호프집 (밤) (#28)
미연과 왈숙, 저녁 먹으며 반주 한잔씩 하고 있다.
둘 다 취기가 조금 오른 상태.
미연 마냥 웃고 지지고 까불고 싶어서, 그래서 씨콤 시작했는
데, 태생은 못 속여. 전혀 그런 아이템이 아닌데, 내가 갖고만 가
면 우울한 멜로가 돼... (그래. 확실히 사람 머릿속은 못 속여. -삭
제)
왈숙 나봐라. 멜로 아이템 갖고 가도, 내 손만 거치면 코미
디다. 못 속여 태생은.
미연 언니... 솔직히 말해봐. 정말 사랑 해봤어?
왈숙 (마시려다가 술 잔 쾅! 놓는다. 김샌다) 맥빠진다 증
말 그래, 안 해봤다. 안 해봤어. (다시 마시는)
미연 정피디가 로맨틱하고 아름답게 풀라는데, 로맨틱하고
아름다운 사랑이 있을까?
( 지석이 생각에) 옛날에... 어떤 사람하고 사랑하면
서... 자지러지게 행복했던 기억은... 아마 다 합쳐두 한 시간도 안
될 거야. 미치게 보고 싶고, 미치게 만지고 싶고, 그 사람이 신고
있는 신발까지 질투해가면서... 조바심 나고 안달나고... 막판엔
그 진창에서 빠져오느라고 힘든 시간 밖엔 기억이 안나...
왈숙 ... (미연 보는)
미연 아무렇지도 않다가도... 그때만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
왈숙 (잔 채워주며) 바닥을 보지 못한 감정이 있어서 그래.
정 다해서, 질려서 헤어지면 그 놈의 성이 이씨였는지 김씨였는지
그것도 헷갈리는데, 이게 감정이 동나지 않은 상태에서 그 놈이 떠
난 거라. 어떡해? 감정이 남아있는데. 동이 안 났는데. ... 정 깊은
게 죄지.
미연 언니, 사랑 해봤구나?
왈숙 (에이 진짜. 크게) 멜로 되거든요! 해봤거든요! 정말 미
치게 사랑 해봤거든요! 믿어주세요 제발!! 에잇! (잔을 비운다)
미연 (술잔을 물끄러미 보는) 그럼... 언니가 그렇게 사랑하
던 그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서 3개월만 살자고 하면... 어떻
게 할꺼야?
왈숙 ... (뭔 소리야??)
미연 ... (물끄러미 잔을 보는)
21. 달리는 지석의 차 안 (낮) (#17)
지석이가 덤덤히 운전을 하고 있고, 정란이가 굳은 얼
굴로 앉아있다.
정란 (정면만 보며) 늦게 들어오는 날은 늦는다고 전화해
요. 잔소리 안 할게.
지석 ...
정란 나 미국 드나드는 사이에 여자라도 생겼어요?
지석 ...
정란 (대답이 없자 지석의 얼굴을 본다) !
지석 ...
정란 혜진이 아빠!
지석 (정면만 보며) 잊었어. 당신 들어온 거. 혼자 사는 사람
처럼 살다가, 당신 들어오면 한동안 적응 안 돼.
정란 !!
22. 지석집 / 앞. 주차장 (밤) -추가
24 씬(원대본 33씬)과 동일 장소, 동일 위치.
차가 주차되어 있고, 차안에서 굳은 얼굴로 내리지 않
고 있는 지석과 정란.
정란 와이프가 미국에 있는지, 한국에 있는지... 그것도 모
른다는 게 말이 돼요?
지석 ... (묵묵히 듣기만)
정란 당신한테 와이프가 있다는 건 알아요?
지석 ...
정란 ... (혼잣말 하듯 낮게) 갈수록 더해...
잠시 후, 정란, 차갑게 내려서 그림을 내리려 뒷좌석
문을 여는데,
지석 (최소한의 배려) 내가 들고 올라 가께.
정란, 보다가 문을 탁 다다고 또각또각 가버린다.
혼자 남은 지석, 죄인 된 기분 으로 그대로 가만히...
23. 작업실 (밤) (#30)
미연, 커피잔 들고 멍하니 늘어져 있고,
왈숙, 한 대 맞은 듯한 표정으로 미연을 보고 있다.
왈숙 살.재?
미연 응...
왈숙 !!
미연 (9년 만에 나타나서, 밑도 끝도 없이 3개월만 샬재. -
삭제)
왈숙 ... 미친놈. 왜? 3개월 후면 세상 끝난대?
미연 (커피잔을 보다가) 그 말 듣는데, 그냥... 그냥... 울컥
하는 게, 고맙더라.
왈숙 ...
미연 나 이 사람한테 그냥 흘러가는 물 아니었구나, 나 다
잊은 건 아니었구나. 나 혼자 잊지 못하고 나 혼자 칼 가는 거 같애
서 억울했었는데, 나만 그런 거 아니었구나...
왈숙 ...
미연 고맙더라. 한 2초 동안은 그런 기분이었어. 그랬는데,
그냥 욕이 튀어나왔어. 미친 놈... (그제야 왈숙 보며 자조섞인 미
소) 언니 말처럼, 미친놈이라고 욕해주고 왔어. 9년 동안 술만 취
하면 달달달 외웠던 욕들은 하낫도 못하고, 그냥 미친놈이라고만
해주고 왔어. (약하지? -삭제)
왈숙 장하다 고미연. 장해. 딴 여자들 같았으면 눈물 콧ㅁ루
쏟으면서 벌써 삼류영화 다 찍었을 텐데, 장하다. 똑똑해.
미연 ... 두 번씩이나 헤어졌었어. 그때마다 같은 이유로.
왈숙 왜? 남자 쪽에서 반대했어?
미연 ..........
( 이하 대사 모두 삭제)
미연 그지... 어떻게 보면... 반대지. 아주 심한 반대... 그 사
람하고의 일, 누구한테도 얘기해본 적 없어. 다 터놓고 말하고 나
면 좀 편해질 것 같은데, 누구한테도 말 못했어. (후... 한숨 후 미
소) 언니한테도 속 시원히 털어놓지 못하는 내가 슬프다.
왈숙 (보다가) 나한텐 말해두 괜찮아. 나 지랄 맞아두 입은
무겁잖아. 내 유일한 장점. 내 입은 믿어두 돼.
미연 (고민하다가 미소) ... 말 못하겠다. 못해.
왈숙 (그래. 하지 마. 속 시원히 말 봇하는 이유가 있겠지.
하지 마.
의우, 정 많은 년. 남자고 여자고 간에 세상에 상종 못
할 인간이 정 짧은 인간이야. 가뜩이나 정 많은 년이, 첫정이라고
걸려든 놈이, 의우...
미연 ...
왈숙 남잔 태훈씨 같애야 돼. 봐, 한결같잖아? 니 복에 그런
남자 없어.
미연 ... (태훈이 생각에 젖는) 그지... 착한 우리 태훈씨...
( 표정에서)
24. 도로 일각 / 태훈의 차 안 (밤) (#31)
태훈이가 운전하는 차가 신호에 걸려서 멈춘다.
태훈, 무심히 둘러보다가 도로변의 가게에서 시선이 닿
는다.
여자들 속옷 가게.
갓난 아기를 안은 남자가 아내에게 조금 섹시한 잠옷
을 골라주고 있다.
태훈, 그 모습을 물끄러미 비라보고 있다.
25. 지석집 / 앞. 주차장 (밤) (#33)
( 시동은 꺼진 채로) 차 안에서 가만히 있는 지석.
시선을 아래로 하면, 손에 들린 핸드폰 보인다. 한참
망설인 듯싶다.
망설이다가 핸드폰을 연다. 편지쓰기의 문장쓰기란이
뜬다.
잠깐 망설이다가 문자를 찍기 시작한다. '전화...' 라는
두 음절 정도 찍는데서.
26. 미연집 / 거실 (밤) -추가
태훈,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손엔 리모콘 들고 스포츠
채널 보고 있는데,
미연, 태훈이가 사온 잠옷을 입고 침실에서 나온다.
미연 (보이며) 어때?
태훈 (보곤) 돌아봐.
미연 (한바퀴 돌아보고)
태훈 뒤가 낫다. (다시 TV로 시선)
미연 (짖궂게 골난 표정/태훈 앞에 무릎으로 앉아서) 고마
워.
태훈 (보는)
미연 기분 좋아. 사랑 받는거 같애서.
태훈 여자들은 꼭 뭐 사다주면 그르드라.
미연 그러엄. 내 생각나서 뭐 살 생각하구, 내 생각하면서
고르고, 내가 좋아할 꺼 생각하면서 사들고 오고... 그래서 여자들
이 선물 받으면 좋아하는 거에요. 내 생각해줘서. 머릿속에 나 담
아둬서.
태훈 (미연의 머리 가리키며) 거긴 나 있나?
미연 .......... (지석이 생각나지만... /미소) 꽉 찼어. ... 딴
놈이 들어올 틈이 없어. (안쓰러운 어린아이 다루듯 태훈의 볼을
비비며 약간 눈물) 으유... 엄마 아빠 일찍 돌아가시고 누나 손에
큰 거 생각하면 불쌍하고, 그래두 나한테 따뜻하게 정주는 거 보
면 용하다 싶고, 나한테 몰라줘서 고맙구, 든든하구... 잘해야지,
태훈씨가 나한테 하는 것보다 잘해야지 싶구...... 머릿속에 딴 사
람이 들어올 틈이 없어.
태훈 (흐뭇해 농조) 너무 바짝 가는데? 선물 자주 사다줘야
겠다?
미연 (역시 농조) 말귀 잘 알아듣네?
태훈 (TV로 시선 돌리는데)
미연 ... (스스로 다짐하는 느낌) 정말이야... 당신 밖에 없
어.
태훈 알어.
그때 장식장 위에서 미연의 핸드폰에서 문자 착신음
이 들리고, 태훈은 리모콘으로 채널을 돌리는데, 미연, 아무 생각
없이 핸드폰을 열어보는데,
#INS 핸드폰 액정 화면 " '전화해도 되니?-지석'
그 문자를 보는 미연의 모습에 태연히 TV를 보는 태훈
이 걸린다.
미연, 눈빛이 떨린다.
태훈 뭔데?
미연 ... 스팸문자.
미연, 핸드폰 전원을 끈다. 잠시 그대로 있다가, 갑자
기 밝게 태훈의 옆에 앉으며
미연 (리모콘 뺏으려 들며) 딴 데 보자.
태훈 (안 뺏기려, 리모콘 든 손을 높이 치우고) 이것만 보구.
미연 (리모콘 잡으려 들며) 딴 데 보자아.
전원이 꺼져있는 핸드폰에 알콩달콩하는 미연과 태훈
의 모습이 얹히면서.
27. 지석집 / 앞. 주차장 (밤) (#35)
지석, 차 안에서 답문자를 기다린다. 오지 않는다.
차 밖을 훑어서 시간경과 느낌 간 다음에,
핸드폰을 열어보는 차안의 지석으로 넘어온다.
답은 오지 않는다.
28. 지석집 / 현관 앞 (밤) (#38)
# 지석, 문을 따고 들어가려다가, 그냥 문을 등지고 서
서 찬장을 본다. 불이 꺼진다.
# 밖에서 보면, 복도의 창으로, 문에 기대어 있는 지석
의 모습이 작게 보인다. 다시 자동불이 켜진다. 한참 후, 다시 꺼진
다.
(F.O.)
29. 지석집 근처 / 아파트 숲에 세워진 택시 (낮) (#38)
# 택시 안에서 고개를 빼고 아파트 숲을 올려다보는 지
석모.
지석모 여기 아니래니깐요...
기사 (E) 여기 맞대니깐요.
지석모 아 상그리랄라래니까. 상그리랄라...
기사 (E) 상그리랄라 맞잖아요. 영어로 써 있잖아요. 상그릴
라.
지석모 (실눈 뜨고 보며) 저게... 영어... (모르지만) 맞네. (얼
른 큰소리) 아 딴 택시 기사는 맨날 저쪽으로다가 대주니까 헷갈렸
지 내가... (내리며 궁시렁) 왜 이쪽으로 대, 한참 걸어가게...
# 장봉지 들고 걷는 지석모 뒤로, 붕 떠나는 택시.
지석모 (아파트 흘겨 올려보며 가는) 뭔눔의 아파트 이름을 영
어로 써 놨어? 그르니 내가 알어? 의ㅣㅣ우, 국문만 뗀 노인들은 다 뒈
지라는 거지. 의우, 싸가지 읎는 세상.
30. 지석집 / 주방 (낮) (#40)
지석모, 한우 꼬리를 그릇에 담아 핏물을 빼고,
정란, 빈 커피잔을 개수대에 놓고 있다.
지석모, 우러난 핏물을 개수대에 쪽 따르며
지석모 요 꼬리 하나가 팔만원이다 팔만원. (보여주며) 요만-
큼이.
정란 (별로 달갑지도 않고) 그냥 두시지...
지석모 비행기 타고 만리타국 왔다갔다 하느라고 진 다 빠졌
을 텐데, 몸보신 해야지, 미국이 좀 멀어. 큼지막-한 깍두기에 꼬리
곰탕 한 그릇 뚝딱해줘야 헛헛한 기운이 가시지. (솥 꺼내고 거기
에 뼈를 옮겨 닮는)
정란 그냥 두세요. 아줌마가 하실 꺼에요.
지석모 아서아서. 비싼 음식 남의 손에 맡기면 싸구려 돼. 정
성이 들어가야 양분이 고대-로 남지. 넌 어여 들어가 준비해, 나가
야잖어. 어여 들어가 준비해.
정란 천천히 해도 돼요. (커피를 따라 마시는데)
지석모 (새삼 손놀림이 신나고) 아우 우리 지석이 출세하는
건 이제 시간문제네. 그 잘나가는 어르신들이랑 계모임을 하게 됐
으니.
정란 (깬다 계모임) 석찬회 모임이에요.
지석모 아 엉덩이나 방댕이나 궁댕이나, 만나서 먹고 마시는
거 똑같지 뭐.
정란 (구제불능이다)
지석모 이제 우리 지석이 총장까지 일사천리로 가는 거야.
정란 (천박함...)
지석모 (한풀 꺾이며 아쉬운) 에우, 우리 지희도 얼른 좋은 짝
만나 그런 어른들이랑 어울려야 되는데...
정란 (그만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지석모 그 기지밴 내가 여기 온다 그러면, 툭하면 거긴 뭐하
러 가냐고, 언니 바쁜데 거기 가서 뭐할라고 가냐고. 내가 뭐 일하
러 오지 놀러와? 세상 시어머니 다~~ 나만 같으라 그래.
정란 (그냥 들어가는)
지석모 며느리편인 시어머니가 어딨어? 난 지석이 편 아니다,
난 니 편이다.
정란 (그러든 말든, 방으로 쑥)
31. 대학 / 강으실 (낮) (#43)
지석, (수업 끝난 듯) 접은 책을 한손으로 교탁에 세워
잡고, 학생들에게 말한다.
칠판엔 간단하게 몇 자 판서 된 것들(직무수행평가, 소
비자 욕구 분석... 등등)이 보인다.
지석 한 학기 동안 지루한 강의 듣느라고 수고들 했고! 웬만
하면 다들 시험 잘 보고! 재수강으로 내 얼굴 다시 보는 사람들 없
도록!
학생들 (책상 치며) 우우우---!1 감사합니다!
32. 동 / 복도 (낮) (#44)
지석, 강의실에서 나와 책을 들고 복도를 걸어간다.
학생들이 가방을 둘러메고 우르르 강의실에서 쏟아져
나온다.
33. 대학 일각 / (낮) (#45)
2 부 17씬과 동일 장소.
옛날에 지석이가 앉아있던 모습을 보던 곳에 서서,
그때와 똑같이 강의실을 올려다보고 있는 미연.
그때 지석이가 멀리서 지나가다가 그런 미연을 본다.
지석, !! 천천히 미연에게 다가온다.
느끼지 못하고 그냥 올려다보고 있는 미연, 지석이가
가까이 왔을 때 쯤 시선을 돌리는데, 그제야 서로 보는 두 사람. 미
연, 철렁한다.
지석 !!
미연 !!
지석 !!
미연 !! (가던 길을 가려는데)
지석 (OL) 밥 먹었니?
미연 !!
지석 안 먹었으면 같이 먹지 않을래? 나 며칠 동안 제대루
못 먹었는데...
미연 (기가 막혀 웃음이 난다. 그냥 가려는데)
지석 (OL) 그때 한 말! 그냥 한 말 아냐!
미연 (지석을 똑바로 본다)
지석 나랑 살자 미연아.
미연 !!
지석 ... 3개월만... 살아주라.
미연 .............. 미친...
미연, 말대꾸도 하기 싫은 듯 홱 들어 간다.
지석, 말없이 바라보다가 달려서 쫓아와 미연의 팔을
잡으며,
( 동선을 옮겨서 학생들이 없는 조용한 곳이 된다)
지석 미연아!
미연 (확 뿌리치며, 돌아서 참았던 감정 터져 격양된) 뭐하
는 짓이야?
지석 !!
미연 (살 떨린다. 사촌이라고 말하는 부분에선 누가 들을까
낮게 으르렁거리며)
문득문득 사촌이란 생각이 스칠 때마다 돌아버리겠다
더니! 돌아버릴 것 같애서 죽어도 같이 못 살겠다더니!! 3개월은 어
떻게 안돌고 살 것 같애? (지르듯) 갖고 놀아-? 내가 그렇게 만만
해-?
지석 !! 미연아, 나... ('죽어'라는 말이 나올 것 같은데)
미연 (OL, 내지르듯) 내 이름 부르지마!!
지석 !!
미연 (낮고 무섭게) 드러워...
지석 !!
미연 (흥분해 다다다) 할 수만 있다면, 내 머리를 열어서 너
하고 했던 기억만 싹 도려내 파버리고 싶어. 같이 사랑해놓구, 나
혼자만 부도덕한 여자로 만들어놓고... (지르듯) 니가 나한테 어떤
낙인을 찍었는 줄 알아
지석 !!
미연 가슴에 주홍글씨 새긴 것 보다 더해. 가슴에 새기면
내 눈엔 보이지나 않지. 늘 머릿속에 박혀서 뱅뱅 도는 열등감 치
욕 더러움! 내 머릿속에 박힌 개차반 딱지! 정말 할 수만 있다면,
당신하고 했던 기억만 싹 도려내 파버리고 싶어! 알어?
지석 !!
미연 너랑 했던 기억, 끔찍해.
지석 (울먹이며, 버럭) 그렇게 끔찍한데 왜 이 학교로 편입
학을 했어? 왜?
미연 !! (시니컬한 미소) 너 이 학교 다녔었니? .. 몰랐어.
지석 !! 뻐어치지 마 씨이! 다 알어... (눈물이 그렁그렁)
미연 미친 놈... 넌, 끝까지 미친놈이야.
지석 (울먹이는데)
미연 한번만 더 내 앞에 나타나면 그땐! ... 끝장인 줄 알어.
지석 !!
미연 (홱 돌아서 간다. 뚜벅뚜벅...)
지석 (그냥 미연을 보기만 한다. 눈물을 꾹 참는다)
미연 (잘했다 싶다. 그렇게 떨린다. 전투적으로 뚜벅뚜벅...)
지석 (힘이 빠진다. 그냥 바라본다)
미연 (대뜸 전화를 걸어 전투적으로) 칭찬해줘! (뭘?) 잘했
다, 장하다 칭찬해줘! (뭐얼?) 얼르은!!
34. 방송국 / 복도 (낮) (#46)
테잎 들고 왔다갔다하는 사람들.
왈숙, 그 틈을 지나가면서 뭔가 이상한 기운을 느끼며
핸드폰 받고 있는.
왈숙 (크고 화통하게) 그래 장해! 장하다 고미연!!
35. 대학 일각 / (낮) (#47)
전씬 연결.
미연, 계속 걷는데 눈물이 쏟아진다.
울지 말아야지, 울지 말아야지 싶은데 눈물이 쏟아진
다.
미연 잘했지? 장하지?
지석은 저 뒤에서 하염없이 멀어지는 미연만 본다.
미연, 핸드폰을 끊고 주머니에 넣고 울음을 참으며 걸
어간다.
전투적으로 걸어가다가 갑자기 휙 돌아본다.
지석 !!
미연 (E, 쏟아지는 눈물) 나... 사랑하긴 했니? (우리... 절뚝
발이 사촌이 아니었으면... 지금까지 사랑했을까? -삭제)
지석 !!
미연, 다시 돌아서 가던 길을 간다. 뚜벅뚜벅.
지석, 그 뒤로 허망하게 서 있는.
36. 대학 근처 / 거리 일각 (낮) (#48)
미연, 행인들 사이를 걷는다.
흐르는 눈물을 닦아낸다.
스치는 사람들, 간혹 울며 가는 미연을 뒤돌아본다.
37. 동 / 버스 정류장 (낮) (#49)
미연, 정류장에 앉아있다. 눈물은 어느 정도 잦아들었
다.
그러나 아직 진정되지 않은 떨림. 땅바닥만 보고 있다.
38. 대학 / 연구실 (낮) (#50)
지석, 맥 놓고 의자에 앉아있다. 눈물이 그렁그렁. 전
후 사정 다 설명하지 못했던 내가 안타깝다. 그리고 새삼 미연이
겪었을 고통에 대한 자책감. 그런 생각에 눈물이 그렁그렁...
그때 진동으로 울리는 지석의 핸드폰.
39. 대학 / 지석 연구실 건물 앞 주차장 (낮) (#51)
정란, 핸드폰을 하며 차에서 내려 조수석 쪽으로 가는
데,
전화를 안 받는지 건물을 올려다본다.
40. 대학 / 연구실 (낮) (#52)
지석, 그렇게 넋 놓고 앉아있는데, 똑똑 노크 소리.
지석은 눈물이 떨어질 것 같은 얼굴을 얼른 훅 쓸어내
린다.
문이 열리면 정란이 서 있다.
지석 !!
정란 오늘 선우회 석찬 모임... 잊었어요?
41. 달리는 지석의 차 안 (낮) (#53)
굳은 얼굴로 운전을 하는 지석으로 넘어온다.
정란, 옆에 앉아 정면을 응시하다가 지석의 얼굴을 본
다.
정란, (생전 안 하던 짓 같은) 지석의 얼굴을 쓰다듬어
본다.
지석, 표정에 변화 없이 정면만 보며 운전.
정란 오늘 아침에 면도 안 했어요?
42. 편의점 앞 도로 일각 (해질녘) (#54)
차의 뒤에서 잡는 정지된 풀 샷.
지석의 차가 서고, 거기서 정란이가 내려 종종종 편의
점으로 들어간다.
43. 편의점 (해질녘) (#55)
정란, 판매대에 일회용 면도기 놓고 지갑 여는데,
정란 얼마에요?
그때 빠아아앙---! 밖에서 끊이지 않고 단음으로 클락
션 소리가 이어진다.
정란, 밖을 보면 지석의 차 밖에 없다. 빨리 나오란 소
린 줄 알고 계산하고 허둥지둥 챙겨 프레임 아웃.
44. 편의점 앞 도로 일각 (해질녘) (#56)
차 뒤에서 정지된 풀 샷.
계속 이어지는 크락션 소리.
정란, 종종종 다가와 문을 열고 타는데,
정란 (E, 철렁) 여보!
정란, 지석을 잡고 상체를 곧추 세우려는 노력이 어슴
푸레 보인다.
크락션 소리는 사라지고, 문 열어진 채로, 정란의 절규
가 가로지른다.
정란 (E) 여보--!
# 차 안으로 들어가면, 지석, 고통에 핸들에 머리를 박
고 있었던 것.
지석, 숨도 쉬지 못할 정도의 고통에 눈을 부릅뜨고 꼼
짝 못하고 있다.
정란, 지석을 끌어안고 소리친다.
정란 (두려움에 패닉 상태) 여보! 지석씨! 왜 그래요? 왜 그
래요---!! (밖을 향해) 여기요---!!
지석의 눈에 핏발이 선다. 고통스러워하는 지석의 모
습에서.
45. 대학 근처 / 버스 정류장 (해질녘) (#57)
아까 그 정류장에 그대로 있는 미연으로 넘어온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해가 저물고 정류장의 광고판
이 하나 둘 씩 불을 밝힌다. 그 자리에 붙박인 것처럼 굳은 얼굴로
앉아있는 표정에서.
46. 지석의 차 안 (해질녘) (#58)
다시 고통스러워하는 지석의 얼굴로. 옆에선 정란이
가 지석을 끌어안고 핸드폰을 하고 있다.
정란 (공포에 떠는) ...대학교 앞이에요... 빨리 와주세요. 빨
리요.
47. 피비 센터 (밤) (#59)
어둡고 텅빈 실내.
미연, 기다린 손님 의자에 가만히 앉아서 정면을 보는.
미연의 정면에서 밝은 빛이 세어 나온다. 태훈의 자리
다.
유리 칸막이 안에 태훈 보인다.
태훈은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서류를 비교해보고 컴
퓨터에 입력하고 오케이!
서류를 덮고는 일어나 팔을 높이 들어 몸을 푼다.
미연, 그런 태훈을 보자 서서히 얼굴이 풀린다.
태훈, 몸을 풀다가 미연을 본다. 미연과 눈이 마주치
고,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짐짓 모른 척 다시 몸을 푸는 태훈. 장난스럽게 행동
을 이것저것 바꿔본다.
미연과 마주칠 때마다 따스한 눈길을 보내며 의연하
게 몸을 푼다.
미연, 더 웃어주려 하는데 잘 안 된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미연. 그렁저렁...
하다.
눈물 보이지 않으려고 짐짓 눈 크게 뜨고 억지로 웃는
미연에서.
48. 대학병원 / 병실 (밤) (#60)
창백한 얼굴로 눈감고 침대에 누워서 링겔 맞고 있는
지석.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지석을 내려다보고 있는 정란.
정란의 화려한 차림새가 이 침울한 병실 분위기와 맞
지 않는다.
정란, 넋나간 사람처럼 미동도 않고 가만히 있는데, 그
때 울리는 정란의 핸드폰.
정란, 한참 만에 핸드폰을 받는다.
정란 여보세요?
연희 (F) 어디야? 오는 중이야? 다들 기다리시는데?
정란 (울컥.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하나.)
49. 대학병원 / 로비 (밤) (#62)
회전문을 열고 달려 들어오는 덕구.
충격에 다리고 꼬이고 휘청해 엎어질 뻔 한다.
울컥 눈물이 쏟아질 꺼 같다. 참아야지. 입을 쓸어 닦
는다. 그러다 울컥해서 얼굴 일그러지며 다다다 달려서 프레임 아
웃.
50. 호텔 / 레스토랑 (밤) (#61)
정란, 그 호화로운 모임에 가 앉아있다.
부부로 보이는 상류층 사람들 20인 정도가 이 테이블
저 테이블로 옮겨 다니며 인사하고 안부를 묻는데, 그 틈에서 테이
블에 가만히 앉아서 공황상태에서 어설픈 미소 짓고 있는 정란. 앞
에 앉은 연희가 뭐라고 하는데, 그저 웃기만.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웃고 있는.
51. 동 / 병실 (밤) (#63)
지석, (링거 꽂은 채로) 침대 모서리에 앉아서 창밖을
보고 있고,
덕구, 지석의 뒤에 의자에 앉아있다.
덕구의 어깨가 살짝 들썩인다. 한참 울고 난 뒤, 울음
끝이다.
침울한 두 사람.
지석 (창밖을 보는 채로) 아까... 나 별 봤다.
덕구 ... (어깨 들썩이며 지석 보는)
지석 이씨... 드럽게 아프더라. 얼마나 아픈지 별이 다 보이
더라...
덕구 ... !! (울컥. 참아야지)
지석 이제 시작이래는데... 이건 약과래는데...
두 사람 한참 말이 없다가...
덕구 (어렵게) 그래서 갑자기... 미연이... 얘기 한 거야?
지석 ... 죽는다는데, 그냥 미연이가 생각나드라. 희안하지.
와이프도 우리 혜진이도 아니고, 그냥 계속 미연이만 생각 나드
라.
덕구 ...
지석 (다시 억울함에 떨린다) 이렇게 빨리 죽을 줄 알았으
면 그때 미연이 버리지두 않았지. 사촌이건 뭐건 간에... 영감 차
에 뛰어들든 말든 상관도 안했지. ... 내가 영감한테 무슨 덕을 봤
으면 말을 안 해. 결혼하래서 했드니... 잘 나가는 장인 집안까지
말아먹고... 그 욕 같은 구덩이에 나만 던져두고 죽어 없어졌으
니... (어금니에 힘이 들어간다)
덕구 ...
지석 ........ 다른 건 다 참을 수 있는데... 미연이랑... 그냥
이대로 헤어지고 죽는 건... 못 참겠어. (떨리는 눈에 눈물이 맺힌
다)
덕구 ...
지석 언젠간... 미연이 다시 만나서... 다시 사랑할 날이 올
줄 알았어. 쉰에든, 여든에든, 그런 날이 올 꺼라고 믿었어... 그땐
우리 욕하는 사람들 없겠지, 다 늙어서 만난다는데 사촌이든 뭐
든, 그땐 손가락질하는 사람들 없겠지... (그렇게 생각했어) 근
데... 이렇게 갑자기 끝나버린다니까... 화가 나.
덕구 ... (어렵게) 내가... 미연이 찾아보까?
지석 (한참 만에) ... 만났었어.
덕구 !!
지석 ... 만나서 말했어. 3개월만 살자고.
덕구 !!
지석 말해놓고 나도 놀랬다. 그냥 한번만 봤으면 싶어서, 밑
도 끝도 없이 너무 보고 싶어서 만난 건데, 느닷없이 그런 말이 튀
어 나오드라. ... 미연이랑 살고 싶었나봐. 살고 싶었어.
덕구 ... 뭐래?
지석 ... 미친 놈 이래. (다시 슬픈 감정이 살아난다)
덕구 !!
지석 (자조 섞인 미소) 한번만 더 나타나면, 끝장날 줄 알
래.
덕구 !!
지석 ...
덕구 ... 결혼은...?
지석 몰라. (그제야 돌아서 덕구 보며, 다시 뭔가 희망을 갖
는 투로) 안했으면 좋겠어.
그런 지석의 표정에서.
52. 미연집 / 거실 (밤) (#64)
은은한 조명 아래.
소파 아래에 등을 기대로 앉아 TV를 보는 덤덤한 미연
으로 넘어온다.
태훈, 미연이 앞에 바짝 앉아 자신의 다리로 미연을 감
싼다.
태훈의 다리 안으로 쏙 들어오는 미연.
태훈 (익살스레 미연을 빤히 본다)
미연 (미소)
태훈 (빤히 보는)
미연 뭐해?
태훈 작품감상. (눈 코 입 부위 별로 보는)
미연 (피식) 그런 말두 할 줄 알아?
태훈 (따뜻하게 바라보는)
미연 (빤히 보다가) 잘 생겼다. 우리 태훈씨... (태훈의 얼굴
을 만지며) ... 어려선 보고 싶고, 조바심 나고, 안달하는 게 사랑
인 줄 알았는데, 아냐. 같이 있으면 편하고 든든하고... 그런 게 사
랑이야...
태훈 (미연을 꼭 안는다)
미연 (태훈에게 폭 안겼는데, 왠지 서글퍼 보이는 얼굴)
53. 왈숙 원룸 (밤) (#65)
왈숙, TV는 혼자 떠들고, 침대 위에 올라앉아 노트북
펴놓고 치다가,
옆에 놓인 핸드폰을 들어본다.
왈숙 아까 그 지랄을 떨었으면 이래저래서 그랬다 전화가
있어야 될 꺼 아냐? 의구, 기지배, 지 기분 밖에 모르지.
다시 노트북을 보는데, 그때 또 문을 따는 소리가 난
다.
왈숙 (한숨) 돌아버린다. 진짜. (노트북 치우고, 침대에서 내
려오며, 흥분할 필요는 없고) 그래, 내가 오늘 화악 얼굴 보여준
다! 깜-짝 놀랠 꺼다 임마.
왈숙, 한판 붙을 듯 문을 확 여는데, 안으로 쏟아져 들
어오는 남자, 덕구다.
왈숙 (얼굴 들이대며) 그래, 봐! 봐! 봐아! (하는데, OL)
덕구 (당황, 눈은 시뻘개서 얼굴은 눈물로 얼룩졌다) 죄, 죄
송합니다.
왈숙 (남자의 눈물에, 순간 전의가 없어진다)
54. 원룸 복도 (밤) (#66)
덕구, 안에서 복도로 나오며
덕구 (안에 대고 꾸벅) 죄송합니다.
덕구, 울면서 계단을 올라간다. 지석이 때문에 눈물이
나는 거다.
덕구, 나와서 덕구의 뒷모습을 본다. 남자 우는 거 처
음 본다.
덕구, 처량맞게 팔뚝으로 눈물 훔치며. 계단 위로 사라
진다.
왈숙, 멍하니 본다.
55. 덕구 원룸 (밤) (#67)
덕구, 벽에 등 기대로 앉아, 슬픔에 젖어 흐느끼다가,
한참 만에 입을 떼고 한다는 소리가
덕구 난 친구... 그 놈 밖에 없는데...
말하자마자 서럽게 꺼이꺼이 운다.
친구의 죽음 앞에서도 내 실(失)이 떠오른다.
56. 병실 (밤) (#68)
지석, 여전히 멍하니 창 밖 보고 있고,
덕구가 있던 자리엔 병찬이가 앉아서 고개 숙이고 있
는데,
문 삐걱 열리면 정란이 들어온다.
병찬, 조용히 나간다.
정란, 다가와 지석의 어깨에 손을 얹는다.
지석, 가만 있는다.
정란, 지석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아 지석을 올려다본다.
지석, 그제야 정란을 내려다본다. 희미하게 웃어 보인
다.
정란, 와락 울음이 터지면서 지석의 다리에 얼굴을 묻
는다.
지석, 그런 정란을 보다가... 정란의 등을 쓸어준다.
그런 지석의 표정에서.
(F.O)
57. 미연집 / 건물 앞. 주차장 (아침) (#72)
휑한 나뭇가지에 바람이 쌩쌩 분다.
출근하는 듯 건물 현관에서 나란히 나오는 미연과 태
훈.
미연 으~ 춥다. 이제 정말 겨울이야. 난 겨울 싫은데.
각기의 차로 가며,
태훈 끝나면 전화해. 운전 조심하구.
미연, 밝게 손을 흔들어주고 자신의 차로.
태훈, 자신의 차 앞에서 앞문을 따려다가 뒷좌석에 시
선이 가고.
태훈 잠깐만 미연아!
얼른 뒷문을 열어 포장된 선물을 꺼내들고 미연의 차
로.
태훈, 운전석에 앉은 미연에게 창문을 통해 선물을 내
민다.
태훈 자 선물.
미연 왠 선물?
태훈 누나가 준 거야. 그저께 은행에 와서 주고 갔었는데,
깜빡했어.
미연 뭔데?
태훈 모르지. 끌러봐. (손을 흔들고 뒤돌아 자신의 차로)
미연, 밝은 얼굴로 선물을 끌러본다.
털실로 뜬 아기 양말. 신발대용으로 할 수 있는 양말이
다.
쪽지도 있다.
영화 (E) 끌러보구 주책이라고 하진 말아줘. 그냥 내 맘이
야. 불공드리는 맘으로 떴어. 부적이라고 생각하고 옆에 둬.
어두운 얼굴로 그걸 만지작거리는 미연.
빠빵!하는 클락션 소리가 들린다.
미연, 고개를 들어보면, 태훈, 손을 흔들어주고 차가
떠난다.
태훈이가 주차장을 빠져나가기 직전 미연에게 신호를
보낸 것.
미연도 역시 어색한 미소로 손을 흔들어준다. 다시 착
잡한 얼굴이 된다.
생각을 접듯 포장지와 양말을 옆좌석에 대충 놓고, 시
동을 건다. 기어를 넣고 출발.
58. 작업실 (낮) (#73)
미연, 가방과 노트북 들고 들어오다가 보면,
왈숙, 소파에 멍하니 앉아있다.
왈숙 (멍) 왔냐?
미연 일찍 나왔어?
왈숙 좀 전에...
미연 (옷 벗고, 가방 놓다가 왈숙의 표정 보고) 왜?
왈숙 (멍) 어떤 남자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미연 누구?
왈숙 불쌍하게 생긴 어떤 남자가, 눈물 콧물 흘리면서 질질
짜는데... 이 풍만한 가슴에 그 남자 얼굴을 끌어다 묻고, 그냥...
등짝을 쓸어주고 싶더라. (멍한 채로 한손으로 남자 머리 잡고, 한
손으로 등짝을 쓸어주는 흉내) 울지마... 울지마... 뚝... (하다보니
깬다) 성격 나온다. 무슨 엄마두 아니구 우는 남자 등짝을...
미연 어떤 남잔데?
왈숙 302호.
미연 !!
왈숙 맨날 우리집 문 따던 놈.
미연 별루라매?
왈숙 ... (그러게) ... (미연 보며) 나 너무 늙었나부다. 별눔
이 다 땡기고. (풀썩 누웠다가, 다시 일어나며) 어젠 왜 그런 거
야? 왜 장하다 잘했다 하래?
미연 (대답없이 노트북만 여는 모습 뒤로, 왈숙 걸리며)
왈숙 또 그 놈 본 거야?
미연 (대답없이 일만)
59. 지석모 방 (낮) (#74)
지석모, 한손으로 걸레질 하고 한손으론 전화 받으며
지석모 시어머니가 사골까지 궈주고 오는데, 차비 한 푼 안 쥐
어주더라. 싹퉁머리 없는 년, 시어민 허둥지둥 움직이는데, (차갑
게 흉내) 냅두세요. 아줌마가 해요. 에으, 지 집안 망해먹은 죄인들
이라 이거지. 알아서 가라 이거지. (걸레질 멈추고) 언제 들어오는
데? 졸업했으면 언능언능 들어오지 거긴 뭐하러 죽치고 있어? (한
톤 죽이고) 새언니한테 니 취직자리 얘기 해놨으니까, (그딴 얘
긴 뭐하러!) 야, 시누가 결혼을 잘 해야 지두 편한 거야. (하지마!)
울궈먹을 수 있을 때 울궈먹어야지 이년아, (울궈먹을 게 어딨다
고) 그 집안 아직 그 정도 끗발은 있어. 잔말 말고 들어와. (몰라,
끊어 / 수화기 보며) 이!
지석모, 전화기 끊었다가 다시 건다.
지석모 (좀 기다렸다가) 지석이냐? 에미다. (끊긴 듯) 여보세
요? (수화기 보며) 이것들이! 지 에밀 개똥으로 아나?
60. 대학병원 / 진료실 앞 복도 (낮) (#75)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는 지석.
그 옆에 정란이 있는데,
병찬 (진료실 안에서 문을 열고) 들어와.
61. 동 / 진료실 (낮) (#76)
과장으로 보이는 의사 앞에 앉아있는 지석 정란.
병찬은 뒤에서 서서 팔짱 끼고 보고 있고.
과장, 컴퓨터로 초음파 사진이며 이것저것을 클릭하
고 있고,
정란, 일말의 희마을 가지고 잔뜩 기대하고 보고 있다.
과장, 컴퓨터에서 시선을 떼고 지석과 정란 쪽으로 돌
아선다.
과장 (말없이 진료카드만 본다)
정란 (기다리는 표정)
과장 (시선 안 준채) 부선생 말대로, 일단 항암치료를 하시
는 게,
정란 (OL) 항암 치료만으로도 완치가 되는 건가요? 그냥 수
술하는 게 빠르고 깨끗하지 않나요? (제정신이 아닌 듯 달겨드는
느낌)
62. 동 / 화장실 (낮) (#77)
정란, 입을 틀어마가고 급하게 들어와 거울 앞에 선다.
입을 꾹 틀어막고 눈을 감고 눈물을 참는다.
63. 동 / 다른 층의 복도 (낮) (#78)
처방전 발급하는 곳 앞.
병찬, 간호사에게 처방전을 받아들고, 앉아있는 지석
에게 내민다.
지석 (받고)
병찬 (옆에 앉는)
지석 원래 암이 다 그렇게 아픈 거냐?
병찬 ...
지석 옆구리 빠지게 아프더라.
병찬 암중에 췌장암이 제일 고통스런 암이야.
지석 !!
병찬 ... 아파서 약 먹으면 늦어. 진통 효과 오는데 시간 많
이 걸리니까, 아프기 전에 미리미리 먹어둬.
지석 ... (한참 만에 피식) 겁주냐?
병찬 ... 고따위로 밖에 말 못하냐? 이런 말 하는 내 맘은 편
할 꺼 같애?
지석 ... 고맙다.
병찬 ... 웬만하면 항암치료 빨리 들어가자.
지석 (그 말엔 대답을 안 한다)
64. 동 / 산부인과 진료실 (낮) (#79)
자궁 초음파 사진. 조그마한 근종이 있는 사진 위로.
의사 (E) 일쩜오, 일쩜사, 오백원짜리만한 근종이 있는데,
미연 (얼굴 위로)
의사 (E) 다행히 수정란이 착상하는 부위가 아니라, 애기 갖
는 덴 별 문제 없고요.
미연 ... (고개 떨어뜨리고 있는)
65. 동 / 엘리베이터 (낮) (#81)
환자복을 입은 남자와 간호사 내리면,
빈 엘리베이터에 미연이 올라탄다.
66. 동 / 엘리베이터 안 (낮) (#82)
미연, 시선 아래로 하고 서 있는데,
띵! 소리가 나면, 잠시 후, 미연의 옆으로 프레임 인되
는 정란.
양쪽 끝에 서 있는 미연과 정란. 모르는 사이인 두 사
람.
정란, 멍한 눈빛으로 벽에 고개를 떨군다. 그렇게 두
여자의 모습이 가다가...
잠시 후 띵! 하고 문이 열리면... 아무도 안타고 있다.
미연의 흔들리는 눈빛. 맞은 편 보면, 지석이 서 있다.
두 여자, 지석을 본다.
지석이 어떻게 할 것인가 타지 못하고,
두 여자 모습에서 문이 닫히는데,
턱! 걸리며 다시 열리는 문.
정란이가 버튼을 눌러 잡았다.
정란 ... 안 타요?
지석 (표정)
67. 동 / 엘리베이터 안 (낮) (#83)
미연과 정란이 사이에 서 있는 지석.
말없는 세 사람. 참 어정쩡한 침묵.
한참 만에 입을 떼는 정란...
정란 (앞만 본 체, 다부진) 미국으로 가요.
지석 !!
미연 !!
정란 미국 가서 치료해요.
지석 !!
미연 ??
정란 거기서 암은 암 것도 아냐. 안 죽어.
미연 !!!!
정란 미국으로 가요.
충격에 빠진 미연. 다부진 정란. 어떻게 할 수 없는 지
석.
그런 세 사람의 모습이 한참 가다가...
68. 동 / 엘리베이터와 지하주차장 (낮) (#84)
띵! 지하 주차장에서 문이 열리면,
정란이 먼저 내리고, 지석이 미연 때문에 망설이다
가... 내린다.
미연의 시선에서 보이는 지석과 정란의 뒷모습.
정란, 걸으며 지석의 손을 꽉 잡는다.
그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는 미연.
충격으로 말없이 두 사람을 보고만 있다.
서서히 문이 닫히는데,
미연 (NA) 그 순간, 9년 동안 품고 있던 시퍼런 칼날이 바닥
에 떨어지며 산산조각이 난다.
문이 거의 닫히려는 찰나, 급하게 문을 잡고, 멀어지
는 지석을 보는 미연의 떨리는 눈빛에서 하-숨이 터져 나오면서
스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