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짐은 가볍습니다. https://youtu.be/paJoNRpikio?si=L35D1jEzabpKBvZa
( 2024.10.13. 주일 낮 예배 )
본문 말씀 : 누가복음 11 : 45-54
주 제 : 세상은 우리의 짐을 무겁게 하려고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의 짐을 가볍게 하신다.
1. 바리새인의 등장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에 드디어 바리새인이 등장합니다. 그들이 등장하지 않을 수 없지요. 예수님은 생애 내내 그들과 부딪힙니다. 바리새인들은 그 당시 이스라엘을 이끌어 가는 핵심적인 인물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들을 존경하였습니다. 그들은 그만큼 자존감도 높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당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예수와 그의 그룹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예수가 여러가지 기적을 일으키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으니 그들도 예수를 가만히 지켜볼 수만은 없었지요.
한 바리새인이 예수님에게 같이 점심을 먹자고 하면서 자기집으로 초대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인가 부자연스러운 모습의 그림이 그려져 있음을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은 그다지 신분이 높지 않습니다. 예수님 자체도 신분이 높지 않고 그의 제자들도 전부 어부, 세리 등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높은 사람들입니다. 말하자면 양반과 상놈이 한데 어우러져 있습니다. 뭔가 조화롭지 않고 무엇인가 터지고 말 것 같은 부자연서러움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밥을 먹기 전에는 반드시 손을 씻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점심을 먹으려고 하면서도 손을 씻지 않았어요. 그것을 보고 그 바리새인이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여기서부터 예수님의 신랄한 공격이 시작됩니다. ‘손을 씻지 않는 것이 무엇이 그리 큰 문제냐? 너희들은 그릇은 깨끗하게 씻지만 너희들 속은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다. 보잘 것 없는 채소에 대한 십일조까지 완전히 따져서 십일조를 드리지만 공의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버리고 있다.’ 예수님께서 작정하고 바리새인들의 행태를 꾸짖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겉으로는 율법대로 살아가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 율법 교사가 같이 있었는지 아니면 다른 이야기인지 모르지만 율법교사가 나섰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우리까지 모욕하는 것이 됩니다.’ 라고 했지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그들을 가리켜서 ‘너희들도 마찬가지다. 너희들은 너희도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다.’고 하면서 그 율법교사들도 꾸짖었어요. 계속해서 그들 율법교사를 꾸짖습니다.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서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
이렇게 하자 거기서 나오실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거세게 달려들어 여러가지 일들을 따져묻고 예수님의 말을 책잡으려고 노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2. 짐을 가볍게 하려고 오신 예수님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죄에 빠져서 괴로워하고 있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죄에 빠져 있는 사람은 죄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들어주려고 오셨어요. 이것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이고 이것이 목적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니라.‘
단적으로 말해서 예수님이 주시는 짐은 가볍습니다. 조금도 어렵지 않습니다. 그에 반해서 바리새인이 가르쳐주는 이 세상의 가르침은 무겁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대로 하려면 너무 어려워요. 너무 어렵기 때문에 그것을 그대로 하면 마치 뭔가 큰 일을 한 것처럼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렇게 하면 구원에 이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당시 대부분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렇게 율법학자들이 말하는 대로 하면 구원에 이른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지만 그것은 너무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그렇게 함으로서 구원에 이르지도 않았습니다. 전부 잘못된 길로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신 것입니다.
3. 자유
예수님의 가르침은 ’내가 너희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왔다. 나를 믿으라. 그리하면 구원을 받는다.‘ 이것입니다. 이것을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다른 것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어려운가요? 어렵지 않지요. 아주 쉬워요. 그리고 간단해요. 원래 진리는 단순합니다. 그리고 쉽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는 자유함이 있습니다. 모든 구속에서 떠나니까 자유할 수 밖에 없지요.
바울은 갈라디아서 5:1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그렇게 했고 또
갈라디아에 잘못된 자들이 나타나서 갈라디아 사람들을 미혹하려고 할 때 ’그들이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이렇게 말합니다.
말하자면 기독교인에게는 이런 단순함이 있고 또 자유함이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믿기만하면 구원을 받는다.‘라고 하면서 모든 억매인 곳에서 벗어나 자유함을 누리니까 그것이 싫은 것입니다. 그래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야유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4. 구원의 메카니즘
여러분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습니다.‘ 이것을 믿습니까? 이것이 너무 쉬우니까 잘 믿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더 깊은 무엇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습니다. 더 깊은 무엇이 있습니다. ’내가 믿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그 순간에 성령이 우리 안으로 들어오십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성령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면서 내가 마땅히 살아가야할 길을 가르쳐주십니다.
그러면 다음 단계로 우리는 그 성령께서 가르쳐주시는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물론 그때도 우리는 성령의 말씀대로 살아갈 자유도 있고, 아니면 반대로 내 의지대로 살아갈 자유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믿음에서 떠나지 않는 한 성령도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끝까지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거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릴 수 있지요.
멀리 떠나기도 하고, 수없이 방황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은 가만히 기다립니다. 절대로 강압적으로 우리를 따르게 하지는 않습니다. 이런 시간이 일평생 걸리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천천히 주님 앞으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성령은 그의 일을 완성시킬 것입니다.
여기까지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성령의 인도에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지우시는 짐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어렵습니까? 이것이 무겁습니까?
5. 가벼운 예수님의 짐을 집시다.
저는 세상 사람들을 미혹하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지난 월요일 감악산을 갔어요. 입구에서 ’우리 민족의 진정한 역사를 가르칩니다.‘ 라는 캐치프레이저를 내걸고 사람들에게 들어보라고 권유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10월 9일 스위스 그랜드 호텔에서 강연회를 한다고 했어요. 그래서 한글날 10월 9일에 거기로 가보았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오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는데 못잡아도 3-4천명은 된 것 같았어요. 한 분이 나와서 이야기를 하는데 우리 민족은 단군으로부터 시작하는데 이것은 결코 신화가 아니고 역사적인 인물이다. 그러면서 우리 민족의 기원은 시베리아로부터 시작한다. 그렇게 설명을 해요. 그것을 증거하려고 많은 곳을 찾고 많은 돈도 들였겠다 하는 생각이 들면서, 저 사람이 말하는 것이 잘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끝날 때쯤 가니까 이 분명한 사실을 사람들이 잘 받아드리지 않는다고 하면서 갑자기 자기는 영적인 눈으로 이것을 본다는 것입니다. 이마에 눈이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워낙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닫혀 있는데 자기는 그 눈이 열려있기 때문에 이런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고 자기에게 오면 그 눈을 열어주겠다는 것입니다.
왜 이 사람이 이렇게 변했을까요? 너무 자기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으니까 속이 상하고 괴로운데 그때부터 이상한 사람들이 이런 사람에게 붙은 것 같아요. 아무도 자기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데 그 사람들은 자기의 이야기를 들어주니까 그리로 빠져들어가는 것이고 그런 사람들에게 이용당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정신의 맥을 이어가는 사람이라고 자칭하는 그런 사이비 교 비슷한 것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일겁니다. 그 모임에 그런 사람들이 보여요. 마음이 답답할 때 꼭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니면 마음이 답답할 때, 끌리는듯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뭔가 그럴듯한 것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안에서 나는 아주 중요한 사람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그래서 그들을 따라가게 됩니다. 그런데 그럴 때 찾아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 찾아옵니다. 우리를 이용할 목적으로 찾아옵니다.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지 않습니다. 결코 그런 사람을 따라가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은 너무 쉽습니다. 절대로 어렵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어려울 리가 없지요. 그런데 너무 쉽다보니까 이렇게 쉬울 수 있나? 그래도 좀 뭔가 구속도 있고 뭔가 해야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아닙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아주 단순하고 아주 쉽지만 이것이 진리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은 언제나 일정하지 않습니다. 완전히 믿는듯 하다가도 때로는 의심이 들 수도 있고, 믿음에서 떠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을 지속시키는 방법으로 계속해서 믿음에 머물게 하기 위해서 주일마다 예배를 드리라고 하고 또 그것도 부족하니까 새벽예배, 수요 예배, 금요 예배를 드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림으로서 믿음을 유지할 수 있고, 또 믿음을 키워가실 수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지우시는 유일한 짐입니다. 더 이상 어떤 짐도 없습니다. 더 이상의 짐이 필요하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자기의 유익을 위하여 우리를 이용하려고 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확고부동한 믿음을 가지시고 자유하십시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