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세가 한창이던 지난해 6월 21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동부 루한스크주 세베르도네츠크 인근 참호에서 피 범벅이 돼 누워있는 우크라이나 남녀 의용병이가 발견됐다. 이름은 각각 타라스 멜스터와 올라 멜스터. 이들은 서른한 살 동갑내기로, 부부였다.
타라스 멜스터와 올라 멜스터. /뉴욕타임스© 제공: 조선일보 타라스와 올라는 우크라이나 중부 키로보흐라드주(州) 크로피우니츠키의 유대인 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같은 학교를 다녔고 그곳에서 제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의 역사를 배웠다. 환경 보호에 관심이 많아 가끔씩 시위에도 참여했다. 대학을 마치고 2016년 두 사람은 “죽을 때까지 함께 하자”고 약속했다. 결혼 후 타라스는 웹사이트 개설 업무를, 올라는 온라인 베이킹 수업을 시작했다. 사회에 자리를 잡으면서 아기를 갖기 위해 노력했다. 평범했던 부부의 삶은 지난해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이 시작되면서 무너졌다. 타라스는 우크라이나 방위군에 합류하겠다고 결정했고, 그러자 올라도 남편을 따라 나서겠다고 했다. 이들은 러시아의 침공 바로 다음 날인 동반 자원입대했다. 군복무 경험은 없었지만 조국을 등질 수 없다는 생각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당초 이들은 크로피우니츠키 마을을 지켰다. 타라스는 여기서 검문소 경비를 맡았고, 올라는 음식을 만들어 주민들에게 제공했다. 하지만 개전 세달 만인 그해 5월 20일 러시아가 동부 돈바스(도네츠크와 루한스크 지역)에 화력을 집중하면서 전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타라스와 올라도 예상치 못하게 루한스크주 최전선으로 향하게 됐다. 단 하루 소총 훈련을 받고, 전방으로 이동했다. 악명 높은 러시아 체첸군과 민간 용병회사 와그너 그룹 선봉대가 주력으로 투입된 곳이었다. 수많은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죽어나간 지역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부부는 러시아군의 전진을 막는 임무를 맡았다.
남편 타라스는 최전방 참호에서 전선을 지켰다. 올라는 참호에서 2㎞가량 떨어진 지휘부 본부에서 임무를 수행해야 했다. 하지만 올라는 침낭과 총을 들고 본부를 벗어나 남편이 있는 전장으로 향했다. 당시 그가 참호에 왔을 때 지휘관을 포함한 동료 병사들이 “위험하니까 돌아가라”고 만류했으나 소용없었다고 한다. 이들 부부는 같은 참호에서 러시아군의 공격에 맞서 전선을 지켰다. 올라는 참호 위로 러시아군을 살피고 소총을 쏘며 적군을 물리쳤다. 한 동료가 “아내가 위험하지 않겠느냐”고 물었을 때, 타라스는 “서로 떨어져 있을 때 걱정이 더 커서 함께 내린 결정이다. 더 이상 그 얘긴 꺼내지 말라”고 딱 잘라 대답했다고 한다. 그해 6월 21일 오전 타라스와 올라, 그의 동료 비탈리 빌라우스는 여느 때처럼 참호에서 러시아군을 기다렸다. 이날은 오전부터 엄청난 포격이 가해졌다. 귀청이 떨어질듯한 폭발음이 들렸고 주변 나무는 산산조각이 났다. 참호 주변은 포탄 냄새와 자욱한 연기로 가득했다. 포격은 다섯시간가량 이어졌고, 전선에 있던 대부분 우크라이나 병사는 죽어나갔다. 타라스와 올라도 이날 숨졌다. 참혹한 모습이었지만 포탄이 날아오는 순간까지 서로의 손을 놓지 않았다. 이들과 함께 있었던 생존 병사가 목격한 부부의 마지막 모습이다.
지난 8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키이우 외곽 도시 부차의 한 공동묘지에 민간인 희생자와 전사자들이 안치되어 있다. /연합뉴스© 제공: 조선일보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20일 ‘그들은 결혼했고, 참호를 공유했고, 그곳에서 함께 삶을 마감했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두 사람의 이야기를 조명했다. 중산층 부부였던 타라스와 올라의 죽음이 현재 우크라이나 사회의 절망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에선 운동선수, 영화 제작자, 환경운동가, 관광 가이드 가수, 화가, 기업가 등 각자의 삶을 살아가던 전 계층이 전쟁에 동원됐다. 크로피우니츠키의 군사 묘지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또 다른 관이 들어오고 있다. 타라스의 아버지도 가끔 이곳을 방문해 아들의 무덤 옆에서 쉬었다 간다. 담배 한 개비는 아들의 무덤 옆에 놓고, 나머지 한 개비는 자신이 피운다. 타라스의 아버지는 NYT에 “나는 이 전쟁을 멈추기 위해 더 노력했어야 했다. 우리 모두 그랬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에겐 러시아에 대한 분노만큼이나 아들 딸을 전장으로 내몬 죄책감도 크다. 며칠 뒤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꼭 1년째이지만, 전쟁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달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는 전쟁 이후 우크라이나에서 민간인 6919명이 숨지고 1만175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양국 군 사상자는 수십만 명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