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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산청,함양) 공개바위~함양독바위~선녀굴~벽송사 (2012. 6. 17)
* 산청추모공원-꽃봉산-공개바위-베틀재-군계능선-함양독바위-신열암터-고열암터-의론대-선녀굴-벽송사능선-벽송사 * 산행시작~종료시간 ; 09시 30분 ~ 6시 40분 * 총 산행시간 ; 9시간 10분 = 산행 5시간 36분 + 정지 3시간 34분 * GPS 실거리 ; 약 15 km (이동+정지 평균속도 1.6 km/h)
* 산행지도와 고도표 ...... 참고하십시오. 본 지도의 등로(or 고도)는 GPS 트랙을 그대로 옮긴 것으로서 GPS 수신상태에 따라 등로(or 고도)와 약간의 차이가 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차이가 날 경우는 (별로 없지만) 약간의 편집, 수정작업을 하여 만듭니다.
※ 화살표 표시는 갈림길이 왼쪽이나 오른쪽 방향 표시일 뿐 특정지점 등로 방향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지도 원본 및 GPS 트랙자료 --> http://cafe.daum.net/galdae803
(지도를 클릭하시면 원본 크기가 됩니다.)
◎ <날짜> 2012. 6. 17. (일) 대체로 맑음
◎ <인원> 23명
◎ <산행 코스 및 주요지점 통과시간>
* 가는 길 ; 남대구나들목(07*21)-거창휴게소(08*01~26)-생초나들목(09*00)-산청추모공원(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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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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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추모공원 입구에서 좌측으로 가면 도로 우측에 <공개바위등산안내>안내도, 이정표<공개바위>가 있는 곳이 들머리 / 도로 반대편에 <방곡마을 ; ←상사폭포 1.8 / ↓동강 2.5>,<지리산둘레길 산청군 구간별안내>안내도 |
9*57~10*03 |
능선진입("T) <→동강 / ←공개바위, 베틀재 정상 / ↓방곡> |
10*12~ |
묵묘..우측 |
10*22~29 |
휴식 |
10*31 |
634봉 갈림길("T)..좌 |
10*34 |
△637.7봉 |
10*37~40 |
임도 진입...직진하여 산길을 이어가다 |
10*45~ |
삼거리(↑↘)...직진 (우;임도) |
10*56 |
삼거리(“Y)...좌(철망펜스 따라 진행) <산불조심>현수막, <산약초재배지역출입금지>푯말 (우;우회로) |
11*02~26 |
<꽃봉산 731m>푯말... 우회로 합류(↑↖) |
11*34~ |
운서 갈림길("T)...좌 <↓동강 / →운서>, <←공개바위 / ↓방곡> |
11*35~37 |
전망대 (휴천면, 함양독바위 조망) |
~ |
폐헬기장 |
11*42 |
공개바위 삼거리(←|) <←공개바위 / ↑베틀재 / ↓동강, 운서>...좌下 |
11*45~52 |
공개바위 <산청 방곡리 공개바위>안내문 |
~ |
BACK |
11*55~59 |
공개바위 삼거리 |
12*14~1*07 |
마당재 (좌측 지능선 갈림길) |
1*11 |
베틀재(Y")..우 <←오봉마을 / ↓공개바위 / ↗조개골> |
1*20~ |
전망대(오봉리 조망) (*↑) |
1*46~2*02 |
(좌) 바위벽 아래. |
2*14 |
군계능선 3거리(T")...우 |
2*19 |
삼거리(Y")...우 (좌우 길은 다시 만남) (좌;우회로 / 우;능선) |
~2*27 |
삼거리 (길 합류) |
2*28 |
“고열암터 4거리”로 내려가는 갈림길(-↑)(A지점) |
2*30~33 |
안락문... 통과하니 <통락문> 말뚝이정표 |
2*36~3*11 |
함양독바위 (독바위 아래 좌측 운서리 갈림길 有) |
3*14~16 |
신열암터 (등로 좌측) |
3*18~ |
고열암터 4거리..직진하면 고열암터 |
3*19~21 |
고열암터... BACK |
3*24~ |
의논대 (함양독바위/상내봉 조망).... 슬랩지대 下 |
3*33 |
솔봉 갈림길(↙|)...좌 (앞;솔봉 / 우;유슬이굴) |
3*36~46 |
선녀굴 입구에서 좌측에 선녀굴 <선녀굴>木푯말 / (우;용유담) |
~ |
빨치 산행(개척산행)... 벽송사능선을 향해 능선사면 횡단 |
4*25~42 |
2번째 지능선 |
5*06~15 |
벽송사능선 진입 |
5*30 |
845봉 |
~5*36 |
<국립공원>표석 |
5*37 |
송대 갈림길(↑-) |
5*39 |
<국립공원>표석 |
5*42 |
<국립공원>표석 |
5*46 |
표석 4거리..좌 우회로 (↖) (↑능선 / ↙어름터) |
5*55 |
능선재진입 (말뚝이정표) |
5*59 |
좌갈림길(-↑) <↓송대 / ↑벽송사>木말뚝이정표 |
6*05~13 |
벽송사 갈림길(↖|)..좌 <지리산길 ; ↖벽송사 0.7 / ↓송대마을 2.8> (직진;△ 709.2봉) |
6*22 |
임도(4거리)..우 (임도 따라 진행) |
6*25~30 |
벽송사 (삼층석탑, 도인송, 미인송, 목장승) / 주차장 맞은편 <지리산길 ; 송대마을 3.5 / 의중마을 2.1> |
6*38 |
서암정사 갈림길(←|) |
6*40 |
주차장, (매점) |
☞ 산행 개요
.지리산 안 가 본지도 오래 됐네.. 함양독바위 산행에 코 낑겨 안내를 맡게 되니 이리저리 생각이 복잡해진다. 다 접어두고 이왕 가는 거 알짜배기 코스를 그려보니 공개바위, 함양독바위, 동북부 절터 일부, 빨치산루트로 대략 간추려지네... 지리산하면 빨치산 비극의 역사를 논하지 않을 수 없으니 빨치산 역사와 빨치산의 은신처인 비트, 옛 선인들의 수행처인 헛절터와 독바위에 대해 자료를 공부해야 의미 있는 산행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최대한 많은 볼거리와 의미 있는 산행을 만들고자 한다. 공개바위는 방곡리 가현교에서 보통 많이 가지만 이번엔 산청추모공원에서 접근해 꽃봉산 끼워 넣고 지리 특유한 호젓하고 포근한 육산의 능선을 따라 한국판 피사의 탑이라는 공개바위 찍고 지리산 3대 독바위 (진주독바위, 하동독바위) 중 함양독바위 올라가 기를 받고 옛 선인들의 수행처인 신열암터, 고열암터, 의론대, 선녀굴까지 탐방한다. 문제는 다음부터다.. 선녀굴에서 하산 길은 용유담으로 가는 게 정석인데 송대마을에서 용유담까지 포장길 40여분을 무더운 날씨에 걸어가는 게 문제다. 버스 진입이 곤란하기 때문이다. 대원들에게 문의한 결과 벽송사로 가고 싶다고 하니 선녀굴에서 다시 되돌아 독바위까지 가서 상내봉을 거쳐 벽송사로 가야되는데.... 선녀굴에서 벽송사능선으로 바로 횡단한 산행 트랙이 있어 과감히 도전해보기로 한다. 물론 길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는 걸 미리 알려 주었는데.... 결국 벽송사능선으로의 접근은 빨치산행이 되고 만다. 험난한 산사면 횡단은 길이 없는 우거진 숲에 바위, 너덜, 넝쿨 등등의 장애물을 뚫고 겨우 벽송사능선에 접근 후 벽송사까지는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참고로 지리탐구 산행팀의 인용된 글이 있음을 밝힌다. 아쉬운 점은 함양군에서 예전에 송대마을과 선녀굴, 벽송사능선, 함양독바위를 중심으로 한 ‘지리산 공비토벌 루트’를 만들어 이정표와 안내문, 빨치산 비트 등을 만들었으나 모두 철거하여 지금은 없다. 돈 들여 만들어놓고 돈 들여 철거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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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청추모공원
.1951년 2월 7일 경남 산청, 함양사건 희생자 합동묘역으로 지리산 공비토벌 작전 중 억울하게 희생된 민간인 705명의 영령들을 모시는 곳인 산청추모공원 內 주차장(무료)에서 버스는 우리 대원들을 토해낸다. 추모공원을 잠시 둘러보고 입구로 나와 우측으로 조금만 가면 도로 좌측엔 지리산둘레길 안내도와 <방곡마을 ; ←상사폭포 1.8 / ↓동강 2.5>,<지리산둘레길 산청군 구간별안내>안내도가 있으며 도로 우측에 공개바위 안내도와 이정표가 있다. 벤치 있는 곳 <공개바위> 이정표 방향으로 산길로 진입하자 곧 흙이 파헤쳐진 곳에서 등로가 끊어진 듯 하여 질러가니 묘가 보이고는 길이 안 보인다. “여기 길 있다~~”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흙이 파헤쳐진 곳을 통과하지 말고 우측으로 잡풀을 넘어가니 길이 다시 열린다. 곧 시멘트 수로 따라 올라가니 우측으로 산청추모공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지점을 통과하자 곧 우측갈림길과 좌측 갈림길을 연속으로 지나가는데 길이 뚜렷하지 않은 채 소로 오름길만 이어지는데 묘를 지나자 희미한 길을 이탈하여 우측으로 조금 가니 반듯한 길이 올라오고 있다. “ 어~ 어디서 올라 온 길일까 ?” 분명 들머리는 맞는데 어디서 길을 잘못 들었을까 ? 혹 산청추모공원內에서 올라 온 길일까 ? 반듯한 등로는 산허리를 따라 가다 小지류 두 곳을 연속으로 지나자 능선에 올라서게 된다. <→동강 / ←공개바위, 베틀재 정상 / ↓방곡> 일단 여기까지 왔으니 이후 등로는 문제없다 하겠고 지리 특유의 육산 포근한 산길과 우리팀만 있는 호젓한 산행이 되겠네..
► △637.7봉을 지나 임도로 내려앉는다.. 다시 산길로...
.단체 휴식 후 △637.7봉을 향해 올라가는데... 조금씩 숨이 가팔라진다.... 가슴도 콩닥콩닥 뛴다... 묵묘가 있는 곳에서 우측으로 이어가면서 올라가는 게 꽤나 힘들게 느껴진다. 몸이 좀 피곤했는데 그 여파가 그대로 느껴지니 오르는 중 한판 쉬고 오름길이 끝나는 T 자로 갈라진 634봉 갈림길에서 좌로 가면 묘터를 지나자 삼각점 △637.7봉을 지나 내려가니 임도로 내려앉자 임도 좌측으로 몇걸음 가면 함양독바위가 마치 상투머리처럼 능선 상에 우뚝 솟아 보인다. 조금은 흥분되는 순간이다. 모두들 이 함양독바위를 보러 왔으니까....
► 포근한 산길
.임도 건너 산길로 곧장 이어간다. 역시나 포근한 육산의 전형적인 산길이다. 지리 주등로의 인위적인 돌길은 정말 싫다. 좌측으로 (포장)임도가 보이는 지점에서 우측 뒤로 산길이 갈라진다. 직진한다. 다시 오름길 시작지점이다. 개소리가 계속 들리는 걸 보니 벌써 우리를 환영하려나보다. 아마 산약초 재배 농가의 보초견인가 보다. 마주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좌측으로 포장임도가 농가까지 이어져있네..
► 꽃봉산
.산약초 재배지역을 알리는 철망펜스가 나온다. <산불조심>현수막, <산약초 재배지역 출입금지>푯말 여기서 길은 표시기가 많은 우측으로 우회토록 되어있지만 능선을 고집한다. 꽃봉산 직등 길이다. 철망펜스를 따라 올라가니 잡목 가득한 폐헬기장을 지나 철망펜스가 좌측으로 꺾이는 지점 앞에 <꽃봉산 731m>푯말이 나무에 걸려있다. 우측으로 우회로가 합류된다. 숲속봉우리라 조망 없지만 우리 대원들과 함께 모여 단체휴식 후 다시 출발~~~
► 공개바위.... 한국판 피사의 탑
.내려가자마자 ‘山’ 표석을 지나 다시 오르니 <↓동강 / →운서>, <←공개바위 / ↓방곡>이정표 2개가 있는 운서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바꾸면 전망대가 나온다. 휴천면 일대와 다른 각도로 보면 함양독바위가 다시 보인다. 방향은 남쪽으로 이어지면서 잡풀 가득한 폐헬기장을 지나 산죽군락을 따라 가면 공개바위 삼거리이다.(←|) <←공개바위 / ↑베틀재 / ↓동강, 운서> 좌측으로 잠시 내려가면 공개바위이다. 공개바위는 앞에서 보면 5개로 보이고 뒤에서 보면 한 개가 덜 보이는 것 같은데 잡목 때문이라.... 공개바위 뒤쪽 <산청 방곡리 공개바위>안내문을 지나면 방곡리 가현교로 내려가게 된다.
* 공개바위(755m) : 경남 산청군 금서면 방곡리
.인적이 드문 깊은 숲 속, 미스터리한 바위 탑, 사람이 쌓았다고 하기엔 그 크기가 너무나 거대하고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기엔 그 형상이 너무나 신비로운 바위 탑. 비스듬히 쌓인 채 무너지지 않고 버티고 있는 이 바위 탑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채 지리산 깊은 숲 속 오랜 세월 숨어있던 거대 5층 바위 탑의 실체를 SBS '순간포착 ! 세상에 이런 일이‘ 에서 그 미스터리를 공개 했다. 2006년 3월 17일 조선일보에서도 기사화된 경남 산청군 금서면 병곡리 지리산 자락에 소재한 공개 바위로서 산청군은 이 탑을 경상남도 지정문화재 지정신청을 하기위해 2007.1.12 계명대, 경상대 교수님 두 분과 경남 문화재 담당 공무원까지 실사를 마쳤고 2007년3월 24일 경상남도 문화재 관리위원회에서도 기념물로 지정 하였다. 일본의 문예춘추 사진부 기자도 직접 와서 사진을 촬영해 갔고 나중에 잡지에 실렸다고 한다.
.피사의 사탑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5층 바위탑으로 산청군 금서면 방곡리 야산 755m 능선상에 있는 이 바위탑은 5개의 육면체의 바위로 이뤄져 추정 무게만 100톤. 높이 12.7m. 둘레가 12.4m 나 된다. 산비탈 경사가 60도나 되는 곳에 서있는 5개 돌덩이는 25도 각도로 곧 기울어져 넘어질 듯 아슬아슬한 모습이다. 등산로에서 벗어나 있어 그동안 인근마을 주민들만 그 존재를 알다가 모습이 드디어 공개 되었다. 하지만 자연석인지 아니면 토속신앙을 위해 만든 인공 탑인지 알려지지 않았으며, 언제 만든 것인지 산청군에도 기록은 없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 지리산에는 삼베 구만필로 짠 치마를 두른 거대한 마고할미가 살았는데 공기놀이를 좋아하였다고 하는데 어느 날 마고할미가 떠나면서 가지고 놀던 공깃돌 5개를 포개 놓았는데 그 공깃돌이 바로 공개바위라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지역주민들도 이 바위 탑을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로 여기고 있다. “사람이 쌓았다기에는 너무 거대하고 자연이 만들었다기엔 형상이 너무 신비스럽다며” 전문가 등의 현장 확인결과 지렛대로 바위를 이동 시킬 수 없을 만큼 가파른 지점에 있어 자연풍화작용으로 돌탑이 형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공개바위라는 확실한 어원은 공기 돌 놀이(5개)의 경남 서북부 방언은 공개놀이라 하며 아주 오래전부터 이 지방 사람들은 이에 연유되어 공개바위라고 불렀다. 방언에서 유래된 것이지만 이미 고유명사화 된 것이어서 공개바위라고 한다.
► 마당재 ~ 베틀재 ~ 군계능선3거리
.되돌아 공개바위 삼거리로 올라와 좌측으로 진행하자마자 능선을 우회하다 다시 능선을 따르면 좌측으로 지능선이 갈라지는 마당재에 이르는데 그냥 봐서는 잘 모른다. 내려앉은 안부가 아닌 지능선 갈림길이다. 여기서 식사 후 직진하듯 우측으로 진행하면 잠시 후 <←오봉마을 / ↓공개바위 / ↗조개골>이정표가 있는 베틀재(Y")에서 조개골 방향인 우측으로 가면 다시 오름길이 이어지니 군계능선3거리까지 꾸준히 올라야 할 능선이다. 산죽은 간간히 계속 이어지는 구간이기도 하다. 등로 좌측에 조금 떨어진 전망대(오봉리 조망)(*↑)를 지나고 (우측)바위군도 지나고 다시 좌측에 커다란 바위벽 아래에서 잠시 전열을 가다듬고 군계능선3거리까지 올라선다.
► 안락문과 통락문... 각기 다른 세상일까 ?
.여기부턴 선두로 나와 우측으로 간다. 5분 후 산죽 사이로 등로는 둘로 나뉘는데 갈림길 어느 쪽으로 가든 다시 만나게 되어있다. (좌;우회 / 우;능선) 우측으로 능선을 따르면 ‘하봉’ 붉은 글씨가 적힌 바위를 지나 봉우리를 넘어 내려가면 좌측에서 내려오는 길과 만나고 “고열암터 4거리”로 내려가는 갈림길(-↑)(A지점)을 지나면 커다란 바위틈새가 있는 안락문(安樂門)이 나온다. 바위틈새처럼 생긴 이 석문은 현재까지 알려진 지리산 석문 중에 길이가 가장 길고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安樂門이라고 쓰인 붉은색의 각자가 다른 각자보다 특이하다. 이 석문이 왜 안락문일까 ? 지리산 토벌작전 때 이 문을 통해서 내려오면 안락한 생활을 보장해 준다고 회유한 데서 유래 되었다나 ? 믿거나 말거나 ... 언제 누가 뭐 땜에 쓴 것인지 궁금할 뿐이다. 누군가에 의해 안락문이라고 이름 붙여져 있지만 예전엔 그곳을 금강대라고 이름 불렸다고 했다.
.전설에 의하면 바위 두개가 쪼개져 있는 그곳에 엽전만한 금부처가 있는데 도인이 나타나면 그것을 찾을 수 있다는 전설을 믿고 노장대에 살았던 손종만 씨는 그곳에서 부처를 찾는다고 어렸을 적에 많은 고생을 했다는 후문도 들려 온 곳이다. 바위틈새 안락문을 통과하면 <통락문> 말뚝이정표가 있다. 같은 장소를 두고 통락문으로도 부르는 것은 안락사(安樂死)가 실패하면 통락사가 될 수도 있음에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그런데 바위면에 안락문(安樂門) 각자가 또 표시되어 있네......
► 함양독바위
.거대한 바위벽을 따라 왼쪽으로 돌아가니 독바위 아래 공터에 닿는다. 예전에 <함양독바위>안내문이 있었던 곳인데 안내문은 사라지고 없다. 그때의 안내문을 잠시 소개하면... <함양 독바위 ; 함양독바위에서 생성한 상대날등과 황새날등을 좌우로 거느린 음달골이 오죽 깊고 험했으면 “그곳에 가면 사흘 안으로 나오기 힘들다” 는 말까지 전해져 올 지경이다. 한국동란 지리산 전사에도 등재되어 있는 노장동 전투에서는 골짝의 요새 같은 지형 탓에 피아간에 수없는 혈전이 수 없이 이루어져 아군의 피해가 막심했었다고 한다 ; 함양군>
.독바위로 오르는 밧줄이 바위에 아직도 남아있네... 근데 낡아 위험해 보인다. 보조자일이 꼭 필요하다. 독바위 오르는 밧줄아래 왼쪽 下길은 운서리로 이어진다. 밧줄 붙잡고 올라가 독바위 정수리까지는 남겨두고 전망좋은 바위에서 독바위 정수리와 주변 일대를 바라보는 기분이 마치 새가 된 듯 훨훨~ 날아가고 싶네....
“함양독바위는 생긴 모습도 특출하고 대단하거니와 주변의 지형을 보면 풍수쟁이가 아니더라도 예사롭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뒤로는 크게 상내봉능선과 면계능선이 독수리 날개 모양으로 독바위를 감싸고 있고 엄천강이 포근하게 받치고 있어 환상적인 배산임수 지형이다. 독수리 머리에서 지맥인 황새날등이 시원스레 뻗어 내리고 있는 정수리에 독바위가 기품을 품어내며 서있다. 어디 그뿐이랴. 펼쳐진 날개 안쪽으로 또 다시 양쪽의 솔봉능선과 상대날등이 황새날등을 이중으로 근접호위하며 품고 있는 형상이다. 여기에다가 하늘이 일부러 천하 명당자리에 내려준 듯 암자터와 동굴을 이룬 바위들이 그렇게 많으니 노장대 마을의 연유가 그러하듯이 예로부터 수행자들과 비결꾼들이 몰려들 수밖에 없는 명당이다. “한 부인이 도를 연마하여 하늘로 올라갔다”는 독녀암의 전설은 듣고 흘려버릴 야사가 아닌 실체의 역사로 다가온다.“
► 함양 독바위의 별칭
.굳이 이 바위의 명칭에 함양이라는 지명을 부치는 이유는 동부능선의 진주독바위와 구별을 위한 것으로 두 독바위가 이름은 같아도 어원은 다르다. 동부능선의 진주(산청)독바위는 독아지를 닮았다고 해서 항아리 옹(甕)자를 부쳐 옹암(甕巖)이라고 하여 독(甕) 바위가 되었고, 이 곳 함양독바위는 예전에 늙은 무녀가 혼자서 기도를 드리던 곳이라고 독녀암(獨女巖)이라 부른데서 독(獨)바위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 독녀암을 두고 산 아래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은 각각이다. 산청 쪽의 화개 사람들은 상투를 닮았다고 상투바우라 하고, 함양의 휴천 사람들은 독아지를 닮았다고 장독바우라 부른다. 또 한 마천 쪽 사람들은 筆鋒이라 부르기도 하기에 마천의 60번 도로 위에서 확인해 보니 붓끝을 닮기도 했으나 가장 두드러진 형상은 유림 쪽에서 본 상투 모양의 독바위 모습이다.
.예전에 함양군에서 운암마을에서 노장동을 거쳐 이곳 독녀암 까지를 빨치산 탐방루트로 지정을 해서 함양 독바위를 “노장대” 라고 하였으나 한국전쟁까지 노장동에서 5대를 살았다는 <손종만>씨 외 여러 지역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노장대는 토착민들이 부르는 노장동 마을의 별칭이며 함양독바위와는 전혀 무관하다고 한다. 노장대는 노장동 마을의 옛 이름이라고 하는데 아마도 일제강점초기에 전국적으로 행정구역을 정리할 때 행정표기상 노장대 마을이 노장동으로 바뀐 듯하다. 독바위는 그 예전부터 독바위라고 불렀다고 문헌에도 나와 있다. 다섯 개의 거대한 바위로 구성된 함양독바위는 한 부인이 이 바위 사이에 돌을 쌓아 거처를 만들고 그 안에서 혼자 살며 도를 닦아 허공으로 날아올랐다고 하여 독녀암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돌을 쌓아 놓은 것이 여태 남아 있어 독녀암의 [독]자를 인용하여 독바위라 전해졌다 한다.
► 신열암터
.독바위를 내려와 공터를 나와 우측으로 잠시 내려가다 왼쪽 사면길로 이어가야 한다. 계속 내려가면 안 된다. 이젠 두 번째 과제인 신열암터를 찾아간다. 저번에 왔을 땐 몰라서 스쳐지나갔는데 눈여겨 바라보며 가다 좌측 나무 숲 사이로 커다란 바위벽이 보인다. 이거다... 길만 쳐다보면 볼 수가 없다. 좌측으로 잡목을 헤집고 들어가니....... 신열암터다..... 커다란 바위벽 아래 샘터와 빈 공터가 있다.
“신열암 암자 터는 정확히 독바위에서 서쪽으로 2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해 있으며 큰 바위를 등진 곳에 암자의 필수 조건인 샘이 있고 축대의 흔적과 구들장돌, 기와조각과 옹기 및 자기파편이 주변에 널려있고 묻혀있다. 옛날 고승들은 절터를 잡을 때 먼저 그곳의 물맛을 보고 잡았다 하더니만, 바위틈에 절묘하게 자리 잡은 석간수는 아직도 물이 마르지 않고 있고, 물맛은 흔히 말하는 감로수 수준이다. 앞서 지나온 수십 길 벼랑 위에 터 잡은 선열암이 고행승의 수도처 같았다면, 이 곳 신열암은 암자 터가 편안하고 아늑해서 학승의 공부도량 같은 곳이다. 구름처럼 떠도는 운수납자를 주저앉게 하는 눅진한 그런 곳이다. 한편 산 아래 사람들은 이곳을 “독바우 금강대” 라고 부른다. 지금 현존하는 사람들은 본 적이 없지만 금강대와 주지승에 관한 얘기들을 선대 어른들로부터 자주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한국전쟁 직후까지 신열암터에는 거의 원형의 기왓장이 많았었다고도 한다. 이러한 편력으로 보아서는 신열암은 암자 이름이 어느 때인가 금강대로 바뀌면서 거의 19세기 초까지는 존재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 고열암터
.등로로 되돌아나와 2분만 더 가면 길이 여러 개 갈라지는 곳이 나온다. 자세히 보면 사거리이다. 허리 높이만한 바위가 있으니 참고하면 될 것 같다. 편의상 고열암터 4거리라 하자. 고열암터 보고 선녀굴로 내려가야 할 지점이다. (우측)선녀굴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있으며 좌측으로 올라가면 A지점 갈림길에 닿는다. 직진 40m정도 가면 고열암터이다. 주변엔 기와조각이 여러 널려있으며 왼쪽에 커다란 병풍처럼 둘러진 바위 아래 터가 있으며 샘터가 있으나 고여 있는 물이라 식수라는 곤란할 것 같다. 사람이 계속 기거했다면 식수 가능할 것이다.
“이 곳엔 근세에 누가 기도터로 사용을 했는지 기와조각들로 축대를 쌓고 구들장 흔적까지 있다. 이곳에는 후세의 누군가가 기도터를 삼아 정착을 하였던지 아예 기와파편으로 석축을 쌓아서 축대를 만들어 놓았다. 고열암은 예전에 일반대중의 기도 도량이었다기보다는 학승이나 구도승의 도량이었을 것이다.”
예전 <고열암에서 자다>안내문이 있었던 곳인데 왜 안내문을 철거했는지... 중요한 의미 있는 자료일 것인데...
<고열암에서 자다[宿古涅庵]> 병든 몸을 지탱하고자 하여 잠시 포단을 빌려 깔고 자는데 소나무 파도가 달빛 아래 들끓으니 구곡에 노니는 듯 착각케 하네 뜬구름은 또한 무슨 뜻인고 한밤중엔 바위 골짜기 닫혀 있구나 오직 정직한 마음을 가진다면 혹 산신령의 비록(備綠)을 얻을는지 -김종직의 “유두루록” 중에서- <함양군>
위의 글은 <김종직 ; 조선초기 성리학자, 호는 점필재, 함양군수 역임(1470년~1475년), 1472년 지리산 기행문 “유두루록” 지음> 선생이 함양관아에서 출발하여 지장사, 선열암, 신열암 등 세 암자를 거쳐 그 날의 숙박지인 고열암에서 천왕봉 등정 길 산행 첫 밤을 묵은 후 지은 時이다.
► 의논대
.고열암터에서 되돌아 나와 고열암터 4거리에서 좌측으로 향한다. 1~2분여 가면 바위 사이 길로 들어가면 바위군이 있는 곳 좌측에 돌출된 바위전망대가 의논대이다. 이곳을 옛 선인들은 삼반석이라고도 했으며, 함양독바위 조망이 가장 좋은 곳이다. 슬랩지대에 소나무가 있는 곳은 상내봉 및 벽송사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수 십 명이 앉아서 쉴 수 있는 면적의 너럭바위가 있으며 절벽 아래에 석굴(石窟)이 있는데, 그곳에 기거하는 노숙(老宿) 우타(優陀)가 그 곳에 거처하면서 인근의 세 암자 선열암, 신열암, 고열암의 중들과 함께 이 돌에 앉아 대승(大乘), 소승(小乘)을 논하다가 갑자기 깨달았으므로 의논대라 한다.”
► 선녀굴 암자터의 비화
.슬랩지대를 내려가 오솔길처럼 포근한 숲속길이 계속 이어지는 도중에 뚜렷한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간다. (직진은 솔봉(916m)으로 이어지는 능선 / 우;유슬이굴) 2분 후 조그마한 바위가 있는 곳이 선녀굴 입구이다. 여기서 좌측으로 10m 가면 <선녀굴> 나무푯말이 걸린 선녀굴이 나오고 우측으로 가면 송대마을, 용유담 가는 길이다)
“큰 바위들을 등지고 석간수가 풍부한 이곳도 절터의 흔적으로 기와파편이 널려있고 이 곳 역시 금낭굴 암자 터와 같이 무명암자이다. 의논대에서 인근 세 암자의 중들과 대승 소승을 논했다는 노숙 우타스님이 거처했던 곳이 이 곳 선녀굴이 아닌 가 추측을 해본다. 이 암자 터는 해방 직전까지만 해도 작은 암자가 있어서 스님이 가끔씩 송대리에 내려와서 소금을 얻어가고 했다고 한다. 바위틈에서 선녀가 목욕을 했던 전설이 있던 곳으로 역사적으로는 여성 빨치산 이은조가 사살된 곳으로서 절벽 아래에 동굴이 있고 굴 앞에는 바위가 가로막아 바깥쪽에서는 눈에 잘 띄지 않은 은신처로 적당한 곳이다. 바위 안쪽에는 제법 널따란 공간이 있으며 옆에는 샘물까지 있어 빨치산이 은둔하기에는 정말 좋은 장소였던 것 같다. 바위 앞에는 네모반듯한 터가 있으며 굴비트와 샘터도 있다. 선녀굴에는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샘물이 있는데다 좁은 입구와는 달리 안이 넓은 2중 동굴이어서 굴 내부에서조차 안이 잘 보이지 않아 빨치산의 은신처로 적당한 곳이었다고 한다. 근방에는 이와 비슷한 동굴이 5개나 더 있다.“
* 선녀굴 : 선녀굴은 바위틈에서 선녀가 목욕을 하던 전설이 있으나 예쁘고 고운 이름에 걸맞지 않게 처절한 한국전쟁의 비화를 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함양군 휴천면 송전리 송대마을 뒤 해발 약 1000m에 위치한 선녀굴은 마지막 여성 빨치산이었던 망실공비 3인 부대인 정순덕, 이홍이, 이은조 3인방이 10여년 동안 은거해 있었던 곳이며 여기서 정순덕과 함께 했던 마지막 빨치산 이은조(45세. 이북출신의 남파 공비)가 1963년 2월 토벌대에 사살되었다고 하는데 이는 1963년 11월 정순덕이 체포되면서 증언하였다고 한다. 한때는 부처님의 도량이었던 작은 무명암자 터 이곳도 지리산의 여느 사찰들과 마찬가지로 전쟁의 참화는 피해갈 수 없었다. 이 암자 터는 해방직전 까지만 해도 작은 암자가 있어서 스님이 가끔씩 송대리에 내려와서 소금을 얻어가고 했다고도 한다.
* 선녀굴 암자터 ; 선녀굴은 예쁘고 고운 이름에 걸맞지 않게 처절한 한국전쟁의 비화를 안고 있는 곳입니다. 빨치산 정순덕이 지리산에서 최후의 3인부대로 떠돌던 중 3인중의 한 사람인 이북출신의 남파 공비인 이은조(45세)가 사살된 현장입니다. 1961년 12월 어느 날 선녀굴 앞에서 아침밥을 짓고 있던 중 토벌대의 총격에 이은조가 사살이 되고 나머지 잔비 정순덕과 이홍희는 이은조의 시체를 선녀굴 석간수 바로 앞에 대강 매장을 했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2년 후 1963년 11월 정순덕이 내원골에서 체포가 되어 산청경찰서에 수감 중 이은조의 주검을 확인하는 현장검증이 이루어지던 날 이었다고 합니다. 선녀굴의 선바위에는 그 때의 총탄흔적들이 남아있어 당시의 역사를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한때는 부처님의 도량이었던 작은 무명암자 터였던 이곳도 지리산의 여느 사찰들과 마찬가지로 전쟁의 참화는 피해갈 수 없었나 봅니다.
“.추성의 석덕완 할아버지부터 1962년 지리산 선녀굴에서의 마지막 빨치산 사건(정순덕, 이홍이, 이은조)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예전에 그것을 정리해 둔 적이 있습니다. 석덕완 할아버지께서는 1962년 선녀굴에서 문영만으로부터 이은조가 사살당하고 그 다음날 마천 방위대의 일원으로 선녀굴 부근을 직접 수색했던 장본인으로서 자세한 내막을 알고 계시더군요...”
......이은조의 사망 년도가 왜 다를까 ???
► 빨치산에 왔으면 빨치산이 되어라 ~
.여기서부터 결정해야 할 일이 생기니 벽송사로 하산은 정해져 있으니 정석대로 간다면 다시 독바위로 되돌아가서 상내봉삼거리에서 상내봉을 넘어 내려가야 한다. 그렇게 하면 되는데.... 되돌아가기가 .... 선녀굴에서 벽송사능선인 상내봉 아래 능선으로 횡단하여 질러 간 정보가 있어 그 길을 찾아보지만 길이 보이지 않는다. 선녀굴을 마주보고 우측으로 가면 사면으로 오른 흔적이 있으나 이것은 고열암터로 가는 길이네.. 메아리님과 함께 주변 길을 찾아보지만 흐트러진 나무와 잡목만이 존재한다. 길 찾기를 포기하고 다닐 만한 토끼길이라도 있기를 기대하며 횡단하기로 한다. 빨치산이 따로 있나 ? ... 우리가 빨치산이다. 빨치산행을 한다.
.메아리님과 함께 좌우로 벌려 진행하기 편한 쪽으로 진행하지만 여의치 않네.. 각종 장애물인 너덜, 넝쿨, 잡목, 바위 등을 요리조리 피해 가면서 벽송사능선을 향하되 되도록 오르지도 내려가지도 않게 일정한 고도를 유지한 채 산사면을 타고 진행한다. 위험요소가 다분히 존재하는 깊은 산속은 진행속도가 나질 않는다. 선녀굴에서 벽송사능선까지 900~960m 를 유지한 도상거리 약 1 km 거리... 아직 해가 저물 시간은 많이 남아있어 그리 염려치 않으나 뒤따라오는 대원들의 두려움과 안전사고가 염려된다. 뺀질한 등로만 따라 다니다가 이런 빨치산행, 개척산행은 처음인 분이 염려스럽다.
.최대한 앞뒤 거리 간격을 유지하며 보다 진행하기 쉬운(?) 곳으로 간다고 가지만 이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네.. 때론 바위너덜을 피해 내려가다 다시 위로 올라가기도 한다. 잡목과 넝쿨에 잡혀 생포되기도 한다.. 고로쇠호스가 보이지만 이것 따라 가면 안 된다. 그들의 방향은 결국 아랫동네로 떨어지니까.... 지능선을 하나 넘어 다시 지능선에 올라서서 단체 휴식하기로 한다. 대원들 모두 휴식을 취하고 재정비한 후 다시 산사면을 타고 들어간다. 일부 여기서 지능선 치고 올라가야 하지 않느냐고 하는데... 물론 제일 올바른 방법이다. 하지만 여기서 올라가는 게 더 힘들 것 같다. 속도는 더디고 조금 어려운 횡단방법이지만 거리상 얼마 남지 않았기에 조심한다면 괜찮을 것 같다.
► 벽송사능선
.빨치산행의 횡단은 세 번째 지능선에 다다르자 길이 있는 듯하여 올라가니 곧 지리탐구팀의 표시기가 보이고 길이 이어지더니 이내 뚜렷한 길이 나온다. 와우~~~ 벽송사능선에 붙었다.... 다행히 모든 대원들이 안전하게 빨치산행을 경험하게 되었네... 다행이다. 단체로 모여 간식을 먹을 때는 모두들 꿀맛 같은 기분이다. 빨치산행 1시간 30여분 했네...
.이후 벽송사능선은 탄탄대로다. 푹신한 융단길이다. 빨치산이 되어 횡단한 길(?) 덕에 이후 산길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커다란 바위를 우회한 뒤 올라 선 845봉을 넘어 묵묘터와 <국립공원>표석을 지나니 금줄이 쳐진 송대 갈림길(↑-)이다. 여기부턴 지리산길 공식루트길이다. 안전지대인 셈이다. 작은 봉우리를 넘어 내려서자 연이어 두 개의 <국립공원>표석을 지나니 표석이 있는 4거리가 나온다. 좌측 앞뒤로 두 가닥, 직진 능선길이 있는데 좌측으로 우회하여 진행한 후 말뚝이정표가 있는 능선에 재진입한 후 다시 <↓송대 / ↑벽송사> 木말뚝이정표가 있는 좌갈림길(-↑)을 지나 묵묘를 지나니 <지리산길 ; ↖벽송사 0.7 / ↓송대마을 2.8>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직진;△ 709.2봉)
► 벽송사.... 도인송, 미인송, 목장승
.험난했던 빨치산행을 마감하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배도 고프고 힘이 쪼옥~ 빠지네.... 임도로 내려앉아 우측으로 임도 따라 가면 벽송사 경내로 진입하여 <삼층석탑, 도인송, 미인송> 푯말을 따라 벽송사 경내을 둘러보고 도인송과 미인송을 본 후 되돌아 나오면 주차장 맞은편 <지리산길 ; 송대마을 3.5 / 의중마을 2.1>이정표에도 들머리가 하나 더 있다. 이후 포장 길 따라 내려가면 서암정사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내려가면 주차장이다. 매점에서 맛 본 동동주 한잔이 꿀맛이다... 휴 ~~ 디... 다....
* 벽송사(碧松寺)
.조선 중종시대인 1520년 벽송지엄(碧松智嚴)선사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서산대사와 사명대사가 수행하여 도를 깨달은 유서 깊은 절이다. 특히 한국전쟁으로 시작된 지리산 빨치산들의 암약(당시 벽송사는 빨치산의 야전병원으로 이용됨)으로 말미암아 국군에 의해 방화되어 완전 소실되는 슬픈 역사를 맞이하게 되었다. 6.25의 전란 속에서 불타버린 옛 전각을 어렵게 어렵게 중창하여 쇄락해질 대로 쇄락해진 사찰을 지금 서암정사에 주석하시는 경허스님 석호스님 석암스님으로 이어지는 한국불교 정통 법맥을 이으신 원응 큰스님께서 중창하시고 그 명맥을 이으셨다고 전한다. 벽송사에는 신라 양식을 계승한 3층 석탑(보물 제 474호)과 경남 유형문화재인 벽송선사진영. 경암집 책판.묘법연화경 책판과 경남 민속자료 제2회인 목장승의 문화재가 보존되고 있다. 특히 목장승은 변강쇠와 옹녀의 전설이 깃들어 찾는 이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선방 뒤 탑전 앞에 천년의 세월을 묵묵히 서 있는 “도인송(道人松)”과 “미인송(美人松)”의 전설 또한 유명하다. 예로부터 목장승에 기원하면 애정이 돈독해지고, 도인송의 기운을 받으면 건강을 이루고 한 가지 소원이 이루어지며, 미인송에 기원하면 미인이 된다는 말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 산행 사진 ▼
독바위가 보인다....
산청추모공원.
산청추모공원 內 주차장(무료).
추모공원을 잠시 둘러보고 입구로 나와 우측으로 조금만 가면....
도로 좌측엔 지리산둘레길 안내도와 <방곡마을 ; ←상사폭포 1.8 / ↓동강 2.5>,<지리산둘레길 산청군 구간별안내>안내도가 있으며 도로 우측에 공개바위 안내도와 이정표가 있다.
도로 우측에 공개바위 안내도와 이정표가 있다. 벤치 있는 곳 <공개바위> 이정표 방향으로 산길로 진입
시멘트 수로 따라 올라가니...
우측으로 산청추모공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지점을 통과
능선에 올라서게 된다. <→동강 / ←공개바위, 베틀재 정상 / ↓방곡>
삼각점 △637.7봉
임도로 내려앉자.........임도 건너 산길로 곧장 이어간다.
임도로 내려앉자 임도 좌측으로 몇걸음 가면 함양독바위가 마치 상투머리처럼 능선 상에 우뚝 솟아 보인다. .
산약초 재배지역을 알리는 철망펜스가 나온다. 여기서 길은 표시기가 많은 우측으로 우회토록 되어있지만 능선을 고집한다. 꽃봉산 직등 길이다.
<꽃봉산 731m>푯말이 나무에 걸려있다. 우측으로 우회로가 합류된다.
내려가자마자 ‘山’ 표석을 지나
<↓동강 / →운서>, <←공개바위 / ↓방곡>이정표 2개가 있는 운서 갈림길.
운서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바꾸면 전망대가 나온다. 휴천면 일대와 다른 각도로 보면 함양독바위가 다시 보인다.
잡풀 가득한 폐헬기장
공개바위 삼거리이다.(←|) <←공개바위 / ↑베틀재 / ↓동강, 운서>.
공개바위는 앞에서 보면 5개로 보이고 뒤에서 보면 한 개가 덜 보이는 것 같은데 잡목 때문이라.....
잡목이 없을 때의 공개바위... 5개가 뚜렷하다 (퍼온 사진)
뒤에서 보면 한 개가 덜 보이는 것 같은데 잡목 때문이라....
<←오봉마을 / ↓공개바위 / ↗조개골>이정표가 있는 베틀재(Y")에서 조개골 방향인 우측으로..
좌측에 커다란 바위벽 아래에서 잠시 전열을 가다듬고 군계능선3거리까지 올라선다.
산죽 사이로 등로는 둘로 나뉘는데 갈림길 어느 쪽으로 가든 다시 만나게 되어있다. (좌;우회 / 우;능선)
‘하봉’ 붉은 글씨가 적힌 바위를 지나...
커다란 바위틈새가 있는 안락문(安樂門)이 나온다.
바위틈새 안락문을 통과하면....
바위틈새 안락문을 통과하면 <통락문> 말뚝이정표가 있다...
그런데 바위면에 안락문(安樂門) 각자가 또 표시되어 있네......
거대한 바위벽을 따라 왼쪽으로 돌아가니......
독바위 아래 공터에 닿는다. 예전에 <함양독바위>안내문이 있었던 곳인데 안내문은 사라지고 없다.
독바위로 오르는 밧줄이 바위에 아직도 남아있네... 근데 낡아 위험해 보인다. 보조자일이 꼭 필요하다.
독바위에서의 조망
함양독바위(독녀암) 정수리
독바위를 내려와 공터를 나와 우측으로...
커다란 바위벽..... 신열암터...
허리 높이만한 바위가 있으니 참고하면 될 것 같다. 편의상 고열암터 4거리라 하자. 고열암터 보고 선녀굴로 내려가야 할 지점이다.
고열암터.
바위 사이 길로 들어가면....
의논대에서 본 함양독바위 .
의논대에서 슬랩지대에 소나무가 있는 곳은 상내봉 및 벽송사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숲속길이 계속 이어지는 도중에 뚜렷한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간다.
조그마한 바위가 있는 곳이 선녀굴 입구이다. 여기서 좌측으로 10m 가면 <선녀굴> 나무푯말이 걸린 선녀굴이 나오고 우측으로 가면 송대마을, 용유담 가는 길이다)
빨치산행 중 만난 고로쇠호스
금줄이 쳐진 송대 갈림길(↑-)이다. 여기부턴 지리산길 공식루트길이다.
<지리산길 ; ↖벽송사 0.7 / ↓송대마을 2.8>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임도로 내려앉아 우측으로 임도 따라 가면..
벽송사 경내로 진입
도인송과 미인송
목장승
주차장
----------- 예전에 함양군에서 설치했던 안내문과 비트 (지금은 철거하고 없음)
* 함양 독바위 안내문
* <↓함양독바위 0.1 /←벽송사 5.7>말뚝이정표가 있는 사거리 * <고열암에서 자다>안내문
의논대 ; <독바위 조망안내도, 빨치산루트 조망안내>안내도 슬랩지대에 소나무가 있는 좋은 자리이다.
* <노장대 독바위 조망안내도, 빨치산루트 조망안내>안내도 (노장대가 아님 함양독바위라고 해야한다)
* 총이 달린 이정표<←송대 , 선녀굴>가 있는 솔봉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간다. * 선녀굴 안내문
* 산죽비트 * 낙엽비트에 숨은 빨치산 마네킹 * 산죽비트
<끝> |
첫댓글 알짜배기 코스로 다녀오셨네요. 빨치산루트에 마네킹을 모두 철거했나보네요.감하고갑니다.
상세한 산행기
네.... 마네킹, 비트는 빨치산 역사의 자료인데 안타깝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