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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록수]
기상나팔(2)
“그러길래 힘드는 일을 허는 데두, 저 사람내와 똑같이 헐 수 있두룩 단련을 받어야만 하겠세요. 책상물림들이 상일에 잔뼈가 굵은 사람처럼 그 세찬 일을 진종일 허구두, 배겨낼 만치 되려면, 첨엔 코피를 푹푹 쏟아야지요.”
“그럼요, 그게 조옴 어려운 노릇이야요? 서양선 소나 말이 허는 일을, 우린 사람이 허니까요. 그럴수록 소위 우기 같은 지도분자버텀 나서서 직접 일을 해야만 그게 모범이 돼서 남들이 따라오지요. 그러니까, 우리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잠시두 쉴 새가 없을 수밖에요.”
하는데 눈앞에서 소머리를 돌리던 칠룡이가 종아리에서 커다란 거머리를 잡아떼더니,
“이 경칠 놈에게 벌써부텀 붙어 당기나.”
하고 논두덕에다 힘껏 메어 붙인다. 굵다란 지렁이가 기어 올라가듯 힘줄이 불뚝불뚝 솟은 종아리에서는, 검붉은 피가 줄줄 흘러내린다. 영신은, 씻지도 않고 내버려두는 그 피를 바라보다가, 서울 백 선생이 말쑥한 양장에 비단 양말을 신고, 학교 실습장으로 나돌아다니던 것을 연상하였다. 파리라도 낙상을 할 듯이 매끈하던 그 종아리와, 거머리에게 빨려 논문을 시뻘겋게 물들이는 칠룡이의 종아리— .
“그렇구 말구요, 지도자라구 무슨 감독이나 십장처럼 심든 일은 남에게 시키구서, 뻔뻔스레 놀구 먹으려는 건 아니니까요. 남녀의 구별꺼정두 없이 다 함께 덤벼들어서 일을 해야지요.”
영신은, 그제야 그전에 백 씨의 집에서 들은 동혁의 말을 되풀이하듯 하였다. 그러나 오늘 이 경우에 있어서는, 저 역시 피를 흘려가며 일을 하는 사람들을, 편히 앉아 바라다보는 처지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불안한 것뿐 아니라, 일종의 수치를 느끼며, 일어섰다 앉았다 한다.
갈아놓은 논바닥을 다시 쎄레로 썰고, 여러 회원들이 덤벼들어서, 잡아 놓은 물을 바가지로, 혹은 두레질을 해서 퍼내노라니, 거진 점심때나 되었다. 회원들은 우스운 소리를 해가며, 자못 유쾌한 듯이 일을 하는데 그네들의 이마에는 구슬 같은 땀이 숭숭 내배었다. 동혁은 화가래(나무를 직각으로 박은 가랫바닥 끝에 쇠로 된 날을 붙인 농기구) 장치를 꼬느고, 건배는 키에 어울리지 않는 조그만 고무래(곡식을 그러모으거나 펴거나, 밭의 흙을 고르거나 아궁이의 재를 긁어내는 데 쓰이는 ‘丁’자 모양의 기구)들 들고, 못자리판을 판판히 고르기 시작한다. 한편으로는 줄을 띄워서 한 판씩 두 판씩 갈라나간다. 나머지 회원들은 바소쿠리(싸리로 만든 삼태기) 지게에 거름을 지고 낑낑거리고 와서 펴는데, 퇴비 같은 거친 거름은 누르고, 재 같은 몽근 거름은 손으로 내저어 골고루 편다. 그리고 나서 다시 죽가래(곡식이나 눈 따위를 한곳으로 밀어 모으는 데 쓰는 기구)로 쪼옥 고르게 번대질(표면을 매끄럽고 평평하게 만드는 것)을 치는데, 건배의 아내가 점심을 이고 도랑을 건너오는 것이 보였다.
내리 쪼이는 오월의 태양 아래에, 숭늉을 담아 든 오지 병이 눈이 부시도록 번쩍거린다.
시계도 없는데 점심때를 어떻게 그렇게 일제힌 맞추는지, 건배의 아낙의 뒤를 따라 회원들의 사내동생이며 누이동생들이, 밥 보자기를 들고 혹은 함지박을 이고, 한군데서 모였다 나온 것처럼, 주욱 줄을 지어 언덕을 넘고 논둑을 건너온다.
“이를 어쩌나, 저고리가 다 젖었군요.”
영신은 건배의 아낙이 이고 나온 묵직한 함지박을 받아 내려놓는다. 보자기를 열고 보니, 아침에 먹다 남긴 것인지 미역을 넣고 끓인 닭국에는 노란 기름이 동동 떴다. 건배의 밥은, 보리 반 섞임인데, 새로 닦은 주발에 고슬고슬하게 퍼 담은 영신의 밥은, 외씨 같은 이밥이다.
“찬은 없지만, 들밥이 맛있길래 가지구 나왔어요.”
하고 그는 밥 보자기로 어깨에 흐른 국 국물을 닦는다. 영신은 건배의 아낙을 붙잡고 점심을 같이 먹자고 하건만, 그는 어린애를 볼 사람이 없다고 되짚어 들어갔다.
“속이 궁해 죽겠는데, 이리 밥은 웬일이여?”
동화의 거센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참 두 분 점심은 왜 그저 안 가져올까요?”
영신이가 돌려다 보며 물으니까, 동화는,
“가져올 사람이 있어야죠.”한다. 그러자,
“얘, 저어기 어머니가 오신다.”
하고 동혁이가 손을 들어 멀리 축동 편짝을 가리킨다.
동화가 마주 가서 어머니의 머리에서 함지박을 받아 들고 뛰어왔다. 동혁의 어머니는,
“고만둬라, 고만둬. 내가 가주구 가마니깐…..”
하고 아들 형제의 밥 함지를 손수 들고 가겠다고 고집을 하다나, 숭늉 병을 들고 작은 아들의 뒤를 따라온다. 이런 계제에 아들을 찾아온 여학생을 먼발치로라도 보고 싶었던 것이다.
회원들은 웅덩이로 가서, 흙과 거름을 주무르던 손을 씻고, 논두렁에 가 둘러앉아서 점심을 먹는다. 그들의 점심은 쌀을 양념처럼 둔 보리밥이나, 조가 반 넘어 섞인 덩어리를 짠지쪽과 고추장만으로 먹는다. 그중에서는 돌나물김치에 마른 새우를 넣고, 지짐이처럼 끓인 동혁이 형제의 반찬이 상찬이다.
“여보게들, 우리 합병을 허세.”
새가 똥을 깔기고 간 것처럼, 얼굴에 온통 흙이 튄 것도 모르는 건배가 함지박을 들고 동혁에게로 간다.
“참, 그러십시다요. 나 혼자 맛난 걸 먹으니까, 넘어가지 않는걸요.”
하고 영신은 밥을 따라 동혁이 형제의 곁으로 간다. 동혁은 커다란 숟가락을 보리밥을 모를 지어서 푹푹 떠넣다가,
“왜 일 안 허구 편하게 지내는 사람이라야만 기름진 걸 먹는, 그 쉬운 이칫속을 모르세요.”
하고 껄껄껄 웃는다. 영신은 저를 빗대어놓고 하는 말이 아닌 줄 알면서도, 얼굴을 살짝 붉혔다.
닭국 한 그릇을 들고 서로 권하느라고, 이리 밀어놓고 저리 밀어놓고 하니까, 아까부터 넘실거리고 있던 동화가,
“그럼 이리 내슈. 먹는 죄는 없다우. “
하고 뚝배기를 집어 들고 돌아앉아 훌훌 마시더니, 건데기까지 두매한 짝(다섯 손가락을 이르는 말)으로 건져 먹는다. 형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아무튼 비위는 좋다. “
하고 아우의 턱밑의 어기적거리는 근육을 곁눈으로 본다. 영신은,
“퍽 쾌활허시군요.” 하고 웃어 보일수 밖에 없었다. 건배는 동화를 물끄러미 보다가,
“참말 우리들이 먹는 거란 말씀이 아니지요. 그래두 오늘은 일을 헌다구 반찬이 좀 나은 셈인데요. 인제 보릿고개를 넘길려면, 굴뚝에서 연기가 못 나는 집이 겅성드뭇(많은 수효가 듬성듬성 흩어져 있는 모양)해요. 높은 고개는 올라갈수록 숨이 가쁜 것처럼, 이 앞으로 몇 달 동안이 한창 어려운 고비니까요.”
하고 여러 사람의 밥 먹는 것을 돌아보면서,
“우리 동리 사람들이 지내는 걸 보면 기막하지요. 몇 십리 밖에 나가서 품팔이를 허면, 삯메기(농촌에서 끼니는 먹지않고 품삯만 받고 하는 일)로 한대두 고작해서 삼십오 전이나 사십 전을 받는데, 어둑어둑헐 때꺼정 일을 허려면 허기가 지니까, 막걸리라두 한 사발 마셔야 견디지 않겠어요? 그러니 나머지 돈을 가지구는 수다 식구가 입에 풀칠두 허기가 어렵거든요. 나무 장사들두 허는데, 남의 멧갓(나무를 함부로 베지 못하게 가꾸는 산)의 솔가지 한 개비래두 꺾다가, 산림간수헌테 들키는 날이면, 불려가서 경치구 벌금을 무니까, 그나마 근년엔 못 해먹어요.”
하는데, 동혁이가,
“여보게, 궁상은 고만 떨게. 온, 밥이 체허겠네그려. “
하고 숟가락을 놓더니,
“허지만, 우리 농민들의 육체는 비타민 A가 어떠니 B가 어떠니 하는 현대의 영양학설은 당최 적용되지 않는데, 그래두 곧잘 살거든요. “
하고 입속으로 몰래 양치질을 하는 영신을 쳐다본다. 영신은 눈을 깜박이더니,
“그렇구말구요, 칡뿌리를 캐거나 나무껍질을 벗겨 먹구두 사는 수가 용하지요.”
한다. 건배는 그 말을 받아,
“흥.”
하고 콧방귀를 뀌더니,
“그게 다른 게 아니라, 기적이거든.”
하고 하늘을 우러러,
“헛허허허.”
하고 허청웃음을 웃는다.
점심 뒤에 회원들은 잡담을 하며 잠시 쉬었다.
“이런 때 담배나 한 대 피웠으면 좋겠지만, 이 박 군이 단연회를 만든 후엔 식후의 제일미두 못먹게 됐어요. 나버텀 생각은 간절헌데, 낫살이나 먹은 게 도둑 담배야 피울 수가 있어야지요.”
선전부장의 설명이 또 나온다.
“술도 다들 끊으셨다죠?”
영신의 묻는 말에 동화는 슬금슬금 꽁무니를 뺀다.
“술두 엄금이에요. 내 의견 같아선, 막걸리 같은 곡기 있는 술은 요기두 되구, 취허지 않을 만치 먹으면 흥분두 돼서 일두 훨씬 붙건만, 젊은 기운이라 입에만 대면 어디 적당허게들 먹어야지요. 신작로 가에 술집이 둘이나 되구, 못된 계집들이 들어와서 젊은 사람의 풍기두 나뻐지길래, 회원들은 당최 입에두 대지 않기루 했어요. 허지만, 혼인이나 환갑 같은 때는 더러 밀주들을 해 먹는 모양입디다.”
하는데, 동혁이가 뒤를 대어,
“내 아우 하나가 말을 안 듣구 술만 먹으면 심술을 부려서, 여러 회원들헌테 아주 면목이 없어요.”
하고는, 제 발이 저려서 피해가는 아우의 등 뒤에다 대고, 눈살을 찌푸린다. 동혁은 말을 이어,
“회원들에게 조사를 시켜서 일 년의 지출액을 뽑아보니까, 백 호두 못되는 이 동리에 술값이 거진 구백 원이나 뒤구요, 담뱃값이 오백여 원이나 되니, 참말 엄청나지 않어요? 그래서 이회(里會)를 헐 때 자세헌 숫자까지 들어서, 이러다간, 굶어 죽는다고 한바탕 격동을 시켰더니, 늙은이만 빼놓군 거진 다 술을 끊겠다구 손을 들드군요. 허드니 왼걸, 작심 삼 일은커녕, 그날 저녁두 못 참구 주막으로 간 사람들이 있었어요. 담배두 끊는다구 곰방대를 꺾어버린 게 수십 개나 되드니만, 차츰차츰 또들 태우길 시작허는데, 담뱃대가 없으니까 궐련을 사 먹으니 안팎으로 손해지요. 우리 회원들만은 꼭 맹세를 지켜왔지만……”
“그게 참말 큰 문젯거리야요. 허지만 여자들허구, 일을 하면 술담배를 모르니까, 그거 한 가진 좋드군요.”
하는데,
“자, 그만들 일어나 보지.”
하고 건배가 벌떡 일어선다.
“오늘 해 전으루 씻나락꺼정 다 뿌리나요?”
영신이도 일이나 하려고 들어가는 사람처럼 일어섰다. 건배는,
“아아뇨, 인제 죽가래루 판판하게스리 번대를 친 뒤에, 새내끼(‘새끼’의 사투리)를 다시 띄워놓구서, 하룻밤 하룻날을 뒀다가, 수확이 많다는 은방주(벼품종의 하나)든지 요새 새루 정려허는 팔단 같은 걸 뿌리지요. 그러구 나설랑은 한치쯤 자란 뒤에 물을 빼구서 못자리를 고른 뒤에, 또 일 주야쯤 뒀다가 다시 물을 넣지 않겠어요? 그래야 뿌리가 붙거든요. 그 뒤엔 가끔 물꼴르 봐서 혀 빼문 걸 뽑아버리구선, 거진 치 닷 분쯤 자란 뒤엔, 한 번 더 김을 매주는데, 여기선 그걸 도사리(못자리에 난 어린 잡풀)를 잡는다구 허지요. 그런 뒤엔 유산 암모니아 같은 속효비료를 주면 무럭무럭하게 자랄 게 아니에요? 논박닥이 시꺼멓게 되는 걸 봐서 그때야 모를 내는데, 그 후에도 또 몇 차례 김을 매주면 한가위엔 싯누렇게 익어서 이삭이 축축 늘어진단 말이지요. 아 그러면 낫을 시퍼렇게 갈어가지구 덤벼들어 척척 후려서 묶어 세우군…..”
하고, 신이야 넋이야 배우처럼 형용까지 해가며 주워섬기는데, 동혁은 듣다 못해서,
“여보게, 웬놈의 수다를 그렇게 늘어놓나? 저 사람은 입두 아프지 않을게여.”
하고 핀잔을 주듯 하고는, 논으로 들어선다. 건배는 들은 체 만 체하고,
“아 그러구설랑 개상(볏단을 메어쳐서 이삭을 떨어내는 데 쓰던 농기구)을 놓구 바심(타작)을 헌 뒤엔 방아를 찧어서, 외씨같은 하얀 쌀밥을 지어놓고 통배추 김치에….”
하고 마른침을 꿀떡 삼키는데, 영신은 항복이나 하는 듯이 손을 들고,
“고만요 고만, 그만허면 다 알겠어요. 어쩌면 그렇게 입담이 좋으셔요?” 하고 호호호 웃으며 건배의 입을 막듯 하였다. 그래도 건배는,
“두구 보세요. 양석두 바라보지 못허던 논에서, 한 마지기에 넉 섬 추수는 무난히 허구 말 테니. 그만이나 해야 우리들이 땀을 흘린 티가 나거든요.”
가만이 그대로 내버려두면 얼마든지 더 지껄일 형세다.
“더군다나 농사는 이력이 있어야겠어요. 우린 아주 손방(아주 할 줄 모르는 솜씨)이지만….”
영신이가 대접상으로 한마디를 해주니까, 건배는,
“아무렴 그렇구말구요. 이력이 제일이지요.”
하면서 수건을 머리에 질근 동이더니, 황새 다리를 성큼성큼 떼어놓으며 논으로 들어간다.
어느덧 곁두리 때가 되었다. 열두 회원들은 손이 맞아 거쩐거쩐 일을 해서, 오늘 일은 거진 끝이 나게 되었는데, 먼저 나와서 발을 닦던 동화가 큰마을 편을 바라보더니,
“에에키, 건살포(일을 하지 않으면서 건성으로 살포만 짚고 다니는 사람) 나오시는군.”
말하고 입을 삐죽해 보인다. 여러 사람들의 눈은 그리로 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