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설주의보/최승호
눈덮인 채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들
제설차 한 대 올 리 없는
깊은 백색의 골짜기를 메우며
굵은 눈발은 휘몰아치고,
쬐그마한 숯덩이만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굴뚝새가 눈보라 속으로 날아간다.
길 잃은 등산객들 있을듯
외딴 두메마을 길 끊어 놓을듯
은하수가 펑펑 쏟아져 날아오듯 덤벼드는 눈,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쬐그마한 숯덩이만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날아온다 꺼칠한 굴뚝새가
서둘러 뒷간에 몸을 감춘다.
어디에 부리부리한 솔개라도 도사리고 있는 것일까.
길 잃고 굶주리는 산짐승들 있을 듯
눈더미의 무게로 소나무 가지들이 부러질듯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때죽나무와 때 끓이는 외딴 집 굴뚝에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골짜기에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한국인의 애송시 II, 신예시인 48인선 중에서, 청하]===
최승호(崔勝浩): 1954년 춘천 출생. 춘천교육대학 졸업. 『현대시학』으로 데뷔했으며 제6회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그는 사실적 관찰, 단순하지 않은 사려, 허덥지 않은 언어의 세계로 시풍을 다져나가고 있는 시인이다. 시집으로 『대설주의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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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그린 눈오는 산골마을이 아름답습니다.
눈은 은하수처럼 펑펑 쏟아져 내리고,
까만 숯같은 굴뚝새가 뒷간에 몸을 숨기고
굶주린 솔개와 산짐승은 도사리고 있는 듯
눈더미의 무게로 소나무 가지들이 부러질듯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백색 계엄령.
올해로 69세인 최승호 시인님이 정치적으로 암울했던 젊은시절 80년대의
광주항쟁을 "대설주의보"라는 시로 표현했다고 합니다.
오랫만이 비가 그쳤습니다.
흐린 날이지만 마음만을 화창한 날되시길 빕니다.
=적토마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