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산상수훈 팔복의 특징 (1)
(마 5:1-12)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를 기뻐하신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 말씀들을 통하여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큰 복을 받게 되기를 축원한다. 아멘.
이 말씀에는 중요한 세 가지의 특징이 있다. 이 특징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값싼 세속적인 기복(祈福) 신앙의 소유자로 전락하고야 말 것이다.
1) 첫째 특징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복과는 역설적(逆說的)이라는 사실이다.
① 역설적이라는 말은 이것만이 옳다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면이 있음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부자가 복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신다. 어느 말이 맞는 말인가? 이 두 말은 다 맞는다. 그러나 다 틀리기도 한다. 문제는 어떤 각도에서 이해하느냐가 중요하다. 세상 사람들은 웃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한다.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라고 하지 않는가?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신다. 세상에서는 많이 먹어서 배부른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신다. 세상에서는 온유한 자는 안 된다. 지금은 악착같아야 하고, 남에게 양보를 안 해야 한다고 한다. 그만큼 세상이 각박해졌다. 세상에서는 박해를 받는 사람이 어떻게 복이 있다고 하겠는가? 그러나 의와 진리를 위하여 박해를 받으면 주님의 말씀이 얼마나 큰 위로와 힘이 되는가?
②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깨달으려면 진리의 이 역설적인 특성을 깨닫고 우리의 기준을 바꾸어야 한다. 세상적인 기준으로는 하늘의 오묘한 이치를 깨닫지 못한다. 세상적인 것과 하늘나라의 것, 육적인 것과 영적인 것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옛날 예수님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모두가 하나님을 잘 섬기는 줄로 자부하고 있었지만, 이런 가장 기본적인 문제를 바로 알지 못했기에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가장 신랄하게 비판을 받고, 심지어 저주의 표적이 되는 불행을 당했다. 그런데 더욱 안타까운 것은 지금도 꼭 마찬가지라고 하는 사실이다. 교회에는 열심히 다녀도 영적인 변화가 전혀 안된 사람이 많이 있다.
바울은 이런 사람을 가리켜 ‘육에 속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전 2:14). 그러면서 바울은 더욱 안타깝게 이렇게 외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롬 14:31)? 세상의 이치로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려고 하면 실패한다. 세상적인 복을 많이 받은 것이 곧 하나님으로부터도 가장 좋은 복을 받은 것인 줄로 생각하면 안 된다. 세상의 복은 세월이 지나면 다 쇠하여지고 날아간다. 세상 복은 겉으로는 복 같아도, 그 속에는 화(禍)와 독(毒)이 숨겨져 있다. 세상의 부귀와 영화를 구하다가 멸망당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③ 그러면 세상적인 복은 모두가 복이 아니라 저주일까? 그렇지는 않다. 문제는 순서에 있다. 영적인 복을 먼저 받은 후에 세상적인 복을 받으면, 그 사람은 더욱 복된 생활을 할 수가 있다. 비록 세상적인 복을 많이 받았어도, 그런 것에 얽매여 살지 않고 오히려 그것들을 누리며 지배하며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필요하다면 어느 때고 그런 것들은 모두 분토(糞土)와 같이 버릴 수도 있는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살기 때문에 세상에 얽매인 것이 없고, 늘 자유롭다. 더욱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들에게는 세상적인 복도 더 좋은 일을 이루어줄 뿐이다.
13. 산상수훈의 팔복의 특징 (2)
(마 5:1-12)
1) 첫째 특징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복과는 역설적(逆說的)이라는 사실이다.
2) 팔복의 둘째 특징은 “천국에서 천국으로” 간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복의 주제는 천국(天國)이다. 첫째 복은 “심령이 가난한 자가 천국을 소유한다.”는 것이고, 마지막 복도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가 천국을 소유한다.”는 것이다.
① 다른 복음서보다도 마태복음은 특별히 천국 문제를 많이 말하고 있다. 예수님의 비유는 모두 천국 비유다. 비유뿐 아니라 산상수훈도, 제자 파송사도, 외식하는 자들에 대한 책망도, 종말 현상에 대한 예언도 모두 초점은 천국에 있다.
② 그런데 우리는 이 천국을 사모하는 마음이 너무도 적다. 천국에 갈 자격이 전혀 갖추어져 있지도 않으면서도 자기는 천국에 자신 있게 간다고 장담을 한다. 팔복은 모두가 하나같이 천국을 얻는 방법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게 되어 있지도 않으면서 천국에 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엄청난 착각이다. 그 날에 한두 사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큰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다(마 7:22-23). 가슴을 치며, 통곡해도, 이를 갈며 울부짖어도 이미 때는 늦게 될 것이다. 마태복음에는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라는 말씀이 무려 여섯 번(8:12; 13:42, 49-50; 22:13; 24:51; 25:30)이나 나온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 6:33). 이 나라를 사모하며, 하나님의 의를 행치 않는 사람들은 분명히 이방인들이다(마 6:31-32).
③ 마지막 때의 사람들은 천국보다 훨씬 더 사랑하는 것이 많이 있다. “말세는 고통의 때다.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기 때문이다”(딤후 3:1-2,4). 계시록 2-3장에 나오는 7교회 중 마지막에 나오는 라오디게아 교회는 곧 말세 교회의 모습이다. 이 교회는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교회가 영적으로는 가장 비참하고 불쌍한 교회였다. “그러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계 3:17).
이 교회는 천국에 대하여 관심이 없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재림이 없다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난다(벧후 3:3-5 참조). 교회에서는 신자들이 깨어서 기도하며 의를 행토록 가르치지 않고, 거짓된 구원의 확신 곧 방심(放心)을 심어준다. 이제는 교회도 일반 상점들처럼 친절 봉사를 앞세운 서비스 경쟁 시대가 되었다. 우리는 다 구원받았다고 가르치고, 칭찬도 많이 해 주어야 신자들이 좋아하면서 모여든다. 율법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니까 율법은 지킬 필요도 없다는 식으로 가르친다. 그러므로 종교개혁 직후인 17-18세기의 영국이나 구라파처럼 도덕적인 타락이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가 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말만 많이 해야 하지, 만약에 하나님이 심판을 하신다고 하든지, 죄를 지으면 지옥에 간다고 하든지, 또는 회개하라고 말하면, 그런 목사는 교회에서 쫓겨나고야 말 것이다.
그러나 낙심하지 말자. 예수님은 천국을 우리에게 주려고 오셨다. “적은 무리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눅 12:32)라고 말씀하시지 않는가? 바로 당신에게도 그 나라를 주시겠다고 하신다. 사모하자, 그리고 하늘나라의 백성답게 살자.
13. 산상수훈 팔복의 특징 (3)
(마 5:1-12)
1) 첫째 특징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복과는 역설적(逆說的)이라는 사실이다.
2) 팔복의 둘째 특징은 “천국에서 천국으로” 간다는 것이다.
3) 셋째 특징은 이 모든 복이 ‘심령(心靈)’ 곧 영혼과 마음에 있다는 것이다.
① 예수님은 우리의 겉에 나타난 어떤 결과보다도 마음의 동기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한다.”(히 4:12)고 했다.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뜻을 살펴보신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삼상 16:7).
② 마음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자리다. 천국도 우리의 마음에 있다(눅 17:21). 당신 속에 천국이 있는지 없는지는 당신의 마음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내가 먼저 나를 진찰해 보아야 한다. 만약 내 마음에 하나님이 안 보인다면 무엇이 들어 있는 것인가? 예수님은 경고하시기를 사람에게서 귀신이 쫓겨났으나, 만약에 그의 안에 성령이 계시지 않아서 주인이 없는 상태로 그냥 두면 쫓겨났던 귀신이 자기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간다고 하셨다(마 12:45). 사람 마음에 영적 진공 상태는 없다. 그러므로 마음을 청결케 하여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야 한다. 바울은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3:16; 6:19)라고 묻지 않는가?
③ 성도란 마음과 영혼이 깨끗해진 사람을 말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마음눈에 하나님이 보이는 것이다(마 5:8). 그러나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은 마음이 더럽다. 교회에 다니기는 해도 하나님이 안 보인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깨닫지도 못하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자기의 생각대로 산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아. 네 마음의 악을 씻어 버려라. 그리하면 구원을 받으리라. 네 악한 생각이 네 속에 얼마나 오래 머물겠느냐?”(렘 4:14)라고 말한다.
④ 우리도 죄로 말미암아 더러워진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씻자. 이 더러움을 씻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밖에 없다. 구약시대에는 수없이 많은 짐승을 잡아 희생 제사를 드렸지만 그 짐승의 피가 우리의 죄를 없이하지 못하였다(히 9:9, 13-14; 10:3-4,11).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만이 우리의 양심을 깨끗하게 하고 다시금 살려낸다.
⑤ 성경에서는 마음을 깨끗하게 함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마음에 ‘할례’를 받으라고 한다. 신명기 10:16에는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라고 하신다. 예레미야 4:4에서는 “유다인과 예루살렘 거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행악으로 인하여 나의 분노가 불같이 발하여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라고 하셨다. 마음에 할례를 받아야 하나님께 속한 자가 된다고 하신다. 예레미야는 또 이렇게 말한다. “모든 나라는 할례를 받지 못하였고 이스라엘은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하였느니라”(렘 9:26). 참된 복은 마음에, 그리고 영혼에 있다. 성령이 내 안에 오시면 나는 가장 복된 사람이 된다.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살게 될 때에 우리는 천국의 소유자요, 천국의 행복을 맛보게 된다. 은혜 안에서 더욱 힘 있게 그리고 밝게 살자. 거룩함으로 늘 형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