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 무리한 강행보다는 신중한 진행! (행27:9-12)
* 무리한 욕심은 인생을 망칩니다!
“그 항구가 겨울을 지내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지내자 하는 자가 더 많으니 뵈닉스는 그레데 항구라 한쪽은 서남을, 한쪽은 서북을 향하였더라.”(행27:12)
비전의 사람은 결코 무엇을 따라 인생을 경영해서는 안 됩니까? 비전의 사람에게는 무엇이 절대로 금물(禁物)입니까? 과욕(過慾), 곧 무리한 욕심입니다. 어째서입니까? 무리하게 강행하다가 낭패를 당한 경우들이 부지기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경우 짧은 시간에 최대의 성과를 올리고자 종종 무리수(無理數)를 두게 되고, 그러다보니 이것이 결국 패착(敗着, 바둑에서, 그 자리에 돌을 놓는 바람에 결국 그 판에서 지게 된 나쁜 수)이 되며, 자충수(自充手, 바둑에서 자기가 놓은 돌을 자기가 죽이는 수)가 되곤 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선장과 선주는 왜 뵈닉스로 가서 월동(越冬)을 하자고 했습니까? 당장의 편의와 실리 등을 택했기 때문입니다. 즉 미항보다는 뵈닉스가 여러모로 월동하기에 편리했으며, 또한 뵈닉스 행 화물(貨物)들도 제때에 하역(荷役)할 수 있어서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뵈닉스 행을 고집했던 것입니다. “그 항구가 겨울을 지내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지내자 하는 자가 더 많으니 뵈닉스는 그레데 항구라 한쪽은 서남을, 한쪽은 서북을 향하였더라.”(12절)
그러나 이는 결과적으로 어떤 결과를 초래했습니까? 싣고 온 하물을 제 손으로 직접 바다에 버려야 했으며,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행27:18) 타고 온 배까지도 파선(破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두 물이 합하여 흐르는 곳을 만나 배를 걸매 이물은 부딪쳐 움직일 수 없이 붙고 고물은 큰 물결에 깨어져 가니.”(행27:41)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무리한 욕심은 자기 인생을 망칠 수가 있으며, 무리하게 강행하는 것은 곧 패착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무엇을 따라 인생을 경영하고 있습니까? 혹 선장과 선주들처럼, 당장의 편의와 실리 등을 좇아 무리하게 진행하고 있지 않습니까? 단기간에 눈에 띄는 성과를 얻고자 무리수를 두고 있지는 않습니까? 원컨대 인생을 경영함에 있어서 무리한 욕심을 버릴 수 있기를 원합니다.
물론 인생을 살다보면 과감하게 결단해야 하거나 다소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도전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즉 조금 무리해서라도 반드시 이루어야 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요나단이 자기의 무기를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 할례 받지 않은 자들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삼상14:6) /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삼상17:45)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에4:16) / “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당한 곤경은 너희도 보고 있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페하고 성문이 불탔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 하고.”(느2:17)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과감하게 결단하고 결단력 있게 추진해야 할 것입니다. 다소 무리가 되더라도 밀고 나가야 합니다. 어째서입니까? 이런 경우는 무리한 강행이라기보다는 과감한 선택과 도전이라고 봐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