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8월19일(목)맑음
아침 예불 장소가 금당에서 팔상전으로 바뀌었다. 팔상전에서 예불 드리고 금당으로 올라가 정진하다. 아침 공양 후 본사 주지스님 방에서 차담 시간을 갖다. 유나스님과 입승스님, 서기스님이 참석하다. 주지스님은 커피를 내려주시면서 어릴 때 고산스님을 모시고 살았던 이야기, 30살이 되던 때까지 목침 위에서 고산스님의 회초리를 맞았던 일을 회상하신다. 이어서 부천 석왕사에서 포교 시작했던 이야기를 할 때 열정이 묻어난다. 고산스님은 입적하셨지만 살아생전에 하셨던 것처럼 해제하는 대중에게 보시금을 하사하신다. 방으로 돌아와 이불과 방석, 배게 피를 빨아서 말리다.
예도tv에서 열반에 대한 법문을 듣고 감동하다.
로전문화원장 능혜스님이 점심공양을 청해서 유나스님과 함께 공양 받다.
<快雨遊戲 쾌우유희>
오후 5시경 소나기가 쏟아진다. 장쾌한 비, 快雨쾌우가 나를 보라! 는 듯 내리친다. 영주당 섬돌에서 내려와 팔상전으로 올라가, 전각의 사방을 돌며 비 님의 유희를 감상한다. 멀리 백운산 머리에 내려앉은 하늘은 연무에 쌓여있고 그 위로는 검은 구름이 엉어리져 엉기었다. 앞산 덕봉엔 안개가 피어올라 팔백 살 먹은 노인이 허연 수염을 쓰다듬어 올리듯 하얗게 위로 솟구친다. 팔상전 처마 끝에는 어느새 옥 주렴 같은 빗줄기가 걸린 것이 황제가 쓴 면류관이 눈앞에 흔들리는 듯. 하늘 가운데 천둥이 울어 번개가 번쩍 번쩍! 너희가 無常의 도리를 아느냐며 귀를 때린다. 우르릉 쾅쾅! 하늘 주전자에서 빗물이 수풀 위로 쏴쏴 쏟아지니 초목들이 팔을 뻗어 뛰어오른다. 나뭇가지는 휘청휘청 둥치는 흔들흔들 뿌리는 들썩들썩. 덩달아 작은 새, 큰 새, 날개 펼 사이 없이 화들짝 놀라 엎어질 듯 날아간다. 빗방울이 마당에 깔린 자갈 위로 떨어져 장렬하게 부서지며 玉碎옥쇄한다. 빗방울 파편이 좌르르 흩어지니 밥솥에서 난 김인 듯 소르르 사라진다. 천지 사방이 비-소리로 가득하니, 여름날 소낙비 오케스트라가 이것인가? 처마 끝에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 섬돌을 굴러떨어지는 소리, 마당에 뒹구는 소리, 봉숭아 잎에 떨어지는 소리, 소나무에 걸리는 소리, 지붕 기와에 부딪는 소리, 파초잎에 미끌어지는 소리, 뭇소리가 어울려 대자연 교향곡이 연주된다. 雨煙우연, 비안개에 싸인 풍경은 심해를 노닐다가 방금 수면으로 몸을 솟구쳐 올라온 혹등고래다. 허연 숨을 푹푹 솟구쳐 올리며 거대한 몸을 굼실굼실 유유히 헤엄쳐 눈앞에 나타났다, 홀연 시야에서 사라진다. 한여름 저문 날에 벌어진 쾌연했던 소나기의 향연도 颯然삽연(바람처럼)이 끝난다. 거짓말같이 시작되었다가 거짓말처럼 끝난다. 자연현상도 그러하듯 인생도 그러하리라. 빗물에 젖어 번들거리는 파초 앞에 쪼그리고 앉아 비-명상에 젖었다가 활연히 깨어난다. 모든 것은 오직 한 번뿐, 두 번 다시는 없다. 一時에 一切일체로 一切일체를 산다. 비는 끝났다. 천지는 적막에 휩싸인다. 그것으로 그만이다. 밖으로 뻗어가는 마음-손을 모으고 입을 닫으면 침묵의 빈터가 열린다. 빈터엔 텅-빔의 향기로 가득하고, 거기 누구도 엿볼 수 없는 존재의 빛이 고요히 빛난다.
2021년8월20일(금)맑음
대중이 저녁 예불을 마치고 서방장에 빙 둘러앉아 자자회를 한다. 먼저 서기가 한 철 동안의 살림살이와 입출금 내력을 밝힌다. 이어서 입승스님의 발언으로 시작하여 오른쪽으로 돌아가면서 한 말씀씩 하게 되어있다. “한 철 동안 함께 지내는 동안 저의 불민한 삼업으로 인하여 대중을 번뇌롭게 한 것이 있으면 저를 연민히 여겨 지적해주십시오. 알아차리지 못한 허물을 알아차리게 되면 제 마음은 밝아질 것입니다.” 이렇게 입승스님이 말씀하시니 대중이 숙연하다. 그리고 돌아가면서 짧게 한마디씩 한다. 내 차례가 되어 발언하길 “대중이 잘 모였기에 한철이 하루인 듯 무심하게 흘러갔습니다. 입제 할 때 건강이 좋지 않았는데 대중 스님의 순일한 정진 분위기에 힘입어 이제 해제할 때를 당하여 건강이 좋아졌습니다. 유나스님의 원력과 복덕으로 말미암아 금당선원은 앞으로 훌륭한 수행자들이 쇄도하는 일류 선원이 될 것입니다. 제가 87년 칠불암 아자방선원에서 유나스님과 함께 정진했던 것이 어제 일 같은데, 이제 승랍이 35년을 넘어 이미 구참의 반열에 들게 되었습니다. 종단과 선원의 허물을 탓하여 비판을 일삼던 젊은 시절은 어느새 지나가고 이제는 종단의 중진이며 선원의 구참수행자로서 책임을 느껴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종단과 선방에 허물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 너는 그동안 무엇을 했느냐? 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이런 책임감을 느끼는 것이죠. 먼저 우리 개별 수행자가 할 수 있는 만큼 잘 살아야 합니다. 타인을 지적하는 그 손가락을 구부려 자신에게로 향하면, 세상을 바꾸려 한다면 너 자신을 바꾸라는 말이 됩니다. 또 그게 수행자의 원력, 보리심이 아니겠습니까? 밤하늘이 아무리 어두워도 별 하나가 빛나면 밝은 하늘이 되듯이, 우리 각자가 하나의 별이 되도록 합시다. 내가 비판하는 스님, 내 눈에 허물이 보이는 스님들을 반면교사로 삼아, 나 자신이 법을 흠모하며 법답게 살고 결국에는 자신이 법이 되는 삶을 삽시다.” 이어서 유나스님이 최종 발언을 하시며 매듭을 지었다. 이로써 신축년 쌍계총림 금당선원 하안거는 원만히 회향되었다.
2021년8월21일(토)비
새벽부터 비 온다. 지금 경계가 어떠하냐?
만 리 하늘
기러기 날아 구름 밖으로 사라진다
가을바람에 잎이 다 떨어지니,
불 속에서 나무 사람 춤춘다
萬里長天漢, 雁飛沒外雲; 만리장천한, 안비몰외운
秋風葉盡落, 火裏舞木人. 추풍엽진락, 화리무목인
주룩 비는 멈추지 않고 내린다. 오전10:20 칠불사 운상선원에서 선원장 노옹스님과 주지 도응스님이 유나스님 방에서 차를 마시며 환담을 나눈다. 30분에 거기로 나가 인사 나누다. 40분에 대웅전으로 올라가 해제법요식을 거행하다. 돌아가신 고산스님의 동영상 법문을 경청하고 주지 영담스님의 인사말로 해제식을 매듭짓다. 진주에서 현정, 향인보살과 해인거사 오다. 짐 싣고 길 떠나다. 오는 길에 점심 공양하고 섬진강변을 달리다. 山色은 有無中이요, 江流는 天地外라. 진주선원에 도착하여 짐을 정리하고 자리에 앉아 한숨 돌리니 오후 3시. 돌고 돌아 제 자리 본래 자리는 如如함이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1.08.26 17:51
첫댓글 여러 스님들이여!
그대들이 진실로 나의 선(禪)에 참여하고자 한다면, 이곳저곳에서 배운 것들을 싹 쓸어서 내버리고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아무것도 이해함 없이 마음을 비워 버려야, 비로소 그대들과 함께 깨닫게 될 것이다. < 大慧普說>
진정 깨달음은 오직 무소득(無所得)이다. 반야심경의 "以無所得故"이다.
但知不會(단지불회) 是卽見性(시즉견성) 다만 모르는 줄 알면 곧바로 견성[깨달음]이다.
本來無一物(본래무일물) 본래 한 물건도 없거늘,
何處惹塵埃(하처야진의) 어느 곳에서 때[번뇌]가 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