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요람에서 무덤까지, 교회가 품을 마지막 자리
입력:2026-10-13 09:18
수정:2026-10-13 09:19
송길원 목사 (하이패밀리 대표·청란교회 담임)
교회 공간이 눈부시게 달라지고 있다. 주차장을 이웃에 열어주던 교회가 식당을 미술관으로, 예배당을 공연장으로 바꾼다. 유치부실은 키즈카페가 된다. 교육관은 평생배움터로 거듭난다. 주중 엿새 동안 굳게 닫혀 있던 공간에 마을 주민들 웃음소리가 스며든다.
반가운 변화다. 본래 교회는 닫힌 요새가 아니었다. 가난한 이를 먹이고, 병든 사람을 돌보았다. 삶의 대소사를 함께 짊어지던 마을의 중심이었다. 종교개혁 당시 마르틴 루터는 역병 속에서도 병자를 돌볼 책임을 외쳤다. 제네바의 장 칼뱅 역시 구호와 복지에 힘을 쏟았다. 교회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이웃의 삶을 품던 공동체였다.
지금은 가장 절실한 자리를 비워두고 있다. 장례 공간이다. 장례문화가 거대한 변곡점에 섰다. 머잖아 장례 결정권은 베이비부머에서 MZ세대로 넘어간다. 형제자매가 대여섯이던 시대와 외동인 시대의 장례는 결코 같을 수 없다. 친척과 조문객은 눈에 띄게 줄어든다. 수백 명이 몰려와 육개장을 나누던 풍경도 저물어간다. 가족 중심의 ‘작은 장례’가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는다.
3일장 관행도 흔들린다. 자녀는 해외나 타지에 흩어져 산다. 부음을 듣고 달려와도 하루 이틀이 훌쩍 지난다. 가족이 다 모이기도 전에 발인을 서둘러야 한다. 슬픔에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한데 장례 일정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문제는 상업화된 장례 산업이다. 장례식장은 빈소와 음식, 장례용품 판매에 목을 맨다. 조문객이 줄면 식장을 채울 사람도 없다. 시신만 안전하게 모시고 가족끼리 조용히 추모할 곳은 마땅치 않다. 식장은 넘쳐나는데 정작 내게 맞는 장례를 치를 곳이 없다. 이른바 ‘장례난민’의 등장이다.
교회가 문을 열어야 할 순간이다. 주중 비어 있는 예배당과 부속실을 작은 장례와 추모 공간으로 내어주는 결단이 필요하다. 조문객이 열 명이면 열 명대로, 가족이 서넛이면 그만으로 충분하다. 조문객이 적다고 고인의 삶마저 초라해지는 법은 없다.
하이패밀리가 작은 갤러리 공간을 빈소로 꾸며 장례식을 진행한 모습.
고인의 대형 사진과 이동형 1인 안치냉장고 레스텔이 놓여 있다. 하이패밀리 제공
해법도 멀리 있지 않다. 이동형 1인용 안치냉장고와 전문 체계를 결합하면 된다. 시신을 안전하게 모시며 유족에게 온전한 애도 시간을 돌려줄 수 있다. 교회는 공간을 제공하고 교인은 유족 곁을 지키면 족하다.
장례 절차가 복잡할 이유도 없다. 꽁꽁 묶는 염습 대신 사후 메이크업이면 족하다. 낯선 삼베 수의보다 생전 즐겨 입던 평상복이 훨씬 정갈하고 아름답다. 음식 접대 부담도 덜어낸다. 교회 주변 골목 식당을 이용하면 마을 상인에게도 따뜻한 활력이 된다. 계좌번호만 오가던 메마른 비대면 조문이 얼굴을 마주하는 진짜 만남으로 돌아온다. 거창한 시설을 새로 지을 이유는 더더욱 없다. 한 사람의 마지막 길을 품을 작은 자리와 따뜻한 손길 하나면 충분하다.
교회를 떠났던 젊은 세대가 다시 교회 문을 두드릴 수 있다. 전도 행사 때문이 아니다. 가장 절실한 순간에 내어준 공간 하나, 말없이 곁을 지켜준 온기 하나가 교회를 향한 기억을 바꾼다. 조건 없는 환대야말로 가장 힘 있는 복음의 언어다.
언제부터인가 결혼은 예식장에, 장례는 상조회사와 병원에 자리를 내주었다. 축복과 애도라는 삶의 숭고한 의례를 상업 자본에 고스란히 넘겼다. 교회는 그 거룩한 자리를 너무 쉽게 포기했다. 시인 이상화는 물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제 교회가 물어야 한다. 빼앗긴 장례에도 봄은 오는가.
죽음과 부활의 소망을 선포하는 교회가 이웃의 마지막 길을 외면할 까닭이 없다. 공간을 내어주는 일은 단순한 공간 나눔에 그치지 않는다. 생의 마지막 눈물을 닦아주는 거룩한 생명 사역이다. 높은 첨탑보다 낮은 문턱이 복음을 더 웅변한다. 빼앗긴 장례에도 봄은 올 수 있다. 그 봄을 맞을 문을 교회가 먼저 열어야 한다.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9000022020&code=61221111&sid1=ch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