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점심, 한 시, 애경. 금방 답이 온다. 야호~!
웬 일로? 이젠 안 아파서. 그럼 아팠어? 많이. 어디가? 늘 아픈 허리가 속 썩이지 뭐. (내 손을 잡으며) 아프지 마. 그럼 내가 미안하잖아. (손을 슬그머니 밀어내며) 그런 말로 내 돈 떼어 먹을 생각은 말어. ㅎㅎㅎㅎ ㅋㅋㅋㅋ
점심을 먹고는 가주길 바랬는데 영화까지 같이 보겠단다. 지난 번에도 그러더니만. 아들과 영화 코드를 맞추는 건 힘든 일이나 나 혼자 보고 싶은데....
난 아바타 같은 영화는 싫어. 엄마는 그렇지? 전우치도 싫어. 그럴 줄 알았어.
시간에 딱 맞출 수 있는 영화가 은근히 보고 싶었던 '용서는 없다'이다. 아들도 그 영화를 보고 싶었다고 한다. 정말인지 아부성 발언인지는 모르지만 여하튼 두 장의 표를 끊어 부지런히 8층으로 올라갔다.
설경구가 나를 알리 없지만, 나는 의리처럼 설경구의 영화를 본다. 박하사탕으로 처음 만났지 싶다. 공공의 적에서 공공연히 마주치고 아마도 역도산이라는 영화만 때를 못 맞추어 못 봤지 싶다.
거기다 이번엔 류승범까지?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 맹랑한 소년으로 만난 류승범은 눈에 안 보인다 싶더니 또 다른 강한 개성을 지니고 여기 저기서 심심찮게 모습을 드러낸다.
연인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류승범을 보면 자연스레 공효진이 떠오르고 그 두 젊은이가 예쁜 사랑을 엮어갔으면 하는 바램까지 생기기도 한다.
끼 많은 사람들끼리 그 끼를 인정하며 사는 것이 행복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어 그런가 보다. 예술을 전공하고 있는 작은 아이를 생각하면 예술혼이라는 것은 자유분망함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기에 그 자유분망함을 지켜봐 줄 수 있는 짝이 그리 쉽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한혜진이라는 참 예쁜 여배우가 힘든 형사 역을 해 냈다. 범인이 그녀의 눈 속에 빠져버릴 것처럼 눈이 맑은 여배우였다.
용서는 없다. 죄는 인간이 짓고, 벌은 하늘이 내린다고 굳게 믿고 있는 나로서는 인간이 인간에게 용서를 구하고, 인간이 인간을 용서한다는 기본 이론에 별로 공감하지 않는다. 오히려 용서를 구할 짓을 하지 않으려고 바닥바닥 애를 쓰며 산다. 모르고 짓는 죄는 용서받아야한다는 것조차 모르고 죽을테니 그 벌을 하늘에서 더 크게 받을지도 모르지.
가끔 알게 또 모르게 구업을 짓곤 한다. 말로조차 짓이기지 않으면 도저히 풀 수 없는 일들에 대해 모진 말로, 막된 말로 퍼붓곤 한다. 그마저도 하지 말라하면 머리 풀고 강물에라도 뛰어 들 것 같은 일, 그런 일에나 구업을 지을만큼 내 영혼이 순화되고 있지만 아직 멀긴 하다. 구업조차 짓지 않고 사는 일에서는.
인간이 인간의 잘못을 다스리려 할 때 결국은 서로에게 더 큰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다. 내 아이가 법조계로 나갈 꿈을 꾸지 않을 때 고마왔던 건 그런 이유이기도 하다. 인간이 뭘 안다고 인간의 죄를 다스리고 구형을 한단 말인가. 뭘 얼마나 안다고 변호를 하고, 변론을 하고, 그러면서 서로의 가슴에 더 큰 상흔을 남겨둔단 말인가.
이 영화는 그런 이야길 하고 싶어했다. 네가 뭘 안다고 내 누이의 증언을 했니. 네 그 세 치 혀가 만들어낸 상처를 너도 입어야하지 않겠니? 나는 내 딸을 살리기 위해 위증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속죄를 한들 대사의 한 구절처럼 사람의 고통이라는 게 마음 속 고통보다 기억속 고통이 더 큰 것이지.
류승범의 무표정한 연기. 멋지다. 일본 추리소설에는 저런 소재가 제법 많아 하는 큰 아이의 한 마디가 씁쓸하다. 새롭다는 것은 늘 흉내여야하는 건 작가가 없어서가 아니라 만들어내야한다는 급급함에서 출발한 것은 아닐지.... 부검 장면의 도입도 시대가 요구한 달콤한 사탕은 아니었을지.... 몸이 아닌 단서라고 여기는 부검의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그 딸의 시체를 안고 오열하는 부검의의 눈물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는 류승범의 역할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가진 이중성을 힐난하는 것이기도 할텐데, 그런 메시지 전달을 위해 부검 장면이 그리도 생생하게 여러 번 연출되었어야하는지.... 옥에서 티를 찾아내어 본다만 주관적인 것이고, 영화학이라는 것 근처에도 안 가본 무식쟁이의 소감일 뿐. 왕의 남자에서 느낀 감동, 실미도에서 함께 했던 울분, 공공의 적에서 찝어내던 사회의 암적 존재들에 관한 공감들을 강우석 감독이라는 이름과 함께 기억하고 있으니 이 영화 역시도 감독 강우석에 대한 신뢰로 평하는 것이 예의겠지.
설경구와 송윤아의 결혼. 그 부부가 내놓은 영화가 모두 흥행에 성공했으면 하는 바램은 아마도 둘 모두의 팬이기 때문일 것이다. 광복절 특사에서 만난 송윤아는 정말 매력있었다. 맹한 듯하면서도 헤헤하고 웃는 얼굴이 정말 예쁜 여배우. 가벼우면 가벼운대로 묵직하면 묵직한대로 역할 소화를 잘 하는 배우라고 기억한다. 그녀가 출연하는 작품을 일일이 쫓아다니진 않았지만 결혼 후 처음 내 놓은 영화 '시크릿'은 송윤아를 아끼는 마음에서 보았던 영화이다. 아이딸린 남자에게 시집가는 여자, 그 은근한 고통을 익히 알기에 잘 살아내라는 응원가처럼 그녀의 영화를 보았었다.
선생 김봉두에서 더없이 적절한 배역이라는 인상을 남겨 주었던 차승원. 그의 이름을 보니 송윤아가 보고 싶었던 마음만큼 조급해진다.
결혼. 남자나 여자에게 결혼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걸까. 송두리째 빼앗기는 무엇, 그 빼앗긴 것이 아깝지 않다면 성공적인 결혼일테고 그 상실이 치명적인 것이라면 그 인생 전체가 흔들리는 것이겠지.
부인의 결백을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라 부인의 잘못을 감추어주려하는 남편의 노력
다들 그러면서 사는 걸까? 피식 웃음도 나왔다.
시크릿 그건 영어잖아. 구태어 이 영화에 영어 단어를 붙인 이유라도? 그런 것까지 따지고 들 필요는 없을텐데 그냥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송윤아의 냄새는 여전했다. 연기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재미있었어? 재미? 좋았냐구? 넌? 해부하는 장면은 좀 심하더구만. 요즘 그게 대세인가보더라. 티비에서도 수술 장면이 나오는 연속극이 있는 것 같던데? 그래?
엄만 진짜 영화를 좋아한다. 응. 난 영화나 보여주고 책이나 사 주면 돼. 정말? ㅎㅎ 그 정도야 뭐.... 그 정도라니? 원금은 당연히 갚아야지. ㅎㅎ 맞아. 원금 확실하게 이자 붙여 갚고 그리고 영화 많이 보여줄게.
문서로 작성할 걸 그랬나? 오늘은 소득이 많은 날이지 싶다. 오늘의 운세에 뭐라고 나와 있었을까? 아들이 보여주는 영화, 사 주는 책을 읽으며 살 날을 생각하니 절로 입이 헤 벌어지는데 배는 안 부르다. 얼른 밥 앉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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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여기는 초등 교실 원문보기 글쓴이: 도요새
첫댓글 아들과 나누는 대화가 더 재밌습니다. 나도 송윤아가 좋고 설경구가 좋아요. 나도 영화 한 편 보러 가야 하는데 추워서 나가기가 싫어요.^^
날이 풀리고 있는 게 정가네님 영화관 가시라는 뜻이었나보네요. ㅎㅎ
제가 알기로 송윤아 큰 오빠가 김천고 에서 1984년도 자연계열 수석을 한 사람이예요 송윤아도 서울에서 대학 다녔는데 과수석으로 입학했구요 자식중 하나만 공부 잘해도 좋을텐데..^^
아하, 집안 식구들이 모두 똑똑하군요.
도요새님의 생각을 읽는것도 참 좋아요. 영화를 선택하는 얘기하며 여러가지들이...... 전 설경구영화 잘 안봐요. 그가 나오는 영화는 대부분이(우리나라 영화가 대부분 그렇지만...) 욕설이 너무 많아 일단 거부감이 먼저 앞서서요. 무심한 듯 내성적인듯 한 사람이 차갑게 독설을 뿜어낼 때는 너무 잔인하게 느껴지기도 하구요. ㅎㅎ 송윤아는 너무 예뻐요. 느낌도 너무 좋고 참하다는 느낌... 실제로 본 송윤아는 더 선해 보였어요.^^*
제가 욕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보니 별 생각은 없어요. ㅎㅎ 욕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그럴까요? ㅎㅎ 고운 심성 다치지 않게 고운 바람만 살랑거렸으면 좋겠어요, 나영님 주위엔. 전 면역력이 있어 웬만한 욕은 리듬으로 들려요. ㅎㅎ
울아들도 내가 영화랑 책 좋아한다는걸 알기는 알텐데.....언제 아들과 데이트를 해볼려나..... 내일 시작하는 "8인의 최후의 결사단" 꼭 볼려고 합니다...딱 내 스탈.....ㅋㅋㅋ
내일 개봉인가요? 저도 봐야하는 목록에 넣어두긴 했는데.... ㅎㅎ
1월21일목요일 개봉이래요~~~
아드님과 영화보고 밥먹고 책까지 받고 정말 좋네요 게다가 돈거래까지 하시고^^ 떼일 염려는 없잖아요 혹 떼인대도 덜 아깝구요 꼭 받으시길 바래요^^ 한혜진은 오래전 드라마의 금순이예요 아시죠?
정말 탄탄한 구성(plot)이라고 생각했어요. 미국 영화는 거창하기만 할 뿐 줄거리 디테일이 션찮은데, 이 영화 아주 좋더라구요.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