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13일 온고을교회 주일예배 설교 – 황의찬 목사
《 다윗의 아침 기도 》
시 5:1~12
〈 노벨문학상의 의미 〉
엊그제 아내가 뜬금없는 질문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어떤 기도에 응답해 주었어요?”
이 질문을 듣자마자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다 들어주셨지!” 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단 한 가지도 빠지지 않고 다 들어주셨어!”라고 확답했습니다.
대답을 해 놓고나서 생각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내 기도에 전적으로 응답해주셨다고 믿는 사람이구나~’
한편 스스로가 신통하기도 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아내 앞에서 이래도 되나?’
그 대답을 하고나서 생각을 조금 했습니다.
나는 혹시 복권은 안 사면서 복권에 당첨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사람은 아닐까?
“왜, 그런 예화가 있지않습니까?”
어떤 이가 매일 하나님께 복권에 당첨되어 대박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했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사실은 복권은 사지도 않으면서 이 기도를 했다는 예화 말입니다.
복권은 안 사면서 복권에 당첨되게 해 달라는 기도에 하나님은 어떻게 응답하실까요?
하나님은 그럼에도 복권에 당첨시켜 드리는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사실은 엊그제 하나님으로부터 그런 응답을 받았습니다. 어떤 응답인지 궁금하지요?
지난 10월 9일은 한글날이었습니다.
그 다음날이 10월 10일입니다. 그날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한 강”이라는 작가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발표되었습니다.
스웨덴 한림원이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한국의 한강을 선정했다는 소식입니다.
저는 “하나님, 한국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오게 해 주십시오!”라는 기도, 안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한국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내 주셨습니다.
복권을 사지는 않으면서 당첨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는데, 당첨시켜 주신 기도 응답입니다.
오늘 예배하는 여러분에게 한국의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설교하는 저에게처럼, 기도하지도 않았는데, 하나님이 주신 선물 아닌가요?
〈 기도하지도 않고 받은 응답들 〉
아내는 저에게 질문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어떤 기도에 응답해 주었어요?”
하나님은 그러나 기도하지 않은 것도 응답해 주십니다. 할렐루야~
생각해 보면 이러한 기도응답이 참으로 많습니다.
☞ 첫째는 돈 기도입니다. 돈, 돈, 돈… 경제분야입니다.
저는 7080세대입니다. 보릿고개를 직접 체험한 세대입니다.
참으로 찢어지게 가난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 이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 주세요!’
이렇게 기도한 기억이 없습니다. 그저 허리띠를 졸라맸을 뿐입니다.
하루하루 근면 성실, 그것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습니다.
70년 가까이 살다보니, 1인당 GNP 3만 달러이상, 세계 10위이내 경제 대국이 되었습니다.
복권을 사지 않았는데, 복권 당첨된 비율 이상으로 대박을 터뜨려 주었습니다. 누가요?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이야 갑론을박이 많겠지만, 믿고 구원 받은 우리!
“하나님께서 다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 둘째 정치분야입니다.
살아오면서 숱한 정치인들을 경험했습니다.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하면 되는데, 왜 이렇게 안 하지?’ 늘 마음에 불만이 있었습니다.
제가 태어나고 12명 이상의 대통령을 만났습니다.
12명의 대통령 중에서 그래도 제 마음에 흡족한 대통령 최소한 3명은 되는 것 같습니다.
그중에 한 명은 저의 기대를 초월하여, 5년 동안은 ‘정치적 행복’을 누렸습니다.
‘정치적 행복’ 사실은 이것도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기도하지 않았는데, 5년 행복, 10년은 그런대로~ 하나님이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 정도면 되지 않았습니까? 사실 기대 이상이잖습니까?
“정치인들 다 도둑놈이야” 해쌓지만, 어찌 12명 중에서 맘에 드는 대통령이 없겠습니까?
각자의 정치성향에 따라 최애 대통령이 있지 않겠습니까?
이것 역시, 기도하지 않았지만, 복권 사지 않았지만, 하나님이 당첨시켜주신 복권입니다.
☞ 셋째 문화 예술 스포츠 분야입니다.
한국의 문화가 일본을 덮어먹고, 전세계를 삼킬 줄 누가 알았습니까?
스포츠에서도 이미 한국은 메달을 획득하는 주요국가가 되었습니다.
BTS, 아이유, 걸그룹 블랙핑크 등등, 그리고 영화, 예술에서 노벨문학상까지…
☞ 대박이 터졌습니다. 기도 안 했지만, 하나님은 한국을 일류국가로 세워주셨습니다.
〈 노벨 문학상 음미 〉
지난 10일에 노벨문학상이 발표되고, 그 다음날 고속터미널 영풍문고에 갔습니다.
한강 작가의 책은 제가 [이병철의 하나님]을 집필할 때, 영감을 얻었던 책입니다.
그때, ‘채식주의자’와 ‘흰’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찾아보니 없어요. 다시 구입하러 갔습니다.
서점에 도착해 보니, 한강 작가의 책이 동이 났습니다. 단 한권도 없답니다.
헛걸음했습니다. 부랴부랴 인터넷에 들어가 보니, 지금 주문하면 11월 1일에야 받는대요!
헛걸음이었지만,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살다보니 이런 날도 있네???’
참으로 한번도 상상해 보지 않았던 경험입니다.
저는 고등학교 다닐 때 장래 희망이 소설가였습니다.
그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문학청년, 문학 젊은이 시절을 보냈습니다.
군 시절에는 ‘문학사상’이라는 월간문학지를 정기구독하면서 샅샅이 읽었습니다.
해마다 10월이면 노벨상 수상작가의 작품을 구하러 서점을 뛰어다녔습니다.
지금 기억해 보면, 노벨 수상작가의 작품을 구해서 읽고 감동 받은 책이 없습니다.
책을 펼치면 난해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뭐가 뭔지, 무슨 말인지 헤아리기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이 책이 노벨상 수상작이야, 이걸 이해 못하면 문학의 언저리에도 못가!’
그리고 낑낑 거리면서 읽었습니다마는, 감동 받은 책은 한 권도 없습니다.
첫째는 제가 모자란 탓이겠지요, 둘째 원인이 있습니다.
노벨문학상이 발표되면 한국의 출판계, 발등에 떨어진 불입니다.
부랴부랴 번역을 하여 출판합니다. ‘부리나케 번역한다.’ 어떤 뜻입니까?
번역을 의뢰받은 교수는 제자들을 동원하여 한 열 페이지씩 찢어서 벼락치기 번역을 합니다.
완전히 짜깁기 수준에다, 번역도 엉터리입니다. 도무지 읽어나가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이 책이 노벨문학상 수상작인데, 이걸 어렵다고 하면 내가 과문한 탓이지’
어디 가서 말도 못합니다.
지금 전국 서점, 출판사, 인쇄소, 난리가 났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납니까?
한강 씨가 노벨상을 받았대서가 아닙니다.
비로소 번역본이 아닌 원본을 읽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꿈은 이루어진다★’ 참으로 빈말이 아닙니다.
‘노벨상 수상작을 번역본이 아닌 원본으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꿈입니까, 생시입니까?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에게 복을 쏟아부어주셨습니다.
☞ 복권을 사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복권 이상으로 대박을 터뜨려 주시는 분입니다.
〈 다윗의 기도 〉
아내가 저에게 “하나님은 당신의 어떤 기도에 응답해 주었어요?”라고 질문했을 때,
“하나도 빠짐없이 다 들어주셨지!”라고 즉각 대답했는데, 저의 대답이 옳아요, 틀려요?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 한 것 이상으로 응답해 주시는 분인 줄 믿습니다.
오늘 설교 본문은 시편 5편입니다.
시편 5편의 제목은 “다윗의 아침기도”입니다. 다윗은 어떻게 아침기도를 했습니까?
(1~3절)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 2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 3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아침기도를 어떻게 했습니까?
“하나님, 제발 돈 문제를 해결해 주십시오!”
“하나님, 제발 정치인들 맘에 맞는 사람으로 세워주세요!”
“하나님, 제발 문화예술이 꽃피워서 엉터리 번역본 아니라 원본을 읽을 수 있게 해 주세요!”
다윗도 이렇게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기도를 들어보십시오!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 하나님, 내 말 좀 들어주세요!
☞ 하나님, 내 심정을 헤아려주세요!
하나님, 지금 내 속이 뒤엄자리가 되었습니다. 속이 속이 아닙니다. 터지고 문드러졌습니다!
하나님, 지금 내 말을 좀 들어주세요! 제발요, 저의 말을 들어주셔야되겠습니다. 들어주세요!
다윗은 이것 해 달라, 저것 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내 말 좀 들어주세요, 제 심정을 헤아려 주세요!” 이것이 다윗의 기도입니다.
이렇게 기도한 다윗에게 하나님은 분명히 응답하셨을 것입니다.
오늘 예배하는 저와 여러분에게 응답하신 것처럼 응답하셨을 겁니다.
복권은 안 사면서 당첨되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복권 당첨 이상으로 응답하셨습니다.
〈 다윗이 받은 기도 응답 〉
다윗은 생전에 자녀들 여러 명이 죽습니다.
형제간에 죽고 죽이는 살상이 일어났습니다.
아들 중 압살롬은 아버지를 몰아내고 왕이 되겠다고 반역을 했습니다.
예루살렘 왕궁 옥상에서 아버지의 후궁을 공개리에 겁탈했습니다.
만일 다윗에게 “하나님은 당신의 어떤 기도에 응답해 주었어요?”라고 질문하면요?
다윗은 자기 삶의 비참함을 돌아보면서, “에이, 하나도 안 들어주셨지”라고 합니까?
다윗도 “하나도 빠짐없이 다 들어주셨지!”라고 망설임없이 대답했을 겁니다.
다윗은 “전인격적인 기도”를 했습니다.
“내 말 좀 들어주세요, 제 심정을 헤아려 주세요!” 이것이 전인격적인 기도입니다.
다윗 인생은 무엇 하나를 딱 집어서 “하나님, 이것 좀 어떻게 해 주세요!”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으로서 다윗의 생애를 보면, 결코 복되거나 행복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지만, 자식들이 죽고, 죽이고, 겁탈하고, 버리고, 반역하고…
오늘날 한국교회 성도처럼 기도한다면,
다윗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기도해야 할 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다윗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내 말 좀 들어주세요, 제 심정을 헤아려 주세요!”
다윗에게 하나님은 그저, 하소연을 들어주고, 심정을 헤아려주시면 됩니다.
오늘 예배하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셔야 합니까?
결혼할 짝을 찾아주시는 하나님?
아들을 원할 때 아들을 주시고, 딸을 원할 때 딸을 주시는 하나님?
자식을 일류대에 합격시켜 주시는 하나님, 좋은 직장에 취업시켜 주시는 하나님?
사업을 일으켜서 남부러울 것 없는 가정을 이루어주시는 하나님?
부부간에 화목하게 해 주시는 하나님?
건강하게 백세까지 살게 해 주시는 하나님?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런 기도를 합니다.
“전인격적 기도”가 아니라 “사례별 기도”입니다.
사례별 기도를 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당신의 어떤 기도에 응답해 주었어요?”하면요,
“뭐, 별로… 그래도 감사하지요, 그래도 예수 믿어야지요, 그래도 교회 나와야지요!”
이렇게 예수 믿고 기도하면서 사는 인생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기도를 기억하셔야 합니다. “다윗의 전인격적인 기도를 기억합시다!”
〈 하나님의 대역 이웃 〉
“내 말 좀 들어주세요, 제 심정을 헤아려 주세요!”
하나님께 다윗이 애타게 부르짖으며 한 기도입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속이 타고, 힘든 일이 생기면 누구라도 붙잡고 하소연하고싶어집니다.
이럴 때, 여러분들은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께 기도는 둘째이고, 먼저 이웃을 찾아가서 하소연하게 됩니다.
아픔을 들어주는 이가 있어서 언제라도 찾아가 속을 드러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나 많은 이들이 그렇게 하지 않고 침묵하면서 속으로만 삭힙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당신의 문제를 절대로 타인에게 말하지 마십시오! 20%는 신경도 안 쓰고, 80%는 당신이 문제에 처했다는 사실에 기뻐할 것입니다.”
미국의 풋볼 감독으로 유명한 ‘루 홀츠’가 한 말입니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되짚어보면, 타인 즉 남들만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 나에게 자기의 문제를 얘기하면, 20%쯤은 귀찮고, 80%쯤은 고소합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타인만이 아니고 나 역시 그러하니 어떻게 해야할까요?
어떤 문제가 있다고 자기혼자서 해결하려고 하는 태도는 좋지않습니다.
친구가 그래서 중요합니다. 아무 얘기든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어야 합니다.
☞ 하나님은 하나님의 대역으로 우리에게 친구를 허락하셨습니다.
☞ 친구는 어떻게 사귑니까?
내 문제의 깊이를 드러내는 만큼, 친구도 자기의 문제를 그만큼 나에게 드러냅니다.
자기의 문제를 드러내기에 주저할 필요 없습니다.
또한 사람의 일생이라는 것이 실상은 문제의 연속입니다. 문제없는 날이 없습니다.
어차피 문제투성이 인생, 이웃과 아픔과 고통과 슬픔을 나누면서 살아야 합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누군가에 속내를 드러낼 때, 듣는 자의 뒤에서 하나님이 듣고계십니다.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다윗이 시를 쓴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이렇게 시를 써서 세상에 내놓을 때, 세상도 다윗의 하소연을 듣지만, 하나님이 듣습니다.
한국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작가도 자기의 속내를 책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기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글로 자기를 드러낼 때, 하나님도 봐주십니다.
다윗이 그렇게 했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기도”입니다.
“다윗의 기도”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함이 옳습니다.
상처는 드러내야 치유가 됩니다. 속으로만 앓지 말고 꺼내어 외치십시오!
하나님이 들어주십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