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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상적광선원(常寂光禪院) 원문보기 글쓴이: 사기순
정성본·김명희 지음 ∥ 296쪽 ∥ 15,000원 ∥ 민족사 펴냄
“차를 마신다는 것은 우주의 생명을 마시는 것”
다례와 다학을 넘어 참된 다도(茶道)생활로 안내하는 책
│선(禪)의 다도생활을 통해 불성을 깨닫고 지혜와 인격을 형성할 수 있다!│
다도에 관한 통속적인 관념을 깨고 참된 다도생활로 이끄는 책 『선과 다도』가 민족사에서 나왔다. 여가와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다도는 하나의 문화생활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차를 마시는 격식 혹은 풍류로서의 다도는 많이 소개된 반면, 그 정신적인 면은 크게 다뤄지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저자는 “선(禪)과 차(茶)는 하나”라고 하면서 이러한 현실을 비판하고 선불교적인 관점에서 다도의 의미를 되짚어 본다.선(禪) 수행과 차 마시는 일이 어떻게 둘이 아닌 하나일까?
사람들은 흔히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과 다실에 모여 대화를 나누면서 차를 마신다. 주인은 초대한 손님을 위해 진귀하고 좋은 차와 다구를 준비하여, 물을 끓이고 차를 우리고 달인다. 말하자면 차를 마시는 일은 좋은 인연을 함께하는 사바세계에서 주(主)와 객(客)이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일이다.
그러나 단순히 차를 마시는 일이라면 다도라고 할 수가 없다. 다도가 되려면 차를 마시는 사람들이 모두 자아의식과 자기중심적 사고를 비우고 진여 본성의 지혜로 다도삼매를 함께하여야 한다.
-본문 중에서
진정한 의미의 다도란 단지 차를 마시는 행위가 아니다. ‘도(道)’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다도는 차 앞에서 스스로의 무한한 가능성인 불성(佛性)을 자각하여 자유롭고 창조적인 삶을 펼쳐나가는 일이라고 책은 강조한다.
선문답 등 선구(禪句)로 알아보는 선 사상,
다도생활에 깊이와 흥미를 더해
이 책은 다도에 쓰이는 다양한 선구(禪句)를 풀이함으로써 선 사상을 보여준다. 또한 익숙한 선문답이나 추사 김정희의 선다시(禪茶詩)에 나타나는 선어들을 경전 등 여러 문헌을 참조해 구절구절 풀이하고 있어, 애매하고 어렵다고 느껴지는 선 사상에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다.
원주가 질문했다. “선사께서는 전에 와 본 적이 없는 수좌에게 ‘끽다거!’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렇다고 할지라도, 전에 이곳에 와 본 적이 있는 수좌한테도 어째서 ‘끽다거!’라고 말씀하십니까?”
선사는 “원주!”라고 불렀다. 원주가 “예!”라고 대답하자, “끽다거!”라고 말했다.
원주에게 말한 “끽다거!”는 그의 분별과 차별심이 쉬도록 주의를 주는 말이다. 즉 원주가“일찍이 이곳에 와 본 적이 있는 수행자[僧]에게도,일찍이 와 본 적이 없는 수행자[僧]에게도 왜 똑같이 ‘끽다거!’라고 합니까?” 하는 분별심을 떨쳐 버리도록 하는 지시어가 바로 ‘끽다거!’이다. ‘자네도 남의 일에 끄달려서 차별·분별심을 일으켜 역시 저 행각승들처럼 자신을 잃어버리고 살고 있군. 차나 마시러 가게!’, 즉 ‘차나 한 잔 마시고 정신 차리게!’라는 뜻의 질책이라고 볼 수 있다.
-본문 중에서
특히 1부 끝에는 ‘수처작주(隨處作主)’,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진여(眞如)’, ‘여래(如來)’, ‘무아(無我)’ 등 다도에 많이 쓰이는 선어들의 뜻풀이를 수록하여 평소 다도를 즐기는 독자들의 궁금증을 해소해 준다. 2부에서는 선불교적인 관점에서 다도를 생활화할 것을 제안하면서 다도를 통해 자기 수행 및 자기 치유를 해 나갈 수 있도록 좌선과 명상과 같은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다기(茶器)와 다화(茶花) 등을 통해 들여다보는 다실의 미학
『선과 다도』의 또 다른 묘미는 다실의 구체적인 사물에서 선(禪)의 의미를 찾는다는 데에 있다. “(다도에서) 기물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마음의 청정을 추구하는 것과 같다”고 하면서 저자는 다구(茶具)를 비롯하여 다실의 분위기를 꾸미는 다화(茶花), 다실에 걸어두는 묵적(墨跡) 따위에 깃든 선의 의미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도다완의 미는 세간에서 말하는 미·추의 상대적인 ‘미(美)’가 아니라 절대적인 미이다. 지극히 있는 그대로의 것, 솔직한 것, 자연스러운 것,당연한 것, 보통인 것, 평범한 것, 무사(無事)인 것이 절대적인 미의 특성이다. 아름다움에 집착한 흔적도 없고, 추함을 꺼려한 흔적도 없다.즉 이원적인 대립이 어디에도 없다. 그러한 분별심이 생기기도 전에 이미 만들어져 버린 것이다.
-본문 중에서
다도는 ‘선(禪)의 차(茶)’가 되어야 마땅하지만 동시에 ‘차(茶)의 선(禪)’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다인이 마음의 심오함을 추구하는 것처럼 사물에서도 깊이를 추구해야 하는 것은, 다도에서는 항상 사물을 매개로 하여 마음이 나타나고 마음을 통해서 사물이 살아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도를 실행하는 일에서는 바른 그릇, 아름다운 그릇, 청정함을 지닌 그릇이 큰 역할을 한다.
-본문 중에서
사물들이 제각각 선의 정신을 반영하고 있는 아름다운 다실을 살펴봄으로써 독자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주변 환경을 둘러보게 된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단순히 도구로만 인식되던 사물들과 새롭게 관계 맺으며 창조적인 삶을 전개해 나갈 수 있다.
“자아 힐링의 첫걸음이 되는 것이 바로 선다(禪茶)의 힐링”
요즈음 각박한 삶에 지친 개인을 위로하기 위해 수많은 ‘힐링’ 요법들이 소개되고 있지만 대부분 개인의 삶 속에 깊이 다가가지 못한 채 일시적인 해결만 줄 뿐이어서 오히려 갈증을 자아내고 있다. 바로 이때, 『선과 다도』가 제시하는 다도생활의 힐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선의 다도생활의 실천적인 의미는 철두철미하게 우리들 각자 성스러운 불성을 깨닫고 개발하여 참된 인간관과 인생관을 확립하고, 지혜와 인격을 형성하는 데 있다. 다시 말해 선다생활은 불교적 정신에 입각하여 인격을 형성·완성하기 위한 훈련임과 동시에 수행이며 자기 자신에 대한 치유라고 할 수 있는데, (…) 정신 내부의 갈등을 극복하고 외부로부터 상처받고 무너진 자기 자신을 일으켜 세워 긍정적인 마음으로 건강하고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자아 힐링의 첫걸음이 되는 것이 바로 선다(禪茶)의 힐링이다.
-본문 중에서
자각의 종교인 선불교에서는 스스로 선(禪)을 생활화하여 타인이 대신 살아 줄 수 없는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라고 가르친다. 다도는 바로 이러한 선불교에서 선(禪) 생활의 한 부분으로 시작된 것이다. 책에 따르면 한 잔의 차와 마주하여 주객과 자타, 범성과 미추 등의 상대적인 가치관에서 벗어날 것을 조언하는 다도(茶道)는 자유로운 정신과 편안한 마음을 얻게 하여 근본적인 자아 힐링을 가능하게 해 준다.
오랫동안 선(禪)과 다도(茶道)를 연구해 온 두 저자가 내놓은 책 『선과 다도』는 값비싼 다도구와 풍류인을 자처하는 옷차림 등 취향에만 몰두하고 있는 오늘날 다도의 현실을 바로잡고 진정한 다도생활을 해 나갈 수 있도록 비판과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어 다도에 관한 좋은 지침서가 되어 줄 것이다.
◈ 저자 약력
정성본
1950년 경남 거창 출신으로 속리산 법주사에서 출가하였다.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을 졸업했으며, 일본 아이치가쿠인(愛知學院) 대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이후 고마자와(駒澤) 대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충남대학교 철학과와 중앙승가대학교에서 강사를 지냈으며 동국대학교 불교문화대학 교수를 역임하였다. 현재는 한국선문화연구원 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한국선문화연구원(zenmaster.co.kr)의 문을 두드리면 스님을 만날 수 있다.
역저서로는 『중국선종의 성립사 연구』, 『선의 역사와 사상』, 『선불교란 무엇인가』, 『선종의 전등설 연구』, 『참선수행』, 『선불교의 이해』, 『간화선의 이론과 실제』, 『돈황본 육조단경』, 『금강경』, 『벽암록』, 『임제록』, 『무문관』, 『반야심경』, 『좌선으로의 초대』, 『선시의 세계』 등 다수가 있다.
김명희
1953년 대구 출생. 1966년 동덕초등학교, 1969년 효성여자중학교, 1972년 대구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1976년에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간호학과를 졸업했다. 1990년부터는 불교 교리와 다도를 공부하기 시작하였으며, 2008년에 동국대학교 불교문화대학원 다도학과에 입학하여 논문 「선다(禪茶) 사상 연구」로 학위를 수여하였다. 현재 경주에 머무르면서 불법과 선어록, 다도〔선다〕에 관해 수학하고 있다.
◈ 목차
들어가는 말 … 004
1부_선과 다도
Ⅰ 선(禪)으로서의 다도
1. 선(禪) 문화 … 013
(1) 선과 차, 인간의 생활 … 013
(2) 선(禪) 문화 … 018
2. 선의 다도〔禪茶〕… 023
(1) 선(禪)·불(佛)·법(法)·도(道) … 023
(2) 선의 다도와 그 의미 … 027
(3) 선과 다도 문화의 특성 … 034
3. 선승과 차(茶) 문화 … 044
(1) 선승과 차 문화 … 044
(2) 선문답과 차 문화 … 051
Ⅱ 선과 다인(茶人)
1. 정법의 안목을 갖춘 다인 … 059
2. 다인과 다구(茶具) … 063
3. 다인과 다례(茶禮) … 066
4. 다인의 경지 … 071
Ⅲ 선과 다실 문화
1. 선의 다실-일로향실(一爐香室) … 076
2. 다실의 공간 문화-노지초암(露地草庵) … 085
3. 다실의 환경 … 093
(1) 다실의 도구 문화-다구(茶具) … 093
(2) 다실의 꽃-선다화(禪茶花) … 116
(3) 선묵(禪墨)과 선구(禪句) … 119
Ⅳ 다도의 정신
1. 선의 다도〔禪茶〕정신 … 124
2. 선의 다도 사상-진공묘유(眞空妙有) … 126
3. 선다일여(禪茶一如)의 세계 … 136
4. 선구(禪句)로 보는 선 사상 … 147
5. 추사 김정희의 선다시(禪茶詩) … 155
(1) 추사 김정희와 선다(禪茶) 사상 … 155
(2) 추사 김정희의 시에 나타나는 선다(禪茶) 사상 … 161
Ⅴ 다도에 쓰이는 선어(禪語)
1. 수행·구도·구법의 세계를 나타내는 선어 … 180
2. 선의 방편법문을 나타내는 선어 … 184
3. 깨달음의 세계를 나타내는 선어 … 192
4. 자연법이(自然法爾)의 세계를 나타내는 선어 … 195
5. 선의 생활을 나타내는 선어 … 197
2부_선과 다도생활
Ⅰ 선과 다도생활
1. 원력과 발심 … 218
2. 날마다 좋은 날(日日是好日) … 220
3. 일기일회(一期一會) … 223
4. 다도의 4덕화경청적(和敬淸寂) … 233
5. 다도의 공덕과 회향 … 244
Ⅱ 선의 다도생활과 힐링
1. 선의 다도생활과 건강 … 247
2. 선의 다도생활과 힐링 … 250
3. 다도생활의 행복과 인연 … 264
(1) 다도생활의 행복 … 264
(2) 다도의 인연 … 267
Ⅲ 선의 다도생활과 자아 개발
1. 선의 다도생활과 자아 개발 … 271
2. 자아의 존재 의미 … 272
3. 지금 여기, 자신의 일시절인연의 본분사 … 274
4. 좌선 수행과 명상 … 282
후기 … 286
참고문헌 … 291
◈ 머리말
여느 다실에서든 볼 수 있는 ‘다선일여(茶禪一如)’, ‘선다일여(禪茶一如)’, ‘끽다거(喫茶去)’라는 말은 선(禪)과 차(茶)는 하나라는 것, 그리고 너와 나가 둘이 아닌 경지〔不二〕에서 차를 마시면서 지혜로운 삶을 이룬다는 것을 뜻한다. 선 수행과 차 마시는 일을 어떻게 둘이 아닌 하나의 경지라고 할 수 있을까?
선(禪)이란 번뇌 망념의 중생심을 탈피하여 각자의 청정한 본래심을 자각하고, 지금 여기에서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매사의 일을 지혜롭고 창조적으로 전개해 나가는 것이다. 청정한 마음으로 깨달음의 지혜로운 삶을 살라고 하는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는 선에서 제시한 도(道)이다. 이에 육조혜능은 ‘마음으로 깨닫는 지혜 작용이 도(由心悟道)’라고 정의하고 있다.
다도(茶道) 역시 단순히 차를 마시는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다도는 청정한 다실〔草庵〕에서 선지식이나 도반들이 함께 대화하며 지혜와 인격을 나누면서 주객이 화합〔和〕하고, 공경〔敬〕하며, 청정한 마음〔淸〕으로 깨달음의 경지〔寂〕에서 보살도를 실행하는 일이다. 차를 마시고 식사하는 일〔茶飯事〕, 즉 시절인연과 함께하는 지금 여기의 자기 본분사를 지혜와 인격으로 나누는 것이 바로 선과 다도의 문화생활인 것이다.
필자가 동국대학교 불교문화대학원에서‘선과 다도문화’를 강의할 때 과외로 『조당집』, 『전등록』, 『종용록』 등 여러 선어록과 『한산시』, 『신심명』, 『증도가』 등의 선(禪) 문학, 『대승기신론』, 『선다록(禪茶錄)』,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의 『다도논집(茶道論集)』, 히사마츠 신이치(久松眞一)의 『다도의 철학(茶道の哲學)』 등의 자료를 읽고 번역하는 세미나를 했었다. 이번에 『선과 다도』를 출간하게 된 것은, 선과 다도학을 전공하며 논문을 준비하던 불교문화대학원생 김명희(법명 진여심)가 이 세미나에 열심히 참여하고 토론하면서 선어록과 다도의 관계를 많은 자료들을 참고해 체계 있게 정리한 결실이다.
오랜 연구와 실습을 거쳐 선과 다도라는 주제로 선 사상과 선 문화의 핵심적인 부분을 골고루 정리한 이 책이 선과 다도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올바른 지침서가 되길 바라며, 또한 많은 사람들이 선과 다도생활을 통해 창조적인 삶을 열어 나가는 좋은 인연이 되기를 바란다.
2014년 3월
자안선당(自安禪堂)에서 정성본
◈ 책 미리보기
‘끽다거(喫茶去)’는 (…) ‘잠시 앉아서 차 한잔 하시오(且坐喫茶)’라는 말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끽다거’는 다실(茶室)에 가서 차를 한 잔 마시면서, 차의 맛을 느끼는 주체가 누구인지 잘 알아야 한다는 경구이다. (…) 차를 마시면서 찬 맛, 더운 맛을 자각하는 진여의 지혜 작용을 본인이 직접 체득하라는 명령어이다. 이것은 곧, 언제나 일상생활 속에서 본래심을 잃어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무심하게 마시는 차 한 잔에서 일생의 지혜를 깨달아 마치도록 하라는 선승의 자각적 교시인 것이다.
-본문 p.49
어떤 것이든 “고정된 법은 없다(無有定法)”는 말처럼 다법(茶法)에 정해진 법은 없다. 법은 지켜야 하는 것이지만 법을 고사(枯死)시키면 그 또한 법에 어긋난다. “이것은 다도에 사용할 수 없다”거나 “이것은 척도에 맞지 않는다”는 말을 다도를 즐기는 사람들로부터 종종 듣는데, 대부분의 경우 사용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사용할 능력이 없다고 하는 쪽이 맞을 것이다. 이러한 말은 사실 새로운 척도를 활용할 능력이 부족하다는 고백에 지나지 않는다. 활용만 잘하면 모든 척도는 지당하게 될 것이다. 사실 초기의 다인들은 척도를 낳은 사람이지, 척도에 얽매인 사람이 아니었다.
-본문 p.65
다법(茶法)을 고정시켜 변화가 없다면 다례가 아니다. 제멋대로 하면 법을 문란하게 하지만, 그것〔茶法〕을 고정시키는 것 또한 다법의 정신에 어긋난다. 진정한 다법이란 유동(작용)하는 생명과도 같은 것이다. 즉 다법에 의거하며 저절로 형식을 수용하는 작용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형식에 사로잡히거나 형식을 과장한다면 부자연스럽게 되어 필연성이 결핍되고, 오히려 법도에 어긋나게 돼 버릴 것이다. 다례에는 때에 맞는 자연스러운 창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본문 p.67
오늘날의 다인들은 옷차림과 행동거지 등에서 다인이라는 의식이 너무나 강하여 오히려 그들을 다인이 되지 못하게 한다. 다인이 아닌 다인,풍류인이 아닌 풍류인이 얼마나 많은가. 다인들은 특히 옷차림에 신경을 쓰는데, 뭔가 스스로의 취향을 나타내는 것이어서, 그러한 옷차림이 잘 어울리는 경우라면 괜찮지만 옷차림을 통해 스스로를 ‘다인’이라고 노골적으로 드러낸다면 보기가 흉해서 눈에 거슬리는 경우가 있다. 만약 진정으로 다인이 탈속적이라면 오히려 다인인 것처럼 꾸미지 않아 한층 평범한 사람처럼 보일 것이다. 자연스럽고 평범한 생활이야말로 진정 다인의 면모다. 선어록에 “풍류스럽지 않은 것이 진정한 풍류이다(不風流處也風流)”라고 했던 것처럼, 풍류인은 풍류를 자랑하지 않으며 오히려 풍류를 초월해 있다. 풍류의 부정이 바로 풍류의 긍정이라고 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무사(無事)의 경지에 사는 사람이야말로 풍류인이다.
-본문 pp.72~73
일로향실은 화롯불로 물을 끓여서 차를 달이는 다실이고, 일로향각(一爐香閣)은 불전에 향을 올리는 법회 의식을 담당하는 스님이 거처하는 집을 말하며, 응향각(凝香閣)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사실 일로향(一爐香)은 불이의 경지에서 작용하는 진여 법신의 지혜의 향을 말한다. 일(一)은 불이(不二)를 표현한 숫자로서 진여 본성을 말하며, 일로향(一爐香)은 불이의 진여 법신이 지혜 작용하는 미묘한 법향(法香)이다. 차를 달이며 마시는 일로향실이 단순히 음료수로서 차를 끓여 마시는 곳이 아니라 나와 차, 주객(主客), 자타(自他)를 초월한 진여 법신의 지혜로 다도삼매를 이루는 곳이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일로향실은 차를 마시는 다실을 뜻하면서, 동시에 다실과 다실의 주인, 주인과 손님, 일체의 다구와 사물이 불이의 삶을 사는 공간을 뜻한다.
-본문 p.81
단순히 즐겨 마시는 차가 다도로 발전하게 된 것은 다구의 아름다움이 그것을 다사(茶事)에 사용하고 싶은 마음을 일깨웠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찻잔이란 단순히 차를 마시기 위해 필요한 물건이다. 그것은 물론 음다(飮茶)의 경우에 그러하다. 그러나 차를 마시기 위해 낸 찻잔의 아름다움은 다심(茶心)을 한층 북돋워 이것이 곧 다사를 초래하였을 것이다. 결국 다기에 대한 애정이 음다의 생활을 다도로 발전시킨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본문 pp.102~103
이도다완의 미는 세간에서 말하는 미·추의 상대적인 ‘미(美)’가 아니라 절대적인 미이다. 지극히 있는 그대로의 것, 솔직한 것, 자연스러운 것,당연한 것, 보통인 것, 평범한 것, 무사(無事)인 것이 절대적인 미의 특성이다. 아름다움에 집착한 흔적도 없고, 추함을 꺼려한 흔적도 없다. 즉 이원적인 대립이 어디에도 없다. 그러한 분별심이 생기기도 전에 이미 만들어져 버린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도다완의 본성이다.
-본문 p.108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적어도 선의 다도〔禪茶〕에 사용되는 기물은 마음과 마찬가지로 청정한 기물, 무애 자재한 기물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탁한 물건이 어떻게 다기의 품격을 얻을 것인가? 다인(茶人)은 선수행을 하는 것과 동시에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사람이어야 한다.즉 심력〔信心〕이 있으면서〔깨달음의 신심이 확고한 사람, 선수행의 힘과 정법의 안목을 갖춘 사람〕동시에 안목도 갖춘 사람이어야 한다.청정하지 않은 마음이 다도를 다도답게 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잘것없는 다구 또한 다도를 다도답게 하지 못한다. 설령 깨끗하지 못한 다구〔器物〕를 매개로 하여 선삼매에 들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신심과 미(美)가 서로를 등지기 때문에 다도삼매라고 할 수는 없다.
-본문 p.114
선의 다도 사상은 대승불교에서 강조하는 불성의 자각과 공(空) 사상 실천이 근본이 된다. 근원적인 불성〔본래심〕을 단번에 깨닫는 돈오견성(頓悟見性)과 부처를 이루는 견성성불(見性成佛)의 선 사상에 의거하여 각자가 본래 구족하고 있는 청정한 불성을 깨닫고, 만법의 근원인 주체를 저마다 자각해야 한다. 그리하여 자각된 불성을 가지고 지금 여기에서, 무애 자재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즉 선의 근본정신을 깨달아 각자의 인생관을 혁신하는 것인데, 명예나 지위, 권위나 형식, 일체의 불안〔苦〕을 초월한 경지에서 깨어 있는 반야의 지혜로 일상생활을 전개함으로써 창조적인 삶을 활발발하게 살아가는 것이 현실성의 선의 다도생활이다.
-본문 p.127
한적한 곳에 조용히 앉아서 참선을 하는 좌선(坐禪)의 이미지와 차분한 자세로 조용히 차를 마시는 외관상의 행위를 같은 것〔一如〕으로 간주하고 다선일여(茶禪一如) 혹은 선다일여(禪茶一如)를 주장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좌선과 차를 마시는 행위를 억지로 일체화하려는 것으로서,오히려 분별심과 조작심이 증대될 뿐이다. 차를 마시든 좌선을 하든 일체의 행위와 분별에 떨어지지 않아야 한다. 다선일여(茶禪一如)는 일상삼매(日常三昧)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본문 p.143
귀중한 인생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좋은 하루를 살며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려면, 번뇌 망념의 중생심으로 살지 않고 지금이라는 이 무상(無常)한 시간을 창조적인 삶이 될 수 있도록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지나간 과거에 얽매이거나, 확실치 않은 미래에 대한 기대로 환상에 빠져 있지 말고 언제나 지금 여기에서, 마음속에 번뇌 망념이 일어난 사실을 자각하여, 깨달음의 지혜로운 삶이 되도록 하는 것이 바로 선의 다도생활〔禪茶生活〕이다.
-본문 pp.217~218
다회를 여는 경우 이 모임이 이 생애에서 단 한 번뿐인 만남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만사에 소홀함 없이 배려하고 거기에 최선을 다하게 된다. 다음에 또 만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혼신의 힘으로 정성을 다하는 다회(茶會)가 될 수 없다. 이것이 끝나면 오늘과 같은 모임은 평생에 다시는 없을 것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여는 다회(茶會)가 바로 일기일회의 다사(茶事)이다.
-본문 p.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