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문학(소설)
푸른 낙엽
김유경 지음|푸른사상 소설선 50|146×210×16mm|280쪽
18,000원|ISBN 979-11-308-2082-8 03810 | 2023.8.20
■ 도서 소개
통일 이후의 남북 문화를 준비하는 탈북문학의 정수
탈북작가 김유경의 세 번째 소설집 『푸른 낙엽』이 <푸른사상 소설선 50>으로 출간되었다. 목숨을 건 사투 끝에 한국 사회로 정착하는 과정에서 겪는 탈북민들의 고민과 갈등을 생생하게 그렸다. 목소리 없는 존재로 살아온 이들의 이야기를 진솔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내어 공감과 이해의 계기를 마련해준다.
■ 작가 소개
김유경
북한 조선작가동맹 소속 작가로 활동하다가 2000년대에 한국으로 들어왔다. 북한에 남은 가족이 감당해야 하는 위험 때문에 실명과 과거 행적을 숨긴 채 살아가야 하지만, 작가로서의 의무를 포기할 수 없어 글로써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 장편소설로 『청춘 연가』 『인간 모독소』가 있다. 『인간 모독소』는 Le camp de l’humiliation이라는 제목으로 프랑스에 번역 출판되었다.
■ 목차
▪작가의 말
▪추천의 글
평양 손님
자유인
정 선생, 쏘리
푸른 낙엽
장첸 씨 아내
그 나날들
사생아
밥
붉은 낙인
▪작품 해설 : 증언에서 질문으로 _ 박덕규
■ '작가의 말' 중에서
낙엽은 가을의 정취이자 낭만이다. 따사로운 햇살에 몸을 말려 한껏 가벼워진 나뭇잎들이 흙과 하나 될 채비로 같은 색깔을 띠고 땅에 눕는다. 저만 편안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발걸음에도 넉넉한 부드러움을 준다. 겨울을 이겨내고 봄 여름을 알차게 살아낸 낙엽의 완성된 삶은 다시 땅과 합쳐서 나무를 살찌울 것이다. 무슨 여한이 있으랴.
하지만 비바람에, 갑작스러운 한파에 단풍으로 미처 물들지 못한 채 땅과 마주한 푸른 이파리들도 있다. 푸른 낙엽이다. 충만하고 완성된 결말이 아니라 때 이르게 땅에 팽개쳐진 푸른 낙엽은 안쓰럽고 처량하다.
푸른 낙엽을 닮은 이들이 있다. 탈북민이다. 그들은 북한이라는 나무에서 거센 폭풍에 휘말려 어쩔 수 없이 세상 밖으로 던져졌다. 뒹굴고 찢기고 피 터지는 고난의 여정을 거쳐야만 한국이라는 안식처에 안길 수 있다. 그 고단했던 탈북의 여정이 어떤 이는 조금 가볍거나 단축되기도 하지만, 목숨을 걸어야 하는 길이다. (중략)
탈북민을 다문화로 보는 시선도 있지만, 언어도 문화도 뿌리도 같은 한민족이다. 다만 남과 북, 상반되는 두 제도를 삶으로 경험한 사람들일 뿐이다. 더 분명한 것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탈북 디아스포라가 아니라 남한 사회에 녹아들어 같은 구성원으로 사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탈북민이 남한 사회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북한 사람들의 큰 관심사라고 한다. 한류를 통해 북한 사람들이 한국을 동경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목숨 걸고 한국 영화를 보고 문화를 따르려 한다. 동경은 곧 희망이다. 탈북민의 삶이 북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으면 좋겠다.
대한민국에 대한 탈북민의 사랑과 자유에 대한 각성은 남다르다. 나 자신이 그러하니까. 한반도의 절반 땅에나마 자유롭고 선진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사회가 존재한다는 것은 한민족의 커다란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 경이로움이 짝사랑이 아니기를 소망한다. 탈북민의 애환을, 이해와 화합의 바람을 그리고 희망을 나의 소설에 담았다.
■ 추천의 글
탈북 작가가 북한을 소재 삼은 작품들을 쓰면, 대체로 ‘북한 인권문학’으로 호칭된다. 북한에서의 삶과 목숨을 건 탈북 과정이 북한 밖의 시선으로는 그 자체로 인권 유린 현장이 되는 데 연유했으리라. 그러나 김유경의 소설들은 ‘인권문학’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탈북 이후 남쪽 생활에도 초점을 맞춘다. 평생 작은 둠벙에서 살던 물고기가 강을 만나면 어떤 삶을 살까? 소설들 속에는 낯섦이 익숙함을 지향하면서 겪는 아픈 시간들이 차분하게 담겨 있다. 단숨에 읽었다. 궁금증이 증폭된 탓만이 아니었다. 내 일상 속에서 시들어가던 공감대가 밤새 뜨겁게 일어난 탓이 더 컸다.
탈북자를 평범한 이웃이라고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듯 하찮게 여기는 사람들을 통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음식을 버리는, 이해하려 하면서도 자꾸 가슴에 켕기는 남쪽 며느리의 생활 태도를 통해서, ‘원수님’의 품으로 돌아가자는 동생의 간절한 호소를 통해서 김유경은 북한 소재 문학의 새 지평을 열고 있다. 먼 후일 사람들이 김유경의 소설들을 다시 읽는다면, 이미 통일 이후의 남북 문화 충돌을 진지하게 고민한 작가가 있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김유경의 유창하고 아름다운 필치가 펼치는 감동의 세계와 하룻밤 함께하기를 독자들에게 권한다.
― 이정(통일문학포럼 상임이사, 소설가)
■ 작품 세계
『푸른 낙엽』의 단편은 모두 9편이다. 이 9편은 쉽게, ‘탈북시대’ 북한 실상을 다룬 것, 탈북해서 입국에 이르는 과정에서의 고충을 다룬 것, 입국 이후 정착해서 생기는 일을 다룬 것 등의 내용으로 이해된다. 반디(『고발』)나 도명학(『잔혹한 선물』)이 북한 실상만을 다루고, 또는 김정애·이지명(『서기골 로반』)이 주로 탈북 과정만을 다룬 것 등에 비하면 『푸른 낙엽』의 체험 영역은 탈북을 가운데 두고 그 전후의 사정을 두루 거느리고 있는 셈이다.
아시다시피 ‘탈북’은 1990년대부터 공산권의 와해로 냉전 체제가 해체되는 글로벌 환경에서 체제 모순의 누적과 연이은 자연재해 등으로 배급 시스템이 붕괴된 북한에서 일어난 심각한 국가 이탈 현상이다. 그 누적 수가 적어도 몇십만이며, 한국에 입국한 수는 그 10% 아래라는 설이 유력하게 들린다. 『푸른 낙엽』은 이런 시대를 배경으로 탈북할 수밖에 없는 북한의 실상(「평양 손님」 「사생아」)에서부터 탈북 후 입국해 정착해 있으면서(「자유인」 「밥」) 탈북 과정의 고통과 연루되는 정황(「정 선생, 쏘리」 「푸른 낙엽」 「장첸 씨 아내」 「붉은 낙인」 「그 나날들」)까지 매우 사실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적어도 ‘탈북민은 과연 어떤 존재인가’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데 성공한다. (중략)
지금까지 탈북민의 체험 세계라는 관점을 위주로 설명했지만 『푸른 낙엽』은 미학적 관점에서도 여러 가지 얘깃거리를 낳을 수 있는 소설집이다. 가령 ‘소설은 인간의 이야기이며 그것이 던진 질문을 형상화하는 것’이라는 명제와 관련해 『푸른 낙엽』이 창출한 캐릭터를 주목할 수 있다. 탈북민 소설에서 탈북의 실제 경험을 수행하는 인물을 설정하는 일은 실은 그리 어려운 게 아니다. 「정 선생, 쏘리」의 ‘정’, 「푸른 낙엽」의 ‘미선’, 「밥」의 ‘순녀’ 같은 인물이 탈북 시대의 탈북민의 전형을 보여준다면 그로부터 보다 창조적 전형의 자리에 「사생아」의 ‘경수’, 「붉은 낙인」의 ‘진미’ 같은 미성숙한 인물이 놓인다고 할 수 있다. 나아가 「평양 손님」에서 체제에 비순응으로 맞서는 허수혁, 「자유인」에서 엘리트 탈북민의 지위를 버리고 무위도식하는 삶을 지향하는 ‘자유인’ 등 전에 없이 질문거리를 안기는 문제적 캐릭터들이 탈북민 문학을 한국문학사에 내적 지위로 자리매김하는 동력이 되지 않을까 한다.
― 박덕규(소설가, 문학평론가) 해설 중에서
■ 출판사 리뷰
탈북민 작가 김유경의 세 번째 소설집 『푸른 낙엽』에는 삶과 목숨을 건 사투 끝에 한국 사회로 정착하는 과정에서 겪는 탈북민들의 고민과 갈등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이 책에 실린 9편의 단편소설에서는 체제의 폭력 아래 부서지는 북한 주민들의 실상을 비롯해, 탈북 이후 남한에 정착하면서 마주하는 극한의 상황들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남과 북, 상반되는 두 제도를 체험한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삶을 통해 이념과 고통의 무게에 가려져 있던 탈북자들의 민낯을 낱낱이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남한 사회에 녹아들어 한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같은 뿌리를 가진 한민족의 이해와 화합의 장을 연다.
한때 주목받는 물리학 박사로 성장하다가 연좌제로 인해 변방으로 숙청된 자(「평양 손님」), 인민을 수령에 충성하도록 만든 북한 체제로부터 세뇌되어 ‘시대가 빚어놓은 사생아’가 되어버린 인물(「사생아」)을 통해 탈출할 수밖에 없는 북한의 비인간적인 사회 체제를 보여준다. 이들에게는 사활을 걸고 국경을 넘은 후에도 한 가지 과제가 남아 있다. 바로 남한 사회에서 정착하는 일이다. 그들은 낯선 곳에서 원치 않는 결혼 생활을 하다가 몰래 도망치거나(「장첸 씨 아내」), 인신매매로 참담한 일을 당하거나(「정 선생, 쏘리」), 북에 둔 가족을 빼내오는 일로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붉은 낙인」). 표제작인 「푸른 낙엽」에서는 중국 노래방에 예속된 한 탈북 여성이 자신의 탈출을 도와준 남자를 버리면서까지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갑작스러운 한파에 단풍으로 미처 물들지 못한 채 땅에 마주한 푸른 낙엽과도 같은 이들이 있다. 때 이르게 땅에 팽개쳐진 낙엽을 닮은 탈북민들은 북한이라는 나무에서 거센 폭풍에 휘말려 어쩔 수 없이 세상 밖으로 던져졌다. 기본권을 박탈당한 북한에서 목숨 걸고 탈출하여 끝내 한국으로 입국했지만, 신분 없는 유민으로서 여러 후유증에 시달리는 그들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가까이하고 있는지를 이 소설을 통해 깨닫게 된다. 그동안 목소리 없는 존재로 살아온 이들의 이야기를 그려내어 그들을 이해하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것이다.
■ 작품 속으로
“그 단장은 북한에서 상위층이었고, 누구보다 많은 것을 누렸다고 하던데요?”
“북한에서의 그 어떤 요란한 삶도 보람되거나 영예로울 수 없지요. 단지 고급 노예에 불과하니까요.”
“고급 노예라고요?”
처음 들어보는 표현에 나는 놀라서 반문하였다.
“북한에서 아무리 헌신적으로 일하고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도 결국은 정의롭지 못한 일에 동참했을 뿐이지요.”
그의 대답은 여전히 명쾌하지 않았지만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자유인으로부터 그 이상의 대답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설사 그가 단장이 맞고 엄청난 능력이 있다 해도 본인이 싫다면 억지로 사회로 끌어낼 수 없었다. 세상의 일과 격조하고 싶고 자연 속에서 조용히 살고 싶은 것은 그의 자유였다.
(「자유인」, 68쪽)
“전 조선에서 예술체조를 전공한 체육대학 학생이었어요. 국제경기에 두 번 나갔어요. 그런데 고난의 행군으로 우리 집 생활이 어려워져 대학을 그만두게 되었고……. 부모님을 잃었어요. 중국에 가면 배불리 먹고 돈 벌 수 있다는 브로커의 말에 탈북했어요. 그런데 여자를 팔아먹는 거간꾼에게 잘못 걸려들었어요. 두만강을 건너 중국 브로커에게 인계돼 꼼짝 못 하고 갇혀 있었죠. 그리고 술집에 팔려갔어요. 일 년 새에 세 번이나 술집을 옮기며 팔려 다녔어요.”
술 마실 생각이 싹 없어지고 마음이 불안해졌다. 처음 보는 북한 아가씨 이야기는 들을수록 공포를 자아냈다. 인신매매라는 말은 책에서나 보았지 당사자를 눈앞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푸른 낙엽」, 112~113쪽)
“진미야, 걱정 마. 보위부 감시망에서 벗어났어. 여기는 안전해. 보위원하고 통화하던 전화기는 그 방에 버리고 왔어. 그래야 널 찾지 못하니까. 안심해.”
진미는 고개를 푹 수그리며 늙은이처럼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진미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떨며 눈물을 밀어냈다. 도르르 눈물이 굴러가는 흰 볼이 창백하게 반들거렸다.
“언니야, 난 그 집으로 돌아가야 해. 언니하고 같이.”
“그게 무슨 소리야? 거긴 보위원이 포위하고 있는 위험한 곳이야.”
“아니야. 보위원 동지는 언니를 구원하려고 왔어. 언니를 조국의 품으로 데려가려고 나와 함께 왔어. 남조선 괴뢰들로부터 언니를 구원하려고. 지금 애타게 나를 찾고 있을 거야. 어쩌면 나까지 조국을 배반한 줄로 오해할지 몰라. 어서 그 집으로 가야 해!”
(「붉은 낙인」, 25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