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주간
금요일>(2017. 1. 27. 금)(마르 4,26-34)
<저절로 자라는 씨앗의
비유, 겨자씨의 비유>
“하느님의 나라는 이와 같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으면,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데, 처음에는 줄기가, 다음에는 이삭이 나오고
그다음에는 이삭에 낟알이 영근다. 곡식이 익으면
그 사람은 곧 낫을 댄다.
수확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마르 4,26-29).”
이 말씀은 ‘저절로 자라는 씨앗의
비유’인데,
여기서 “하느님의 나라는 이와 같다.” 라는 말씀은,
“하느님 나라의 ‘성장 과정’은 이와 같다.” 라는
뜻입니다.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데” 라는 말씀은,
“하느님 나라의 성장과 발전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어서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르는 사람들은
저절로 그렇게 된다고 생각하게 된다.” 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일들 가운데
저절로 그렇게 되는 일이란 없습니다.
모든 일은 주님이신 하느님의 계획과 섭리 안에 있습니다.
“... 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아라.
그것들은 애쓰지도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솔로몬도 그 온갖 영화 속에서 이 꽃
하나만큼 차려입지 못하였다.
오늘 서 있다가도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까지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 (마태
6,28-30)”
“참새 두 마리가 한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너희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마태 10,29).”
들풀 하나, 참새 한 마리, 하찮게 보이는 그런 것들도 모두
하느님의 뜻에 의해 태어나고, 살고,
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의 특별한 계획과 섭리로 시작되고
진행되고 완성된다고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우연히 시작된 나라도 아니고,
악의 세력들의
방해를 물리치지 못할 정도로 허약한 나라도 아닙니다.
또 그 나라의 완성은 한없이 기다리기만 해야 하는 막연한 희망도
아닙니다.
분명히 하느님께서 미리 정하신 때에 하느님의 방식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눈에 안 보이고 잘 모른다고
해서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마음대로 판단해서 실망하지 말고,
믿고 희망하고 기다려라.” 라는 가르침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인간들이 모르는 사이에도
하느님께서 일하신다는 것은,
모든 일을 다 하느님께 맡기고 인간들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느님 나라는
우리나라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그 나라의 완성을 위한 일에 동참해야 합니다.
(충실한 신앙생활은 하느님 나라가 완성될 수 있도록
협력하는 생활입니다.)
따라서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데” 라는 말씀을,
“하느님께서 당신의
계획대로 하시는 일이니 인간들이 따로 할 일은 없다.”
라고 해석하면 안 되고, “하느님께서 당신의 일을 하실 때,
인간들은 인간들이
할 일을 해야 한다.” 라고 해석해야 합니다.
만일에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구경만 하고 아무것도 안 한다면,
‘탈렌트의
비유’에 나오는 세 번째 종처럼 될 것입니다(마태 25,29-30).
반대로, 자기가 한 일만
생각하면서,
모든 일이 다 자기 업적이라고 내세우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인간들의 눈에 안 보일 때가 많고,
그래서 잘 모르는데,
인간들이 한 일은 겉으로 잘 드러나고, 그래서 그것을 과시하기가 쉽습니다.
안 보이고 모른다고 해서 없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에 자기 업적만 내세우고 자랑한다면, 그것은 교만죄이고,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무시하는 ‘큰 죄’가 되기도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도대체 아폴로가 무엇입니까? 바오로가 무엇입니까?
아폴로와 나는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정해 주신 대로,
여러분을
믿음으로 이끈 일꾼일 따름입니다.
나는 심고 아폴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자라게 하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그러니 심는 이나
물을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로지 자라게 하시는 하느님만이 중요합니다.
심는 이나 물을 주는 이나 같은 일을
하여,
저마다 수고한 만큼 자기 삯을 받을 뿐입니다(1코린 3,5-8).”
하느님은 인간들이 협력하지 않아도,
당신의 권능으로
당신 혼자서 모든 일을 다 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의 구원 사업은 바로 인간들을 위한 일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인간들이 협력하기를 바라십니다.
이어서 나오는 ‘겨자씨의
비유’는
하느님 나라의 처음의 모습과 나중의 모습을 대조한 비유입니다.
(‘저절로 자라는 씨앗의 비유’는 그 나라의 성장 과정에
초점을 맞춘 비유입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뜻이 같은 비유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길까? 무슨
비유로 그것을 나타낼까?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땅에 뿌릴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다.
그러나 땅에 뿌려지면
자라나서 어떤 풀보다도 커지고 큰 가지들을 뻗어,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된다(마르 4,30-32).”
작은
겨자씨가 큰 나무로 자라는 것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어떻게 그리되는지 우리는 모릅니다(마르 4,27).
우리는 지금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선행과 사랑 실천이, 또 한 번의 기도가
겨자씨처럼 작다고 느껴져도 포기하면 안 됩니다.
나중에 큰 나무가 될 수 있다고 믿어야
하고, 그것을 희망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의 씨를 심는 심정으로 더욱 열심히 실천해야 합니다.
혹시라도 기대한 것과는 다르게 큰
나무가 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실망하면 안 됩니다.
어떤 결과를 얻든지 간에 결과는 모두 하느님께 맡긴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또 자기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해서
잘난 체 하면서 교만죄에 빠져도 안 됩니다.
하느님의 일을 도와드릴 수 있었음에
기뻐하면서
겸손하게 하느님을 찬양하는 것, 그것이 올바른 신앙인의 자세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