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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계명
20: 4-6
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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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지난주에는 십계명의 제1계명에 대하여 자세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제1계명은 출애굽기 20장 3절에 분명히 나와 있습니다. 그 핵심은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입니다. 사실 우리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는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밖에 안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들이나 우상을 그 자리에 앉혀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이와 같이 제1계명은 우리가 섬겨야 할 유일한 대상이 누구인지에 대하여 강조를 하고 있음을 항상 기억해야만 합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제2계명에 대한 말씀을 증거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잘못된 방법으로 섬기는 때가 종종 있습니다. 즉 제2계명은 핵심은 잘못된 방법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말라는 데에 있습니다. 무엇보다 눈에 보이는 우상의 형상을 만들어서 그것을 하나님인양 섬겨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실제적으로 과거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눈에 보이는 우상을 만들어서 섬기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출애굽기 32장 1-6절을 보시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가 시내산에서 더디 내려오자 아론을 찾아가서 눈에 보이는 우상을 만들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기 시작합니다. 이 같은 사실에 대하여 출애굽기 32장 1절은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아론에게 이르러 가로되 일어나라 우리를 인도할 신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이 말씀처럼 아론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화로 말미암아 그들의 금고리를 갖고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송아지 우상을 가리켜서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다”라고 부르게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열심히 섬겼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방법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우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이에 대하여 출애굽기 32장 5-6절을 보시면 “아론이 보고 그 앞에 단을 쌓고 이에 공포하여 가로되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 하니 이튿날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하나님으로 착각하여 그 앞에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리고 함께 뛰놀며 신나게 춤을 추었습니다. 어리석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섬기기는 섬기되 매우 잘못된 방법으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한낱 눈에 보이는 금송아지 안에 가두어두는 불신앙의 행동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참된 예배인줄로 크게 오해를 하였습니다. 결국 이 일로 인하여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산에서 내려 온 모세의 징계에 의해서 무려 3,000명이나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이처럼 지나온 역사를 통해서 우리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대신할 형상을 찾는 나쁜 죄의 습성이 있습니다.
리 한국의 기독교역사를 보더라도 십계명중 제2계명을 어김으로 대단히 심각한 문제를 야기했습니다. 최근에는 단군상이 한국 기독교계의 핫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초등학교 학생들이 단군상이라고 하는 우상앞에 절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군상을 만든 사람도 필경 망하는 일이요, 그 앞에 절하는 사람들도 망하는 일이요, 나중에는 우리나라 전체가 망하게 될 실로 무서운 영적인 범죄입니다. 이와 같이 십계명의 제2계명은 지금도 우리의 삶에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과거 우리가 일제의 지배를 받을 때에 일본 사람들은 우리 교회를 향하여 신사참배를 강요하였습니다. 심지어 일제의 폭력과 핍박을 두려워 한 목사들조차도 자신들의 교회에 가서 성도들에게 신사참배는 우상숭배가 아니요 애국적인 행동일 뿐이라고 주동을 하였습니다. 그로 인하여 교회 다니는 수많은 사람들이 일제가 정한 신사참배에 동조하게 되었고, 목사들도 그 앞에 무릎을 꿇는 큰 우상숭배의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제의 핍박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굳건한 신앙의 절개를 지킨 한 무리가 있었습니다. 이 무리는 바로 신사참배는 애국적인 예식과 절차가 아니라 분명한 우상숭배라고 목소리를 높인 부산을 중심으로 일어난 장로교의 고신파입니다. 고신파는 장로교에서도 일제에 대항하여 끝까지 믿음을 지킨 위대한 신앙의 선조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교단의 일부가 아닌 교단전체가 일제의 신사참배에 반대하여 신앙의 절개를 지킨 두 교단이 있습니다. 그 교단은 바로 우리 침례교단과 성결교단입니다. 그래서 침례교단의 목사 35명이 함흥 형무소에 끌려가서 옥고를 치루기까지 하였습니다. 지금도 어느 한 교단에서 35명의 목사를 감옥에 가둔다고 한다면 사회적으로 매우 큰 파장이 일어날 것이고, 그 교단은 생존자체가 위태할 것입니다. 하물며 지금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열악한 환경에 있던 우리 침례교단은 신사참배에 동조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교단자체가 해체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광복을 하게 되었고 일부 목사님들을 중심으로 다시 침례교가 결성되게 되었으며, 1950년대 들어와서는 신학교도 건립되고 교회 진흥원도 발족하게 되었고, 오늘날에 와서는 한국을 대표하는 4개 교단 중의 하나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앞으로는 더욱더 우리 침례교단을 자랑스러워하시기 바랍니다. 어느 사람을 만나더라도 여러분이 하나님의 영광과 기쁨을 위해서 끝까지 순수한 믿음을 지킨 침례교인이라는 사실에 대하여 자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1. 제2계명의 내용
그렇다면 제2계명의 내용은 과연 무엇일까요? 여기에 대해서는 오늘 본문 출애굽기 20장 4절을 보시면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즉 제2계명의 내용은 바로 우리 자신을 위한 우상을 ‘만들지 말고’, ‘절하지 말고’, ‘섬기지 말라’입니다.
우상을 만드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위하여 그것을 만듭니다. 우상이 자신에게 큰 복을 줄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서 만듭니다. 그러나 이 행동은 십계명중 제1계명과 제2계명을 동시에 위반하는 죄입니다. 그리고 우상은 절대로 우리들에게 복을 안겨다 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우상을 만들고 그것을 섬기고 절하는 행위는 실로 어리석은 행동임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십계명을 대표하는 정신이 무엇인지 알고 계십니까?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먼저는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라’입니다. 다음으로는 ‘나 자신을 사랑하라’입니다. 그리고 제일 마지막으로는 ‘이웃을 사랑하라’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사실은 순서가 뒤바뀌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제일 사랑해야만 합니다. 그런 자만이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고,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우선순위가 바뀌어서 나 자신을 제일로 사랑한다던가, 아니면 이웃과 처한 환경을 더욱더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최고의 순위로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마지막 유언과도 같은 신명기 4장 15-19절의 말씀을 보시면 모세가 계속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강조하고 있는 내용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이 스스 부패하여 자기를 위하여 아무 형상이라도 만들지 말라는 당부의 말씀입니다. 모세는 가나안 입성을 목전에 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문화적인 비법을 전수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동안 섬겨왔던 여호와 하나님만을 더욱더 잘 섬기라고 하는 명령하였습니다. 자신들을 위하여 하늘이나 땅이나 남자나 여자나 어떠한 형상의 우상이라도 만들지 말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길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다니엘 3장에서 느부갓네살 왕이 무려 27m에 달하는 거대한 금신상을 바벨론의 두라 평지에다가 세웠습니다. 금으로만 만들었으니 그 광채가 얼마나 휘황찬란했겠습니까? 아마도 틀림없이 금 신상의 거대한 위용과 그 화려한 광채앞에 절로 사람들이 머리를 숙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니엘 3장 5-6절을 보니까 느부갓네살 왕이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립니다. “너희는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에 엎드리어 느부갓네살 왕의 세운 금신상에게 절하라 누구든지 엎드리어 절하지 아니하는 자는 즉시 극렬히 타는 풀무에 던져 넣으리라 하매”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고 경배하는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왕의 엄명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이때에 다니엘의 세 친구들을 평소에 시기하고 미워하고 질투하는 사람들이 왕에게 고자질을 하게 되었고 결국 그들은 극렬히 타는 풀무불속에 던져지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다니엘 3장 27절에 기록된 말씀처럼 불이 능히 그 몸을 해하지 못하였고 머리털도 그슬리지 아니하였고 고의 빛도 변하지 아니하였고 불 탄 냄새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극렬히 타는 풀무불속에서도 그들과 동행하셨고 보호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 믿음의 성도들은 다니엘의 세 친구들처럼 어떠한 환란과 핍박이 와도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는 신앙의 절개를 굳건히 지켜야만 될 줄로 믿습니다.
형상 우상을 만들어서 예배하지 말아야할 이유
그럼, 우리는 왜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어서는 안 될까요? 그에
☛첫 번째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4장 24절을 보시면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고 증거하였습니다. 또한 모세도 신명기 4장 15절을 통하여 “여호와께서 호렙산 화염 중에 너희에게 말씀하시던 날에 너희가 아무 형상도 보지 못하였은즉 너희는 깊이 삼가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이 말씀처럼 하나님은 그 어떠한 형상을 가지신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여 항상 영적으로 존재하시는 거룩한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형상도 하나님의 형상을 대신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영으로 만날 수가 있고, 영으로 깨달을 수 있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두 번째 이유는 하나님의 형상을 만드는 것은 성경에 어긋나는 불법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레위기 26장 1절에서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지니 목상이나 주상을 세우지 말며 너희 땅에 조각한 석상을 세우고 그에게 경배하지 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임이니라”고 증거하였습니다. 이 외에도 성경의 수많은 구절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만드는 일은 분명한 우상숭배라고 규정을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지나온 역사를 살펴보더라도 위대한 종교 개혁가들은 모두 우상타파에 앞장을 선 사람들이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구약시대에 살았던 위대한 종교개혁가인 요시야 왕은 열왕기하 23장 6절에 기록된 것처럼 여호와의 전에서 아세라 상을 내어 예루살렘 바깥 기드론 시내로 가져다가 거기서 불사르고 빻아서 가루를 만들어 그 가루를 평민의 묘지에다가 과감히 뿌렸습니다. 또한 16세기의 종교개혁가인 루터, 칼빈, 쯔빙글리도 로마 카톨릭의 승인하에 교회내에 만연해 있던 수많은 성상들을 타파해 버렸습니다.
물론 오늘날의 천주교에도 아직까지 성상들이 많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개신교의 십계명과 천주교의 십계명이 차이가 있습니다. 개신교는 십계명의 제1계명과 제2계명이 따로 따로 존재합니다. 그러나 천주교는 제2계명을 제1계명에다가 아주 교묘하게 접목을 시켜서 그 본래의 의미를 희석시켜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럼, 천주교의 십계명은 제1계명과 제2계명이 합쳐졌으니까 제9계명까지만 있을까요? 아닙니다. 천주교는 제10계명을 둘로 나누어서 여전히 10개의 계명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결과 지금까지도 천주교는 이름도 잘 알 수 없는 수많은 성상들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가까이 있는 명동성당을 가보더라도 그 안에 엄청난 숫자의 성상들이 있음을 쉽게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대신하고 있는 우상들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형상을 눈에 보이는 형상으로 만드는 것은 분명한 우상숭배라고 성경은 경고하고 있는데 왜 지금까지 계속해서 많은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우상들을 만들고 있을까요? 여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논리들이 있습니다.
형상을 사용하는 자들의 잘못된 주장
☛첫 번째 논리는 형상은 예배의 보조수단이라는 주장입니다.
A. D. 787년에 니케아 종교회의가 열렸습니다. 이 종교회의가 열린 배경은 이교도인 회교도들이 기독교국가인 동로마를 침략데에 있습니다. 회교도들이 동로마에 들어와서 교회를 가보니까 거기에는 수많은 성상들이 있었습니다. 원래부터 회교도는 알라신외에는 그 어떠한 성상이나 성인을 섬기지 않습니다. 오직 알라만을 유일한 신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눈에는 교회 내에 있는 수많은 성상들이 알라를 대적하는 우상들로 보였으며 자연스럽게 기독교 신자들을 우상숭배자라고 규정을 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동로마의 황제가 가만히 들어보니까 회교도들의 말이 옳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회교에는 오직 알라밖에 없는데 기독교에는 수많은 성상들이 존재하였고 그것들이 바로 우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황제는 오늘부터 당장 교회내에 있는 모든 성상들을 다 제거할 것을 강력하게 명령하였습니다. 그러자 교회에 있던 성직자들이 황제를 찾아와서 성상들은 경배의 대상인 우상이 아니라 예배의 보조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감언이설로 잘못된 논리를 펼쳤습니다. 결국 교회는 성직자들의 논리로 받아들였고 얼마 못가서 이 국가는 멸망하여 역사의 뒤안길로 쓸쓸히 사라져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형상을 예배의 보조수단이라는 악한 논리의 주장은 동방의 기독교를 망하게 하는 독약이었습니다.
☛두 번째 논리는 형상은 성경을 모르는 평신도들이 보고 배울 수 있는 평신도의 책이라는 주장입니다.
이것은 평신도를 매우 무시하는 발언입니다. 사실 평신도들도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인 성경을 자주 읽고 묵상합니다. 우리교회만 하더라도 장로님들과 권사님들과 집사님들이 아주 열심히 성경을 읽고 계십니다. 이처럼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성경을 무시하고 배척하는 평신도들은 없습니다. 평신도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너무나 열심히 읽고 잘 알고 있습니다. 하박국 2장 18절을 보시면 “새긴 우상은 그 새겨 만든 자에게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 스승이라 만든자가 이 말하지 못하는 우상을 의지하니 무엇이 유익하겠느냐”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처럼 우상이 우리들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오직 거짓말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형상이 우리들이 보고 배울 수 있는 평신도들의 책이라는 주장은 더 이상 설득력이 없습니다.
☛세 번째 논리는 모세도 광야에서 구리뱀 형상을 만들었듯이 우리들도 얼마든지 형상을 만들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모세가 만든 구리뱀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상징하는 것이지 그 구리뱀 자체에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열왕기하 18장 4절을 보시면 “여러 산당을 제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는 장면이 나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섬기기 보다는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그 앞에 분향을 하였습니다. 이때에 히스기야 왕은 과감히 종교개혁을 일으켜서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놋뱀을 부수어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만든 구리뱀이 형상을 만들어도 무방하다는 논리에 타당하지 않다는 진리를 우리는 확실하게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네 번째 논리는 예수님께서도 육신으로 오셨으니 형상을 만들 수 있지 않느냐는 주장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형상을 상상으로 그린 그림들이 지금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성경적인 근거가 없습니다. 예를 들자면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과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예수님의 모습은 아주 다릅니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의 예수님은 신성이 강조되어 있고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은 인성이 강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각 성경의 상황마다 우리들에게 소개되어지는 예수님의 모습은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변화산에 올라가시기 전의 예수님과 내려오신 후의 예수님의 모습이 다른데 어떤 그림이 정말 예수님의 얼굴일까요? 예수님은 신성과 인성을 함께 소유하신 분이시기에 그 그림을 정확하게 그릴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가정에 혹시라도 예수님의 형상을 본 딴 성화가 있다고 한다면 과감히 불쏘시개로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그 그림에는 어떠한 성령의 능력이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이 들어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상상을 통하여 그린 일반적인 그림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신앙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에는 어떻게 하나님의 모습을 생각할 수가 있을까요?
우리는 먼저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성품을 중심으로 생각해야만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모습은 거룩하시고 의로우시고 자비하시고 인자하시고 사랑이 많으신 분으로 우리들에게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어디까지나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속성을 머릿속에 그릴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예배를 드릴 때에 우리는 이와 같은 하나님의 속성을 생각하면서 은혜가 넘치는 산 제사를 드릴 수가 있게 됩니다. 그 다음으로는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인자하신 모습을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골로새서 1장 15절에서 예수님을 가리켜서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라고 증거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복음서에 소개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통하여 인자하시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의 모습을 머릿속에 떠 올릴 수가 있습니다.
2. 우상숭배하지 말아야 할 세 가지 분명한 이유
왜 우리가 우상숭배를 해서는 안 되는지에 대한 분명한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이유는 오늘 본문 5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출애굽기 20장 5절을 보시면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이라고 증거합니다. 여기에서 성경은 우리들에게 하나님을 질투하는 하나님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흔히 질투라고 하면 나쁜 의미로만 받아들이는데 질투에는 증정적인 면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설명을 하자면 어떤 행복한 가정이 있다고 칩시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남편과 아내의 사이가 점점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가정을 지키고 책임져야 할 아내가 밖에 나가서 친구들과 어울려 늦게 들어오고 나중에는 외박까지도 하고 말았습니다. 이때에 남편이 아내를 향하여 아무런 꾸중도 안하고 가만히 있으면 틀림없이 아내를 사랑하지 않고 있다는 명확한 증거입니다. 그러나 아내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남편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행동할까요? 불같은 질투심을 갖고서 아내를 되찾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 질투는 아내를 향한 남편의 뜨거운 사랑의 마음입니다.
원래 질투의 의미는 독점적인 사랑을 한다는 뜻입니다. 즉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이와 같다는 말씀입니다. 그 사랑이 얼마나 뜨겁고 간절한지 질투하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이처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질투는 사랑의 좋은 의미로 사용괴고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질투는 부정적인 면으로 작용하여 우리를 향한 진노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만약에 한 사람이 하나님을 잘 섬기지 못하고 그만 우상의 유혹에 넘어가서 눈에 보이는 우상들을 섬긴다면 하나님은 틀림없이 질투하시고 맹렬한 진노를 발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믿음의 성도님들을 일평생 여호와 하나님만을 사랑하시고 끝까지 잘 섬기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이유는 우상숭배가 바로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5절에서도 “-----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성경은 우상에게 절하고 섬기고 사랑하는 행위가 바로 하나님을 미워하는 행동이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나님도 섬기고 동시에 다른 우상들을 섬길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믿음의 성도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섬겨야 합니다. 한 가정의 아내도 남편만을 사랑해야만 합니다. 남편도 사랑하고 다른 남자도 사랑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온전한 마음으로 남편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처럼 우리 하나님도 사랑하는 자녀들의 완전한 사랑을 요구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항상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이유는 우상숭배 하는 자들의 죄를 하나님께서 삼사 대에 걸쳐서 반드시 갚으
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5절도 “-----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느니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은 그 관습이 삼사 대까지 전해집니다. 할아버지가 우상을 숭배하면 아버지가 따라하고 아버지의 아들도 그 전통을 물려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상숭배는 보통 삼사 대에 걸쳐서 이어집니다.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우상숭배에 대한 죄값을 사람들에게 물으십니다. 그리고 우상숭배하는 불신앙의 가정을 방문하십니다. 이때에 하나님께서 축복의 보따리를 들고서 방문하실까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질병과 가난의 보따리를 들고서 방문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우상숭배하는 가정치곤 질병이 없는 가정이 없습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가정치고 평안한 가정이 별로 없습니다. 그 이유가 바로 하나님께서 우상숭배하는 가정의 죄 값을 물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음의 성도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우상을 숭배해서는 안 됩니다. 더군다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우상숭배하는 전통을 물려주어서도 절대로 안 됩니다. 시편 89편 31-32절도 우상숭배하는 자들을 향하여 “내 율례를 파하며 내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면 내가 지팡이로 저희 범과를 다스리며 채찍으로 저희 죄악을 징책하리로다”라고 하나님의 심판과 징계에 대하여 강력하게 증거하였습니다.
3. 축복과 은혜를 천대에 받는 두 비결
하나님께서는 우상숭배를 하는 자들에게는 무서운 심판을 삼사 대에 걸쳐서 행하시
지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들에게는 놀라운 축복과 은혜를 베푸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 출애굽기 20장 6절을 보시면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들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시느니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너무나 사랑이 많으신 분이십니다. 죄는 삼사 대에 걸쳐서 갚으시지만 은혜는 무려 천대에 이르기까지 넘치도록 풍성하게 베푸시는 분이 바로 우리가 섬기고 있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과 후손들이 천대에 이르기까지 복을 받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하기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을 온전히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분들에게 우리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틀림없이 부어질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은 지금은 흥하고 부한 것처럼 보이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점차 쇠퇴하여 나중에는 완전히 망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지만 비록 지금은 약하고 가난한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잘 지키는 믿음의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만 부해지고 흥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은 시간문제이지 결국은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잘되고 사랑하는 자녀들이 복 받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최우선적으로 하나님을 제일로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 사랑하시는 분들에게 하늘의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틀림없이 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계명을 힘써 지키시기 바랍니다. 요한일서 5장 3절을 보시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결코 하나님의 계명들이 무겁지만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기쁜 마음으로 계명들을 지키며 순종하는 삶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들을 100%로 완전하게 지키며 살수는 없더라도 지키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면 그 인생을 하나님께서 축복하여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명들을 잘 지키지 못할 경우에는 그 즉시 회개하며 간절한 마음으로 간구할 때에 궁극적으로 그 인생에 하늘의 놀라운 축복과 영육간에 강건케 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의 마음속에 두 가지의 원리를 깊이 새겨야만 합니다. 먼저 하나님을 더욱더 깊이 사랑하기기 바랍니다.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심지어 사랑하는 가족들보다도 하나님을 제일로 사랑하십시오. 왜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만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임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키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존중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묵상하는 가운데에 그 계명에 철저히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시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반드시 그 계명들을 지키기 위해서 수고하며 땀을 흘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계명을 겸손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신실한 믿음의 백성들에게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하늘의 신령한 축복과 땅의 기름진 풍성한 모든 것들을 아낌없이 베풀어 주시고 채워주실 줄로 믿습니다.
제가 바라고 믿고 원하기는 오늘 이 아침에 거룩한 주일을 맞이하여 신령한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힘써 지키겠노라고 하는 위대한 믿음의 결단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 신앙의 원리를 마음에 품은 분들에게 이 땅에서 천대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풍성하신 축복과 은혜가 쏟아 부어지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