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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이란 상식을 벗어난 기이하고 놀라운 일입니다. 쉽게 말해 일상에선 일어날 수 없는 신비한 일을 우리는 기적이라고 말합니다. 신비와 기적은 모든 종교에서 지극히 일반적인 현상이라서 종교인이라면 누구나 이런 ‘신비와 기적’을 원합니다. 우리가 믿는 신앙도 일반적 상식을 뛰어넘는 초월적인 신비와 기적마저도 우리 일상속에서 이뤄지는 삶을 기대합니다. 기적이 일상이 되고 기적이 상식이 되는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일명 ‘칠병이어의 기적’이라고 불려지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기적에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이전에 예수님께서 행하신 ‘오병이어 기적’을 경험하였던 사람들도 이 중에 있었을 것이고 본문보다 앞 부분에 기록된 귀가 멀었던 사람이 귀가 열려 듣게 되고 입이 막혔던 사람이 입을 열어 말하게 되는 것을 경험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런 기적 경험을 통해 우리는 우리 믿음이 굳건하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기적의 경험이 실생활속에서 상식으로 나타나게 되는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이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가 우리 삶에도 예수님의 기적이 일상이 되도록 우리가 경험할 삶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알고 그런 삶 이후에 경험할 믿음의 기적을 체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적을 경험하기 위해 우리가 가져야 할 삶 첫째로 고난의 삶입니다.
마태복음 15장 32절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
예수님께서는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먹을 것이 없게 되었을 때 무리들이 가지고 있는 물고기 두 마리 떡 일곱 개를 가지고 모든 사람들이 배부르게 먹는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런 기적을 행하셨을까요? 바로 예수님의 마음이 핵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과 함께 있는 기간이 삼일이 되었는데 먹을 것이 없어져 굶주리게 되는 고난이 이들에게 찾아온 것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단지 예수님을 찾아와 예수님과 함께 있고 싶어서 따라다녔는데 오히려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것이 고난이 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 굶주릴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예수님과 함께 있는데 왜 우리에게 이런 고난이 오냐?”고 원망합니다. 우리는 종종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데 왜 우리에게 이런 고난이 오냐?”고 불평합니다. 하지만, 사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이 되시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어려움이 찾아와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보기 위해서는 우리가 힘든 환경에 처해봐야 합니다. 그래야 그 어려움을 해결하시는 예수님, 그 힘든 환경을 물리쳐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로키산맥 해발 3천 미터 높이에 수목 한계선인 지대가 있습니다. 이 지대의 나무들은 매서운 바람 때문에 곧게 자라지 못하고 하나같이 무릎꿇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 나무들은 열악한 조건에서 생존하기 위해 무서운 인내력을 발휘하며 튼튼히 자라났습니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가장 공명이 잘 되는 명품 바이올린을 만들 때 이 ‘무릎 꿇고 있는 나무’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영혼을 가지고 인생의 절묘한 선율을 내는 사람은 어떤 고난 없이 편안하게 지내온 사람이 아니라 온갖 역경과 아픔을 겪어온 사람인 것을 보여주는 것은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편 119편 71절입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값진 보물은 길거리에서 쉽게 발견되지 않고 깊은 광맥을 찾아가야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서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보물도 우리 인생의 깊은 곳에 있는데 그 깊은 곳은 바로 ‘고난’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소설가 C.S.루이스는 “평안할 때 인간은 하나님께서 양심을 통해 속삭이시는 소리를 잘 듣지 못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보내시는 것이다. 고난은 ‘인간의 잠든 감각’을 깨우시는 하나님의 ‘큰소리’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기적은 위기를 경험해야 나타나는 것입니다. 위기는 기회인 것입니다. 위기의 순간을 헤쳐 나가야 발견하게 되는 것이 기적이요, 은혜라는 것입니다.
열왕기상 4장에 보면 선지자의 제자들 중 한 명이 죽고 과부가 된 아내, 그 홀어미의 두 아들 가정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일찍 생을 마감한 선지생도의 남은 가족의 가정이야기는 정말 비참했습니다. 빚도 많아지고 생계를 유지할 형편이 되지 못해 아들 둘을 남의 집 종으로 보내야 할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 집에는 겨우 한 병의 기름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남편, 아버지를 잃고 이제 뿔뿔이 흩어져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때 엘리사가 이 집을 찾아왔고 그들에게 이웃집 그릇을 최대한 많이 빌려오도록 했습니다. 그 후에 엘리사는 빌려온 그릇에 기름을 붓기 시작했는데 빌려온 모든 그릇에 기름이 찰 때까지 기름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그릇에 기름이 가득차자 이제 기름이 멈췄습니다. 엘리사는 그 과부에게 가득 찬 기름을 팔아서 생활하도록 하였습니다. 엘리사 선지자를 통해 이런 기적을 경험하게 된 선지자의 아내도 큰 고난의 상황을 맞아 죽음의 문턱까지 가는 큰 고난을 경험했기에 그 벼랑 끝 위기에서 기적을 경험하게 된 은혜가 있었던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 13절입니다.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기적을 경험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시는 은혜를 경험하며 예수님의 사랑안에서 날마다 기적이 상식이 되는 인생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까? 그런 삶을 살기를 원하는 우리에게 일단 고난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런 고난이야말로 기적을 기적되게 하는 기본 조건이 됩니다. 오늘 우리에게 찾아온 고난이 있다면 이것은 축복을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하며 고난 중에도 즐거워하며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적을 경험하기 위해 우리가 가져야 할 삶 둘째로 나눔의 삶입니다.
마태복음 15장 35, 36절입니다.
“예수께서 무리에게 명하사 땅에 앉게 하시고 / 떡 일곱 개와 그 생선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매”
예수님께서 칠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시는 과정속에서 사람들에게 나타난 일, 그리고 우리 주님께서 보여주신 행위에 나눔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굶주림의 고난을 당한 무리들을 돌보시면서 그들에게 강조하신 것은 혹시 뭔가 나눠줄 것이 있는 지를 물으셨습니다.
마태복음 15장 34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느냐 이르되 일곱 개와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나이다 하거늘”
예수님께서는 나눔을 통해 사람들에게 닥친 식사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게 하시려고 물어보신 것이 아닙니다. 어떤 분들은 ‘오병이어사건’이나 ‘칠병이어사건’에 대한 신앙적 교훈을 강조할 때 ‘나눔과 헌신’을 이야기하곤 합니다. 마치 오병이어, 칠병이어 사건이 모인 사람들이 자신의 가진 것을 나누었기에 일어난 일인 듯 폄하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그것이 이 사건의 교훈이라면 예수님께서 음식을 모을 필요도, 모인 음식에 축사할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면 감동받은 사람들에게 그들의 것을 가지고 각자 나눠주라고 명령만 하시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나눔으로 문제가 해결되었다라는 것이 오늘 본문의 주제가 아닙니다. 그런 나눔이 오늘 본문의 핵심이 아닙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 쓰인 물고기 두 마리 떡 일곱 개가 예수님의 놀라운 역사에 쓰임받았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기적을 위해 쓰여진 작은 물건이 있었고 그 작은 물건을 예수님께 드렸을 때 예수님께서 기적을 베푸신 것입니다. 예수님께 드린 것이 엄청난 기적을 통해 불어나서 사람들이 나눠 먹고도 남은 분량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나눔’은 하나님의 공동체에서 각자가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자질이기는 하지만 이런 나눔을 통해서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셨고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셨기에 오늘 배고픔의 문제가 해결된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잠언 19장 17절입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구제와 봉사사역으로 유명한 스탠포드 켈리라는 분이 아이티라는 섬나라에서 선교사역을 감당했습니다. 아이티라는 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의 한 곳으로 유명하고 엄청난 지진으로 피해가 심각해서 전 세계의 구호사역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아이티의 어느 교회에서 추수감사절을 축하하며 각 교인이 사랑의 헌금을 드렸습니다. 한 십대 소년이 드린 봉투에는 꽤 많은 돈이 들어 있었습니다. 석달치 월급정도의 돈이었습니다. 하지만 헌금봉투만 보일 뿐 그 소년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나중에 켈리선교사가 마을에서 그 소년을 만나게 되었을 때 “헌금드린 돈을 어디서 마련했냐?”고 물었고 그 소년은 “헌금을 드리기 위해 말을 팔았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켈리가 그 소년에게 “헌금은 그렇게 드렸으면서 교회 감사절 행사에는 오지 않았냐?”며 물었습니다. 소년은 주저하다 마지못해 “입고 갈 옷이 없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입을 옷도 없었지만 추수감사절 헌금을 드리고 싶어 가지고 있던 말을 팔았던 것입니다. 켈리는 여러 교회를 방문하여 강연할 때마다 이 소년의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집회 후에 부유한 차림의 여인이 지갑에서 돈을 꺼내주며 ‘그 소년에게 옷을 사주라’며 말했습니다. 켈리는 실망스러운 마음으로 그 여인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제가 그 소년의 이야기를 한 것은 이런 옷값을 받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소년의 헌금이 하나님께 귀했던 것처럼, 당신도 하나님을 위해 귀한 일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가난한 나라에서 자신은 돈 좀 있다고 하는 사람이 지갑에서 옷 한 벌 살 정도의 돈을 내밀며 도움의 생색을 내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아팠던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6장 17, 18절입니다.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기적의 삶을 경험하려면 최소한 주님 앞에 드리며 주님 앞에서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것을 기꺼이 내어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전혀 아무 것도 없는 것으로 뭘 만들어서 기적을 행하실 수도 있는 분이셨지만 무리 전체를 통틀어 함께 할 수 있는 작은 생선 두 마리와 떡 일곱 개를 내어놓게 만드셨고 그 분도 그것을 나눠주시면서 사천 명을 먹이시는 놀라운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기적을 경험할 때 우리에게 있어야 하는 마음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위해 드릴 수 있는 것을 드려야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내어 놓은 들 그것이 위대한 역사에 얼마나 효과를 낼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작은 것으로 위대한 역사를 이루십니다. 저와 여러분의 작은 헌신이 하나님의 위대한 기적의 도구가 되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적을 경험하기 위해 우리가 가져야 할 삶 마지막 셋째로, 사명의 삶입니다.
마태복음 15장 39절입니다.
“예수께서 무리를 흩어 보내시고 배에 오르사 마가단 지경으로 가시니라”
예수님께서는 기적을 경험한 사람들을 ‘흩어보내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그들을 흩어 보내셨을까요? 이 사람들은 어떤 사람입니까? 오늘 본문에 등장한 이 사람들은 기적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의 특별한 능력을 경험하고 예수님께서 어떤 존재인지를 깨달은 사람입니다. 이제 이들은 예수님의 팬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증언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의 경험을 말할 수 있는 전도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을 흩으신 것입니다. 그렇게 따져보자면 결국 칠병이어의 기적을 이 사람들에게 베푸신 이유는 바로 이들에게 전도자의 사명이 있고 주님의 복음을 각자 자리로 돌아가서 전파해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기적은 비전이 있고 사명이 있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쓰실 사람에게 부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경험한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도록 하나님께서 만드시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3장 2절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출애굽기 3장 4절도 보시겠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어떻게 나무에 불이 붙었는데 나무가 타지 않는 일이 가능할까요? 어떻게 이렇게 말이 안되는 일을 모세에게 보여주셨을까요? 그런 기막힌 기적을 보지 않으면 모세가 하나님의 존재를 경험하지 못할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기적을 통해 모세를 위대한 하나님의 선지자로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에게 나타난 기적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 바울도 사울이라고 불렸을 때 그는 여전히 예수님의 존재를 부정하며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는 인간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그리스도인들을 잡아서 죽이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홀연히 하늘에서 비치는 빛가운데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기적을 경험했던 것입니다. 이런 기적은 그에게 이방의 빛이 되는 사명이 있었기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입니다.
사도행전 9장 3~5절을 보십시오. 함께 읽겠습니다.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사울과 함께 있었던 사람들도 뭔가 소리가 들리고 빛이 하늘에 비치는 것을 보았는데 그 분명한 부르시는 음성을 듣고 눈이 보이지 않게 되는 놀라운 상황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사울은 분명히 그 음성을 듣고 기적을 체험하며 변화되는 과정을 겪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고 무엇을 위해 죽느냐의 문제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무엇을 위해 살고 무엇을 위해 죽고’.. 이 문제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사명의 문제’입니다. 무엇을 위해 사는 지 모르고 무엇을 위해 죽을지 모르면 그것은 동물들이 세상을 살아갈 때 하는 일입니다. 짐승들은 사명이 없습니다. 아니 있다고 하더라도 깨닫지 못합니다. 사명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며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며 살아가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뜻을 이루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사야 6장 8절에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사명을 주실 때 이렇게 부르시고 이사야가 이렇게 답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적을 행하실 때는 우리를 통해 이루시기 위한 계획이 있기에 놀라운 체험을 하도록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명을 주셨고 그 사명을 이루시기 위해 기적을 행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귀한 도구가 되어야 할 만 존재라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에게 기적을 베푸실 것입니다. 우리에게 어떤 사명이 있습니까? 우리 가정과 우리 직장, 우리 사역지에서 주님을 위한 어떤 꿈과 어떤 비전이 있으십니까? 꿈을 꾸고 비전을 키우며 사명을 발견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뭘 하시기 원하시는 지 간절히 기도하고 깨닫게 될 때 그 사명을 위해 기적도 베푸시고 도움의 손길도 허락하시며 하나님의 천사를 보내 귀한 역사를 경험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사명을 깨닫고 사명을 위해 굳세게 살아갈 때 기적을 체험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을 맺을까 합니다.
오늘 본문의 ‘칠병이어 사건’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기적이 상식이 되는 교회, 기적을 체험하는 성도라는 우리 교회의 표어에 맞는 우리들의 신앙, 우리의 삶의 자세가 다시 세워지기를 기대합니다. 우리가 기적을 체험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항상 우리의 기본 상식속에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기적이 오늘도 느껴지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런 삶을 살기 위해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오늘 본문은 분명히 보여주었습니다. 우리에게 어려움이 찾아오고 힘든 상황이 생길 때 그 때야말로 기적의 때이고 구원의 때이고 은혜의 때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어려움이 있어야 해결함을 받을 때 그것이 기적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처럼 우리에게 생기는 고난이 있을 때마다 원망과 불평과 짜증과 욕설부터 나올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려고 이런 어려운 환경을 내게 허락하셨구나’ ‘이제 내게 기적같은 은혜를 주시겠구나’라는 생각으로 감사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힘들고 어려울 때일수록 이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내가 나눠주고 내가 베풀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기적이 이뤄지기 위해 나를 헌신하고 나의 것을 베풀어주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기적은 사명이 살아있는 사람에게 역사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암담한 현실, 어려운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주님을 위해 무슨 일을 해야 할 지 생각해 보고 주님이 나를 부르신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을 위한 사명대로 담대히 살아가기를 다짐할 때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정말 우리가 주님의 백성으로 살아간다면 먹을 것이 없어지고 앞이 막막한 현실에 놓여도 주님께서 책임져주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날마다 기적이 상식이 되는 신앙생활, 기적을 날마다 체험하며 은혜가 충만한 신앙생활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