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포의 새벽 편지1013
의상조사법성게13
동봉
인연따라 이루다(1)
이름없고 모습없어 일체세계 끊어지니
깨달은이 지식일뿐 남은경계 아니로다
참된성품 깊고깊어 지극하고 오묘하여
자기성품 안지키고 인연따라 이뤄지네
무명무상절일체無名無相絶一切
증지소지비여경證智所知非餘境
진성심심극미묘眞性甚深極微妙
불수자성수연성不守自性隨緣成
-----♡----
명상名相은 곧 명색名色이다
12인연 항목 중 네 번째가 '명색'이다
속담에'제 위해 먹고 남 위해 입는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남 위해 먹는 일은 없다
먹는 일은 물론 자신을 위해서고
다이어트diet도 결국 제 건강을 위해서다
그러나 입는 일은 먹는 것과 좀 다르다
스스로 멋있고 예뻐보이고 싶고
남에게 혐오감을 주지 않으려 챙겨 입는다
물론 입성은 신분을 드러내고
자기 지위를 드러내기 위함이기도 하다
아무튼 살아가면서 먹성 못지 않게
입성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좋다
그런데 먹성과 입성만큼 중요한 것이 있다
'내'게 관한 것이면서 '남에 것'이 있다
이를 '남에name' '나메name'라 한다
나메name라니! 어디서 많이 본 단어 아닐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름'의 뜻이 맞다
동아프리카 탄자니아Tanzania는
내게 있어서만큼은 제2의 어머니나라다
그만큼 정이 들대로 듬뿍 든 나라다
나는 그 나라 현지인들에게 준 게 없지만
52개월 동안 나는 많은 것을 받았다
그들이 내게 베풀어 준 사랑은 한이 없다
2004년 11월 처음 탄자니아에 내렸을 때
예닐곱 살 소년이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까만 피부에 눈망울이 참 초롱초롱했다
"지나 라코 나니jina lako nani?"
용인에 있는 외국어대학에서
스와힐리어Kiswahili를 서너 시간했는데
갑작스레 당하니 무슨 말인지 깜깜이다
옆에 있던 민형(故 민석기)이
"스님 이름이 뭐냐고 묻는 말인데요!"
그런데도 막상 말이 나오지 않아 머뭇대는데
소년이 다른 말로 물었다
"마스터, 나메master name?"
내가 나를 가리키며 소년에게 되물었다
"내가 나메냐고?"
소년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노노, 지나~ 나메, 나메~ 지나!"
상황을 재미있다는 듯 지켜보던 민형이
"영어 네임name을 나메라고도 읽어요
미취학 아이들은 발음기호 없이
스와힐리어를 읽듯 그렇게 읽고 있지요."
그제서야 웃으면서 소년에게 답했다
"지나 랑구 동봉jina langu dongbong"
'내 이름은 동봉이라고 해'의 뜻이다
이름 없는 사람은 없다
이름 없는 꽃이 없고 풀이 없으며
이름 없는 나무가 없고 넝쿨이 없다
이름 없는 물고기가 없고 곤충이 없고
이름 없는 새가 없고 벌레가 없고
이름 없는 생물이 없고 동물마저 없다
이름 없는 도로가 없고 건축물이 없으며
이름 없는 배가 없고 자동차가 없다
이름 없는 것을 찾아보려니 그게 더 힘들다
별도 달도 산도 구름도 다 이름이 있다
이름 명名 자를 보면
어스름한 저녁夕이거나 밤夜에
불러口 구별하기 위해 생긴 게 이름이다
저녁 석夕 자는 저녁夕의 뜻이지만
밤 야夜 자도 이슥한夂 저녁夕을 가리킨다
이슥한 저녁이든 이른 저녁이든
어두우면 모습으로 분간하기가 쉽지 않다
한 때 우리는 백열등 시대를 거치고
형광등 시대를 지나 요즘은 LED가 대세다
요즘은 한밤중이라도 얼굴이 보인다
그래서 이름을 부르지 않더라도
"어이, 거기 얼룩무늬 티 입은 친구!"
"저요? 저 말이예요?"
"그래, 자네 말고 얼룩무늬 티가 또 있어?"
"저 이거 줄무늬 정장인데요?"
"아무튼 줄무늬 정장의 잘 생긴 친구!"
잘 생긴 친구라는 그 말 한마디에
기분이 좋아진 사람이 오너 앞으로 나간다
고유명사가 아니라면
'첫째야'가 있고 '둘째야'가 있으며
'막내'가 있고 '아들'이 있고 '딸'이 있다
생명체의 몸을 이루고 있는 세포細胞cell,
너무나 작아 보통 확대경/현미경으로는
구별이 불가능한 작은 세포에도
세포막을 비롯하여 리소좀이 있고
리보솜, 소포체, 미토콘드리아가 있다
골지체와 세포핵이 있는데
특히 세포핵은 세포마다 하나씩 있고
세포 소기관에 명령을 내리는 통제시설이다
보통 인간의 몸이 60kg이라 가정할 때
100조 개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면
세포 하나의 무게는 평균 어느 정도일까
16억 6천 6백만 분의 1g 정도다
이렇게 작은 세포 하나에도
그토록 많은 이름들이 있는데
사람이 되어 어찌 이름이 없을 수 있겠는가
이름이 있다면 거기에는 뭐가 있을까
으레 꼴相state/figure이 있다
용모countenance가 아니어도 좋다
어떤 꼴이나 표정으로 나타나고
소리를 지니고 있으며
꼴이나 소리가 아닌 냄새가 난다 하더라도
거기에는 반드시 뭔가 이름이 있다
'하늘은 녹祿 없는 사람을 내지 않고
땅은 이름 없는 풀을 기르지 않는다'했듯이
어떤 것이든 꼴相을 지니고 있다면
거기에 이름이 따라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이름도 없고無名 꼴도 없다無相니
세상에는 이름 없는 꼴도 없지만
꼴 없는 이름도 있을 수가 없다
'무명무상절일체無名無相絶一切'는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일까
완벽한 깨달음을 이룬 정신세계일까
아니면 그냥 평범한 생명의 정신세계일까
이들 두 정신세계는 같을까 다를까
다른다면 어떻게 다르고
같다면 어떻게 같을까
같든 다르든
그것이 보통 일반 정신이든
완벽한 깨달음을 이룬 이의 정신이든
이름 붙일 수 없다는 게 참 얄궂irony다
이름도 없고 꼴도 없다 했는데
그럼 꼴이라 풀이되는 상相이 무엇일까
재목木을 고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세히 살펴보아야目 한다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아무거나 가져다가 쓸 수는 없다는 데서
꼴 상相, 서로 상相 자가 나온 것이다
이태전《금강경》을 해설할 때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과
나아가 수자상壽者相을 놓고 얘기하면서
왜 사상四想이 아니고 사상四相인가를
적나라赤裸裸하게 풀이하기도 했다
'적나라'란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상태다
숨김없이 본디 모습 그대로 드러냄이며
발가벗은 상태란 뜻을 지니고 있다
무상無相의 '상相'도 발가벗기고 보았을 때
상相의 본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상相을 설명하려 해도
상相 그 자체가 없고
이름名을 부르고 이름을 붙이려 해도
이름 자체도 없거니와 이름 붙일 수도 없다
왜냐하면 본디 고요한 까닭이요
그 고요한 까닭을 되짚어 오르다보니
모든 법이 부동不動인 까닭이다
어찌하여 본디 고요하고
어찌하여 모든 법이 부동不動일까
미리 얘기하지만 부동不動은
'움직이지 않는다'가 아닌
그냥 '부동'으로 풀어야 제 맛을 느낀다
이름 없고 꼴 없는 게 아니라
없는無 이름名 없는無 꼴相은 아닐까
없는 이름에 이름을 붙이고
없는 꼴에 꼴을 붙여
군더더기를 만들면 실제에 가까워질까
일체一切가 끊어진絶 게 아니라
끊어진絶 일체一切일 것이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없는無 이름名 없는無 꼴相에
끊어진絶 일체一切를 누가 인지할 것인가
[이들 사진에 이름, 꼴을 붙일 수 있을까?]
10/22/2017
대각사 주지 첫부임에 임하여
종로 대각사 '검찾는집尋劎堂'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