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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낄 것이 없을 줄 알았던 여행이 내게 많은 것을 주었다
<프롤로그>
(1) 나는 누구였나?
여행이야기를 시작하기 앞서 제 이야기를 드리자면 저는 한국 교육과정을 모두 이수한 20살 청년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 꿈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바로 대한한공 기장이 되는 것이였죠.
그래서 틈만 나면 항공 관련 행사를 찾아보고 항공 관련 직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을 찾아뵈고, 고등학교 항공 동아리를 창설하여 이끌어나가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했었죠.
하지만 고등학교 진학 이후 내신성적의 결과가 점점 나빠지면서 꿈과 제 사이에 거리를 만들었고 꿈에 대한 빛을 계속 갈구하던 끝에 결국 꿈을 돌려 미련과 암울한 현실 속에서 방황하며 고등학교 생활을 이어나가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 고등학교 시기 방황의 시기 속에서도 제 머릿속에는 ‘어차피 고1인데 지금부터 2년 빡세게 공부해보면 정시로 충분히 들어갈 수 있을 거야’라는 희망을 품고 주변 사람들에게 이 방법을 상담해 보았지만 모두에게서 제게 되돌아오는 대답은 “No”였습니다.
정시는 대학입시의 문이 너무 좁고 학교를 나오게 되면 유혹거리가 너무 많아 공부에 집중을 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제가 저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나온 생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생각을 바꾸어보면 제가 했던 생각을 실천해 보면서 제 자신을 좀 더 알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계속해서 수시를 준비하며 고등학교에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야자가 끝난 이후 시간에도 과외를 하며 일주일에 3일은 새벽에 일정이 마무리되는 빡빡한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성적은 예상한 만큼 오를 생각을 하지 않았고 다시 한번 슬럼프에 빠져 고등학교를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는 것에 대하여 고민을 하였지만 지금까지 고등학교를 다닌 시간이 아까워 그만두는 것이 두려워 교실에 앉아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느덧 고3을 졸업할 시간이 되었고 주위의 제 친구들은 대학에 가던 재수를 하던 계속해서 자신의 꿈을 위하여, 아직 성공하지 못한 꿈을 다시 도전하러 길을 나섰지만 저는 저의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던 사이에 부모님 회사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길는 제가 이정표를 찾아 고생 끝에 찾은 길이 아닌 부모님이 이상한 길에서 방황하고 있는 저를 잠시 인도해주신 길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이 길은 아직은 제 길이 아니었던 것이죠.
그렇게 잠시 부모님께서 인도해주신 길을 걷고 있던 제게 부모님께서 10개월 세계여행이라는 흔치 않은 기회를 가져 볼 것이냐는 제안을 하셨습니다.
저는 이때까지 이것이 (부모님께 믿음을 드리는 아들이 될 수 있는) 기회인지 알지 못했었습니다.
그래서였는지 제 머릿속에는 부모님의 의도와 심정보다는 제 앞에 놓여있는 심정들 속에 휩쓸리게 되었죠.
10개월 세계여행이라는 아이기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제 머릿속에 떠올랐던 생각은 “내가 10개월 동안 갔다 오는 게 말이 되나?”,“아직 할 것을 찾지 못했는데 10개월을 한국 밖에서 생활하는 것이 준비 기간이니 적응 기간이니 생각하면 다른 또래 1년이나 늦춰지는 게 아닐까?”,“한국에서 내 할 일 찾기도 바쁜데 지금 세계여행을 하기에 시기가 적절한가?”,“ 차라리 군대를 빠르게 갔디오는 것이 어떨까?”,“세계여행을 갔다 오면 정말로 나에게 남는 것이 있을까?”와 같이 정말 많은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고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제 친동생에 대한 생각이었습니다.
저는 그래도 고등학교를 겪는 동안 대학으로 가는 길을 경험해 보고 나왔지만 동생은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하고 나와 혹시 나중에 늦바람이 불어 미련이 찾아와 성인이 돼서까지 대학을 위한 공부를 할 것 같았고 동생을 그렇게 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동생이 여행에 참여하는 것을 극히 반대했었죠.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부모님께서 옳으신 결정을 내리신 것 같습니다.
공부에 마음이 있지 않는 아이가 한국에 있는다고 고등학교에서 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지는 않을 것 같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 빠르게 그곳을 향해 먼저 나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이곳에 와서 자기 수준에 맞는 영어를 배우고 있는 것 같고 한국에서와는 다른 모습으로 수업 참여를 열심히 하려 하고 원래의 동생을 모습을 찾아가고 있는 것 같아서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두번째 고민은 친구들 과의 괴리감이 생길것 같은 불안감에서 였던 것 같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제가 여행을 다녀오게 되면 2019년은 모두 흘러가게 되는 것 입니다.
그럼 이제 친구들은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군대준비를 하건 재수를 해서 대학교1학년이 되어있건 둘 중 하나가 될 것 입니다.
어쩌면 삼수를 하게 될 수도 있겠지만 어찌 되었건간에 자신의 길을 그것이 옳던 옳지 않던 걷고있을 거라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감쌋고 여행이 끝나게 되면 나에게는 무엇이 남아 있을까에 대한 부정적인 사고에 얽매여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걱정속에서 제 자신이 격게 될 장점들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저는 20살이라는 나이에 20~30개국이 다라는 나라를 여행해본 기록을 세우게 되었고 공부에 박혀 대기업의 노예가 되는 길을 쫒아 가는 것이 아닌 내 자신이 정말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고 그 분야에 대한 호기심을 갖을 기회를 갖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들 모두 아무가 할 수 없는 값진 기회라고 생각 합니다.
여행 전에 부정적인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이렇게 시작하게 된 이유는 제가 이세상에서 가장 신뢰하는 부모님께서 권유를 해 주신 것 이기 때문 이였습니다.
지금까지 20살 인생을 살이 오면서 부모님께서 저에게 하라고 시키신 일 주에서 저에게 도움이 되지 않거나 헤가 되는 경우가 없었고 무두 하나 같이 내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필요한 것들 이였기에 이번 여행에도 약간의 기대를 걸아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2.폭풍 속의 나
2-1 여행 시작
그렇게 여행은 시작되었고 곧바로 치열한 삶은 시작되었습니다.
아직 경험이라고는 양주 합숙 때 몇 박을 함께 지낸 것 밖에 없는 아이들과 생활을 시작했죠. 이때 가장 힘들었던 것은 8기, 비밀병기 아이들에게 생활 주도권을 빼앗겨 버린 것 같은 느낌을 받았을 때였습니다.
그래도 1~2년의 경험이 있어서 인지 써니 선생님과 대장님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고 worker를 할 때나 정산을 할 때 9기의 처음 온 아이들보다 앞장서서 무언가를 하려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아이들도 비밀병기에서 메꾸지 못했던 부족한 점을 메꾸러 온 아이들 이였기에 worker를 할 때나 정산을 할 때나 저희들이 갖고 있는 의문점들에 대해서 빈틈을 보였고 저도 저 자리 위로 놀라가 나서는 바리에 서야겠다는 희망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빛 한 줄기를 주었던 것 같다.
이때 느꼈던 것은 어린 친구들이 있음으로 그 앞에서 뒤처지지 않으려고 더욱 노력하게 되는 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고 또한 아이들이 있어 나쁘지 만은 않고 도움이 돼주는 관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 하나 여행 초반에 느꼈던 감정은 부모님의 영향력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배고플 때 학교에서 시간이 되어 급식을 주거나 학교 밖에서의 시간에는 집에 가서 밥을 먹거나 부모님이 주신 체크카드를 이용해 음식을 사 먹으면 그만 이였다.
또한 한국에서 옷을 입다 옷에서 냄새가 나거나 더러운 것이 묻게 되면 빨래통에 집어넣고 제가 정리하지 않았어도 곱게 정돈되어 제 옷장 안에 넣어져 있는 옷을 꺼내어 입으면 그만 이였지만 이곳 하반하에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스키를 타고 와 땀에 젖은 양말과 티셔츠를 스스로 빨래하여 정리해 놓아야 했었고 배고프면 worker를 해서 야채를 다듬어야 했습니다.
또한 밥을 먹고 그 자리에서 몸만 일어났어도 되었던 한국과 달리 코펠과 제 수저, 젓가락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설거지를 해야만 했죠.
한국에 있었을 때만 하여도 이런 것들이 당연한 것들인 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도와주시지 않으셨 더라면 저 혼자 했어야 했던 것 들이지만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하반하에는worker제도가 있기 때문에 시장 worker, 요리worker, 설거지 worker중 하나를 해냐만 합니다.
그중 저는 요리 실력을 키워보고 싶었기에 요리 worker를 선택했죠.
지그까지 저는 식당 주방에서 일했던 적도 없었고 알바 경험도 있다고 할 수 없었기에 뇌가 있는 로봇과도 같았던 것 같습니다.
하반하 초기에는 거의 시키는 일만 했었고 시키는 일마저 제대로 해내지 못해 sunny 선생님과과 대장님께 매일같이 혼이 났던 것 같습니다.
sunny 선생님 대장님은 일부 학생들에게만 관심을 쏟는 얌전한 고등학교 선생님과는 다른 분들이셨습니다.(모든 고등학교 선생님들이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제 고2 담임선생님은 반 아이들 모두를 신경 써 주시는 분이셨고 화학 선생님이 셨는데 2학년 3월 6등급이었던 화학 성적을 2등급까지 올려 주셨습니다.)
제 사소한 행동하나 하나에 집중을 하셨고 잘 못된 부분은 짚어주고 넘어가 주셨습니다.
인생에 이렇게도 학생을 생각해 주시는 선생님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좋고 감사해야 할 일일까요? 저는 그것을 잘 알지 못했고 저를 깎아 내리며 혼 내시는 행동에 감정이 상하여 sunny선생님 대장님이 그런 말씀을 하실 때마다 더 멀어지려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혼나면 빠르게 문제점을 파악해 그 문제를 해결하고 넘어가려 해야 했지만 저는 그 당시 sunny선생님과 대장님께 다가가면 어떤 수치스러운 말을 들을까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 때문에 그냥 잊어버리고 넘어가려는 태도가 대부분이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인생을 살며 꼭 버려야 할 삶의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태도를 갖고 살고 싶다면 속세에서의 삶을 포기하고 산속에 들어가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태도는 베네수엘라가 자신들의 나라에서 기름이 나온다는 이유로 다른 나라와의 무역을 중단하고 자신의 나라를 몰락의 나락으로 빠트린 것과 같이 자신을 계속해서 자신의 사고방식 안에 묶어 놓음으로써 평생 동안 발전하지 못하고 자기 자신을 최고라는 생각을 하며 살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윗사람이 자신을 가르쳐 주려고 할 때에는 일딴 자기 자신을 낮춘 후 자신은 계속해서 무언가를 배워야 하는 입장에 있고 배우려는 태도를 가지려고 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2-2 역지사지
저도 이 사실을 sunny 선생님, 대장님 밑에서 일하고 있을 때는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계속해서 sunny 선생님, 대장님 밑에서 일하다 보니 경력이 쌓이고 경험이 쌓인 후 worker 장 자리에 올라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지시함으로써 이 사실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한 아이에게 무언가를 시켰을 때 그 아이가 행동을 거북이처럼 하여 그 점을 지적하였을 때 이 아이가 기분 나빠하면 worker 장은 worker 장대로 일을 원하는 대로 이끌어 나가지 못하여 답답해서 화가 나고 그 아이는 자신의 태도를 피드백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놓지 게 되어 아쉬울 것입니다.
이 경험 이후 상대방의 입장이 이해가 가지 않아 화가 날 때 역지사지를 해보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던 것 같다.
○ 게으름과의 사투
저는 살면서 게으름이란 것이 늦잠 자기, 학교 지각하기, 숙제하지 않고 딴짓하기 같은 것일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제가 예상한 것 외로 게으름은 생활의 아주 사소한 것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바닥에 있는 쓰레기를 보고도 줍지 않는 것, 설거지를 하고 하수구 구멍에 음식물 찌꺼기가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치우지 않거나, 이부자리 정리를 깔끔하게 하지 않은 것, 어떤 아이와 마음이 불편한 상태에 있는데 계속 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모두 게으른 행동이었습니다.
어렸을 때 이런 것을 교육받으며 자라 왔지만 커가면서 설거지는 제가 하지 않고 이부자리 정리 역시 이모님이 해주셨기에 제가 하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고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소한 습관 하나하나가 게으른 나를 만드는 밑거름이 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왜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지 않는 것이 게으른 행동인지 이해가 가지 않아 하는 분이 계실 것 같아 설명을 드리자면 그런 분은 “자신이 버리지도 않은 쓰레기를 왜 주워야 하고 그것을 줍지 않는 것이 왜 게으른 것이지?”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저는 누구든지 바닥에 놓여있는 쓰레기를 보면 자신의 마음이 편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쓰레기를 보고도 그냥 지나치는 행위는 불편한 자신의 마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마음을 방치해 놓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기 때문에 게으른 행동이라고 생각 합니다.
이런 게으름 중에서 가장 있어서는 안 될 게으름은 생각의 게으름이라고 생각합니다.
생각이 바뀌어야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어야 습관이 바뀌어야 인생이 잘라진다는 말이 있듯이 항상 생각이 부지런해야 합니다.
생각이 부지런하지 않으면 자신의 바로 앞에 닥칠 일에 눈이 멀어 이후에 일어나게 될 다른 위험을 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면 당장 치킨이 맛있다고 계속 먹다가 나중에 자신의 몸무게를 보면 10kg이 쪄있는 것처럼 말이다.
○ 나이와 실력은 별개이다.
하반하에 처음 왔을 때 회화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준이와 민수의 모습에 충격을 받고 대단하다는 생각과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그 아이들의 나이가 16살, 17살이라는 사실에 저와 비교하게 되어 충격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이곳 인도네시아에서도 보면 정말 초등학교 1~2학년이 고작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파도를 가지고 노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때 나이를 먹는 것은 그저 숙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꼈죠.
자신이 어떤 분야에 얼마나 시간을 묻고 몰두하냐에 따라 7살에 전문가가 될 수 있는 것이고 30살 40살이 되어도 전문 분야가 없을 스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살아가면서 성실성과 꾸준함은 기본적이고 이것을 즐길 수 있으면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곳에 와 꾸준히 마음을 써기며 한 것이 비로 조깅과 팔굽혀펴기였습니다.
조깅을 할 때 어떻게든 대장님과 떨어지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제 힘이 남아 있는 한 계속해서 정말 조깅이 끝나기 전까지 제 시야에서 50m 이상 대장님과 떨어진 적이 없습니다.
이곳 하반하에는 비병도 있고 8기 때부터 저보다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조깅을 해온 친구들이 있지만 8기, 비병 아이들 중에 호준이와 동군이를 제외한 나머지 아이들은 제 뒤에 있었습니다.
6월 캐나다 퀘백에서 있었던 마라톤에서도 역시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21명의 아이들 중 4등을 하게 되었죠.
고3 내내 일주일에 2시간의 체육시간 속에서 이 정도의 결과면 꾸준한 노력의 결과이지만 4등이라는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아 마라톤 이후 퀘백에서 이안과 함께 이침 조깅을 한 것에 대해 잠깐 이야기를 하자면 이 날 아침 조깅을 하던 중 자신과 7km 정도를 더 뛰고 싶은 사람이 있냐고 했을 때 손을 들었는데 혼자뿐이어서 혼자 뛰어야 하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했는데 윤쌤께서 같이 뛰어주신다고 하셔서 동군이, 호준이, 재경이도 함께 뛰게 되었습니다.
이 날 3km 정도가 남았을까? 동군이와 이안은 먼저 치고 나가게 되었고 그 이후 호준이와 윤쌤이 치고 나가 나와 재경이, 이안의 아내인 배로니크와 남게 되었다.
이때 마라톤에서 4등 한 기록을 깨기 위해 재경이를 꼭 이겨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끝까지 뛰어 먼저 들어오게 되었다.
정말 사람은 마음가짐과 욕심만 있으면 어떤 것을 좀 더 쉽게 이뤄낼 수 있을 것 같다.
○ 나와 항상 함께였던 저녁worker
나는 체코, 슬로바키아부터 거의 모든 여행지에서 저녁요리worker를 해왔다.
저녁요리 워커는 다른 워커에 비해 손도 2~3배 시간도2~3배가 필요하기에 그 시간을 매일 매일 절약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그렇기에 여행초반까지 저녁요리worker라는 자리는 나에게 있어서 빨리 그만 뒀으면 하는 일 이였죠.
정말 길면 30~50분이면 끝나는 아침요리워커나 비교적 쌤들께 혼날일이 적은 설거지worker를 하고 싶었습니다.
계속해서 ‘내가 왜 다른애들에게 주워지는 자유시간을 누리지 못하며 그 시간을 worker에 묻어야 하지?‘,’왜 애들은 워커에 시간을 그리 많이 쏟지 않는데 왜 저녁요리 워커들은 시간을 쏟아야 하지?‘라는 좋지 않은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계속해서 이렇게 좋지않은 생각을 해봤자 나만 힘들고 내 손해라는 것을 느끼고 저녁요리 워커를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생각보다 저녁 요리worker의 좋은점은 많았죠.
아버지께서 사과 깍는 방법을 알려주셔도 사과를 깍지 못했던 내가 어느세 어떤 야채,과일이든 깍고 다듬어 놓을 수 있게 되었고 대장님 옆에서 요리 만드는 모습을 보며 여러가지 요리의 레시피도 얻게 되었고, 밥을 하는 법을 스카우트에서 배우긴 했지만 자신이 없었던 나에게 자신감을 주었고 계속해서 대장님 옆에서 일을 하다보니 대장님께 깨지며 일눈도 커질 수 있게 되었고 생각해 보니 어떤 worker중에서도 가장 멋있는 worker였고 지금은 자부심을 느끼며 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이렇게 자신이 불행한상황에 처해 닜다고 느낄 때 주위와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면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런던 어느 날 뿌너에서 제게 신데렐라라는 신분이 주어지게 되었습니다.
아침에는 빵과 잼을 세팅하고 아침을 먹고나서는 대장님과 시장엘 다녀오고 시장에 다녀오고 나서는 저녁요리를 해야 했습니다.
sunny쌤께서 제게 이 일을 주실 때 너의 게으름을 떨쳐 내기위한 수단 이라고 제게 하신 말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자리가 제 눈에는 구저 저를 막노동하게 하려는 의도로 밖에 받아 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제 이런 생각과는 다르게 sunny샘을 믿어보기로 마음을 먹고 워커를 시작 하긴 하였지만 부지런해지는 제 자신의 모습은 발견 할 수 없었던 것 같고 계속해서 왜 써니쌤이 내게 이런 일을 시키셨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방학을 다른아이들처럼 즐기지 못하고 worker에 시간을 쏟아야 하는것에 화가 나기도 했고 그런 고민속에서도 워커를 계속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신입 신데렐라 들이 생겼고 저는 아이들을 지시하는 신데렐라 워커장이 어있었습니다.
워커장이 되며 저의 일들은 점차 줄어 들게 되었고 써니쌤의 의도가 파악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사람에 대해서든 이 사람이 나에게 이런 것을 왜 시키지?를 의심하고 물고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상대방을 믿으려하는 태도를 가져보는 것이 인생을 살면서 정말 필요하다는 것을 느겼습니다. 특히 하반하에서는 더욱더 그랬죠.
이렇게 제게 주어진 일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쌤들 께서 해주시는 말씀에 대해서 받아 들이려고 노력하다 보니 벗어나고 싶었던 하반하가 좀 더 이곳에서 시간을 묻고 나자신을 발전시키고 싶은 하반하로 바뀌어 버리게 된 것 같습니다,
제가 이렇게 생각이 바뀌게 된 계기는 써니쌤의 여향이 매우 큰 것 같습니다,
요즘들어 제가 20살이지만 아직 배울 것이 많은 아이라는 것을 느끼며 살고 있는듯 합니다.
저 뿐만 아니라 제 친구들도 이곳에 오게되면 마찬기지 일 것 입니다.
현제 저희는 인도네시아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문집준비도 하고 서핑도 즐기고 있다.
하루는 정말 문집의 진도가 나가는 것같지도 않고 내용을 한 번 흥미롭게 손을 보고 싶다는 핑계로 서핑을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날 저녁 써니쌤이 서핑을 가지 않은 친구들 중 당구를 친 아이들과 당구를 치지는 않았지만 서핑을 가지 않고 문집을 쓴 아이들을 불러모으신 후 마당 50바퀴와 앉았다 일어나기를 300번 시키시는 것이였습니다.
이 상황 속에서 제 첫 반응은 문집을 좀 더 집중하려고 숙소에 남아 있었고 당구를 치거나 수영을 하지 않았는데 내가 왜 벌을 받아야 하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벌을 받으며 곰곰히 생각해 보니 서핑을 가지 않아 확보된 시간을 좀 더 집중력 있게 문집을 쓰는데 사용한 것이 아니라 시간이 많다는 생각에 자리에 앉아 나태하게 시간을 사용하였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 던 것 이였습니다.
써니쌤은 문집을 핑계로 더욱 저희가 나태해 진 것을 본 것이였습니다.
이렇게 저는 아직 생할면에 있어서 부족한 점이 있는데 이런 것을 내 스스로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써니쌤에 의해 발견 되곤 하는 것을 느꼈고 이제부터라도 이런 힘을 스스로 길러보도록 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서핑에 관련하여 꿈에 대한 이야기도 해 주셨습니다.
서핑을 즐기지 못하는 것과 꿈을 찾지 못하는 것이 비슷한 것 이라고 어떤 것을 시작 할 때는 어떤 것도 재미있을 수 없고 적응기가 필요하다는 시실을.
마이클 조던도 처음부터 농구가 재미있지 않았고 박지성,손흥님 역시 마찬가지 였을 것 입니다.
이 적응기를 어떻게 지내느냐 어떻게 이겨 내느냐가 정말 중요한것 같습니다.
서핑과 농구로 예를 들면 서핑에서 적응기란 좋은 파도를 찾아내고 서핑보드를 타고 페들링을 하며 파도를 이기면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익히고, 페들링을 하여 힘이 실려 자신이 원하는 파도를 잡을 수 있고, 넘어서지 않고 잘 일어나는 연습이 있고, 농구에는 드리블을 자유자제로 하고 슛을 원하는 위치에서 넣을 수 있을 정도의 기본기가 필요 합니다.
하지만 입문자둘에게 이러한 기본기는 다소 지루 할 수도 있지만 그 속에서 즐기는 힘을 찾다 보면 어떤 것을 하든 성공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농구에서 성공을 경험했었습니다. 저도 중 1때까지만 해도 농구를 손에 댄 적 없던 제가 점심 시간마다 친구들과 놀기 위해 농구를 연습했었고 지루한 적응기를 이겨내고 연습하여 학교 대회 선발 5명 출전을 할 정도의 실력까지 제 실력을 성공기켜 놓았습니다. 이 방법을 다른 분야에서도 똑같이 적용시켰더라면 좋았을텐데 농구에서 성공을 이뤄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써니쌤께서 이 이야기를 해주시기 전까지 성공이 무엇인지에 대해 찾아 다니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저는 사소하고도 중요한 경험들을 많이 가지고 있지만 그 경험을 제 것으로 만드는 힘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물자 관리 워커장
정말 하반하에 와서 누구보다 워커를 많이 했다고 자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방학이고 신데렐라가 있었기에 방학ㅇ들 계속 쉬며 보내는 아이들이 있었을 때도 계속해서 일을 했고 그렇게 해서 써니쌤의 신뢰를 조금이라도 받아 워커아이들을 지휘하는 워커장이 되었고 동시에 물자 관리도 하게 되었습니다. 워커장이라는 것이 처음에는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고 3때 학교 부회장을 맡긴하였지만 워커는 매일있고 매일매일 워커아이들을 도와주기 도하고 대장님께 보고를 받은 후 음식 준비 및 손질 지휘를 그리고 설거지한 것과 뒷 정리 한 것을 검사해야 했기에 처음엔 부담스럽고 어렵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검사를 해야 했기에 하루종일 시간을 신경쓰며 생활을 해야 했고 그러다보니 시간 약속 개념이 잘 박히게 된 것 같습니다.그리고 일도 점차 제게 익숙해 졌고 하반하안에서 단 하나뿐인 직업에 자부심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물자관리워커역시 써니쌤께서 저를 위해 만들어주신 워커였습니다.
제가 아이들을 좀 더 잘 관리하며 머리에서 지시하는 능력을 키우기 바라시는 마음에서 이런직업을 만들어 주셨을 것 입니다.
이 자리역시 제게 익숙하지 않아서 그랬는지 꽤 많은 부담감을 느꼈었습니다.
대장님과 써니쌤이 제게 어떤 물건이 어디에 있니라는 질문을 하실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적응기에 찾아오는 자그마한 고통이였죠.
그 자그마한 적응기가 지나게 되니 아이들이 이제는 제게로와 물자의 위치를 묻게 되었고 음식분배는 어떻게 해야하는 지 자리배치는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한 질문을 받기 시작하면서 제 일에 대한 자부심을 갖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이렇게 아이들을 관리 할 수 있었던 계기는 제게 많은 워커일이 주워졌을 때 포기하지 않고 성실하게 해온 결과 다른아이들에게는 주어진적이 없엇던 권한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감정은 피해가는 것이 아니라 극복해 가는 것
감정이라는 친구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는것 같습니다.
이 감정하나면 사람은 웃기도하고 울기도 하죠.
슬픈일이 닥쳤을 때는 머릿속에 슬픈 감정들이 즐거운 일이 생겼을 때는 즐거운 감정들이 두려운 일이 내 앞에 놓여있을 때는 두려운 감정들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잇습니다.
서핑을 타는 초보자들 중 어느 누가 처음부터 큰 파도를 보고 그 파도를 타기 위해 준비할 수 있을까요?
그 파도를 잡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기는 커녕 어떻게 피해야 할 지에 대해 궁리 할 것 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신이 그 큰파도를 감담해 낼 수 있을가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겠죠.
그래서 그 파도를 피해 그냥 보내버리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중급자 어쩌면 고수가 될 수 있는 길을 그냥 그렇게 흘려 보내게 된 것 입니다.
하지만 자신에게 오고있는 그 파도에 대한 두려움을 잠시 내려 놓고 그 파도의 흐름을 잘 파악하며 어떻게 하면 자신에게 오고 있는 그 파도에대한 두려움을 잠시 내려 놓고 그 파도의 흐름을 잘 파악하여 어떻게 하면 내가 저 파도에 오를 수 있을까?에 대하여 그 시간을 사용하게 되면 그 파도를 피한 사람보다는 한 걸음 더 높은 위치에 오룰 수 있지 않을 까요?
그래서 저는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의 감정을 피해가거나 포기하는 것이 아닌 계속해서 이겨내려고 노력하여 현재 자신이 처한 삶을 잘 이겨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아직까지 나도 이런사람이 아니지만 이러한 깨달음을 얻었으니 앞으로 계속해서 두려움이라는 감정에 부딪쳐보는 사람이 될 것 입니다.
(에필로그)
○부모님께 감사의 말
제가 부모님이 해놓으란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저에게도 힘들고 부모님 역시 고통을 격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었습니다. 이제라도 그 사실을 깨달았으니 앞으로 행복한 일만 만들어 드리는 아들이 되겠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저는 어머니 아버지가 저와 제 동생을 하반하에 보내신 것 만으로도 이미 성공하신 부모님 이라고 생각 합니다.
단지 3000만원의 입학금을 내주실수 있는 능력을 갖고 계시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은 두려워 걷지 못하는 길을 이렇게 인도해주실수 있는 부모라는 사실이 아들로써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더 가치있는 일에 투자 하실 수 있는 힘을 가지신 분들 이니까요.
친할머니, 친할아버지께 아버지는 세상에서 그 어떤 아들보다 자랑스러운 아들이시고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께 어머니 역시 가장 자랑스러운 딸인데 저도 언젠가는 세상에서 그 어떤 아들보다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부모님께서 만들어 주신 이번 여행을 통하여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기본적인 것들을 다시 한번 배울 수 있었습니다.
개미들도 개미 집이 무너졌을 때 짜증이나 화를 내지 않고 집을 지을 재료를 찾으러 나가는 것 처럼 저 또한 제 자신을 발전시킬 방법들을 찾아보고 경험해 보며 남은 한달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부모님!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숙모 큰아빠 큰엄마 고모 고모부들 모두!
○sunny샘 대장님께
제겐 의미가 없을 줄 알았 던 이 여행이 세계여행을 20살에 했다는 것 만으로도 제게 큰 의미를 주엇습니다.
그 세계여행을 혼자 한 것이 아니라 26명의 동료들과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것이 더욱더 의미가 잇었습니다.
사실 초등학교1학년 이후로 부모님이 많이 바쁘셧고 저도 아직 성장이 다 끝난 상태가 아니였기에 부모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한 생활습관을 완전히 익히지 못한 아쉬움이 계속해서 제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가 집에 계셨기에 학교끝나고 집에 돌아 오면 항상 웃는 얼굴로 절 반겨주시던 어머니의 얼굴이 그리웠고 헉교에서 끝나고 돌아오면 그 날 학교에서 있었 던 일들을 할께 공유하고 서로의 생각을 나눌 수 있었던 시간이 좋았습니다.
그 때까진 아이들 사이에서 자신감이 넘치고 힘있는 아파트주민들에게 인사성바른 아이였지만 어머니와 떨어지고 난 후 부모님에게 생활습관이나 태도에 대한 감각이 조금씩 사라져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배움의 아쉬움을 이번 여행에서 대장님과 써니쌤을 통하여 풀 수 있었습니다.
음식을 하든 설거지를 하든 공부를 하든 평소 제가 가지고 있던 습관이 나오게되었는데 그때마다 고장났던 습관들을 하나하나 놓치지 않으시고 모두 집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비록 저는 그 고치라는 이야기를 감정적으로 받아들여 고치라는 의미를 받아들이지 못했었지만 써니쌤과 진지한 여러번의 대화를 끝에 써니쌤을 신뢰하게 되니 써니쌤,대장님께서 제게 해주시는 말씀이 피기되고 살이 되었던것 같습니다.
2019년 한 해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써니쌤 대장님!
○저를 많이 아껴주신 윤쌤께
항상 저의 편이 되어 주시려고 노력해 주신 윤쌤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정말 선생님의 위치를 잘 지키면서도 아이들과 가장 친한쌤이라는 사실이 대단하다고 생각 합니다.
여행을 하는 동안 저의 고집있는 성격을 꺽지 않은 이유로 계속해서 실망을 드리게 되었네요.
그럼에도 계속해서 충고를 아끼지 않으셨기에 제가 성장판 자극과 같은 여러자극을 받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스스로를 되돌아 보고 자극받으며 자신을 발전시키는 저의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1년동안 제게 공들여 주신 관심과 걱정,충고까지 헛되이 하지 않겠습니다.
○고생많이 하신 진성쌤에게
진성쌤 슬로바키아때 부터 쭉 제 독해쌤으로써 독해되었지만 전혀 독해된 것 같지 않은 독해장과 씨름하시면서 저의 영어 실력을 많이 발전 시켜주시고 관심을 써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전에는 상상하지 못하던 미국 신문기사를 읽을 수 있게 되었고 리딩 실력도 많이 늘 수 있었 던 것 같습니다.
전성쌤은 학생들이 무언가를 정말 하고 싶어할 때 옆에서 누구 보다도 아이들을 끈기 있고 책임감 있게 가르쳐주시려고 노력하신분 입니다.
제가 english debate시간에 말을 잘 하지 못하고 있었을 때 계속해서 제게 말을 걸어 입을 땔 수 있게 해주시고 제가 수업준비를 해가야 했을 때 도와주신 것 처럼 말이죠.
이번에 카츄샤에 함격하신 것 정말 축하드립니다.
○꼼꼼 해인쌤
정말 꼼꼼하고 손끝이 야무지신 해인쌤 정말 여행을 시작하기 전 합숙때 부터 아이들의 특성을 잘 파악하시고 아이들의 생각을 올바르게 잘 공감해 주시는 것 같아 많이 친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아이들에게 북을 가르쳐주실 때 똑같은 부분을 계속 반복해서 알려주셔서 지루할 법도 한데 정말 알 때 까지 알려주시는게 너무 감사했어요.
여행을 시작하고 나서 오카리나 수업이 시작되었을 때에도 마찬가지 였죠.
하지만 여행을 시작하고 오카리나 수업을 했을 때는 북공연만큼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해 해인쌤과 친해기는 커녕 오히려 멀어지게 만든 것 같이 죄송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1학기 2학기동안 악보를 하나하나 그리시며 오카리나 수업을 열심히 이끌어 나가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하반하 동기들에게
1번 건주형님: 남미 버스메이트 건주형님! 합숙 때 제가 먼저 형님께 다가 갔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않았을 수 있지만 그것을 기억해 주신다는 것에 감동했던것 같아요.
사실 이번 여행목표중에 기타배우기라는 목표가 있었는데 슬로바키아와 과란다에서 조금 배우다 말게 되었네요.
제가 언제든지 기타 배우러 가면 환영해 주시겠죠?
2번 수경형님: 매사에 적극적이고 실천력 있고 자신이 마음먹은 일을 해낼 수 있는 분이에요.
항상 자신의 발전을 위해 힘쓰는 모습이 멋었던 것 같아요.
아으로도 계속해서 그런 모습을 보여주셨으면 좋겠습니다.
3번 재경이: 2학기때 서로의 마음 깊숙히 잇었던 속마음을 털어 놓게 되면서 많이 친해진것 같다.
왜 1학기때 그러지 못했나 아쉬운 마음이 들 수 있겠지만 나는 2학기였기에 더 간절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 던 것 같아.
앞으로 계속해서 좋은 관계 유지하자!
5번 호준이: 서로 스키장을 좋아하기에 여행 초반부터 친해 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번 년도에 내가 보드를 꺼내 너의 온갖 기술을 다 배워가는 건데 아쉽다.
한국에서 알려주도록!
6번 준우: 확실히 넌 인생에 있어서 써니쌤, 대장님을 만났다는 것이 네 인생에 엄청난 축복인 것 같다.
내가 이번 여행에 있어서 너와 많이 싸운 앙는 네게 악감정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야 그저 나는 내 앞에서 일어나는 잘못된 행동들을 바로 잡고 싶었던 거야 앞으로 언제 볼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국에선 친구 관계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7번 정우: 정우야 너는 슬로바키아에서 스키타는 모습이 가장 떠오른다 정말 머릿속에서 지워지지가 않아.
1년동안 너를 쭉지켜봐온 결과 음식 앞에서 형님 아우 없던 네가 선생님, 형님, 아우까지 챙기는 모습을 볼 수 잇었어 칭찬할게!
아 그리고 너하면 떠오르는 리딩!
해리포터를 진성쌤께서 추천해 주셨을 때 제가 이걸 어떻게 해요라고 투덜대던 아이가 꾸준히 해리포터 독해를 하고 있고 리딩속도가 거의 아웃사이더의 랩속도가 나오는 것을 보고 많이 노력했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 아주 칭찬 할게 하지만 이번 년도에 아쉬웠던 점을 한가지 말해 주잠ㄴ 폭력은 어떤 상황에서도 인정 될 수 없는게 현실이야. 이거 하나만 잘 조절 한다면 멋진 정우가 될 수 있을 듯 하다.
8번 동군이: 동군이는 1학기때 나의 버팀목이였는데 룸메이트도 자주되고 항상 저녁요리워커를 꾸준히 같이 해온 친구 였는데 2학기 까지 그 관계를 유지해 나가지 못한게 아쉽다.나는 언제나 환영이니 언제든지 돌아와라.
9번 재훈이: 너를 보면서 내가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지 않는 성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어.
내 자신이 어떤 성격을 갖고 있는지 알게 해준 것에 있어서 정말 고마워 너는 어떤 때론 말이 날카롭지만 따듯한 마음역시 가지고 있는 아이라는것을 알았어 그 따듯한 마음 잘 키우는 재훈이 되도록!
10번 민수: 나는 너의 스팩이 부러워 어떻게 네 나이에 토익970점을 받고 영어를 그렇게 잘 할 수 있는지 그리고 디베이트를 어떻게 그렇게 잘 할 수 있는지 그런 너의 강점들을 잘 살려 나가며 인생을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11번 준수: 에콰도르 키토와 과란다에서 같이 운동을 하며 정을 많이 쌓았다고 생각 했는데 그것 가지고는 정을 충분히 쌓지 못했다는 것을 느꼈어 너는 여행 초반에 비해 일을 하는데 있어서 관계를 하는데 있어서 자신감이 많이 붙은 것 같아 좋아 보였어 하지만 고쳐야 할 것을 하나 말하자면 아무리 화나도 형님은 형님이라는 것을 너가 잘 인지하고 있었으며 좋겠다는 생각이야 10기 축하해~
12번 지윤: 너 하면 나와 거의 모든 프로그램을 같이 한 친구? 라는 생각이 들어 영상,연극,워커까지 그래서 인지 너와는 좋은 관계를 만들어 유지 할 수 있었 던 것 같다.
너 하면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네가 뿌노에서 신데렐라가 되어 혼자 설거지를 하고 있을 때 너가 와서 도와 줬던 거였어 그 때 고마웠어 네가 연극을 하면서 내게 화를 내긴 했지만 그때 다는 네 열정을 볼 수 있었던 것 같아 그 열정을 살려 열심히 살아가는 지윤이 되길 열정앞에서는 선배고 뭐고 없다.
13번 귀요미 찬영이: 난 너와 패티예에서 같은 방을 쓰기도 하고 네가 프리위크때 단순히 운동영상을 찍는다고 아이디어를 추가하고 같이 영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면서 많이 친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내 생일 때 아직 사람을 편애하는 습관을 바꾸지 못한것 같다고 충고를 아직 고치지 못해 죄송하다고 이야기 했었는데 애들과 많이 싸우는 것을 제외하고는 많이 좋아졌어 칭찬할게! 싸우는 것만 자아성찰을 통해 잘 고쳐나가 보렴. 그리고 너 자신의 스타일은 누구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네가 만들어 가는 것을 명심해!
14번 민석: 민석아 네가 형님들에게 호준이 만큼 깍듯해서 좋았다.
가끔 킨들 빌려주지 않는 것 빼고는 앞으로 고등학교에 진학한다고 했는데 쉽지 않겠지만 너라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해 좋은 성과를 이뤄내길 바라 화이팅!
15번 내 동생 준원이: 내가 세상에서 가장 아끼는 준원아 항상 말해 왔지만 상대방이 무슨 이야기를 할 때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니 먼저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너의 생각과 비교하여 답을 할 수 있는 아이기 될 수 잇었으면 좋겠구나 지금은 네가 스펀지처럼 주변의 정보와 충고들을 흡수하고 활용하여 네 가치관을 성립해 나갈 때 이니 하반하에서 너의 옳바른 생각을 가져 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16번 권준: 이제 해리포터책은 잠시 접어두고 너의 사고력을 키워 줄 책을 펴내는 게 옳은 선택일 것 같다.
아직 어린 나이라고 생각하면 늦은 거야 이제 곧 성인이니 너의 올바른 사고력을 키웠으면 한다.
17번 율: 남미이동이 마라톤에서 4등을 한 나도 힘들었는데 너는 오죽했을까 싶다. 그래서 북을 들어주겠다고 해도 거절하는 힘을 가진 네가 대단하다고 생각해 신체적으로 체력은 아직 부족하지만 정신적체력은 네가 하반하에서 최고인 것 같아!
18번 도윤이 (띵동!): 장난끼가 많아 애기일 줄 알았는데 몸과 마음이 어린 어른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 내년10기에서 너를 좀 더 다지면 인성 짱 도윤이가 될거야! 기대 할께~
19번 지헌이: 정말 입을 한번 열기 시작하면 끊이지 않는 스토리가 나오는 지헌아 하반하에서 변화가 가장 뚜렷했던 친구는 너였던것 같아. 난 너가 이렇게 말이 많은 친구인줄도 몰랐어~
10기에는 그 모습을 잘 다지는 기간으로 사용하고 세훈이라는 명석한 친구를 얻어가봐!
20번 세휸이: 자칭 준혁형님 침대벌래 세훈아 네 나이에 모든 대륙을 가보고 많은 나라를 가는건 반칙아니야?
평소에 워커를 할 때나 생활을 할 때 보면 네 아이디어가 대단하다는 생각에 놀라곤해 그 아이디어를 발휘해 10기에는 써니쌤이 하라고 시키는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네 스스로 할 것을 찾아하는 멋있는 친구가 되었으면 한다.
너스스로 네 자신의 집중력을 키우는 연습도 좀 하고!
10기에는 지헌이 정말 친한 친구로 만들어봐!
21번 막내 사랑이: 하반하 막내 사랑아! 13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전교1등도 해보고 멋진 인생을 살고 있는 듯 하여 기특해 정산만 잘 하는 것이 아니라 형님들 생각 해서 뜨개질 해주는 네가 너무 멋져 10기에서는 더욱 멋있는 사랑이가 되도록
○하반하란
하반하는 인생에 있어서 필요하지만 부모님이 아닌 이상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는 것을 내게 가르쳐 준 학교 였다.
내가 나이가 있어서 부모님이 건들지 못했던 부분까지 이 곳에서는 나를 한명의 학생으로 생각하고 나의 잘못된 습관 하나하나 태도하나 하나를 잡아주었다.
이 부분이 이 학교의 가장 큰 무서움이자 메리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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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글 속에서 세심함과 배려심 깊은 준혁이 모습이 느껴진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모습 멋지다. 하반하 생활이 앞으로 너의 선택에 이정표가 될거야.
준혁이는 정말 듬직하고 따뜻한 아들인 것 같다 이제까지 글에서도 많이 느꼈는데 문집을 읽으면서도 느껴지네~20살에 온다는 결정이 어려웠을 거야 하반하에서는 세계 여러나라를 배울 뿐 아니라 삶을 살아가면서 배워야 할 것들을 압축해서 배우는 것 같아 준혁이가 좋은 기회로 삼아서 참 감사하다 1년동안 고생 많았어 준혁이 멋지다♡
친절하고 멋진 준혁
일년을 잘 살아내어
많은 것을 느끼고 감동하고‥
하나하나 한명한명을 감사하며 더 멋져진것 같다ㆍ
앞으로도 더 감사함이 넘치는 멋진 사람이 될 듯^^
나도 감사하고
너의 앞날을 응원하며
화이팅!
성인입장에서의 하반하생활은 더 남다를듯해요 마무리 잘 하시길
어째거나 1년동안 건강하게 잘 지냈구나 애썼다 아들~
너의 판단하는 속도,마음 가짐이 좀 더 빨랐더라면 훨씬 더 감사하며 발전되어 졌으리라 생각드는구나 지난 10개월간 너를 보내고 하루하루를 마음 졸이며 기도했단다
이제라도 대장님과 써니쌤 말씀들이 어떤의미가 담겨있었는지 알고 또한 준혁이가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 달라졌다하니 그마음 변함없이 그동안 두분의 말씀 명심하고 너의 길에 큰 에너지로 승화시키길 빈다
판단은 빠르게 실천은 죽을만큼 노력하는 준혁이가 꼬옥 되길 기도할께
남은시간 후회없이 노력해보고 반갑게 만나자 ~♡
이 글을 읽으면서 준혁이의 따뜻한 품성이 많이 느껴졌단다.
그동안 이해되지 않아 방황도 많이 했지만 결국 자기를 가두었던 고치를 뚫고 나와서 자기 길을 묵묵히 걸어갈 힘이 생긴 것 축하해.
준혁이가 워커일을 많이 해서 도움을 많이 주고, 형님으로서 동생들을 잘 이끈 경험들이 앞으로 너의 앞길에 큰 장점이 되어 너를 도울꺼야. 1년 동안 수고했고 고마워~ ^^
준혁이 글을 읽고있자니 따뜻한 봄이느껴진다~문집작성하느라 고생많았어~부모님과선생님께 감사함을전하고 아이들하나하나를 잘파악해서 글로쓰고ᆢ 부모님 편지에 눈물이나오드구나~앞으로 대학생활 잘하길 늘 응원하마~
대장님과 써니쌤, 윤쌤, 진성쌤, 해인쌤,
그리고 26명의 다양했던 친구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는 준혁군
아름답습니다.
준혁군의 글을 읽으며, 매번 느끼는건,
누구보다 사물을 보는 관찰력이 뛰어나고,
기억된 관찰력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고,
실생활에 활용을 할 수 있는 능력까지, 출중합니다.
또한 선천적으로 타고난, 고운 심성과 온기가 있습니다
이 장점은 준혁군의 꿈을 이루는데,
훌륭한 윤활유 역할을 하리라 생각합니다.
항상 준혁군을 응원 하겠습니다.
따뜻한 심성을 지닌 준혁군!~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텐데 신뢰가 바탕이 된 부모님의 권유였었구나~
동생을 생각하는 형님의 마음도 참 훈훈하고~
여행을하며 나도 모르게 배운것들이 큰 자양분이 되될거야
10개월 여행 수고 많았고
한국에서의 생활도 많이 기대되고 각오처럼 꼭 실천하는 하루하루되기를 소망할께~^^
부모님,동생을 생각하는 마음이 이정도까지 생각할수있나 할정도로 준혁이 마음이 기대이상이고 정말 기특하다..하반하 쌤들과 친구들에 대한 감사와 관심어린 조언도 역시 훈남 준혁이구나라는 감탄이 나오는구나..깨달음을 비탕으로 더 발전하는 준혁이가 되길바래~
준혁이가 많은 동생들과 함께 낯선 하반하에 적응하느라 여러가지로 맘 고생이 많았겠구나. 2년차, 3년차 동생들은 군대의 고참 병장들처럼 눈치있게 잘 적응해 가는데 그런 동생들보다 형이되어 못 했을때의 자괴감은 나도 마찬가지일 거야. 사는 것이 다 그런 거 란다. 낯선 환경에서는 모두가 적응하는데 힘들지만 일단 적응이 되면 자신의 가치는 빛을 발하게 된단다. 아저씨가 볼때는 하반하에서 가장 본전 뽑은 친구는 준혁일 것 같구나. ㅎㅎ
앞으로 나서지 않으면서도 뒤에서 동료들을 챙겨주는 느낌이 들었었는데..
준혁이는 번데기처럼 한꺼풀 벗고 성장한 것 같다.
'어떤 사람에 대해서든 이 사람이 나에게 이런 것을 왜 시키지?를 의심하고 물고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상대방을 믿으려하는 태도를 가져보는 것이 인생을 살면서 정말 필요하다는 것을 느겼습니다.' 이 말..정말 멋지다...
상대방을 진심으로 믿는다는 것. 모든 일에 마음을 다해, 정성껏 하는것이 하반하 생활인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