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식 단상
이헌 조미경
아들이 동국대 대학원 석사 과정을 마치고 졸업했다. 길것만 같았던 시간은 꼭지점을 통과 하듯이
질주 해서 졸업장을 받았다. 재학중인 동국대 문창과 졸업식은 오전에 참석 했고, 오후에는
아들 행정대학원 졸업식에 참석했다. 학교는 학위복을 입은 졸업생들과 가족들이 모여서 축하 사진을 찍고 있었다.
졸업식을 지켜 보면서 오래전 나의 졸업식이 떠올랐다. 시간은 많은 것을 바꾸어 놓는다.
너무나 슬퍼서 눈물만 흐르던 시간도 이제는 추억이라는 이름이 되어 선명하게 어느 한곳을 떠돈다.
나의 첫번째 졸업식은 초등학교 졸업식이었다. 약 40년이 흘러 만난 동창생 설명에 의하면 내가 초등 졸업식장 에서
너무 슬프다며 꽂다발을 집어 던지고 교실 밖으로 울면서 뛰쳐 나갔다는데, 난 도무지 기억에 없다.
누군가 나에게 졸업식장에서 졸업하기 싫다고 울면서, 꽃다발을 던지고 왜 밖으로 나갔냐 물어 보아도 기억에 없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졸업식 꽃다발 던진 기억은 정말 없다. 더구나 친구들 앞에서 울기 까지 했다니
나는 못 말리는 아이 였나 보다. 내가 조금 유별 나기는 했지만 말이다. 집에 돌아오니 부모님께서 졸업식에 참석을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셨다. 그 후에도 초등졸업식에서 일이 두고 두고 기억에 남았다.
나의 여고 졸업식 날은 애시당초 시골에 계시는 부모님이 오시지 않을 것을 알았지만 , 넓은 운동장을 바라보며
혹시나 하는 마음이 나의 가슴 한켠에 자리 하고 있었나 보다. 다른 친구들은 부모님과 형제들, 그리고 친척들이 찾아와 예쁜 꽃다발을 손에 쥐어 주며, 졸업 축하를 해 주었는데, 나에게는 가족도 그 누구 한사람 아는 사람도 없이 쓸쓸하게 졸업식을 마쳐야만 했다.
친구들과 기념 촬영을 하는데 나에게는 흔한 꽃다발이 쥐어져 있지 않아서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눈물이 나려는 것을 꼬옥 참고 또 참았던 시간이었다. 너무 우울해서 혼자 집으로 도망치듯이 오려 했는데 친구들이 한사코 붙잡는 바람에 친구들과
사진도 찍고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여고시절의 마지막을 보냈던 추억이 스친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는 부모님 께서는 서울에서 고모가, 내 졸업식에 참석 하는 것으로
믿고 있었다고 하신다. 그 당시 고모는 시댁이 시골이라서 시골에 다녀오느라
나의 졸업식에 참석을 못하셔서 많이 미안해 했던 기억이 있다. 여고 졸업식은 나에게 서글픔과 서러움이 물밀듯 밀려 왔다. 그래서 그때 나는 결심했다. 나중에 나의 아이들이 졸업식을 하게 될때는 꼭 참석해서 꽃다발을 건네 주고 함께 기념사진을 찍자고 다짐을 했었다.그런데 큰아이는 중학교를 작은 아이는 초등학교를 동시에 같은 날 졸업식을 해서, 나와 남편은 따로 따로 아이들 학교로 따로 달려 갔던 적이 있다. 그러고 나서 함께 만나서 식사를 했던 적이 있다.
졸업식은 가족이 함께 모여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것에 축하와 격려가 필요한 일일테니까.
딸이 대학교를 졸업할때는 가장 예쁜 사진을 남겨 주고 싶어 미용실에서 메이크업을 받고 머리를 손질해 주었다.
나중에 어른이 되어 자식을 낳고 기를때 나와 같은 아픔을 느끼게 해주고 싶지 않아서, 비싼 비용을 치르면서 딸의 졸업 사진을 전문적으로 사진을 찍는 작가에게 맡겼다.
딸은 매우 만족스러워 했다. 그리고 아들 대학원 졸업식에도 나는 어김없이 사진을 전문적으로 찍는 작가에게 부탁해서
아들 학위복을 입은 사진과 학교를 배경으로 많은 사진을 찍었다.
세월이 흐르면 남는 것은 사진 밖에 없다는 생각에 비싼 돈을 치르면서
아들에게 졸업식이라는 큰 선물을 안겨 주고 싶었다. 아들에게 꽃다발을 선물 하고 보니 잊고 지내던 추억속에서 그리움으로 가슴을 아프게 하는 얼굴이 스친다. 시간은 상처도 아물게 하고 기억도 지우개로 깨끗하게 지워서 희미하게 남지만, 어는 순간
수면 위로 떠올라 가슴을 시리게 한다.
아이들 졸업식에는 더이상 참석할 일이 없을것 같은데 내 자신 또 한번의 마지막 졸업식이 기다리고 있다.
힘들게 공부 하면서 학교를 다니고 있는데, 이번에는 어떤 추억이 기다리고 있을지 지금부터 설렘이
여린 가슴을 향기로 채워 넣는다. 여고 절친이 나의 대학원 졸업식에 오겠다는 말읗 했다. 어쨌든 축하 해 주러 온다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좋다. 무슨 일이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는데, 나의 경우도 그동안 여러번의 졸업식을 했지만
만학도로 교정을 활보 하던 내가 새로운 출발과 마무리를 남겨 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