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에 방통대 컴퓨터과학과 졸업한 이종훈씨
조재현 기자
입력 2024.03.04. 08:52
“7살에 부모님을 잃고 학교도 제대로 못 다녔던 이종훈씨를 야간 중학교에서 처음 만났죠. 64년 전이었어요. 착실하게 공부하던 모습이 지금도 선한데, 평생 한이 맺혔을 대학 학위를 땄다고 하니 당연히 축하해줘야죠.”
지난달 20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한국방송통신대(방통대) 졸업식을 찾은 이양재(85)씨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이날 졸업한 컴퓨터과학과 이종훈(80)씨의 64년 전 은사다. 올해 80세의 나이에 대학 학위를 취득한다는 소식을 듣고 축하해주기 위해 졸업식에 참석했다고 한다. 그는 60여 년 만에 만난 이종훈씨를 ‘유난히 질문이 많았고, 매사에 끈기 있게 파고드는 근성이 있는 학생’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가르치는 데 각별한 관심을 가진 그는 1958년부터 3년간 서울 용산구 영생고등공민학교에서 야간 중학교 수업을 맡았다. 당시 이 학교에서는 대학생들이 배움의 기회가 많지 않은 6·25 전쟁 피란민과 저소득층 아이들을 주로 가르쳤다.
지난 24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한국방송통신대 2024학년도 전기 학위수여식'에서 이종훈(왼쪽)씨와 중학교 시절 은사 이양재씨가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이종훈씨 제공
연세대 생물학과에 다니던 그는 이종훈씨의 중3 담임선생님이었다. 이종훈씨가 중학교 졸업시험에 재수 끝에 합격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줬다고 한다.
이종훈씨는 첫 중학교 검정고시에서 국어, 영어, 역사 등 3개 과목을 만점에 가깝게 받았지만 수학 점수가 과락이 되면서 재수를 해야 했다. 그때 이양재씨가 “수학 대신 생물을 응시할 수 있으니 생물을 고르면 열심히 가르쳐주겠다”고 했다. 이종훈씨는 “선생님이 진심으로 도와주신 덕분에 중학교를 무사히 졸업할 수 있어 감사하다”며 “선생님 덕에 이 나이에도 또 한 번의 공부를 마칠 수 있게 돼 감회가 깊고 뭉클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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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에 탄력을 받아 야간 실업계고까지 졸업한 이종훈씨는 29년의 직장 생활을 마친 후에도 학업을 이어갔다. 2017년에는 73세의 나이에 방통대 컴퓨터과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1975년부터 2004년까지 한국전기안전공사에서 근무했는데, 문서 작업을 할 때마다 컴퓨터 사용에 큰 골치를 겪었다고 했다. 그는 “2004년 퇴직 후 ‘컴퓨터를 더 배워볼걸’하는 회한을 느껴 서대문노인복지관도 다녔다”며 “더 깊게 컴퓨터를 공부해보려고 ‘17학번’으로 대학에 진학했다”고 말했다. 일과 건강 때문에 1년간 휴학해 5년 만에 졸업장을 손에 쥐었다.
지난 24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한국방송통신대 2024학년도 전기 학위수여식'에서 이종훈씨가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이종훈씨 제공
자바스크립트, 데이터베이스, HTML5 등 복잡하고 어려운 컴퓨터 과목들을 공부한 그는 영어로 된 용어를 외우는 데도 큰 어려움을 겪었다. 1학년 때는 36학점의 과목 중 21학점에서 과락을 맞기도 했다. 그는 “2진법 같은 과목을 공부할 때는 ‘안 그래도 수학이 유독 젬병인 과목인데 그만둬야겠다’고 여러 번 고민했다”면서도 “학교에서 제공한 온라인 보충 수업까지 시간을 쪼개서 들어 겨우 졸업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종훈씨는 대학에서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홈페이지를 하나 만들어보는 게 꿈이라고 한다. 그 꿈을 이루려고 대학 선후배들과 함께 홈페이지 제작법을 공부하는 스터디에도 매주 일요일마다 출석하고 있다. 그는 “컴퓨터과학과를 졸업했으면 홈페이지 하나쯤은 만들어야 하지 않겠냐”며 “직장 후배들이 안전관리 업무를 더 쉽게 할 수 있는 홈페이지를 만드는 게 꿈”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