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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좋은 풍경도 풍경은 풍경일 뿐이라, 사람 없는 풍경은 실제적 사진이 아니라 회화적 허상에 불과하다. |
윤상길 주필
[미술여행 윤상길 주필] 김호일 선생의 시 <좋은 사람>의 마지막 시구를 먼저 소개한다.
“좋은사람을 보았네
장터에서 미래를 사고
내 빈속을 채우는 사람”
이 시구를 만난 사람들은 ‘장터 사진가’로 불리는 정영신 작가를 떠올린다. 그는 수십 년 동안 전국의 ‘장터’ 구석구석을 렌즈로 포착해 장터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담아온 사진가이다.
그 사진가 정영신이 진안에서 만난 향리 풍경이 <진안, 그 다정한 풍경>전이란 이름으로 오는 9월 24일부터 10월 6일까지 진안의 공동체박물관 ‘계남정미소’(전북 진안군 마령면 운계로 285)에서 열린다.
사진=정영신
이 ‘좋은 사람’의 작품전을 정영신 작가를 가장 잘 아는 ‘정영신의 짝지’ 조문호 작가의 글을 빌어 소개한다. ‘좋은 사람’ 정영신과 그의 예술세계를 조문호 작가만큼 잘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진안, 그 다정한 풍경’전 포스터
“그 고향 냄새 물씬 풍기는 풍정은 정영신이 30여 년 전에 기록한 사진이다. 그동안 전국 장터를 떠돌아다니며 안 찍은 마을이 없겠으나, 유독 그 사진들이 눈에 띄는 것은 배경으로 펼쳐진 마이산 때문이다.
사진=정영신
우리나라 사람치고 ”말의 귀를 닮았다“는 마이산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진들을 보면 마이산과 관련된 그리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기록사진에서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찍은 장소성인데, 정영신의 진안 사진들은 장소를 설명할 필요가 없다.
사진=정영신
아무리 좋은 풍경도 풍경은 풍경일 뿐이라, 사람 없는 풍경은 실제적 사진이 아니라 회화적 허상에 불과하다. 대개 특정 산을 찍은 풍경은 풍경으로만 떠돌기 마련인데, 정영신의 마이산 사진은 마이산을 배경으로 한 농민들의 삶이 있어 더 애착이 간다.
사진=정영신
정영신이 찍어 온 장터 역시 마이산처럼 하나의 배경일 뿐 그곳에 있는 사람에 있다. 사람들의 정이 오가는 정경에 끌려 40여 년간 장터를 떠돈 것이다.
사진=정영신
전라도 함평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정영신은 유독 고향의 정서적 영향을 많이 받았다. 대개의 사람들이 야박한 현실에 시달리다 보면 고향의 포근하고 넉넉한 정을 잃어버리기 마련이지만, 정영신은 그 정서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영원한 촌년’이다.
수십 년을 각박한 서울에서 살았지만 세상 때가 묻지 않은 것도 다 그 때문이다. 비록 가난하게 살지만 아무도 부럽지 않은 천하태평인 것이다. 정이 많아 남이 부탁하면 거절하지 못하는 심성도 여전하다. 천하 잡놈인 나를 뿌리치지 못했던 것도 그렇지만, 이 전시를 거절하지 못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사진=정영신
지금 전라도 장터 출판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어려운 형편이라 전시 치를 사정은 더더욱 아닌 것이다. 요즘 유독 오래된 지역 사진을 찾는 곳이 많다. 장소적 특성이 드러나는 죽물의 담양이나 화문석의 강화가 대표적인데, 사라진 지역적 특성이 드러나 그 시절이 그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진안 전시도 마이산 때문에 발각되어 붙잡힌 것이다. 이제 원로에 가까운 나이에 한 줄의 전시 이력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당사자들이 살아 가는 본토에서 보여주는 것도 의미는 있는 것 같았다.
사진=정영신
정영신은 진안장에 가면 의식을 치르듯, 마이산이 보이는 곳에 앉아 해가 내려앉는 풍경을 지켜봤다고 한다. 그곳에 앉아 장터에서 돌아오는 사람도 찍고, 일하는 사람도 찍은 것이다. 어렸을 때 뒷동산에서 보낸 추억 때문이라는데, 고향에 대한 애착은 그녀의 마음을 땅기는 지남철 같았다. 정영신의 말을 한 번 들어보자.”
<고향이 그리워 전국 장터를 떠돌았고, 정이 그리워 사람을 찍은 것이다. 마이산 중턱에 앉아있으면 고향에서 보았던 익숙한 풍경의 시간이 수직으로 멈추었다. 한 아짐이 논둑에 불을 지피자, 지나가던 꽃샘바람이 불씨를 키우며 따닥따닥 옆으로 번지기 시작하자 안절부절 못하며 불 끄는 모습, 똥지게를 지고 마이산을 향해 걸어가는 아재, 거름을 이고, 뒷짐을 진 아짐이 밭을 향하는 걸음은 곡예사처럼 자연스러웠다. 마이산 자락을 따라 장을 보고 집으로 가는 엄마들, 강아지와 함께 마이산 중턱을 달리는 아이들 모습으로 농촌의 현실을 목격했다.”
30여 년 전의 진안 농촌 풍경은 9월 24일부터 10월 6일까지 열리며, 작가와의 대화는 9월 27일 오후 3시로 예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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