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YodCK0DLTUE
슥 9:9, 크게 기뻐하는 사람들입니다. 20231210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그리 높은 편이 아닙니다. 같은 조건과 환경에서도 한국인은 불평이 많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삶의 만족도에 있어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에서 57위에 머물러 있습니다. 한국인의 행복도에 있어서는 조사대상 32개국 중 거의 꼴찌에 가까운 31위를 기록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다른 국가에서는 ‘자녀에게서 가장 큰 행복과 삶의 만족도’(85%)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친구관계’(57%)더 뒤를 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세계인들은 주로 인간관계에서 행복도를 느낀다고 응답했습니다. 한국인들은 어려울 때 의지할 수 있는 친구나 친척이 있다고 대답하는 비율이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적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정말 여러분이 어려울 때, 도와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있기나 합니까? 또 있다 한들 얼마나 지속적일까요? 그래서 여러분이 행복하지 않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방향을 바꿀 수만 있다면, 여러분은 행복한 사람이 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크게 기뻐하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로 방향을 바꿀 수가 있다면, 여러분은 언제나 어떤 환경 속에서도 크게 기뻐하는 사람들이 될 수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 안에서도 기뻐했습니다. 또 빌립보 교인들에게 함께 기뻐하자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빌 2:18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빌 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데살로니가에 보낸 편지에서는 ‘항상 기뻐하라’고 명령합니다.
살전 5:16–18 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왜 그리스도인들은 크게 기뻐해야 합니까?
첫째. 예수님이 왕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자기 백성을 가리켜 ‘딸’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것도 반복해서 딸이라고 부르시면서 ‘크게 기뻐하고, 즐거이 외치라’고 말씀하십니다.
슥 9:9, 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예수님이 오셨기 때문에, 크게 기뻐하라, 즐거이 부르짖으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도 예수님이 오셨음을 믿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크게 기뻐하십시오. 즐겁게 외치고 찬송하십시오. 만약 여러분이 기뻐할 수 없고 찬송할 수 없다면, 여러분은 아직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크게 기뻐하다’. ‘크게’(메오드)는 ‘힘, 능력, 풍부함, 심히’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얼마나 기뻐해야 합니까? 힘과 능력을 다해서, 넘치도록 기뻐해야 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항상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냥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소리 지르면서 기뻐하라고 명령합니다. 나는 내성적인 사람이라 소리 지르기 부끄럽다, 그렇게 말할 수가 없습니다. 이 기쁨은 갑작스럽게 터져나오는 그런 기쁨의 외침입니다. ‘즐거이 부를지어다’(루우)는 ‘소리를 크게 내다, 외치다, 함성지르다’는 뜻으로 ‘갑자기 크게 외치며 말하다’는 뜻입니다.
복권에 당첨됐기 때문에, 아들이 사업에 성공하거나 크게 잘 됐기 때문에 기뻐하고 잔치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예수님이 왕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십자가를 지시려 오신 예수님을 왕으로 영접하고 예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만으롣 여러분은 크게 기뻐하고, 너무나 기뻐서 소리칠 수가 있습니다.
둘째.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풀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불공평합니다. ‘팔은 안으로 굽게 되어 있다’고 말하면서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에게 정이 쏠리고 인사하게 되면, ‘그로 인하여 옳고 그름을 가리지 못하게 되는 어리석은 지도자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공의로우십니다’. 어떤 분들은 능력은 많은데, 도덕적으로나 글러먹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히 지도자들에게 있어서 항상 조심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성(여자나 남자) 문제’, ‘돈 문제’, ‘명예욕’입니다. 이런 문제로 인하여 사회에서 생명력을 잃는 많은 지도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공의로우십니다. ex) 안희정, 박원순
슥 9:9 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공의’(자디크)는 ‘의인’, ‘올바른’ 분이십니다. 더군다나 예수님은 여러분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구세주이십니다. 지옥불 구덩이에서 영벌을 받을 죄인들을 십자가로 죗값을 지불하시고 구원하려고 오셨습니다.
‘구원을 베푸시며’(이스)는 ‘파멸, 파괴, 헤로움에서 구하다’, 구하다, 돕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을 파멸과 지옥에서 구하시려고 오셨기 때문에 소리치면서 기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기쁨이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님은 어떤 특정한 사람들만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공의로우셔서 모든 사람들, 특히 죄인들의 죗값으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을 영벌에서 구원하시고, 영생을 얻게 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기쁜 소식을 여러분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민족이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기뻐하면서 크게 외쳐야 합니다.
셋째, 겸손하신 왕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왕으로 오신 예수님이 폭군이 아니라 겸손한 분으로 오셨습니다.
‘겸손’(야니)이란 ‘온유나 겸손으로 거만하거나 자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왕들은 다 말이나 백마를 탑니다. 자신을 들어내려고 합니다. 폭군이 되어 다른 사람들에게서 명예나 굴복을 강요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얼마나 겸손하신지,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를 타시고 왕으로 입성하셨습니다.
슥 9:9, 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겸손’의 또 다른 뜻은 ‘가난한, 마음이 상한’, ‘돈이 별로 없거나 어떤 것을 소유하지 않은’것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아무런 것도 소유하지 않았습니다. 성도들은 지나친 물질욕에 빠져서도 안되고, 부자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물질을 주시면, 겸손하게 그 돈과 재물을 비워낼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겸손하시고 온유하십니다.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사람들은 이런 예수님의 이런 겸손하고 온유한 마음을 배워야 합니다. 그래야 쉼을 얻고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마 11:28–30,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