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밝게 더 기쁘게
오늘 독서는 두 천사의 외침과 하늘의 많은 무리가 내는 큰 목소리, 그리고 마지막에도 요한에게 기록하라고 명하는 천사의 말로 끝납니다.
그렇다고 말만 나오는 것이 아니고 특별한 행동을 하는데, 처음에 나온 천사는 그 자체로 광채가 발해서 땅이 환해집니다. 또 다른 천사는 맷돌처럼 큰 돌을 들어 바다에 던지지요.
이 천사들이 하는 말들을 요약해보면 바빌론의 멸망입니다. 물론 옛날에 망한 바빌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바빌론, 그러니까 죄악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전염시키고, 자기들 혼자만 죄짓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까지 끌어들여서 유대하고 유착 관계를 맺는 죄악의 세력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어서 하늘에 있는 많은 무리가 큰 목소리를 내는데, 죄악의 세력을 꺾고 이기신 하느님의 심판, 단죄, 승리, 속량을 노래합니다. 특이한 점은 여기서 말하는 두 번 모두 할렐루야로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는 원래 히브리어입니다. “하느님을 찬양하라”는 뜻이지요. 이 히브리어를 그리스말로 번역하면서 그대로 그 음가가 간직되어서 할렐루야로 쓰여지지만, 라틴어로 번역하면서 알렐루야로 쓰여진 것입니다. 우리 카톨릭은 라틴어가 공식 언어이니까 알렐루야로 쓰는 거고 개신교는 할렐루야로 쓰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라틴어 번역본이 아니라, 이 단어가 쓰여진 그리스말 그대로 번역했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오늘 복음은 이번 주일인 대림 제1주일 복음이기도 합니다. 독서는 바빌론의 멸망인 것처럼 복음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독서처럼 영적 예루살렘으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다소 무섭게 말씀하시지요. 적군에게 포위되고 황폐해지고 산으로 달아나고 예루살렘에서 빠져나가라 하십니다. 징벌의 날이고 하느님 진노가 닥치고 포로가 되어 끌려가고 다른 민족에게 짓밟히고 하늘의 표징들, 땅과 바다가 거세져서 공포에 휩싸이고, 두려운 예감으로 까무러칠 것이라 합니다.
대림시기니까 주님 오시기를 기다리는 시기인데 왜 마지막 때에 대해서 나오는가 싶지요? 우리는 마지막 때가 시작입니다. 대림시기는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기도 하고 다시 오실 심판주의 예수님을 기다리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두렵고 떨리고 공포에 휩싸이고 까무러칠 정도로 무서운 때에, “어디 구석에 가서 숨어라”하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으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속량(贖良)은 ‘속바칠 속 자’를 씁니다. 조개 패 변이니까 돈하고 관련이 있다는 것이지요. 돈을 주고 몸값을 지불해서 노비의 신분이 양민이 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대속제물이 되신다. 속죄한다 구속하셨다고 할 때 쓰는 단어이지요. 이 속량이란 말이 그대로 쓰여서 예수님께서 인류의 죄를 대신 씻어 구원하신 것을 말하기도 합니다.
오늘 독서의 마지막과 복음의 끝이 비슷합니다.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은 행복하다”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우리는 죄를 지었다고 아담처럼 나무 뒤로 숨어서 피할 것이 아니라, 전지전능하신 주님께서 다 알고 오셨으니, 죄를 사해주시기로 오셨으니 “주님, 제가 이런 잘못을 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하고 회개하는 것이 주님을 제대로 맞이하는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을 피하고 외면하는 모습이 아니라 주님을 찾고 맞이하는 모습이길 바랍니다.
첫댓글 주님을 피하고 외면하는 모습이 아니라 주님을 찾고 맞이 하는 모습이길..아멘.
저도요... ^.^'
주님을찾고
맞이하는 글라라가되고싶습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