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것을 비범하게 표현할 때 좋은 시가 된다. 시의 소재가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고 일상에서 흔히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시적 표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유리 주전자 속 가부좌한 목련꽃 한 송이 섭씨 100도의 물로 관불식을 마쳤다 종잇장 같은 육신에 피가 돌고 가장 화려했던 그해 봄날이 되살아났다 죽어서 산 자와 살아서 죽은 자의 해후 만개한 웃음에 소리가 없다 꽃길만 걷자던 우리는 서로의 봄을 묻는 대신 침묵이 길어질 때마다 찻잔을 들었다 종종 길을 잃고 새 길을 만났다 말 없는 뿌리가 나무를 밀어 올리고 꽃 피우는 일 찻잔에 풀어지는 꽃의 생애가 향기롭다
우리도 잘 우러나는 중
(옥효정, 「꽃차를 마시며」)
꽃차를 마시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다. 찻집에서 누군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마실 수 있고 집에서 혼자 휴식하며 마실 수도 있다. 그런 평범한 일이 시로 승화되어 비범성을 보인다. 단순히 차 한잔 마시는 일이 생애를 반추하고 삶의 의미를 돌아보는 일이 되었다. 예사로운 일이 예사롭지 않은 일로 바뀐 것이다.
평범한 일을 비범하게 만들어 주는 표현들을 살펴보자. 유리 주전자 안에 든 목련꽃을 가부좌한 것으로 의인화하여 표현한 것부터 예사롭지 않다. 이 표현으로 단순한 꽃잎이 사색하는 존재, 명상하는 존재로 바뀌었다. 물의 온도를 섭씨 100도라고 표기한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커피나 녹차 등은 90도 정도의 물로 충분하지만 꽃차는 기본적으로 100도의 끓는 물로 한번 씻어내고 우려야 혹시 있을 수 있는 불순물을 정화할 수 있고 꽃차 본연의 향을 살릴 수 있다. 100도는 물이 수증기로 바뀌는 온도이기도 해서 승화의 의미를 내포하기도 한다. 시인은 이를 관불식으로 표현했다. 이는 초파일에 아기 부처상을 씻기는 의식으로서 과거의 죄악과 자신의 번뇌를 정화하는 행위다.
뜨거운 물에 되살아나는 꽃잎을 ‘종잇장 같은 육신에 피가’ 돈다고 표현함으로써 부활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가장 화려했던 그해 봄날이 되살아났다’는 구절은 부활의 의미를 더 확실하게 해 준다. ‘죽어서 산 자와 살아서 죽은 자의 해후’다. 죽어서 산 자는 목련꽃임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살아서 죽은 자는 그 꽃차를 대하는 자신으로 볼 수 있다. 일상에 묻혀서 삶의 의미를 잊고 살았던 자신, 즉 몸은 살아 있지만 의식이 죽어 있던 자신이다. 꽃과 나는 그렇게 만나고, 서로 ‘만개한 웃음’을 보이지만 당연히 ‘소리가 없다’. 소리가 없다는 사실을 일깨움으로써 해후의 깊이를 더한다.
‘꽃길만 걷자던 우리’부터는 꽃차 이야기가 인생 이야기로 확장된다. ‘우리’는 꽃차를 함께 마시는 대상과 나로 읽힌다. 꽃차를 마주하면서 과거 함께했던 사람을 회상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게 본다면 ‘죽어서 산 자와 살아서 죽은 자의 해후’는 꽃의 부활도 되지만 기억 속 존재의 부활이 되기도 한다. 꽃이 한때 활짝 핀 시절이 있었듯이 ‘우리’도 한창때가 있었다. 그러나 ‘꽃길만 걷자던’ 그때 다짐처럼 인생사가 평탄한 것만은 아닐 터이다. 그런 사실을 알기에 ‘서로의 봄을 묻는’ 것은 삼간다. ‘침묵이 길어질 때마다 찻잔을’ 드는 장면에 이르면 꽃차와 사람의 일은 하나로 엮인다.
‘종종 길을 잃고/ 새 길을 만났다’는 표현에서 ‘길’은 생각의 길 또는 대화의 길일 수도 있고 그간 살아 온 인생길일 수도 있다. 인생사에 화려한 시절만 있을 수 없는 것처럼 꽃의 생애도 만개한 시절만 있을 수는 없다. ‘말 없는 뿌리가 나무를/ 밀어 올리’는 일이 있어야 꽃을 피울 수 있고 그 ‘꽃의 생애가 향기’로울 수 있다.
마지막 행, ‘우리도 잘 우러나는 중’은 ‘우리’와 ‘우러나다’를 연관시켜서 우리의 삶도 꽃잎이 우러나듯 우러나야 제맛이라는 메시지를 남긴다.
일상에는 시로 승화시킬 수 있는 보물이 많이 숨어 있다. 신을 신거나, 거리를 걷거나, 일을 하거나, 붐비는 차 안에서 시달리거나, 가로수를 바라보거나 그 모든 일 속에서 이전에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다.
평범함 속에서 비범성을 찾으려면 대상을 새롭게 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 처음 보는 것처럼 낯설게 볼 필요가 있다. 오래 보고 깊이 생각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그러다 보면 대상과 소통하게 된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심지어 광물을 대상으로도 대화하게 된다. 궁극적으로는 대상과 내가 하나되어 서로 희로애락을 공유하게 된다.
일상에서 비범함을 발견하면 그 자체로 삶이 달라진다. 공허한 일상이 왠지 꽉 찬 것 같고, 무의미한 것들이 의미에 찬 존재로 다가온다. 그것이 치유와 행복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를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길은 그리 간단치만은 않다. 비범성을 찾았으면 그것을 비범하게 표현해야 한다. 말하고자 하는 핵심 내용을 잘 대변할 수 있는 시적 주인공, 즉 아바타를 찾아서 생생하게 묘사해 주고, 의인화, 은유, 배치 등 여러 가지 표현 기법을 활용하여 사상과 정서를 유감없이 담아 주어야 한다. 이는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지만, 부단히 노력하다 보면 시나브로 발전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창작의 기쁨을 맛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