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전세계적으로 연금과 관련된 갈등과 대결이 이어지고 있다. 특정 나라의 문제가 아닌 지구촌 전체적인 양상으로 번지는 것이다. 연금은 젊었을 때 일정 액을 정부에 납부하고 은퇴하고 난 뒤 조금씩 정부로부터 다시 받는 것이다. 늙어서 정부로부터 일종의 월급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그 금액은 직장을 다닐 때 받는 봉급보다는 훨씬 적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 푼이 궁한 상황에서 연금은 노년에 나름 최소한의 품위를 갖추게 하는 일종의 마지막 보루내지 마지막 기댈 언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연금이 엄청난 난관에 봉착했다. 재정 적자 문제이다. 그 주된 원인은 바로 수명 연장에 있다. 애초에 지금처럼 수명이 급증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실시한 정책이었다. 연금은 젊은 층에게서 일정액을 받아 노인들에게 지급하면서 그 수급을 조절하는 시스템이다. 내는 사람은 한정돼 있는데 연금을 받는 층이 예상보다 훨씬 오래 사니 그 경비를 어떻게 조달하고 충족시키겠는가. 그렇다고 주던 연금을 갑자기 안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연금을 받는 연령을 높이고 그대신 정년을 연장하는 안이 핵심안으로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젊은층에서 당연히 반발이 나온다. 하는 일없이 노닥거리는 노년층을 위해 자신들을 왜 희생해야 하냐고 주장한다. 자신들도 힘든 직장생활을 빨리 청산하고 나름 자유로운 생활을 즐기고 싶은 데 제도를 내세워 퇴직을 막으려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다. 지하철을 공짜로 타면서 온갖 훈수를 두는 노년층들에 대한 반감과 같은 맥락이다. 세대갈등은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정년 연장을 해서 문제점을 해소하겠다고 하지만 지금도 조기 퇴직이 일반화되고 있는데 무슨 정년 연장이냐며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정년 연장으로 인해 젊은 층의 취업문이 더욱 좁아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전세계 대부분 나라가 지금 연금관련 대갈등을 겪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나라가 바로 프랑스이다. 프랑스는 현 마크롱 대통령이 추진하는 연금 개혁안을 놓고 국민과 정부가 대 격돌을 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연금 개혁의 핵심으로 정년 64세 연장안을 들고 나왔다. 현행 62세인 연금 수급 최소 연령을 2027년 63세, 2030년 64세까지 단계적으로 상향한다는 것이다. 프랑스 정부는 현재의 연금제도를 유지하면 2030년 연금 적자가 135억 유로, 한화로 18조원 정도라며 연금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자 등 프랑스의 상당수의 국민들은 정년 연장을 사회적 약자에 고통을 전가하고 고용주에만 이익을 줄 뿐이라고 판단하며 마크롱 대통령의 연금 개혁에 반대의 소리를 높히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벌써 몇달째 연금 개혁과 관련된 시민들의 반대시위가 격하게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프랑스 상원은 정부의 안을 찬성 201표 반대 115표로 통과시켜 버렸다. 일단 마크롱대통령의 개혁에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하지만 반대하는 시민들은 정부안을 백지화하라며 더욱 목소리를 키우고 있는 양상이다.
지금 한국의 상황은 어떤가. 프랑스 연금위기와 상황이 다르지 않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연금개혁을 강하게 밀고 나가지 못한다. 내년 총선 그리고 몇년후 대선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임기만 넘기자는 기류가 팽배한 한국임을 감안하며 쉽게 연금 개혁안이 도출되기는 어려울 듯 하다. 한국도 정년 연장을 내세우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과연 그런 정년 연장이 실현 가능한 일인지도 현실적으로 불투명한 상황이다. 현 정부는 지금 노조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그런데 노동자들을 직접 설득해야 할 연금 문제를 또 꺼내든다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명예 퇴직 등으로 조기에 강제 퇴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데 무슨 정년 연장이며 한국의 일자리가 프랑스처럼 그렇게 다양하고 많지도 않은데 어떻게 정년 연장이 가능하겠느냐는 질문에 정부는 명확한 답변을 내놓아야 한다.
지금 전세계는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여러가지 상황에 처하고 있다. 수명 연장이라는 축복같은 저주가 존재하고 또 자국 이기주의에 함몰된 국제사회가 전쟁 등으로 경제 위기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경제가 위기로 가는데 연금 개혁 꺼내들기가 상당히 어려운 현실이다. 그래도 프랑스가 연금 개혁의 깃발을 높이 든것은 상당히 의미 있는 사건으로 평가된다. 사실 이 연금 개혁은 필요하다. 지금 젊은 층을 위해서도 그렇다. 하지만 젊은 층과 노년 층의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효율적인 개혁안을 도출해 낼 수 있을 것인가가 관건이다. 그리고 지지율을 고려하지 않고 원칙대로 정책을 밀고 갈 정부나 최고권력자의 의지가 있는지도 아주 중요한 아니 절대적인 요소가 될 것이다.
2023년 3월 10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