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디난트 호들러(Ferdinand Hodler, 1853-1918), ‘삶의 피로(Tired of life )’, 1892년, oil and tempera on canvas, Neue Pinakothek in München(뮌헨, 알테 피나코테크).
다섯 노인이 기다란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있다. 가운데 남자만 고개를 숙이고 있고 네 남자의 얼굴은 정면을 향했다. 마치 수도사처럼 정갈한 하얀 가운을 입은 이들은 대체 누구고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페르디난트 호들러(Ferdinand Hodler, 1853-1918)는 19세기 스위스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대칭적 구도와 반복을 특징으로 하는 ‘병렬주의’ 화법을 개발해 명성을 얻었다. 39세 때 그린 ‘삶의 피로(Tired of life·1892년·사진)’ 또는 삶에 지친 사람들 또는 환멸(Die Lebensmüden)은 병렬주의(竝列主義)를 보여주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다. 그림 속에는 비슷한 옷차림과 포즈를 취한 노인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같은 벤치에 앉았지만 서로 어떤 상호 작용도 없고, 하나같이 삶에 지친 듯한 표정이다. 이들은 특정 인물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삶의 피로와 허무, 인간의 고독과 소외를 상징한다. 한때는 건장한 몸으로 생기 넘치는 삶을 살았을 노인들은 이제 노쇠한 몸이 되어 자연으로 돌아갈 날만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가장자리에 앉은 백발의 두 노인은 떠날 준비가 된 듯, 두 손을 모으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마치 저승사자가 그들 앞에 서 있는 듯하다. 두 번째와 네 번째 노인 역시 같은 포즈를 취했지만 시선은 약간 아래를 향했다. 아마도 아직은 삶의 미련이 있는 듯하다. 가장 슬퍼 보이는 건 가운데 노인이다. 그는 다른 이들과 달리 상체와 양다리를 드러냈고, 두 팔도 아래로 떨어뜨렸다. 짧은 갈색 머리라서 상대적으로 가장 젊어 보이지만, 가장 지치고 힘겨워 보인다. 그 원인이 질병인지 삶 자체인지는 알 수 없다.
호들러는 어린 시절 아버지와 두 동생을 잃은 뒤 죽음과 고통이란 단어를 평생 안고 살았다. 이 그림을 그릴 무렵에는 죽음이나 질병을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기로 결심했던 듯하다. 화면 뒤쪽 가장자리에 나무 두 그루를 대칭적으로 그려 넣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자연으로 돌아가는 여정이라고 믿고 싶었던 건 아닐까.
페르디난트 호들러(Ferdinand Hodler, 1853~1918)는 스위스의 화가 자화상.
페르디난트 호들러(Ferdinand Hodler, 1853~1918)는 스위스의 화가이다. 베른 태생이며, 고아가 되어 고생했으나, 제네바에 나가 회화에 대한 눈을 떴다. 작품 〈학생〉(1875년) 을 내어 시작했는데, 자화상에 학생이란 제목을 붙일 정도로, 회화에서 항상 무엇인가 관념적인 것을 나타내려는 경향은 그 후에까지 일관되어 있다. 그만큼 단순하게 대상물을 능숙하게 그리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그는 자기의 생각을 정확히, 강하게 표명할 것을 요구하여 구도를 중요시하고, 구도에는 같은 방향의 선이나 모양에서 기계적일 정도로 딱딱한 통일을 구하고 있다.
또 인물도 간소하게 그려서 부드러움을 버리고, 정확한 윤곽부터 착실하고 의지적으로 나타내는데 동시에 또한 색채에도 극히 명확성을 존중하고 있다. 호들러는 독일적 체질의 화가로서, 정감이나 섬세와는 인연이 멀고 또 개념적이어서 조야 (粗野) 하면서도 남성적이다.
1891년에는 파리에서 〈밤〉을 발표하여 알려지고, 악몽을 나타내는 흑의 (黑衣)의 상(像)이나 잠자는 남녀를 병렬하는 외에 장식적인 기법에서 1901년에는 〈낮〉을 그렸으며, 1908년부터는 독일에 초청되어 〈예나 학도의 출발〉을 그렸다. 생전에는 명성을 떨쳤으나 죽은 다음의 명성은 희미해졌고, 작품은 깊이가 결여되었다고는 하지만 열과 힘으로 충만되어 있다.
페르디난트 호들러, ‘환멸에 빠진 영혼’, 1892년, 120×299.4㎝, 베른미술관, 스위스 베른.
페르디난트 호들러(Ferdinand Hodler), ‘병상의 발렌틴 고데다렐’, 1914년.
페르디난트 호들러(Ferdinand Hodler), ‘죽어가는 발렌틴 고데다렐’, 1915년.
페르디난트 호들러(Ferdinand Hodler,1853~1918), '착한 사마리아인(Good Samaritan)', 1883년, 취리히미술관.
페르디난트 호들러(Ferdinand Hodler), ‘Der Tag’, 1899-1900년, Foto © Kunstmuseum Bern.
페르디난트 호들러(Ferdinand Hodler,1853~1918), ‘밤(The night)’, 1889-90년, 베른미술관.
[자료출처 및 참고문헌: 동아일보 2024년 07월 25일(목) 「이은화의 미술시간(이은화 미술평론가)」/ Daum∙Naver 지식백과/ 이영일 ∙ 고앵자 생명과학 사진작가 ∙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