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讀>일장기표를 외면했던 유권자들 당신들은 누구이십니까
생로병사라는 명언이 있다.
천수를 누리는 모든인간은
누구라도 예외없이 생로병사한다.
나는 평소에
장기표라는 사람에 대하여서 관심이 없었으며
고로
잘모르면서
다만
장기표의 부고기사를 접하고
필자가
평소에 주장해왔던
두어가지 측면에서 부합되는 점이 있어서
필담을 써내려 간다.
그 하나는 "도덕성이다.
이는 필자가
수년동안 토론마당에서 주장해왔던 명제이다.
인간 그누구에게나,
무엇을 하거나
도덕성(심) 이 없다면
아무것도 없는 것이며
도덕성이 부재한 인간은
인면수심의 짐승같은 존재이다.
그 두번째는
우리나라 유권자들이
무지하고 무식하다는
필자의 평소의 지론을
장기표가
무려 6번의 총선출마에서
단한번도
당선된 적이 없다는 사실로 실증하고
타계하고 말았다.
우리나라 유권자들은
사람( 인물) 을 보고 판단하고
투표를 하는 게 아니라
정당을 보고
무조건 묻지마 투표를 한다는 것을
장기표의 6번 낙선으로
여지없이 실증했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유권자들이
투표를 할 줄 모른다는 사실을
그야말로
반복적으로 수도없이 글을 써 왔다.
이는
필자의 처지를 자각하지 못하는
어쭙잖은
교만한 마음으로
계몽한답시고 써 왔던 글들이며
필자 자신이
누구를 계몽할 저치는
물론 아니라는 사실도
필자는 잘 인식하고 있다.
프랑스의 민주주의 아버지하면,
장카크 루소를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알렉시스 드 토크빌을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일찌기
알렉시스 드 토크빌은
"모든 민주주의 국가에서 사람(국민)들은
그들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 라는
명언을 남겼다.
결국
이 명언을 실증하고 있는 국민들이
어제와 오늘
대한민국 국민들이며
이국민들이 선택한 정부가
실증해 오고 있지 않는가?
여기에 더 큰 문제는
오늘 한국인에게 있어서
도덕성을 점수로 매긴다면
필자는
서슴없이 낙제점을 매기며
또한가지
필자 개인의 평소 주장이지만
한국인들은
자신들의 역사에 반면교사 하지 않는다!
한국인들 중에서
자신의 조국이 자유와 풍요가 신장된
민주화를 이룬 선진국,
선진국민이라고 생각한다면
필자는 서슴없이
이런사람들에게
배은망덕한 인간들이라고 핀잔을 주고 싶다.
오늘 자신들에게
자유의 개념을 인식시켜준
자유의 아버지 이승만과
풍요의 아버지 박정희를 기리며,
감사하는 마음에서
우표딱지 하나 만들지 못하는 국민이
어찌
선진국 선진국민 일 수가 있으며,
부고를 접한
민주화 운동,
노동운동의 선봉에 섰었던
도덕성을 지닌
장기표를 외면한 유권자들이
무슨 선진국 유권자들이란 말인가?
삼가 고인의 유족들에게
그동안
위로의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무지하고 무식한
이청맹과니
노인이 무릎 꿇고 사죄 하노라!
by/조영일
^^^^^^^^^^^^^^^^^^^^^^^^^^^^^^^^^^^^^^^^^^^^^^^^^^^^^^^^^^^ ◆이루지 못한 장기표의 꿈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 인물인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장이 22일 새벽 별세했다.
50년이 넘는 긴 시간
학생·노동·시민운동에 헌신한 그는
구소련 붕괴 후
제도권으로 간
재야의 동지들과 달리
“내가 추구하는 정치를 하겠다”며
진보정당 운동을 고집했다.
그러나
총 7차례의 국회의원 선거에서
모두 떨어졌다.
세 차례
대통령 선거에도 출마를 선언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해
‘영원한 재야’로 불린다.
작은 방앗간을 운영하던
그의 부모는 가난했다.
4남 2녀 중 막내인 고인만
겨우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부터
세상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 그는
서울대 법대 진학 후
민청학련 및 서울대생 내란음모 사건,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 등으로
12년간 수배생활을,
9년간 옥살이를 했다.
간첩 사건에 연루되지 않은
인사 가운데
가장
오랜 수배생활과
옥살이를 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는 숱한 수감·도망 생활에도
민주화 운동에 따른
보상금을 일절 수령하지 않았다.
그는
“당시 민주화 운동은
지식인의 의무로 여겼다.
돈으로,
그것도
국민이 낸 돈으로 보상을 받으면
우리의 명예는 뭔가”라며
지원을 사양했다.
말년에는
국회의원 특권폐지 운동에 매달렸다.
그는
우리나라 국회의원은
누리는 특권이
186가지나 된다고 꼬집었다.
“국회의원이
많은 특권을 누리며 살면
서민들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고 부패한다”고 일갈했다.
그의 셈법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회의원 실질 연봉은
세비, 후원금 등을
모두 합쳐 5억원이 넘는다.
반면
그의 월수입은
국민연금과 베트남 참전 수당 등을
모두 합해 220만원 정도였다.
고인은
지난 7월17일 페이스북에
‘담낭암 말기’로 투병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당시
“여야가 적대적 공생 관계를 이뤄
나라와 민생을 거덜 내고 있다”고 질타했다.
그러면서도
‘물극즉반’(物極則反·극에 도달하면 원위치로 돌아온다)을
기대했다.
그는 8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세상을 바꾸겠다는
정치 개혁의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정치로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지 못하고 가는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영원한 청년이요, 혁명가였다.
그의 기원대로
이 나라 정치에 대반전이 일어나길 바라며,
장 원장의 안식을 빈다.
2024-09-24
박창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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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장기표 하니 이름이 떠 오름니다 여하튼 세상 뜨면 만사가 끝이 납니다 고인의 명복을 빌 따름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