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키스 (Elizabeth Keith: 1887-1956)
궁중 복장을 입은 공주
관복을 입은 청년
무관
우천시 쓰는 모자
한 농부
장옷을 입은 여인
필동기라는 이름의 남자
색동옷을 입은 아이
바느질하는 소녀
시골의 결혼잔치
갓바치
널뛰기
춤추는 무당
조랑말을 타고 팔도여행을 하는 서양인들 (1894년 영국 신문)
A Game of Chess (1936) - 장기 두는 풍경
New Year's Shopping, Seoul (1921) - 서울의 설 풍경
Korean Mother and Child (1924) - 엄마와 아이
Country Wedding Feast (1921) - 시골의 혼례 풍경
Marriage Procession, Seoul (1921) - 서울의 혼례 행렬
새색시
Wedding Guest, Seoul (1919) - 혼례 하객
평양동대문
평양강변
"Nine Dragon Pool, Diamond Mountains" (1921)
금강산 구룡폭포
Young Korean (1920) - 어린 한국 아이들
두아이
A Temple Kitchen, Diamond Mountains, North Korea (1920)
금강산 한 사찰의 부엌 풍경
피리연주자
징연주자
함흥의 아낙들의 수다
엘리자베스 키스 (Elizabeth Keith: 1887-1956)는 스코틀랜드 아버딘셔어에서 출생했으나 어려서 런던으로 이주하여 독학으로 미술공부를 했다. 독신이었던 그는 나이 28세가 되는 1915년 ‘신비한 동양’에 도착하여 생활의 터전을 잡을 수 있었다.
도쿄에서 “뉴 이스트 프레스”를 발행하고 있었던 형부 로버슨 스코트 (J. W. Robertson Scott)의 초청에 의한 것이다. 그는 일본 목판화에 경도되어 와나타베 소사부로의 문하에서 2년간 목판화 수업을 받았다. 그는 10년 가량 일본에서 살면서 주변의 여러 나라들을 여행하기도 했다.
조선 땅은 1919년 3.1민족해방운동 직후 처음으로 방문하여 3개월간 체류를 했다. 당시의 조선인상을 기록한 저서 “Old Korea : The Land of Morning Calm”(1946)은 맥아더 장군 등 에게 헌정된 책으로 그의 그림이 다수 수록되어 있다. 그는 앞의 저서 이외 “Glass Blades From a Cinnamon Garden" (Tokyo, 1927) "Eastern Windows"(London, 1933), "Elizabeth Keith : Masters of the Colour Print" (London Newyork, 1923) 등을 출판했다. 그의 마지막 한국 방문은 1936년이었으며 호놀룰루에서 전시회를 개최하고 귀국했다.
1991년 미국 파사드나 이상 태평양미술관에서 개최되었던 키스의 판화 특별전은 그의 미술세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짐작하게 한다. 당시의 도록에 의하면 그는 108점의 판화를 제작했다. 소재별로 분류하면 중국 관련 40점, 한국 관련 31점, 필리핀 싱가포르 관련 21점 그리고 일본 관련 16점 이었다. 이들 작품의 첫인상은 무엇보다 화사한 원색처리에 의한 풍물의 사실적 형상화라는 점이다. 화풍은 여성적 섬세함을 기초로 하여 짜임새 있는 구성과 농축된 주제의식이 돋보인다.
극소수의 예외를 인정한다면 이들 작품은 모두가 1920년대의 작품이다. 취급된 소재는 풍경과 인물 등이다. 한편의 정갈한 서정시를 읽는 것 같다. 풍물 기행첩과도 같다. 하지만 다색 목판화의 치밀한 기법이 요구되어 각고의 산물임을 알게 한다.
한국관련의 작품은 색동저고리 차림의 어린를 소재로 한[초파일] (1919) 로부터 금강산과 같은 풍경, 서울의 광화문이나 평양의 대동문 같은 도회적 풍경, 결혼식이나 장례식과 같은 의식, 궁정 악사나 선비 그리고 젊은 여성들의 모습, 서민의 모습을 담은 [조용한 아침의 나라에서] (1939) 같은 것이다. 인물과 풍경이 다양한 시각에서 선택되어 마치 관광사진첩을 보는 것 같은 현장감을 재현하고 있다. 사실적인 묘사력과 화사한 색채구사는 단연 돋보이는 부분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엘리자베스 키스는 1921년 서울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는 점이다. 많은 서양인 화가가 서울을 다녀갔지만 이렇듯 키스처럼 개인전까지 개최한 서양인 화가는 전무했다. 이점은 각별한 주목을 요하는 부분으로 일제하 식민지의 조선에서 그의 위상이나 역할을 짐작하게 한다.
또한 그는 1934년 2월 서울의 한 백화점 화랑에서 조선을 주제로 한 판화 등의 작품으로 서울에서의 두 번째 개인전을 개최했다. 물론 그는 1920년 도쿄에서 조선을 주제로 한 작품을 가지고 전시회를 가진 바도 있다.
이렇듯 엘리자베스키스의 조선 소재의 작품제작과 함께 그의 서울 개인전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당시 그의 개인전은 성황을 이루어, 외국인 선교사, 조선의 선비, 학생들 그리고 총독의 부인 등이 관람을 했다. 서울에서의 개인전 상황에 대해서는 그의 저서 [Eastern Windows]에 소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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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푸른 눈에 비친 우리네 옛모습.
판화의 셈세함에 놀라울 뿐입니다.자료 고맙습니다.허선생님.
좋은 자료 잘 감상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