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漢詩 한 수] 왕조 몰락의 그늘
夫因兵死守蓬茅(부인병사수봉모),
남편은 전쟁 나가 죽고 띠집 혼자 지키는데,
麻苧衣衫鬢髮焦(마저의삼빈발초).
거친 삼베옷에 머리칼은 푸석하다.
桑柘廢來猶納稅(상자폐래유납세),
뽕나무 없어져도 여전히 세금을 내야 하고,
田園荒盡尙征苗(전원황진상정묘).
밭이 황폐해져도 아직 경작세를 걷는다.
時挑野菜和根煮(시도야채화근자),
자주 들풀 뽑아 뿌리째 삶는데,
旋斫生紫帶葉燒(선작생자대엽소).
즉석에서 잎 달린 생나무를 잘라 불을 지핀다.
任是深山更深處(임시심산갱심처),
제아무리 깊은 산속보다 더 깊이 들어가도,
也應無計避征徭(야응무계피정요).
세금과 부역은 피할 방도가 없으리니.
―‘산속의 과부(산중과부·山中寡婦)’ 두순학(杜筍鶴·약 846∼904)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는 교훈을 여실히 보여주는 시. 몰락을 앞둔 당 왕조의 암울한 현실을 가감 없이 담았다. 없어진 뽕밭에서든 경작조차 않는 밭이든 마구잡이로 세금을 매기니 전쟁통에 과부가 된 여인은 심산유곡(深山幽谷)으로 숨어든다. 시인의 경험칙상 그런다고 ‘세금과 부역을 피할 방도는 없을 터’이지만 과부는 근근이 제 한 몸을 건사하고 있다. 양식거리라곤 들풀이 고작이고 땔감조차 없어 생나무로 불을 지피는 이런 임시변통이 얼마나 지속될는지 여인 못지않게 시인의 불안과 조바심도 깊어만 간다.
두순학은 자기감정을 절제하면서 인물과 사실을 객관화하는 데 뛰어나 두보의 현실주의 정신을 계승하려 했다는 평가를 받는 시인. 개중에는 표현이 조악하고 투박하여 시적 함축미가 빈약하다는 비평가도 있다.
✵두순학(杜筍鶴·약 846∼904)은 중국 당나라 후기의 시인이다. 지주(池州) 석대(石臺, 지금의 중국 스타이 현 공계향貢溪鄕 두촌杜村) 사람이다. 자는 언지(彦之)로 구화산인(九華山人)으로도 불렸으며, 시인 두목의 막내아들(열다섯째)이라 하여 두십오(杜十五)라고도 불렸다.
문집으로 《당풍집》(唐風集) 3권이 있으며, 고운(顧雲)이 그 서문을 지었다. 송대 엄우(嚴羽)는 《창랑시화》(蒼浪詩話) · 시체(詩體)에서 그의 시체를 두순학체(杜苟鹤體)로 분류하였다. 한편 고려 말기의 저본을 바탕으로 조선 초기에 성립된 《협주명현십초시》(夾注名賢十抄詩) 중권에 최치원, 박인범 등 신라의 빈공제자 4인과 함께 두순학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참고문헌 및 자료출처 : 〈이준식의 漢詩 한 首(이준식, 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동아일보 2024년 07월 26일(금)〉, Daum∙Naver 지식백과/ 이영일 ∙ 고앵자 생명과학 사진작가 ∙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