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화 피었다고
- 엄영란
선운사 가자 했습니다
길은 아득한데 그저
꽃이 보고 싶다 했습니다
극락교 이쪽 꽃은 벌써 모가지 꺾였다 했습니다
그늘진 뒤쪽은 더 오래 핀다 했습니다
몇 번을 가도 그 자리인
장사송을 또 지나간다 했습니다
온 하늘이 자꾸 서쪽으로 붉어진다 했습니다
어쩌면 꽃무릇 탓인지도 모른다고
상사화 피었다고
선운사 가자 했습니다
꽃무릇도 피었다고
상사화처럼 피었다고
도솔암 마애불이 새겨진 바위에
구멍 숭숭 뚫렸다고
상사화는 어쩌라고
저 속 저리 환하냐고
상사화 피었다고
선운사 가자 했습니다
마당 귀퉁이에 심어 놓은
상사화 네 송이 피었다고
그는 바위처럼 말했습니다
ㅡ문학청춘작가회 동인지 6 『성지곡 수원지』(황금알, 2023)
*****************************************************************************************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한다는 상사화와 꽃무릇이
서로 다르단 걸 참 늦게서야 알았습니다
이름난 선운사에 상사화보러 가자는 말에 소환되는 추억이 선연한가 봅니다
상사화는 잎이 먼저 돋고 나중에 연분홍이거나 희거나 노란 꽃이 핍니다
꽃무릇은 꽃대가 먼저 솟아 진홍의 꽃을 피운 뒤 이울어야 잎이 돋아납니다
꽃에 얽힌 추억이야 서로 다를지언정 간직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나봅니다
굳이 선운사까지 가지 않아도 마당 귀퉁이에서 상사화를 보고 있다는
'그'는 늘 그 자리에 있는 바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