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m.blog.naver.com/cine_play/223092200709
너무너무 좋은 글이니까 전문 꼭 읽어주길 바라잔아
분명 영화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거잔아
* 〈킬링 로맨스〉의 상세 줄거리가 언급되어 있습니다. 영화의 매력을 반감시킬 만큼 결정적인 스포일러는 아니지만, 원치 않는 분은 이 글을 읽는 일을 영화 관람 후로 미루시기를 추천드립니다.
* 아울러 가정폭력과 가스라이팅에 대한 묘사가 있습니다. 읽는 분들의 주의를 요합니다.
끝없는 속박과 억압에 지쳐 이혼을 요구한 여래(이하늬)의 말에 조나단 나, 줄여서 '존 나'(이선균)는 분노한다. 순간 뭔가 잘못됐단 걸 직감한 여래는 자신이 내뱉은 말을 철회해 보려 하지만, 집사들은 존 나의 지휘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폭력의 무대를 만든다. 온 집안의 불을 끄고, 혼자 거대한 거실 벽 앞에 서 있는 여래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떨구고, 존 나의 곁에 귤을 카트째 준비해 준다. 감히 이혼을 이야기하다니. 존 나는 산더미처럼 쌓인 귤을 하나씩 집어 들고 여래에게 던진다. 그냥 던지는 것도 아니고, 온몸을 이용해 용틀임하며 전심전력으로 피칭한다.
퍽, 퍽. 귤은 여래의 몸에, 여래 바로 옆의 흰 벽에, 여래의 발치에 떨어지며 흰 벽을 귤 색깔로 물들인다. 여래는 모멸감을 삼키며 몸을 벽 쪽으로 돌려 존 나가 던지는 귤을 피한다. 광기 어린 피칭이 끝나고 난 뒤, 집사들은 대걸레를 들고 와 간결하고 제한된 동작들로 귤 물을 닦아낸다. 존 나가 좋아하는 폭력의 방식을 정확히 파악하고 실행에 옮기고 뒤처리하는 집사들을 보나, 익숙한 표정으로 폭력의 시간을 견디는 여래를 보나, 이건 한두 번 있었던 일이 아니다. 이 폭력은 이미 여러 차례 반복되어 왔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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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이렇다 할 외상을 남기지는 않는 강도, 그러면서도 당하는 사람에게 엄청난 모욕감을 선사할 수 있는 귤이라는 도구, 폭력의 무대를 연극적으로 통제하는 통제광적인 면모, 굳이 조력자들이 있어야 수행할 수 있는 방식을 택함으로써 제 권력을 과시하는 위압. 존 나는 이 폭력 자체를 즐기는 동시에, 자신의 통제와 권력 앞에 여래가 움츠러드는 걸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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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나는 ‘행복’을 부르며 여래에게 지금 이 상태가 ‘행복’이라고 세뇌한다. 당신은 정신적으로 불안정하고 피해망상이 있어서 배우로 복귀해서는 안 되는데, 그 불안정과 우울과 피해망상은 내가 비싼 돈을 주고 사 온 한정판 에르메스 백을 가지면 자연스레 나을 것이고 나아야 한다고. 그러니까 내 곁에 있으라고. 그게 행복이라고. 그렇게 보면 ‘행복’의 후렴구 마지막 가사는 새삼 소름 끼친다. “나를 불러줘요, 그대 곁에 있을 거야. 너를 사랑해. 함께해요, 그대와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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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석 감독은 쉽게 삼키기 어려운 ‘가정폭력으로부터 탈출하려는 여성의 분투기’라는 주제 위에, 특유의 과감하고 엉뚱한 유머로 당의(糖衣)를 씌운다. 쏟아지는 유머의 폭격 속에 정신없이 웃고 함께 노래를 흥얼거리다 보면, 우리는 자연스레 존 나를 미워하고 여래를 응원하게 된다. 그건 자아도취에 빠졌으며 매사가 연극적인 통제광, 자신의 배우자를 자신의 소유물인 것처럼 취급하는 사이코패스 가정폭력범을 미워하고, 그의 통제에서 빠져나와 제 생을 구원하고자 하는 여성을 응원하는 일이다. 이원석 감독의 코미디 작품에 대한 주석이 너무 거창한가? 그런데 〈킬링 로맨스〉는 그 거창한 일을 기어코 해내고야 만다.
그런 의미에서 폭력의 굴레를 끊어낸 것이 여래 본인이란 사실은 묘하게 벅차기까지 하다. 여래를 구해내겠다고 말은 늘 번지르르하게 하지만 지나치게 순박한 나머지 늘 결정적인 순간에 존 나를 죽이는 데 실패하고 마는 범우가 아니라, 늘 움츠러든 채 폭력을 견뎌내던 피해자 여래가. 영화의 결말부, 여래는 자신을 끌고 가던 집사들을 뿌리치고 존 나에게 달려간다. 귤을 카트째 끌고 온 여래는, 자신이 당했던 그대로 귤을 집어 들고 존 나에게 던진다. 그리고 그제야,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존 나의 위상은 금이 가기 시작한다. (이원석 감독이 맞았다. 이 영화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영화다.)
〈킬링 로맨스〉를 볼지, 안 볼지, 보더라도 어떤 식으로 소비할 것인가는 저마다의 자유다. 그러나 나는 이 작품의 당의 안에 숨겨진 메시지를 보다 많은 사람이 음미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 주변의 여래들이 용기를 냈을 때, 옆에서 그 마음이 사그라지지 않게 응원해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마치 존 나의 ‘행복’ 앞에서 여래가 다시 흔들릴 때, ‘여래이즘’을 부르며 여래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는지 상기시켜 준 여래바래 회원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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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너무 좋은 글이니까 전문 꼭 읽어주길 바라잔아
분명 영화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거잔아
첫댓글 맞아 진짜 영화 아예 사전정보 없이 가서 처음엔 웬 병맛 영화인가 싶었는데 조나단이 계속해서 부르는 노래가 너무 웃기면서도 실제 가정폭력 가해자들이 가스라이팅 하면서 하는 말들(넌 나 없으면 어떻게 살래, 나만한 남편 없다 등등) 이 오버랩되어서 아 진짜 함축적으로 잘 담았다, 싶더라고. 주변에 꼭 보라고 말하고 다니는데 이제 상영관이 별로 없어서 너무 아쉬워ㅠㅠ
아진짜 잘만든영화임....상영관 너무 적아서 슬픔
짐짜 그냥 b급영화 아닌데
킬로 볼수록 좋아
빙금 영호ㅏ 보고 이 글 읽었잔아.. 더 좋아짐
그래서 우리 주변의 여래들이 용기를 냈을 때, 옆에서 그 마음이 사그라지지 않게 응원해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이 문장 넘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