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댓글우~와 ! 금싸라기 정보 올려 주셨네요 금성 최초의 라디오라 값어치 기대치 이상으로 이젠 문화재 급이라 할수있죠. 듣다 상상하다 책자를 구할수 있을지 알아봐야겠네요. 카페무선국 보유 아버지와 라디오 책속에서는 디테이한 부분이 적은데 비해 라디오보이 들이 좋아하는 이미지 많네요. 좋은책 소개 감사 합니다..^^.. ~짝짝짝 !
아버지의 라디오책에서 발취, 엮은이 (김해수)딸 김진주. 1958년에 공채시험을 통해 금성사(현 LG전자)에 입사하여 국산 라디오 첫 제품(금성 A-501호)의 설계와 생산을 책임지게 되었다. 그때부터 1969년까지 금성사의 신제품 개발을 주도했으며, 60-70년대에 성장가도에 오른 한국 전자산업사의 중대한 고비마다 엔지니어 김해수의 발자취가 새겨졌다. 80년대 격동하는 민주화운동의 파고 속에 딸과 아들이 몸을 던지는 고난을 당하던 와중에, 1987년 일본인 사업가의 도움으로 신기상역(주)를 개업하여 말년까지 전자산업의 현역으로 일했다. 2005년 8월에 83년의 생애를 마감하고 타계했다.
아련한 기억 입니다. 1964년 국민학교 입학1년전 까지 집 찬장위에 있어 부모님이 섬마을 선생님인가 연속극을 즐기셨고 어느날 아침 눈을 뜨니 허전하여 도선생이 실례하여 1966년 3년때 같은 모양의 TR 의PCB 형을 중고를 선물받아 삽다리촌각 연속극만하면 먹통이 되어 툭치면 소리가 들락그려 고쳤던 기억을 나게해준 귀한자료 공유 고맙습니다~
저는 금성사에서 금성 A-501을 개발하신 김해수님의 따님(김진주)이 쓰신 "아버지의 라디오"를 읽었습니다. 아래는 그 책에서 따님이 아버지를 소개한 글입니다.
아버지 김해수는 1932년 경상남도 거창에서 태어나 하동에서 자랐다. 15세에 일본으로 건너가 전자기술을 배웠다. 해방직전 일본군부에 의해 인천 조병창 전기주임으로 발령받고 귀국하여 탈출하였다. 1945년 해방직후 고향에서 전업사를 차렸고, 6.25전쟁중 부산에 자리잡아 미군 PX의 라디오 수리점등을 운연하였다. 1958년 공채를 통해 금성사 (현 LG전자)에 입사하여 국산 라디오 첫 제품(금성 ㅁ-501호)의 설계와 생산을 담당했으며, 1969년까지 금성사의 신제품 개발을 주도하였다. 이후 몇몇 전자회사응 거쳐 1987년 신기상역(주)를 설립하여 말년까지 전자산업의 현역으로 일했다. 2005년 8월 23일에 생애응 마감했다.
첫댓글 우~와 !
금싸라기 정보 올려 주셨네요
금성 최초의 라디오라 값어치
기대치 이상으로 이젠 문화재
급이라 할수있죠.
듣다 상상하다 책자를 구할수
있을지 알아봐야겠네요.
카페무선국 보유 아버지와
라디오 책속에서는 디테이한
부분이 적은데 비해 라디오보이
들이 좋아하는 이미지 많네요.
좋은책 소개 감사 합니다..^^..
~짝짝짝 !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문의하면 대량 구매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ㅎㅎㅎ 많은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기님~~ PDF로 인쇄할 수 있는 링크를 찾았습니다^^ 구하기 어려우시면 여기서 다운로드받아 제본 맡겨도 될 것 같아요!
http://archive.much.go.kr/archive/publicationRead/InfoListInqire.do
@샤과군 덕분에....다운 받았습니다 잘 읽어 보겠습니다.
좋은 책자 소개해 주셨네유.
네 최초의 과학교재사인 합동과학교재사 사진이나 전파과학 잡지 자료 등등이 있어서 대한민국 라디오 자작 역사를 한눈에 보기 좋더라구요~~~
아버지의 라디오책에서 발취,
엮은이 (김해수)딸 김진주.
1958년에 공채시험을 통해 금성사(현 LG전자)에 입사하여 국산 라디오 첫 제품(금성 A-501호)의 설계와 생산을 책임지게 되었다.
그때부터 1969년까지 금성사의 신제품 개발을 주도했으며,
60-70년대에 성장가도에 오른 한국 전자산업사의 중대한 고비마다 엔지니어 김해수의 발자취가 새겨졌다.
80년대 격동하는 민주화운동의 파고 속에 딸과 아들이 몸을 던지는 고난을 당하던 와중에, 1987년 일본인 사업가의 도움으로 신기상역(주)를 개업하여 말년까지 전자산업의 현역으로 일했다.
2005년 8월에 83년의 생애를 마감하고 타계했다.
감사합니다ㅎㅎㅎ 아버지의 라디오 저도 발간되자마자 바로 구입해서 가지고 있어용^^~~ 산업화의 역군인 김해수님의 따님인 김진주씨가 민주화를 외친 박노해 시인과 결혼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더라구요ㅎㅎㅎ
@샤과군 일제 강점기 이후 해방은 됐느나 이념으로 허리가 잘린 한반도, 백의민족의 슬픔입니다.
사과군님 멋지시네요^^.
@권규식 공감합니다ㅠㅠ 참 아픈 우리 역사가 승화되어 언젠가 화해와 평화라는 한줄기 빛이 찾아오리라 믿습니다~~
아련한 기억 입니다.
1964년 국민학교 입학1년전 까지 집 찬장위에
있어 부모님이 섬마을 선생님인가 연속극을
즐기셨고 어느날 아침 눈을 뜨니 허전하여
도선생이 실례하여 1966년 3년때 같은 모양의
TR 의PCB 형을 중고를 선물받아 삽다리촌각
연속극만하면 먹통이 되어 툭치면 소리가
들락그려 고쳤던 기억을 나게해준 귀한자료
공유 고맙습니다~
저는 금성사에서 금성 A-501을 개발하신 김해수님의 따님(김진주)이 쓰신 "아버지의 라디오"를 읽었습니다. 아래는 그 책에서 따님이 아버지를 소개한 글입니다.
아버지 김해수는 1932년 경상남도 거창에서 태어나 하동에서 자랐다. 15세에 일본으로 건너가 전자기술을 배웠다. 해방직전 일본군부에 의해 인천 조병창 전기주임으로 발령받고 귀국하여 탈출하였다. 1945년 해방직후 고향에서 전업사를 차렸고, 6.25전쟁중 부산에 자리잡아 미군 PX의 라디오 수리점등을 운연하였다. 1958년 공채를 통해 금성사 (현 LG전자)에 입사하여 국산 라디오 첫 제품(금성 ㅁ-501호)의 설계와 생산을 담당했으며, 1969년까지 금성사의 신제품 개발을 주도하였다. 이후 몇몇 전자회사응 거쳐 1987년 신기상역(주)를 설립하여 말년까지 전자산업의 현역으로 일했다. 2005년 8월 23일에 생애응 마감했다.